[서초동서 떨어지는 '공짜 감' 기대 접어라]
[실종 신고! 尹정부 '실용주의 3원칙']
서초동서 떨어지는 '공짜 감' 기대 접어라
[김창균 칼럼]
두 번 거푸 예상 어긋난 판결
판사 1명에 흔들리는 정치판
선거법 판결에 與 쇄신 증발
위증 교사 무죄가 藥일 수도
노력 없는 횡재는 불행 예고편
國政 망치고 司法 기대면 안 돼
25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 1심 재판 무죄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 모인 시위대 반응은 엇갈렸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고(왼쪽) “이재명 구속”을 외치던 반이재명 시위대는 조용해졌다. /뉴스1·박상훈 기자
오후 2시가 다가왔을 때 각자 예상하는 선고 형량을 주고받았다. 의원직 상실 기준인 벌금형 100만원을 전후해서 양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필자는 100만원을 살짝 넘기는 액수를 떠올렸다. 2심에서 100만원 안쪽으로 조정할 여지를 떠넘기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삼십 분이 흘렀을 무렵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징역형이 나왔네. 1년에 집행유예 2년.” “되게 센데.”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열흘 후 다시 오후 2시. 이번엔 그다지 결과를 궁금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위증 교사는 비교적 증거가 뚜렷했다. 지난해 이 대표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도 “위증 교사는 혐의가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당도 위증 교사 쪽을 걱정해 왔다. 선거법에서 엄중한 판결이 나왔으니 징역형은 피하기 어렵고 집행유예가 따라붙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라고 짐작했다. 이번에도 놀라는 탄성이 터졌다. “위증은 유죄인데, 위증 교사는 무죄? 이렇게 될 수 있나?” “증언한 사람만 바보 만들었군.”
희한한 체험이었다. 국민적 관심사인데 현장을 볼 수 없었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경기를 위성중계로 볼 수 없던 까마득한 시절, 뉴스 멘트로 최종 스코어만 접하던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스포츠는 대충 짐작했던 결과가 나오는데 판결은 지그재그로 예상을 비켜갔다. 두 판결을 지켜본 누군가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했다.
제1 야당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를 판사 한 명이 결정해서 발표했다. 국민은 그걸 귀동냥해서 전해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30년 가까이 정치판을 관찰해 오면서 처음 보는 일이다. 공직을 맡은 사람은 유무죄를 가리기 앞서 기소만 돼도 일단 자리를 내려 놓곤 했다. 그걸 국민에 대한 예의로 여겼다. 대통령 하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은 검사의 수사선상에 오를 일을 하지도 않았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정치에서 염치는 실종됐다. 제1 야당 대표는 재판정 네 곳을 들락거리며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 2심까지 실형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정치인이 총선 바람을 일으키며 제2 야당을 건설했다.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민주당은 용궁에서 간을 털리는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사망했다”고 성토했던 입으로 열흘 만에 “판사님, 감사합니다”를 읊조렸다. 야당 정도 강도는 아니지만 여당도 반대 방향의 감정 기복을 겪었다. 로또 다섯 자리 번호까지 맞아서 대박 김치국부터 마셨는데 마지막 순간 삐끗했다.
노력 없이 얻는 횡재는 안 좋은 결말을 예고하는 법이다. 정치도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문재인 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당’으로 갈라지자 “어부지리로 180석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방심하며 각종 추태를 선보였다. 그 결과 질 수 없는 선거를 내주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끝내 탄핵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권 사람들은 출범 초부터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조커를 손에 쥐고 있다며 여유를 부렸다. “수많은 혐의 중 몇 가지는 유죄를 피할 수 없다. 확정 판결이 늦춰질수록 오히려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만 쓰러뜨리면 민주당은 무력화된다, 언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판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윤 정권이 방만한 국정 운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데는 이런 계산법도 한몫했다고 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권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면서 엄청난 위기감에 휩싸였다. 국민 눈높이에는 못 미쳤지만 대통령은 대(對)국민 사과의 모양새를 취했고, 여당은 대통령에게 쇄신을 실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1심 징역형이 나오면서 여권의 절박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위증 교사 선고는 여권 입장에서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권 희망대로 이재명 대표의 두 혐의 모두 중형이 선고됐다면 여론은 “저쪽은 철저하게 심판받는데 왜 대통령 부인은 수사조차 안 받느냐”는 쪽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용산도 여당도 서초동에서 떨어지는 ‘공짜 감’ 기대를 접고 이달 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쇄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왕적 권력을 손에 쥔 집권 세력이 스스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해서 상대방이 거꾸러지는 것만 기다린다면 그것만큼 한심스러운 일이 없다. “그래도 여(與)가 야(野)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면 서초동에서 감이 저절로 굴러올 것이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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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신고! 尹정부 '실용주의 3원칙'
①데이터 기초해 정책 결정
②더 나은 대안 있으면 수정
③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 수렴
약속해 놓고 하나도 안 지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수정, 보완하며, 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실용주의 3원칙'을 약속하고는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장면./뉴스1
대부분 까맣게 잊었겠지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라는 게 있다. 최고 정책 전문가 200여 명이 두 달여 작업 끝에 2022년 5월 내놓은 윤 정부의 국정 운영 청사진이다. 그 보고서에서 “윤 정부는 국익, 실용, 공정, 상식을 국정 운영 원칙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용’에 대해 “①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집행하고, ②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면 수정·보완하며, ③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 반 동안 윤 정부는 이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의료 사태를 대입해 보자. 110대 국정 과제엔 일언반구도 없었던 ‘의대 정원 확대’는 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덜컥 던지면서 시작됐다. 소송까지 제기돼 법원이 점검해 보니, 2000명을 뒷받침하는 ‘①객관적 데이터’, 그런 건 없었다. 전공의 집단 사퇴, 의대생 집단 휴학 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수많은 대안이 제시됐지만, 정부는 ‘②수정·보완’은 생각도 안 했고, ‘③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 존중’도 없었다.
경제정책 운용에서도 ‘실용 3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윤 정부 전반기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의 제1요인이 ‘김 여사 문제’이지만, 4월 총선 이전만 해도 낮은 지지율의 1순위는 늘 ‘민생’이 차지했다. 윤 정부 핵심 정책인 감세가 효과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활성화, 소비 촉진 효과는 안 보이고, 막대한 세수 펑크만 두드러졌다.
미국 트럼프 1기 정부도 감세 정책을 썼지만,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감세로 인한 세수 구멍을 관세 인상을 통해 메웠기 때문이다. 반면 윤 정부는 반도체 경기 침체로 삼성전자·하이닉스의 법인세 납부가 제로(0)가 되자,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감세가 세수 펑크를 촉발하지 않으려면 지출 구조 조정이라도 해야 했는데 지출도 줄이지 않았다. 첫해 세수에 56조원이나 구멍이 났는데도, 해법을 찾기는커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같은 감세를 계속 밀어붙였다.
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문제가 생기면 수정·보완한다’는 ‘실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250만호 주택 공급’ 정책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와 건축비 상승, 전세 사기 사태 등으로 전혀 작동되지 않는데도, 주택 공급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해 왔다. 부실 PF 정리를 계속 미룬 여파로 새 아파트 부지 공급이 중단되고, 공급 불안 심리에 금리 인하까지 겹쳐 ‘똘똘한 한 채’ 투자 광풍이 일었다.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이 폭등세로 돌아섰는데도 국토부 장관은 “일시적, 지엽적 잔반등”이라고 우겼다. 결국 그린벨트 해제까지 포함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고야 겨우 불길을 잡았다.
정부가 주택 대출 중단이란 극약 처방까지 동원해 집값 상승세를 누르고 있지만, 집값 불안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실책이 취약 계층의 고금리 부담을 덜어줄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윤 정부의 실책을 들여다보면 일찌감치 방향을 수정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문제의 존재 자체’를 외면한 채 미루고 버티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왜 이럴까. 대통령의 고집, 불통, 잦은 격노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대통령의 격노를 겁낸 관료들이 몸을 사리고, 이것이 정책의 수정·보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임기 후반기를 맞은 윤 정부가 정책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대통령부터 ‘실용주의 3원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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