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치인들 정치적 야망 추구할 때 아니다" 美 일각의 우려]
[떠나는 주한 美 대사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
[이제 범죄자·反민주주의자 뽑으면 안 된다]
[무리(無理)의 시대상]
[명동, 한국의 쓸쓸한 자화상.. ]
"韓 정치인들 정치적 야망 추구할 때 아니다" 美 일각의 우려
한국계로는 처음 미국 연방 상원에 진출한 된 앤디 김(민주·뉴저지) 의원이 지난 7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연방의회의 덕슨 상원의원 회관에서 열린 한국을 포함한 아태 지역 국가 언론과의 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한국계인 앤디 김 연방 상원의원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탄핵 정국을 언급하며 “지금은 정치적 야망을 추구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안정을 위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계 최초의 미 연방 상원의원이다. 김 의원은 “모든 것이 주목받는 이 시기에는 말과 행동에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가 안정보다는 정치적 야망에 탄핵 상황을 이용하려는 정당들과 인물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탄핵 정국이 자칫 한미 동맹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다. 주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이나 그가 속한 공화당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서다. 한국 정권이 기존의 한미 동맹에서 친중(親中)·반일(反日) 성격으로 교체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다.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인 스티브 배넌과 밀스는 인터넷 방송에서 한국의 대통령 탄핵 상황과 관련해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이 한국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인 영 김 하원의원도 “한국의 탄핵 주도 세력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파트너십을 훼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계엄 초기에 한국 정부에 우려를 전달하며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계엄 선포를 비판했다. 민주주의를 공동 가치로 삼는 핵심 동맹국으로서 당연한 입장 표명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권이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폈다”는 것을 1차 탄핵소추 사유로 포함시킨 이후로 분위기가 변했다. 비상계엄 조치를 비판하면서도 탄핵 주도 세력이 한미 동맹의 가치를 폄훼하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기름 뿌린 바닥에 성냥을 켜려 한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수사, 그리고 정치권의 대응은 모두 국내 정치 문제다. 그러나 대통령이 체포 영장에 불응하고, 수사기관들과 정치권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공수처와 경호처 간 충돌 우려가 커지는 것은 한국의 대인 신인도와 외교적 입지와 직결되는 문제다. 국제사회는 한국이 헌법 질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리고 어떤 세력이 이를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국가의 안정보다 정치적 득실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은 책임감을 되찾고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조선일보(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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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주한 美 대사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
미국으로 복귀한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한미동맹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던 12·3 비상계엄의 밤 상황을 공개했다. 서울에서 2년 반 재직했던 골드버그 전 대사는 이임을 하루 앞둔 5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계엄 선포와 해제 국면에서 가까스로 통화했던 대통령실 인사에게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상황 설명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실) 통화 상대가 계엄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급박한 계엄 상황에서 자신이 통화한 한국 정부 인사가 2명뿐이었다고 밝혔다. 하나는 계엄 선포 직후 전화를 걸어와 계엄 성명서를 읽어내려간 외교부 당국자였고, 다른 하나는 어렵사리 통화했지만 계엄에 대해 모른다던 대통령실 인사라고 했다. 외교관답게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특전사 정보사 등 핵심 부대가 계엄작전에 투입됐는데도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포함해 누구도 미국에 상황 설명은커녕 사후 정보 공유조차 않았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일시적 동맹 오작동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실 인사에게 고함쳤다는 게 맞느냐”고 질문받은 뒤 10초간 머뭇거리다가 “조금 그랬다”며 인정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주도한 사실에 대해 미국이 느낀 당혹감 내지는 배신감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대사가 이임하며 이렇게까지 불편한 사실을 공개한 전례를 찾기 힘들다. 계엄 직후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이 심각하게 오판했다”고 한 비판도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한 사건”이라고 했지만,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국회 절차에 대해선 “민주주의와 헌법이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미국도 우리 민주주의가 갖는 원상회복의 힘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결국 잠시 흔들렸던 동맹을 반석 위에 다시 세우는 첫걸음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수사와 탄핵심판 국면의 사회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 사회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작동을 멈췄던 위기 시 동맹 간 비상 소통채널을 재점검하는 일도 놓쳐선 안 된다.
-동아일보(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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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범죄자·反민주주의자 뽑으면 안 된다
[朝鮮칼럼]
지금 대한민국 무엇이 문제인가
아직도 배회 중인 '이념의 유령'
87년 체제의 제도적 결함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보다
제왕적 국회가 더 악성이다
내각제·중대선거구제 등
시스템과 사람 모두 바꿔야
1987년 민주화 때, ‘역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미래는 어쩌면 지루하고 소소한 일상이 이어질 걸로 믿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며, 역사란 끝이 없고, 비약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안의 후진성과 어떤 결핍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 그걸 확실히 인식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역사는 무한 반복된다.
먼저 이념적 대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정치적 대립을 ‘체제’ 전쟁으로 본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해묵은 논쟁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대표적이다. 진보 정부 때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만 썼다. 조선인민군행진곡과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전시관과 거리가 생기고, 음악 축제가 버젓이 열리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 이래 100여 년에 이른다. 6·25전쟁 때 한국민은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쳤다.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이 널리 확산되었다. 대학은 물론 노동계, 문화계, 종교계에도 만연했다. 이른바 586 세대가 집중 세례를 받았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세력이 이들이다.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민주당의 1차 탄핵안은 윤 대통령이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여 국가 안보를 팽개쳤다고 비판했다. 놀랍다. 가치 외교란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와 국익에 기반한 외교’다. 국가 정체성에도 부합한다. 캠프 데이비드의 한·미·일 3국 협력 체제가 그 성과로, 북한 핵은 물론 북·중·러의 안보 위협에 맞서는 최상의 방패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공산주의는 역사에서 퇴장했다. 북한 주체사상은 그걸 만든 황장엽조차 버렸다. 그런데 그 유령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기이하고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IMF 사태 후 계속 악화되어 온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저성장 수축 사회가 초래한 르상티망(ressentiment·분노)이 새로운 서식처다.
두 번째는 ‘87년 체제의 제도적 결함이다. 지난 10년간 세 차례나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다. 그중 지금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 예전에는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였다. 지금은 제왕적 국회가 더 악성이다. 최종 해결사인 헌재조차 권위를 의심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체포를 둘러싸고 대통령과 경호처, 공수처, 군, 경찰이 뒤얽혀 난맥상을 연출하고 있다. 국가가 안에서 해체되고 있다.
87년 체제의 효용은 확실히 끝났다. 빨리 바꾸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제도보다 사람이 문제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 로빈슨 교수는 남북한의 격차가 문화가 아닌 제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45년 남북한은 원래 같은 사람들이었다. 단지 남한은 공평한 경쟁을 보장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를, 북한은 그 반대로 ‘착취적 경제 제도’를 택했을 뿐이다.
87년 체제에서 대통령과 야당은 무한 전쟁을 벌인다. 대통령이 망해야 야당이 권력을 쥐기 때문이다. 야당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점하면 정부는 마비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9번이나 탄핵안을 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협치’의 제도화가 핵심이다. 내각제가 이상적이다. 대통령제면 그 권력을 줄이고, 국회 해산권을 주고, 탄핵 시 직무 정지를 없애야 한다. 국회는 양원제로 만들어 무책임한 결정을 억제해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은 유권자에게 맡겨, 정치 보스의 1인 사당화를 저지하는 게 옳다. 선거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다당제가 되면, 다수당의 횡포가 제한되고 협치가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사람이 문제다. 지금 한국 정치는 586 운동권과 법조인이 압도적이다. 운동권은 도덕적 자부심을, 법조인은 전문가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두 국제적 감각과 융합적 사고력이 약한 데다 외골수 경향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다. 정치가 신뢰도도 항상 꼴찌다. 하지만 정치가의 자질이 아니라, 결국 유권자의 선택이 문제다. 진영 논리나 지역주의에 빠져, 더 이상 범죄자나 반민주주의자를 뽑으면 안 된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문제인가? “I am(접니다).” 필부도 세상에 책임이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달린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달려있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조선일보(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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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無理)의 시대상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리(理)’는 본래 ‘옥돌[璞]을 갈아 옥을 만들다’라는 뜻의 문자다. 원석을 다듬어 보석을 만들듯 사물을 관찰(해석)하고 가공하는 인간의 행위에 착안하여 고도의 정신 작용 또는 거기서 도출되는 질서, 법칙 등의 의미가 파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理는 ‘기(氣)’와 함께 성리학의 중심 개념이지만, 공자 당대에는 理에 그러한 뜻이 없었다.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에서 理를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
유가에서 理가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철학적·추상적 개념으로 본격 등장한 것은 순자(荀子)에 이르러서이다. 순자는 자연의 순리, 인간의 행위로 마땅하거나 옳은 것 등을 理로 개념화하면서 理에 입각한 정치·도덕론을 설파하였다. 만물에 작용하는 불변의 이치를 ‘진리’라고 하거나, 인간관계의 마땅한 바를 ‘윤리’로 부르는 식의 쓰임새는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理에 반하는 것을 ‘무리(無理)’라고 한다. 이때의 理는 사리, 도리, 순리 등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무리의 의미가 더 폭넓다. 당위의 영역을 넘어 현실적으로 실현 또는 수용이 어렵거나, 안 되는 것을 억지로 강행(强行)한다는 의미까지도 무리 범주에 포함된다. 한국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무리수를 두다’ 등의 표현에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무리의 의미를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된다. 야당은 당리당략으로 무리한 탄핵을 남발하고,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희대의 무리수로 맞서고, 무리하게 추진한 ‘검수완박’ 와중에 졸속 신설한 공수처가 법적·현실적 논란에도 무리하게 대통령 체포를 강행하는 등 한국은 지금 온갖 무리의 생생 체험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만사 무리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理가 통하지 않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이 무탈하게 종결되기를 바란다면 무리한 희망일지 걱정이 앞선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조선일보(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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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한국의 쓸쓸한 자화상..
중국을 잡으려다 정체성을 잃었다
중국이 빠져나간 뒤 중국말 呼客 소리만 처량하게 들린다
지금 한국이 이렇다
그제 오후 서울 명동을 몇 시간 돌아다녔다. 중국인 관광객이 끊겨 어떤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거리는 북적였지만 가게는 한산했다. 거리를 걸으며 명동의 변질(變質)을 다시 느꼈다. 전통 맛집의 달달해진 찌개 맛을 보면서 내가 알던 명동이 사라졌다고 느낀 게 몇 년 전이다. 그땐 일본인을, 그 후엔 중국인을 잡으려다 정체성을 잃었다. 호객(呼客)하는 화장품 가게 점원의 중국말이 처량하게 들렸다.
상인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강남에 밀려 쓸쓸하던 명동 거리에 한류 붐을 타고 일본인이 밀려들자 건물주가 임대료부터 올렸다고 한다. 중국인이 몰려들자 또 올렸다. 살아남으려면 상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의 기호에 맞춰 매출을 올려야 한다. 못 맞추고 못 벌면 퇴출이다. 줄 서서 기다리던 저가 화장품 업체와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경박한 경제 논리가 10년 넘게 작동했다. 그 결과가 멋과 전통이 사라진 지금의 명동이다. 세계 어떤 중심 상권에서도 볼 수 없는 퇴행적 변화다.
명동에서만 이런 논리가 작동한 게 아닌 듯하다. 한·중 밀착이 경제에서 정치로 발전해갈 때 한국과 중국인이 어울린 술자리에서 이런 건배사를 들었다.
'我們齊心合力 一起打倒日本鬼子'
'우리 마음과 힘을 합쳐 일본○을 함께 물리치자'는 뜻이다. 당시 두 나라 술꾼들에겐 꽤 알려진 건배사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농담 삼아 일본 친구에게 했다. 과장된 술자리 잡담이지만 그는 놀란 듯했다. "같은 민주주의 나라인데 어떻게…." 함께 미국의 동맹이니 한·일 두 나라는 우방 아니냐고 했다. 그의 순진한 반응에 내가 놀랐다.
3월2일 서울 명동 거리가 줄어든 중국 관광객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 조치시키면서 양국의 긴장 상태가 높아지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10여 년 전 일본엔 그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북한이 축구 시합을 할 때 한국인 상당수가 북한을 응원한다고 하자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민족과 이념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 정서를 전하고 그 근원에 일제의 아픈 식민지 역사가 있다고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할 때 반응은 이랬다. "미·중 사이의 균형자라니? 한국은 미국의 동맹 아닌가?" 일본도 미국의 동맹이다. 동맹을 유지하는 이상 일본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의 원칙론이 옳았던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은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한국의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작년 중국 천안문에 올라갔을 때가 절정이었다. 일본은 동맹의 원칙론을 주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한·미 관계를 이간질한다고 봤다. 국제 세미나에서 일본이 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나는 "몇 푼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라고 했다. 메아리가 없었다. 미국·일본인은 물론 중국인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통일은 한국의 고독한 문제일 뿐이다. 강대국의 게임에 끼워 넣지 말라는 투였다. 재작년 우리가 "통일을 위해 대통령이 천안문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중국이 뒤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다. 겉으론 간도 빼줄 듯했던 중국이다.
얼마 전 미 국무장관이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말로 차등을 둘 필요는 없었다. 외교적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에 한·일의 가치는 원래 그랬기 때문이다. 미국이 태평양 국가와 맺은 군사동맹 중 미국이 원치 않았던 유일한 동맹이 한·미 동맹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의 앞선 세대가 다투고 매달려 얻어낸 동맹이란 것도, 동맹이 없었다면 중동과 같은 만성적 분쟁 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동맹은 한국이 나서서 감싸고 강화해야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한국의 가치를 홀로 과대평가한다. 그러다 미국이 일본과 차별하면 흥분하고 분노한다. 이게 동맹을 대하는 그동안 한국의 패턴이다.
지금 명동은 한국의 자화상이다. 중국을 잡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하나 둘 변해가다가 거리의 정체성을 잃었다. 중국이 떠난 뒤 돌아보니 좌표까지 잃은 거리가 됐다. 그러면서도 어떤 정치가들은 호객하는 화장품 가게 점원처럼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당하면서 중국이 합리적 상대라고 믿는다. 균형자 꿈에서 깨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마구 다룬다. 미국이 이런 한국을 변함없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다수는 그런 세력을 응원하고 있다. 세상은 동쪽으로 달리는데 한국만 서쪽으로 달린다. 대선이 끝난 뒤 그 역풍(逆風)을 국민 모두가 실감할지 모른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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