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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대통령 체포, 지금이라도 모두 법 지켜야] ....

뚝섬 2025. 1. 16. 09:52

 

 

[초유의 대통령 체포, 지금이라도 모두 법 지켜야]

[첫 현직 대통령 체포… 마지막까지 피해자 행세한 尹]

[법 무시 이어 공문서 위조 논란까지]

[사법 시스템 작동… 물리적 충돌 없었다]

[스스로 벌거벗은 임금님 된 尹]

[1623년 3월 13일 그리고 2025년 1월 15일]

 

 

 

초유의 대통령 체포, 지금이라도 모두 법 지켜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도착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5/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43일 만인 15일 내란 혐의로 공수처에 체포됐다. 현직 대통령이 체포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서 불법 수사이기는 하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경찰 체포조가 대통령 관저에 투입돼 버스 차벽을 넘고 대통령이 공수처에 도착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중계됐다. 계엄군 국회 진입과 충돌, 관저 주변에서 연일 탄핵 찬반 시위대 충돌,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는 영화 같은 사태가 4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참담하다. 그나마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지금의 사태는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이 촉발했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겠다는 국회, 사법부 그리고 수사 당국이 예외없이 정치 논리를 앞세우거나 법을 무시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윤 대통령은 체포된 이후 공개된 글에서 계엄을 한 이유가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애초 비상계엄 선포문에는 없던 내용이다. 그는 “부정선거 증거는 너무나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증거를 속히 헌법재판소와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 제출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실제 부정선거가 확인된다면 모든 게 뒤집힐 일이고, 아니라면 대통령이 유튜브 괴담에 미혹돼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정치권은 나라의 미래엔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적 득실만 따지고 있다. 대선 조급증에 빠진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소추 때 핵심 사유로 내세웠던 내란죄를 철회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에 이어 최상목 대행의 대행에게도 탄핵 위협을 하고 있다. 내란특검에 외환(外患) 혐의를 추가해 군의 정상 활동마저 족쇄를 채우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점령군 행세로 여론의 역풍을 맞자 계엄을 옹호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권 압력에 휘둘리지 말고 양측 모두 수긍할 수 있도록 흠결 없는 탄핵 심판을 해야 한다. 한덕수 대행 탄핵과 정족수 문제도 서둘러 정리할 필요가 있다. 법원은 선거법 2심을 포함해 이재명 대표 재판을 정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윤 대통령과 이 대표에 대한 사법의 불공정성에 대한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모두가 법을 지켜야 한다. 국제사회에 그래도 한국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길은 이것뿐이다.

 

-조선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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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현직 대통령 체포… 마지막까지 피해자 행세한 尹

 

온전한 책임 묻고, 더 견고한 민주주의 만들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체포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43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32일 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것은 우리 헌정사상 처음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은 이날 오전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돌입한 지 5시간여 만에 윤 대통령을 관저에서 체포해 공수처로 이송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고 공수처는 전했다.

윤 대통령이 차벽과 철조망에 둘러싸인 관저에서 끝내 강제로 구인된 것은 국가적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가 수사기관에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에도 충격적 소식이었다. 외신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한국의 리더십 위기를 재조명했다. 한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국가로 칭송받던 한국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군대의 국회 난입으로, 경찰 수천 명이 동원된 대통령 체포 작전으로 잇달아 전 세계 토픽감이 됐다.

윤 대통령은 체포되면서도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공수처 출석에 응한다”며 궤변과 억지를 늘어놨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 촬영한 영상 메시지에서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라고 마치 피해자인 양 호소하는가 하면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국민을 향해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선동성 메시지도 보냈다.

 

사실 그간 윤 대통령이 보인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면 그는 자신이 억울하게 단죄받는 피해자라는 중증의 망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도 “야당에 대한 경고성이었다”며 발뺌하려 했다. 이날 체포 뒤 공개된 자필 편지에선 “부정선거의 증거가 너무나 많다”며 국내 정치세력과 외부 주권침탈세력이 손잡고 벌인 합작품이라는 식의 거대한 음모론까지 폈다.

윤 대통령은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를 회피하며 버티기로 일관하는 행태는 검찰총장까지 지낸 법조인 출신이 맞는지 의심케 했다. 막상 공수처가 수사에 나서자 내란죄 수사권을 문제 삼으며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모두 불응했다. 수사권 논란은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일단락됐고, 이후 윤 대통령 측이 법원에 낸 이의신청까지 기각됐는데도 억지를 부렸다. 체포되기 직전엔 ‘자진 출두’ 형식으로 가겠다고 요구했다. 수사기관에 체포되는 대신 스스로 출석하는 모양새를 갖춰 향후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도주 우려가 없다고 내세우려는 것이다.

이렇게 윤 대통령이 버티는 동안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군과 경찰 수뇌부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당장 안보와 치안의 공백은 물론이고 국가질서의 근간 조직에 깊은 상처와 국민적 불신을 낳았다. 계속된 정치적 불안은 국가 신인도에 타격을 줬고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하고 나섰다. 나아가 관저 앞 탄핵 찬반 시위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그 치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적응하는 능력에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역사는 부끄럽고 끔찍한 실책들로 가득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로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와 달리 자신이 벌인 실책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책임질 기회를 사실상 제 발로 걷어찼다. 이제 법과 역사의 심판 아래 윤 대통령을 세워 온전히 책임지게 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민주주의를 한층 견고하게 만드는 과제가 남았다.

 

-동아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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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무시 이어 공문서 위조 논란까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을 통과한 공수처 수사관들과 경찰 인력이 관저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2025.1.15/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기까지 끊임없이 법 위반 논란을 불러온 공수처가 체포 당일에도 공문서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 공수처는 체포 전날 대통령 관저 외곽 경호를 담당하는 55경비단에 “영장 집행을 위한 출입 허가를 받았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경호처가 이를 부인하자 출입 허가 공문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 공문은 공수처의 수사 협조 요청 문건에 쪽지를 덧붙여 55경비단장 도장을 찍은 것으로 돼 있었다. 55경비단장이 도장 찍기를 거부하자 공조수사본부 수사관들이 도장을 건네받아 직접 찍었다고 한다. 공문서 위조에 가까운 행동이다. 공문서 위조는 심각한 범죄다. 공수처는 “그럴 일 없다”면서도 구체적 해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위법, 법 절차 무시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애초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수사에 나선 것부터 문제였다. 공수처는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부지법에 윤 대통령 체포 영장을 청구해 ‘판사 쇼핑’ 의혹을 일으켰다. 그 판사는 제 맘대로 체포 영장에 압수·수색 예외 조항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재판관도 아닌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국회에서 혼자 재판을 하듯 했다. 국회는 한덕수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하면서 ‘151석이 정족수’라고 마음대로 결정했다. 만약 한 대행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되면 최상목 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 등 연쇄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 체포는 앞으로 이어질 사법 절차의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법 위반, 절차 무시 논란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래선 어떤 결론이 나오든 많은 국민이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다. 정치 불안의 일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절차를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조선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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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시스템 작동… 물리적 충돌 없었다

 

1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은 큰 물리적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이번 영장 집행을 앞두고 윤 대통령 측에선 “체포 시도 때 분노한 국민들이 반발하면 그건 내전 상황”이라거나 “물리적 충돌로 인한 유혈 사태 우려” 등의 주장이 나왔다. 그렇지만 체포가 진행된 6시간 동안 현장에선 수사기관과 경호처 간 물리력 행사나 충돌은 없었다.

이날 오전 공수처와 경찰은 관저 안 1차 저지선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변호인단과 2시간쯤 대치했다. 이 순간 일부 찬반 시위대 사이에 몸싸움은 있었지만, 경호처가 물러서면서 정리됐다. 관저 내 3개 저지선마다 버스 차벽은 설치됐지만, 경호원 인간띠나 수방사 병력은 없었다. 경호처 요원 대다수가 휴가를 내거나 사무실에 머물며 체포 저지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했다.

올 초부터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 10차로 도로 일부가 수천 명씩 모인 체포 찬반 시위대에 점거됐다. 체포 반대 측이 “밟고 가라”며 드러눕기도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속에서도 형사사법 시스템, 성숙한 시민의식은 작동했다. 일부 우려스러운 행동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차분히 TV로 체포 장면을 지켜봤다. 분명한 건 현직 대통령도 발부된 체포영장 앞에선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1차 체포 실패 이후 12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동아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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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벌거벗은 임금님 된 尹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과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를 비교하면 데자뷔라 할 만큼 비슷한 일들도, 두드러게 다른 모습도 있다. 8년 전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국정조사특위의 청문회 출석요구서 수령을 거부하면서 정치권과 누리꾼들이 공개 수배에 나서는 등 비판 여론이 커졌고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 전 수석은 당시 탄핵 국면의 ‘조연급’이었지만 이번 탄핵 국면에선 주연인 윤 대통령이 직접 재판과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다시 ‘법꾸라지’가 회자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처음엔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서류 송달을 회피했고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이젠 영장을 발부한 관할 법원이 잘못됐다는 등 법기술자적 논리를 펴 “온 국민을 형사소송법 공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그간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했던 ‘죽마고우’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래 윤 대통령이 보여준 이미지는 당당함이었는데, 지금 아주 초라하게 됐다”며 “자발적으로 수사에 응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경호처를 앞세워 공조수사본부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다 1차 영장 발부 16일 만인 15일 결국 체포됐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날 “저의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권은 ‘6인 체제’였던 헌재의 원상 회복을 막으려고 했고 여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시위에도 동참했다. 야당도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의식한 듯 탄핵심판을 서두르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속전속결로 탄핵해 혼란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를 찍을 만큼 급등했고 국가신인도 하락 위기에 경제 후폭풍은 불가피해졌다. 8년 만에 재집권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한국은 8년 만에 다시 대통령이 탄핵되며 정상외교는 공백 상태가 됐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는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옷을 만들어드리겠다”며 찾아온 재단사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옷을 멋진 옷이라고 임금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신하가 등장한다. 부정선거 의혹과 계엄 필요성을 호도한 극우 유튜버와 계엄의 핵심 인사들, 그리고 대통령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각각 동화 속 재단사와 신하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옷을 벗은 건 임금 자신이다.

동화는 벌거벗은 채 행진을 하는 임금님을 향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진실을 폭로하고 부끄러움에 가득찬 임금님은 황망하게 행진을 마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뒤 임금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는 결말을 열어놨지만 황금과 비단옷이라는 권위에 가려져 있던 임금의 속살이 드러난 뒤 과연 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동화 속 임금님은 최소한 부끄러움은 있었던 모양이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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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3월 13일 그리고 2025년 1월 15일

 

1623년(광해 15년) 3월 13일(음력) 밤 광해군은 창덕궁 어수당(魚水堂)에서 술에 취하여 변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후 처남 유희분과 외척 박승종이 여러 차례 청하여 마침내 의금부 당상과 포도대장을 부르고 도승지 이덕형, 병조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 도감 대장 이흥립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을 호위하였다. 그러나 실록은 “이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 그의 추천으로 이 직을 맡았는데 이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반정군(反正軍)이라고 해봤자 오합지졸 포함한 1천 명 정도였다.

 

반정군이 창덕궁 문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은 직접 와서 반정군을 맞이했고 나머지 호위병들은 모두 달아났다. 재상과 대신들도 반정군의 함성 소리를 듣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광해군은 창덕궁 북쪽 후원 소나무 숲으로 나아가 사다리를 놓고 궁성을 넘어갔다. 젊은 내시가 업고 궁인 한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여 사복시 개천가에 있는 의관(醫官) 안국신의 집에 숨었다. 이때도 광해군은 상황 판단을 잘못해 안국신 집안 일꾼 정담수를 시켜 바깥 상황을 살피게 하고는 “혹시 이이첨이 한 짓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여전히 상황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정담수가 몰래 나가서 반정군에게 광해군이 숨어 있는 곳을 아뢰었다. 훗날의 인조는 이천부사 이중로를 보내어 광해군을 대궐로 데려오게 하고서 도총부 직방(直房)에 머물게 하였다. 이중로가 광해군을 데려오려 할 때 광해군은 “혼매(昏昧)한 임금을 폐하고 뛰어난 이를 세우는 것은 옛날에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어찌 나인 내시 급사등을 보내주지 아니하여 나를 대우하는 것이 이처럼 박한가”라고 따졌다. 이에 인조가 궁인과 후궁을 보내어 모시게 했다.

 

반정 세력은 열흘 후인 3월 23일 광해를 강화도에 안치했다. 2025년 1월 15일 새벽과 아침의 일을 지켜보다가 문득 감회가 일어 인조반정 당일과 다음 날 광해군의 행적을 정리해 보았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조선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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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가 현직 대통령 첫 체포영장 집행. 유혈 사태는 없었지만 각종 법적 논란으로 상당한 후유증 예고.

 

-팔면봉, 조선일보(2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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