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남자1호는 여자20호를 향해 돌진했다
결혼 성사 확률 높여라
'로테이션 소개팅' 열풍
지난 1일 열린 20대20 '로테이션 소개팅' 현장. 대화 시간은 각 테이블 당 10분으로 제한됐다. 20명을 다 만나려면 200분이 걸리기에.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신분증 확인 도와드릴게요.”
삼일절 저녁, 남녀 40명이 서울역 인근 연회장에 모였다. 독립, 그러니까 결혼을 위해. 여기서는 이름 대신 남자 1~20호, 여자 1~20호로 통일된다. 명찰 목걸이를 받아 건 뒤 번호별 좌석에 앉아 자신의 직업, 종교, 흡연 여부, 취미, 매력 포인트 등의 간략한 프로필 카드를 작성하면 준비 완료. 사회자가 “대화 시간이 길지 않으니 마음에 들면 적극 어필하시라”고 말했다. 서로의 프로필 카드를 교환하며 혓바닥에서 모터가 일제히 가동된다. 제한 시간은 10분. 20명과 만나려면 200분이 걸리기에.
◇가성비 갑, 스피드 데이팅
시간이 촉박하므로 준비된 프로필 카드를 먼저 교환해 서로를 파악한다. 그러나 가끔은 단 몇 초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오기도 한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미리 재직증명서 등의 증빙 서류까지 제출했을 정도로 이들은 진지하다. 가벼운 만남이 아니라 1~2년 내 결혼하고픈 적극 구혼층이기 때문. 성공 확률을 높이려 나이(1999~1986년생), 키(남자 175㎝·여자 160㎝ 이상) 제한까지 뒀다. “남성 분들 자리 이동하실게요.” 10분 뒤 사회자가 공지하자 사내 20명이 일사불란하게 옆자리로 옮겨 짝을 맞췄다. 말로만 듣던 ‘로테이션 소개팅’ 현장. 전문 업체 토크블라썸 관계자는 “가성비 최고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기존 소개팅은 부담이 크죠. 고작 한 명 만나고 잘 안 되면 하루 날리는 거잖아요. 밥값도 비싼데. 요새 회사원들 얼마나 바빠요. 주말에 몰아서 만나는 게 효율적이죠.”
이런 업체가 최근 수십 곳으로 늘었다. 서울 및 수도권뿐 아니라, 대구·광주·전주 등 전 지역으로 확장세다. 참가비 4만~5만원을 내고 한자리에서 수십 명과 짧지만 개별 대화를 나눌 기회. 단체 미팅은 다채롭긴 해도 소외 멤버가 생기고, 1대1 소개팅은 집중되긴 해도 복불복이니 아예 둘을 합쳐버린 것이다. 50대50, 심지어 100대100 로테이션 소개팅도 있다. 한 참가자는 “체력이 꽤 필요하지만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200분의 탐색전이 끝나면 마음에 드는 참가자 번호를 사회자에게 메신저로 전송한다. 서로가 서로를 점찍은 경우 ‘전화번호’가 제공된다. 이날 9쌍의 커플이 맺어졌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1대1이다.
◇솔로 탈출 위해… 영화관 전세 내
서울 잠실의 프리미엄 영화관에서 남녀 구혼자들이 '로테이션 소개팅'에 열중하고 있다. /노블레스 수현
“팝콘 먹고 갈래요?” 영화업계도 뛰어들었다. 롯데컬처웍스는 지난해부터 매달 서울 잠실의 프리미엄 상영관에서 로테이션 소개팅을 열고 있다. 이름하여 ‘무비플러팅’. 소개팅 코스가 대개 ‘밥→영화’임을 고려해, 상영관 하나를 통째 소개팅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남녀 16명 규모가 함께 식사하고 영화를 관람하고 또 상대를 바꿔가며 얘기를 나누는데, 전문 MC가 중간중간 레크리에이션까지 진행해 어색함을 줄인다.
행사를 공동 진행하는 결혼 정보 회사 노블레스 수현 경광현 본부장은 “밥 먹고 영화 보면 8만원은 쉽게 넘어가는 요즘 2만원대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라며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친밀감이 높아지고 공간이 주는 특별함도 크다 보니 매회 50% 수준의 커플 성사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8일에는 16대16 로테이션 소개팅이 예정돼 있다. 장소는 영화관이지만, 더 빠른 스피드를 위해 영화 상영은 생략할 예정이라고.
◇에세이 읽고, 사주까지 본다?
속도는 언제나 깊이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그래서 이색 장치가 마련된다. 이를테면 ‘에세이’. 사랑과 만남에 대한 에세이를 읽어오게 한 뒤 로테이션 소개팅을 진행하는 것이다. “대화의 결이 달라진다”는 설명. 지난 28일 저녁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4대4 ‘에세이팅’이 열렸다. 20분마다 상대가 바뀌긴 해도 대화는 사뭇 솔직했다. “나는 성향상 비혼에 가깝다” “배우자를 위해 그 많은 걸 포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같은 말소리가 간혹 들려올 정도로. 그러니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주팅’까지 생겨난 이유다. 사주팔자 맞는 남녀 최대 30명이 모여 진행하는 로테이션 소개팅이다. “사주 구성에 따라 성향이나 가치관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주장. 미리 유선으로 사주를 분석해 각자의 오행(五行)에 따라 물은 물끼리, 그다음은 물과 불끼리 파트너를 붙이는 식으로 매칭에 변화를 준다. 전통주를 홀짝이며 진화하는 만남의 방식. 다만 다단계, 종교 권유는 엄금.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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