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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내전 중일까] [이제 '이재명의 강'] ....

뚝섬 2025. 4. 25. 06:42

[우리는 지금 내전 중일까]

[이제 '이재명의 강']

[위기 속 60일, 韓 겸손한 자세로 관리 책임 다하라]

 

 

 

우리는 지금 내전 중일까

 

'內戰'을 쉽게 말하는 정치권… 진짜 전쟁은 살아서 지옥을 보는 일
진영 간의 혐오와 저주 조장 말고 미래로 나아갈 설계도를 그려내야

 

총탄과 굶주림, 전염병, 그리고 날씨. 캐나다의 스무 살 청년 윌리엄 크라이슬러가 74년 전 생면부지의 한반도 땅을 밟았을 때 중공군 못지않게 그를 위협했던 적들이다. 그는 서울을 점령하려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공군 6000여 명의 공세를 경기도 가평군에서 물리치라는 명령을 받은 캐나다군 450여 명 중에 하나였다.

 

전쟁터에서 ‘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오직 겪어본 사람만 안다. 특히 6·25 전쟁은 미사일과 드론이 아닌 탱크와 소총으로 돌격하며 병사가 피를 쏟는 재래식 국제전이었다. 미군의 6·25 전쟁 참전 회고록을 모아놓은 웹사이트(thekwe.org)에 가보면 참전 용사들이 “우리가 치렀던 전쟁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상상 초월의 잔혹한 악몽”이라거나 “살아서 지옥을 봤기 때문에 죽으면 천국에 가리라고 확신한다”고 회고하는 내용이 숱하다. 그러했던 전쟁이기에 캐나다군 기관총 사수 크라이슬러가 1951년 4월 23일부터 사흘간 ‘가평 전투’를 치르며 느꼈을 공포와 절망을 타인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 사흘간 중공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흙더미 민둥산을 개미 떼처럼 끝없이 기어올랐고, 총탄이 고갈된 캐나다군은 총검으로 저항했다. 총검 백병전은 사람끼리 눈을 마주 보고 뒹굴며 서로를 죽이는 일이다. 이마저 힘에 부친 캐나다군은 ‘팀킬’을 각오하고 아군 진지에 포 사격을 자청하는 전술까지 감행하며 버텼고, 끝내 4월 25일에 중공군을 기적처럼 격퇴시켰다. 이날 아침의 기진맥진한 캐나다군 풍경을 한 참전 용사가 ‘가평 방어전(Holding at Kap’ong)’이라는 제목의 회화로 그렸는데,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던 우리들이라고 작품 해설을 달았다.

 

처절했던 사흘간의 사투를 운 좋게 외상 없이 끝낸 크라이슬러씨는 절뚝거리는 동료를 부축하면서 고지에서 내려왔다. 이 모습이 영국 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 소장 사진으로 남아있다. 사진 속 그는 카메라 렌즈를 일부러 피하는 기색이다. 지난해 봄 가평 전투 73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만나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런 사지(死地)에 있다는 걸 가족이 알면 안 된다는 생각과, 너무 추워서 옷을 이것저것 껴입었는데 상관이 보면 혼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것 같다”고 했다. 땅에 살기(殺氣)가 돌아서인지 4월인데도 방아쇠 누를 손가락까지 얼어붙게 하던 추위, 굶주린 아이들의 절규와 뭐든 파먹던 쥐 떼, 피와 오물의 냄새, 그리고 숨이 멎은 전우들의 얼굴. 아흔 넘은 노인이 됐어도 아물지 않은 기억들이라고 했다. 작년 말 별세한 그는 “한국에서 영면하고 싶다”고 유언을 남겼고, 최근 전우들이 있는 부산 UN기념공원에 안장됐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론 분열이 유례없는 지경으로 치닫자 정치권에선 ‘내전(內戰)’이라는 말을 만능 수식어처럼 서슴없이 쓰고 있다. 그러나 고(故) 윌리엄 크라이슬러씨의 유해 봉환 소식을 계기로 우리가 진짜로 경험했던 전쟁의 참상을 돌이켜보고, 이 시각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상황을 함께 떠올려보니 함부로 운운할 수 없는 내전이란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정치인이라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올라타 동족 간의 혐오와 저주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나라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차오르는 사회적 열기를 미래로 가는 엔진의 에너지원으로 전환시킬 설계도를 내놔야 마땅하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내전 타령이 하루빨리 멎기를 바라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불멸의 업적을 남긴 UN군 참전 용사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양지혜 기자, 조선일보(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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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재명의 강'

 

[박정훈 칼럼]

이 대표를 둘러싼 국민적 의문은 어느 것 하나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탄핵의 강을 건너 '이재명 리스크'와 대면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진 4일 오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된 뒤 박수를 치고 있다./뉴스1

 

계엄 후 정국에서 탄핵 반대 집회가 시종 찬성 측을 압도했던 것은 계엄 지지자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나라가 잘못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토로하며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꼭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동맹의 가치가 흔들리고,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을 눈감고 있을 수 없어 태극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졌고 광장을 떠날 때가 됐다. 그렇게 우리는 ‘대통령 윤석열’을 떠나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 속에서 ‘체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 사유는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었다. 계엄 선포 요건부터 충족되지 못했고, 국회 봉쇄 목적의 군 투입, 정당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정치인 체포 지시 등이 모두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개별 이슈 판단에서 아쉬운 대목도 있지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 혼돈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계엄 후 정국은 이제 끝내야 한다. 그렇게 우린 ‘탄핵의 강’을 건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대면하게 될 것은 ‘이재명 리스크’다. 국정 안정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거대 야당 대표가 도리어 혼란을 부추기는 ‘리스크 유발자’가 된 지 오래다. 계엄의 위헌·위법성엔 비교될 수 없겠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 역시 헌법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이 3년 사이 30건에 달한다. 탄핵할 만큼 진짜로 잘못해서가 아니라 보복과 협박을 위한 정략적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이 대표 사건을 파헤친 수사 검사들을 무더기 탄핵하고, 앞 정권 비리를 감사한 감사원장과 자기편 방송사를 감독하는 방통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계엄 후 경제·안보가 출렁이는 비상 상황에서도 탄핵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국무총리를 탄핵소추해 끌어내리고, 대행의 대행까지 탄핵으로 협박해 나라 전체를 더욱 큰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총리와 국무위원, 군·검찰·경찰 수뇌부가 공석이 되면서 국정이 마비되고 안보·외교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국무위원들을 전원 탄핵해 국무회의 구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국무회의를 없애고 국회가 행정부 권한까지 빼앗겠다는 것이었다. 삼권분립을 무너트리겠다는 헌법 파괴적 발상에 사람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 같았다.

 

계엄 사태가 터지자 민주당은 즉각 ‘내란 프레임’을 들고나와 어젠다를 선점했다. 그러나 총칼 들고 권력을 찬탈하는 것만 내란은 아니다. 헌법의 허점을 이용해, 혹은 입법 불비(不備)를 파고들어 국가 시스템을 위협하는 사실상의 내란이 더 위험하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그랬듯, 오늘날 전 세계 민주주의도 합법의 탈을 쓴 위장 내란 세력에 의해 치명적 위협을 받고 있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를 ‘가짜 민주주의’라고 경고했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권위주의 세력이 대중을 속이며 권력을 장악하는 이른바 ‘도둑 정치꾼’들이 발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승복의 금도 위에 굴러간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헌재 결정이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내 승복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기각돼도 수용하겠다는 말 대신 “유혈 사태” “민중 혁명” 운운하며 대중 봉기를 부추기는 섬뜩한 언사(言辭)를 쏟아냈다. 만약 기각 결정을 내렸을 경우 이들이 어떻게 나라를 내전(內戰) 상황으로 몰아갔을지 생각하면 오싹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이 탄핵 재판에선 이겼지만 수권(受權) 능력 경쟁에선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헌법 기관 결정도 승복 못 하는 정당이 어떻게 정권을 잡느냐는 딱지가 내내 붙어 다닐 것이다.

 

거대 야당이 이해하기 힘든 폭주를 계속하는 것은 결국 이 대표 한 사람 때문이다. 이 대표가 자기 범죄 방어를 위해 의석수 171석 야당을 개인 로펌처럼 부리고, 국회 상임위를 방탄의 무대로 만들고, 탄핵 남발로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

 

12개 혐의로 재판 5개를 받는 형사 피고인이 정당 대표가 되고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반대파를 줄줄이 내쫓고 거대 야당을 1인 사당화하더니 소송 기록 수령을 피하는 꼼수까지 써가며 재판을 질질 끌고 사법 제도를 농락했다. 지금까지는 윤 정권의 실정(失政)에 가려져 왔지만 ‘윤석열 리스크’가 걷히는 순간 ‘이재명 문제’가 돌출돼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조기 대선이 본격화될수록 이 대표를 둘러싼 국민적 의문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 정치 야심을 앞세워 헌정 질서를 교란하고, 범죄 처벌을 피하려 법치를 훼손하고, 대중을 선동해 권력을 쟁취하려 한다는 ‘이재명 리스크’는 어느 것 하나 해소된 것이 없다. 이 의문에 대해 이 대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이재명의 강’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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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 60일, 韓 겸손한 자세로 관리 책임 다하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선고를 내린 직후 안보 태세, 통상 전쟁, 치안 유지, 대선 관리 등 현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두 번째 국가원수 탄핵이라는 불행한 상황을 무겁게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선을 치를 때까지 60일간 ‘위기의 국정’을 이끌 한 대행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한국은 말 그대로 중층의 복합 위기에 빠져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리스크’와 마주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수차례 공언해 왔듯이 언제든 김정은과의 핵 직거래를 시도할 수 있고, 우리의 안보이익은 패싱당하거나 팽개쳐질 수 있다. 경제는 심각한 내수 부진 속에 0%대 성장률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발 ‘관세 폭탄’까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처럼 안보와 경제 모두 심각한 위기 국면이지만 한 대행의 리더십이 견고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로 3년 가까이 일해온 한 대행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국정 2인자로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또 권한대행이 된 이후엔 국회 몫 헌재 재판관 3인 임명을 미뤄 자신도 탄핵 소추됐다가 헌재의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위헌 위법’ 문제는 남아 있다.

 

한 대행은 이렇듯 정치적 도의적 책임이 큰 만큼 보다 겸손하고 초당적인 자세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국가적 복합 위기를 잘 관리하고 헤쳐 나가려면 여야 모두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6월 초로 예상되는 대선을 혼란 없이 치르려면 일체의 정파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중립적’ 선거 관리가 필수적이다. 중앙선관위의 투·개표 관리에 착오가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줄대기와 같은 공직 기강 해이도 없어야 할 것이다. 한 대행도 역사적 시험대에 올라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동아일보(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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