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장수 생활 캠프'로 꾸며라]
[집에서 죽을 권리]
[초고령화에도 일본 대도시 왜 북적일까]
집을 '장수 생활 캠프'로 꾸며라
[김철중의 생로병사]
만성 신부전증으로 콩팥 기능을 잃은 김모(64)씨는 투석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는 의료 기관 인공신장실을 다니지 않는다. 대신 매일 밤 잠자리에 들 시간에 가정용 투석기를 꺼낸다. 복막 투석이다. 배 안의 공간 복강으로 연결한 튜브에 투석액이 담긴 투석기를 연결하면, 잠자는 동안 투석액이 배 안으로 흘러 들어가 몸속 노폐물을 걸러낸다. 복막이 투석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거른 투석액은 자동으로 배 밖으로 빠져나와 투석기에 담긴다. 자는 동안 새로운 투석액으로 이런 순환이 수차례 이뤄진다.
투석이 잘 이뤄졌는지는 투석기 제어 장치에 나타난다. 그 기록은 인터넷으로 중앙 모니터링 센터에 전송된다. 환자를 담당하는 신장내과 의료진은 이를 살피다가 투석 진행 상태에 맞게 다음에 할 투석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원격 조정할 수 있다.
김씨가 혈액 투석을 받을 때는 인공신장실을 이틀에 한 번꼴로 갔다. 복막 투석으로 바꾼 뒤에는 집에서 투석을 하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진료만 받는다. 김씨에게 집이 인공신장실인 셈이다. 그는 혈액 투석을 받을 때는 어지러워서 원래 하던 개인 택시업을 접었다. 집 투석 이후에는 매일 택시를 몰고 출근해 시내를 8~9시간 돌아다닌다.
환자라도 집에서 투병 생활을 해야 마음이 편하고, 기운이 난다. 나이 들어서는 살던 집에서 끝까지 살아야 행복하다. 그러려면 집 안 환경을 활기찬 장수 생활 캠프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원칙과 요령이 있다.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거실 소파는 현관과 부엌이 다 보이는 곳에 놓는 게 좋다. 늘 중심에 두라는 뜻이다. 그쪽이 햇빛 많이 들어오는 곳이면 최상이다. 거실에는 낮에도 밝기가 높은 조명을 켜라. 낮이 밝아야 밤잠이 잘 온다.
리모컨, 휴지, 물컵 등을 일부러 떨어진 곳에 두어, 거실을 ‘앉아 있기’ 공간에서 ‘움직이는’ 장소로 바꾸자. 한쪽에는 운동 매트도 두시라. 부엌에서 간단한 요리라도 스스로 하면, 손과 혀, 코, 뇌가 동시에 자극받을 수 있다. 시계와 달력, 계절 꽃을 집 안 곳곳에 두시라. 세월 흐름에 둔감하면 빨리 늙는 법이다.
집에 회상 공간을 두시라. 아이들 어릴 적 가족 사진이나, 오랫동안 아껴 쓰던 물건, 여행 기념품 등을 자주 보면, 추억이 구체적으로 회상되어 인지 자극에 좋다. 좋은 기억은 감정을 타고 되살아나 활기를 올린다.
집에서 넘어지는 사고는 물기로 미끄러운 화장실에서 일어난다. 욕실, 변기 주변이 가정 내 응급실이라고 보면 된다. 그곳에 엘(L)자형 손잡이를 달아서 아무 손이나 어느 방향에서든 잡기 편하게 하시라. 바닥에 미끄럼 방지 깔판은 필수다. 침대는 무릎 높이로 조절되는 저상 침대를 써야 낙상이 적고, 관절 부담도 준다. 책상과 식탁 의자는 팔걸이가 있는 게 체중을 분산시켜 허리 부담을 낮춘다.
전화기, 자동차 열쇠 등 자주 찾아 쓰는 물건은 허리 높이에 항상 일정한 곳에 놓아 두시라. 부엌과 거실에는 메모판을 비치하여 항상 뭔가를 적어 놓는 습관도 키우자. 부엌에는 5, 15, 30분 후 울리는 간이 알람기를 갖다 놓고, 소화기 스프레이도 비치해 놓아야 한다.
나이 들면 고혈압, 당뇨병, 전립선 비대증, 골다공증 등 만성 질환이 여럿 더해져 제때 약 먹는 일이 주요 일과가 된다. 약을 제대로 복용하려면, 아침 저녁 시간대별로, 요일별로 구획된 약통을 쓰는 게 좋다. 체중계, 혈압계, 체온계, 혈당계 등도 눈에 띄는 곳에 두어 수시로 이용하시라.
인생을 정든 집과 가족 앞에서 마무리하려면, 의료 복지 제도 측면에서 방문 진료, 가정 요양 간호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재택 호스피스도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방문 진료를 받는 환자나 재택 호스피스 환자가 집에서 임종을 맞으면, 병사로 인정해 준다. 우리는 변사가 되어 일단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심부전 환자가 집에서 산소 포화 농도, 심전도 등을 매일 체크하게 하고, 이상이 생기면 심장내과 전문의가 환자 집을 찾아 진료한다. 우리는 재택 의료가 없으니, 죄다 집 떠나 병원서 지내다 죽음을 맞는다.
누구나 환자가 되어 세상을 마감하는 시대다. 이제 집을 마지막 병원으로 삼자. 가정을 초고령 장수 생활을 버티는 진지로 꾸며보자.
-김철중 영상의학과 전문의/논설위원, 조선일보(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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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죽을 권리
건강하게 살다 내 집에서 잠자듯 임종을 맞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집이고, 1990년대 초반만 해도 10명 중 8명이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병원에서 온몸에 의료기기를 매단 채로 생을 마감한다. 집에서 편안한 임종을 맞는 경우는 16%에 불과하다. 집에서는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탓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최근 돌아본 네덜란드 노인 돌봄 현장은 의료 간호 요양 제도를 연계해 운영한다면 집에서 임종을 맞는 일이 어렵지 않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병원에서 임종하는 비율이 23.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고령자들은 주간 돌봄 시설에서 이웃과 텃밭을 가꾸고 동물을 기르며 활기찬 노년을 보낸다. 치매를 비롯해 만성 질환이 있거나 골절상을 입어도 병원 대신 집에서 방문 치료와 간호를 받는다.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더라도 최대한 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스스로 요리하고 빨래하며 지낼 수 있다.
네덜란드처럼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선진국들은 ‘내 집에서 늙고 죽을 권리’ 보장을 노인 의료와 복지 정책의 목표로 삼는다. 사회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활기 있게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맞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급적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살다 가도록 돕는 정책은 불필요한 의료 행위와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해외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들어가는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의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은 노인 맞춤형 의료 돌봄 체계가 미비한 탓에 나이 들어 몸이 불편해지면 요양원 요양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을 전전하며 불필요한 검사만 받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첨단 의료 기술을 의미 있는 삶을 연장하기보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연장하는 일에 쓰고 있다. 이에 따른 의료비 부담도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는 상황이다. 이제는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도 관리해야 한다. 육체적 고통 없이, 살던 곳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한 임종을 맞을 수 있어야 개인도 사회도 행복해질 것이다.
-동아일보(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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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에도 일본 대도시 왜 북적일까
노인클럽·노인 홈·음식 택배 등 특화된 인프라 덕에 유입 늘어
우리도 10년 후 '도시 초고령化'… 의료·주거 대책 본격 마련해야
일본은 인구가 줄고 있다. 12년째다. 만 65세 이상 인구가 30%에 이른 초고령사회라 한 해 130여 만명이 세상을 떠난다. 태어나는 아기는 90여 만명이다. 그러니 자연 감소 인구가 일 년에 40만명이다. 2017년이 그랬다. 그래도 아직 인구가 1억2600여 만명이다.
인구 감소 와중에 증가한 곳도 있다. 도쿄와 주변 수도권 도시,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대도시다. 사회적 유입이 늘고, 고령인구도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2025년까지 증가하는 65세 이상 인구의 60%가 이 몇 개 대도시에 존재한다. 고령화 쓰나미가 지방을 먼저 훑고 지나가면, 초고령화 문제는 결국 큰 도시로 몰린다는 얘기다. 일본이 지금 그 시기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0년대 후반부터 한 해 260만명씩 태어났다. 이 베이비붐 세대가 어른이 됐을 때 경제성장 시기를 맞아 대거 도시로 이동했다. 탈(脫)농촌, 도시화(化) 산업사회 현상이 고령사회로 이어져 두드러지게 드러난 꼴이 초고령 도시다. 인구사회학적으로 대도시는 점점 커지면 커졌지 줄지 않는다. 일본 인구 공식을 그대로 우리한테 옮기면 10~12년 격차로 맞아떨어진다. 베이비부머로 태어나 경제성장기를 겪은 세대(1955~1963년)가 모두 65세 이상으로 넘어가는 2028년이 되면, 우리도 도시 초고령화를 눈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일본의 노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공식과 같다. 고령자가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추적 조사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남자의 10%는 90세가 넘어도 정정하다. 이들은 그 나이가 되어도 살던 집에 머문다. 타고난 건강 체질에 근육이 많은 사람들이다. 다들 내가 거기에 해당되겠지 생각하겠지만, 아쉽게도 남성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20%는 60대 중반부터 쇠약해져 70대 중반이면 자립 생활을 못 한다. 조기 사망하거나 요양원·요양병원에 누워 있다. 약골에 만성질환이 많고 악화된 이들이다.
나머지 70%는 75세부터 노쇠해지기 시작해 90세에 바닥을 친다. 즉 남성 대다수는 74세까지는 고용노동부 소속에 있다가, 75세부터는 보건복지부로 넘어온다. 이후 15년에 걸쳐 살던 집에서 고령자용 주택·노인 홈, 요양원·요양병원 순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여성도 이와 유사한데, 90세에도 등산을 다니는 남자 10% '수퍼 노인'은 거의 없다. 근육량과 남성호르몬 차이로 본다. 대신 남자 20%에 해당하는 '조기 허약'이 적다. 여성 대부분은 70세부터 90세 넘어서까지 천천히 쇠약해진다. 그래도 남자처럼 아주 바닥을 치진 않는다. 여자는 주로 살던 집에 살고, 80대 후반에 가서야 노인 홈에 많다.
일본 도시는 이 그림대로 노인 홈 같은 고령자용 주택을 늘리기에 바쁘다. 휠체어로 드나들 수 있게 집을 고쳐주느라 분주하다. 노약자·장애인이 어디든 갈 수 있게 문턱 없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 왔다. 75세 이상 고령자가 집을 떠나 병원으로 오는 '입원 대란'을 막기 위해 도시를 중심으로 방문 진료·가정간호·재활을 10여 년 전부터 늘려왔다. 고령자 음식 택배 사업도 활성화했다. 주민센터 근육 훈련, 어르신끼리 어울리는 노인 클럽도 활발하다. 움직이는 고령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몸부림이었다.
초고령 도시, 우리에게 앞으로 12년 정도 남았다. 의료·복지·주거 제도나 정책이 자리 잡으려면 10년 정도 걸린다. 재원 마련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감당이 가능하다. 새해를 고령 친화 사회 만들기 원년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새판을 짜 나가야 한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일본 연수특파원, 조선일보(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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