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방송 사장까지 강제 교체, 자유민주 국가 맞나]
[이긴 자의 잘못도 기억된다]
민간 방송 사장까지 강제 교체, 자유민주 국가 맞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시작되자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김지호 기자
민주당이 지난 5일 일방 통과시킨 방송법엔 YTN과 연합뉴스TV의 사장·보도 책임자를 3개월 안에 바꾼다는 내용이 담겼다. YTN과 연합뉴스TV는 공영방송이 아닌 민영방송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법으로 사장을 바꾸겠다고 한다. 위헌적인 발상이다.
YTN의 최대 주주는 유진그룹으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사장을 임명하고 있다. 연합뉴스TV는 연합뉴스가 지분 30%를 가졌지만, 나머지 70%는 을지재단과 화성개발 등 민간 소유다. 두 언론사 모두 상법상 주식회사인데 민주당은 이를 무시하고 사장을 교체하는 조항을 법으로 못 박았다. 사장추천위원회도 노조와 합의해 구성토록 의무화했다. 모두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상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당도 민간방송 사장 강제 교체가 위헌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는 것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요구하고, 보도 전문 방송을 독점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YTN의 경우 이미 지난달 사장이 민주당의 압박에 자진 사퇴했지만, 언론노조는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을 밀어준 언론노조가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민주당은 KBS를 ‘영구 민주당 방송’으로 만든다는 방송법 개정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MBC 관련법도 조만간 처리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 집권 2개월 만에 사실상 방송 거의 전부를 장악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들은 모두 언론을 통제하고자 했지만, 민간방송 사장까지 법으로 강제 교체하지는 못했다. 여기가 자유민주 국가가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은 하루빨리 위헌 결정으로 폐기돼야 한다.
-조선일보(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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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자의 잘못도 기억된다

지난해 12월 20일 대만 타이베이 입법원(국회)에서 흰색 재킷을 입은 중국국민당 의원들이 민주진보당이 점거한 의장석을 탈환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진보당은 국회모독죄 도입·헌법재판소 구성 요건 강화·의원 소환제 개편 등 의회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할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된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하고 밤샘 농성을 벌였다. /AFP 연합뉴스
대만의 친중 성향 야당인 중국국민당은 최근 소속 의원에 대한 무더기 파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기세등등하다. 시민단체 주도로 국민당 의원 24명에 대해 주민 소환 투표가 열렸지만, 단 한 명도 파면되지 않았다. 여소야대에 가로막혀 식물 정부로 전락한 라이칭더 총통의 민주진보당은 상황을 타개하려 승부수를 던졌지만 완패했다.
국민당은 라이칭더 정부를 사사건건 방해했다. 국방비를 포함한 정부 예산을 삭감하고 총통과 헌법재판소 권한은 축소했다. 외교·홍보 경비까지 집요하게 깎아냈다. 의원 파면 요건은 까다롭게 손질했고 의회 모독죄를 신설해 눈 밖에 난 공무원과 기업인, 심지어 일반 시민까지 형사 처벌할 수 있게 했다. 민진당은 “의회 쿠데타”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국민당은 다수당의 권한이라며 강행했다. 숙의와 절차는 생략되고 다수결만 남았다.
국민당은 지난해 총선 승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다수당이 법안을 주도하는 것은 선거를 통해 부여받은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취지다. 이 법안들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의혹에는 “총선 불복”이라며 몰아붙였다. 파면 투표를 두곤 “이길 수 없으니 테이블을 뒤집는 질긴 패배자”라고 비난했고, 라이칭더의 사과까지 요구하고 있다. 모든 책임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듯하다. 민주주의가 다수결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수결 그 자체가 민주주의라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민진당의 패배는 자초한 측면이 있다. 소환 대상이 된 의원 대부분은 국민당 텃밭에 지역구를 뒀다. 국민당 독주에 반발하는 여론은 컸지만 이를 승리로 이끌 전략은 부족했다. 민진당은 시민단체가 주도한 파면 투표에 거리를 두다가도 결국 달뜬 광장 민심에 휩쓸려 승산 없는 판에 적극 개입했다. 여야 대결 구도를 자초해 오히려 상대에게 마패를 쥐여준 꼴이 됐다. 최근 만난 한 대만 정부 관계자는 “전원 부결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중 심리에만 기대 정작 민생은 뒷전이었다는 평도 많다. 국민당의 친중 행보가 안보 위협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정당한 분노는 빛이 바랬다.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선 승산 없던 불법 비상계엄을 수습하느라, 갖은 우려를 낳는 법안을 강행한 정당의 책임은 뒷전이 됐다. 독주의 이유라며 핏대 세운 불통(不通)의 모습은 여야가 바뀐 뒤에도 그대로다. 책임 있는 집단이 심판석에 앉으면 통합의 정치는 멀어진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그들의 행보를 우려하는 이들의 목소리마저 묻혀서는 안 된다.
형사 절차 중엔 무혐의 처분이 있다. 수사 당국이 범죄 혐의를 조사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사건을 종결하는 조치다. 최소한 사법의 틀에선 더는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선거는 다르다. 이긴 쪽이 권력을 독식한다고 해서, 이전의 과오까지 잊히진 않는다. 국민은 이긴 자의 잘못도 끝내 기억한다.
-서보범 기자, 조선일보(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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