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윤리 타락한 미국을 관세가 구할 수 있나]
[세계 무역의 '심판' 역할… 미국은 왜 불만을 터뜨릴까?]
[오늘의 K조선 만든 '산업 열사']
노동 윤리 타락한 미국을 관세가 구할 수 있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한다며 관세 장벽 세우고 투자 유치?
국민은 땀 흘려 일하지 않는데 어떻게 제조업 일으킬 수 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서던 위스콘신 공항에서 유세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은 GM 자동차 공장 덕에 먹고사는 공업 도시였다. 2008년 GM 공장이 문을 닫으며 시련이 닥쳤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집이 매물로 쏟아졌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일부는 운 좋게 다른 지역 공장에 재배치됐다. 그런 이들은 주말에만 집에 간다고 해서 ‘GM 집시’라 불렸다. GM 집시의 자녀는 철이 일찍 들었다. 주말엔 아빠와 함께 있기 위해 친구들과 약속도 잡지 않았다. 제인스빌 사람들은 이 불행의 원인을 미국 밖에서 찾았다. 독일·일본·한국·중국 같은 국외 제조업 강자들 탓이라고 했다. 이 분노에 정치인들이 올라탔다. 트럼프는 대선 이슈로 삼았다. 그의 모토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이 제조업 부활이다. 관세 장벽을 세우고 투자를 유치해 미국 땅에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쇠락의 진짜 이유를 외면했다.
미국 러스트벨트는 미 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뜻한다. 미국 부통령 J D 밴스는 대표적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이다. 밴스 같은 이들을 미국에선 힐빌리라 한다. 힐빌리 출신인 그가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쓴 자서전이 ‘힐빌리의 노래’다. 영화로도 제작돼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준 자수성가 스토리는 그가 책에 쓴 내용의 절반만 보여줬을 뿐이다. 밴스는 그 책에서 미국 러스트벨트는 왜 지금처럼 망가졌으며 어째서 가난에 빠지게 됐는지 분석한다. 미국 입장에선 숨기고 싶은 얘기, 들춰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밴스가 집중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미국인의 타락한 노동 윤리다. 다음은 책 내용의 일부다. ‘밥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결근했고 툭하면 지각했다. 하루에 서너 번씩 화장실 간다며 자리를 비웠고 그때마다 30분 넘게 쉬다가 돌아왔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중서부 산업지대가 쇠퇴하고 백인 노동계층의 경제 축이 무너지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현실은 거시경제적 추세나 동향보다 훨씬 더 깊은 문제다. 요즘엔 고된 일을 기피하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그들은 ‘노동을 재능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주당 30시간 미만 일하면서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 내 다른 민족 집단보다 불평은 더 많으며’ ‘자기 인생에 얼마 있지도 않은 가치마저 산산이 부수는 마약쟁이’들이다.
한국에서 미국 현지 공장에 파견 나간 관리자들은 물건을 만드느라 힘든 게 아니라 나태하고 무책임하며 툭하면 회사에 소송을 걸어 돈 뜯어낼 궁리나 하는 직원들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좋은 직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약물 남용과 범죄에 빠져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20세 이상 55세 미만 청·장년층이 12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제조업을 부활시켜 위대해질 수 있는가.
미제(made in USA)가 세계를 지배하던 게 불과 한 세대 전이다. 필자는 20대 몇 년을 미국 젊은이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세계 최강 제조업 국가의 국민은 순박했고 우직하게 일했다. 꾀를 부릴 줄도 몰랐다. 제조업 강국 미국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만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은 그들의 혁신 아이디어를 공장에서 땀 흘려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성실한 일꾼의 나라였다. 미국은 위대함을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강대국이다. 대형(大兄)의 힘자랑은 한국 같은 나라에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으니 비상한 각오로 이 시기를 견딜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현실이 우리를 돌아보게도 한다. 우리의 노동 윤리는 태평양 너머에서 닥쳐온 큰 파도를 헤쳐나갈 만큼 강건하긴 한 걸까.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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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역의 '심판' 역할… 미국은 왜 불만을 터뜨릴까?
WTO(세계무역기구)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나라의 산업을 지키겠다면서 외국 상품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보호 무역’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이 영향으로 세계가 한동안 유지해온 자유 무역 질서에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주요 외신 등에선 “이제 WTO(세계무역기구) 시대는 끝났다” “그동안 WTO 주도의 무역 질서가 ‘트럼프 라운드’(각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협상)로 대체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WTO는 무엇일까요? WTO는 1995년에 여러 나라가 모여 만든 국제 무역 기구를 뜻해요. 자유 무역 강화를 위해 만든 기구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년 동안 WTO 규칙이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선진국인 미국은 의무만 많이 지고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1998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에서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각료회의는 WTO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2년마다 개최됩니다. /위키피디아
자유 무역 활성화하려고 만들었죠
원래 1930년대만 해도 외국 물건에 높은 세금(관세)을 매겨 자국 산업을 지키는 보호 무역 정책이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국 등은 “보호 무역은 시장을 넓히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자유 무역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1948년 만들어진 것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에요. 관세를 낮추는 등 무역 장벽을 줄이기 위한 규칙을 정했지요. 하지만 GATT는 협정 수준의 느슨한 약속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었죠. 또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자, 일부 국가는 다시 보호주의 무역을 펼치기도 했어요.
그러자 세계의 무역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 중심으로 GATT의 한계를 보완하고 더 강력한 자유무역 제도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1995년 탄생한 것이 WTO입니다. 하나의 무역 규칙을 만들어 여러 나라가 안정적으로 무역을 할 수 있게 되면 자국 기업의 수출과 투자에도 유리하다고 본 것이죠. WTO는 분쟁 해결 제도와 법적 구속력을 갖춘, GATT보다 한층 더 강력한 기구지요.
예전에는 국가 간 무역 분쟁이 발생하면 힘이 센 나라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WTO 체제에선 국력이 아닌 절차에 따라 판정을 하죠. 과거 GATT는 상품(물건) 무역만 다뤘는데, WTO는 서비스(금융·통신·운송 등)와 지식재산권까지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무역 질서를 마련했지요. 모두 WTO 체제 덕분이라고 할 순 없지만, 실제로 WTO 출범 이후 세계 교역량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또 WTO 체제에서는 개발도상국을 배려하는 조항이 있어요. 개발도상국들은 시장 개방을 일정 기간 늦추거나, 일정 정도의 관세 혜택을 받을 수도 있죠. 최근 미국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이런 차등 대우와 관련이 있어요. 중국은 개발도상국 지위로 WTO에 가입해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그에 반해 미국은 양보만 하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맺어진 협정으로 WTO가 출범하게 됩니다. 출범 당시 128국이었던 WTO 회원국은 현재 166국으로 늘어났지요. /WTO
한 나라에 준 혜택, 다른 모든 회원국에도 줘야
WTO 회원국끼리도 관세는 있습니다. 다만 ‘이 품목은 최대 몇 %까지 매기겠다’는 상한을 서로 약속하고, 보통은 그보다 낮게 매기죠. 예외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WTO 회원국들끼리는 어떤 물건에 대해 한 나라에 준 혜택은 다른 모든 회원국에도 줘야 합니다.
한국도 1995년 WTO가 출범할 때부터 정식 회원국이 되었지요. 당시 한국은 수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WTO 체제는 한국 경제에 필요한 안전망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 갈등을 조정하거나 자국 산업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WTO의 분쟁 해결 제도를 활용했습니다. 미국이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2002년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했을 때 한국이 WTO에 제소해 승소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원래 WTO는 모든 나라가 똑같은 규칙을 따르도록 하자는 취지였지만, 회원국이 100국이 넘다 보니 합의가 쉽지 않았어요. 나라별 입장 차이가 커서 협상이 자주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지요. 그래서 확산한 것이 바로 ‘FTA(자유무역협정)’입니다. FTA는 특정 국가끼리의 약속이에요. 합의가 훨씬 빠른 데다가, 자국에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의 첫 FTA를 시작으로 미국·EU·중국 같은 주요 교역국과도 차례로 협정을 체결하며 무역을 넓혀왔습니다.
WTO는 무역뿐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환경 보호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답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정부는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후쿠시마 인근에서 잡힌 수산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지요. 그러자 일본은 “부당한 조치”라며 WTO에 제소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WTO 최종심에서 한국이 승소하면서 수입 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99년 미국 시애틀 회의가 열릴 당시 회의장 밖에선 WTO 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어요. ‘WTO가 숲을 파괴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시위대의 모습. /시애틀 시립 기록 보관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입장 차이 커
하지만 WTO 체제가 주도해온 자유 무역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의견 차이는 지금까지도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지요.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WTO 회의에선 농업, 서비스, 지식재산권, 환경, 노동 기준, 전자상거래 등 방대한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논의했지만 협의는 쉽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은 특허와 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을 더 강하게 보호하고, 서비스 시장 역시 더욱 개방돼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자국 농민들에게 주는 보조금을 줄이고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며 맞섰습니다.
회의장 밖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노동조합, 환경단체, 인권단체, 반(反)세계화 운동가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는데, 폭력 사태로 번지며 ‘시애틀 전투(Battle of Seattle)’라고 보도될 정도였지요. 이는 WTO 체제와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폭발했던 상징적 사건이었죠.
코로나19 팬데믹은 WTO 체제에 또 다른 시험대였습니다. 팬데믹 초반, 많은 나라가 자국민을 먼저 보호하려고 마스크나 의약품, 백신 수출을 막았어요. 이때 일부 개발도상국은 백신 특허를 일시적으로 풀자는 제안을 했고, 백신 개발사를 가진 선진국들은 반발했습니다. 논쟁 끝에 WTO는 제한적으로 특허를 면제하는 데 합의했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기업들의 협력이 부족해 실제 효과는 크지 않았죠.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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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K조선 만든 '산업 열사'

조선총독부 항만 관리 보고서를 보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을 때 일본인들은 철수하면서 큰 선박은 모조리 가져갔다. 남은 건 100톤(t) 이하 작은 배뿐이었다. 우리는 그마저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였다. 고칠 기술이 없어 고장이라도 나면 그걸 일본에 끌고 가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인정한 오늘날의 ‘K조선’이지만, 80년 전 우리 손으로 조선업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꿈이었다.
미국은 6·25전쟁에서 같이 싸우고 상호방위조약도 맺었지만, 우리에게 군함과 기술을 주기는 꺼렸다. 이런 가운데 1961년 군인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그가 국정을 시작하며 집착에 가깝게 좇은 것 중 하나가 조선이다. 1961년 11월 첫 방미 때 일본을 거쳤는데 영국 선급사 직원으로 잠시 일본에 머물던 신동식을 따로 불렀다. 조선업을 키울 인재를 직접 찾은 것이다.
신동식은 귀국해 잠시 일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시피 해 미국으로 가버렸다. 박정희는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차 방미했는데 짬을 내 미 선급협회 검사관이던 신동식을 다시 호텔 방으로 불렀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요. 조선업을 살려야 하오.” 거듭된 설득에 신동식은 진정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정희는 신동식을 초대 경제수석에 앉혔다. 파격이었다.
K조선은 그렇게 싹을 틔웠다. 서방 선진국들은 “기술도 없는 한국에 무슨 차관이냐”고 혀를 찼지만, 거북선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설득하며 밑천을 빌린 현대 정주영, 대우해양조선의 김우중, 포항제철 박태준 등 당대 기업인들의 전설 같은 경영 일화는 황무지에 놓인 K조선에 단비와 비료가 됐다. 무엇보다 이름 없이 밥벌이를 위해서, 부모와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마음 한편에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이 악물고 묵묵히 일한, 그러다 일터에서 목숨도 잃고 만, 수십 년간 수많은 ‘애국 근로자’가 지금의 K조선을 만들었다.
경제·통상과 첨단 기술 전쟁의 시대다. 트럼프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한 말마따나 내밀 ‘카드’가 없으면 나라 명운이 갈리는 살벌한 시대다. 트럼프는 작년 11월 당선 직후 첫 한미 정상 통화에서부터 조선을 콕 집어 협력하자 했는데, 역시나 지난달 말 ‘관세 핵폭탄’ 협상에서 우리의 최대 무기는 조선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선 협력의 상징물로 트럼프에게 ‘거북선’을 선물할 것을 검토한다고 한다. ‘사업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이 더 엄중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열사(烈士). 국어사전은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이라 정의한다. 조선업 등 각 일터에서 땀과 노력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운 이들을 ‘산업 열사’라 부르고 싶다.
-노석조 기자, 조선일보(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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