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중의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반인반귀' 비형랑과 신라의 골품제]
[조선시대 선교사가 '朝鮮' 한자에 경탄한 이유]
'국보 중의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윤주 위원 제공
향을 사르는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를 마주하면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 마리 용이 연꽃 봉오리가 이어진 줄기를 물고 있는 형상인데, 힘차게 솟아오르는 용의 입에서 연꽃이 피어나며 또 다른 세상을 펼쳐내는 것 같다.
맨 위에 살포시 봉황을 올린 백제인의 상상력과 미감이 압도적이다. 잔뜩 힘을 준 목에 여의주를 낀 봉황. 그 아래 다섯 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산봉우리에서는 새들이 봉황을 올려다본다. 오밀조밀하게 장식된 문양과 실존 동물, 상상의 신수들, 인물상이 어우러져 종교와 사상이 깃든 특별한 세계관을 표현했다.
향을 사르면 총 12개 작은 구멍 중 5개는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 향이 잘 타게 한다. 7개 구멍에서는 연기가 흘러나와 산의 능선과 봉황을 운무처럼 감싸며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그 감흥을 느끼고 싶어 모형을 구해 향을 피워 보기도 하지만, 부여박물관을 찾으면 백제의 찬란한 숨결이 담긴 실물을 마주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높이 61.8cm에 불과하지만, ‘국보 중의 국보’란 찬사를 받는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겨울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됐다. 절터는 부여 왕릉원과 백제 고분 모형 전시관의 주차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향로는 절터 서쪽 공예품을 만들던 공방지 내 타원형의 아궁이에서 발견됐다. 만약 발굴 조사를 허투루 했다면 영영 못 볼 뻔했다. 처음 발견하고 수습한 사람들의 정성과 신의 경지에 이른 백제 장인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고맙다.
탁월한 아름다움을 품은 백제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 10년 되었다. 이를 기념하며 백제금동대향로에서 영감을 받은 ‘오악사’가 공연을 했다. 백제 장인이 꿈꾼 세상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곡조를 연주하는 악사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옛사람의 흐뭇한 미소를 느껴본다.
-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조선일보(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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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귀' 비형랑과 신라의 골품제
신통한 힘 가진 '반인반귀' 왕자… 황룡사 9층 탑 지었대요
(※이 글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과 앨범 차트 ‘빌보드200’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한국 문화의 여러 요소가 담긴 이 영화가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K컬처’가 유례없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루미. 인간인 어머니와 악령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정체를 숨긴 채 걸그룹 ‘헌트릭스’로 활동하지요. /넷플릭스
그런데 이 영화는 인기 절정의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사실은 악령을 퇴치하는 퇴마사이며, 그중 주인공 ‘루미’는 인간인 어머니와 악령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귀(半人半鬼)지만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이것은 작품의 주제이자 삽입곡 ‘골든’의 가사인 ‘더 이상 숨지 말고 너답게 빛나라’는 메시지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죠.
‘반인반귀’라는 존재가 우리 문화에서 생소한 것 아닐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나오긴 나옵니다. 어디에? 바로 ‘삼국유사’입니다. 그의 이름은 비형(鼻荊) 또는 비형랑이라고 하는데 ‘랑(郞)’이란 남성에게 붙이는 당시의 호칭이었습니다.
귀족들에게 쫓겨난 임금 진지왕
신라 역사에서 국력을 가장 크게 키운 군주로 24대 진흥왕(재위 540~576)을 들 수 있습니다. 한강 유역부터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부까지 영토를 크게 늘려 신라가 삼국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진흥왕의 차남으로 그 뒤를 이어 25대 임금이 된 군주가 누군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로 진지왕(재위 576~579)이었습니다.

경상북도가 제작한 황룡사 복원도. 가운데엔 높게 솟은 9층 탑이 보여요.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은 황룡사 9층 탑 건설 책임을 맡았지요. /경상북도
우리나라 고대사가 기록된 대표적인 두 역사서가 고려 시대에 쓰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사기’가 공식 역사서인 반면 ‘유사’는 서민의 풍속과 문화 등 ‘사기’에 없는 내용을 많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지왕이 즉위한 지 3년 1개월 만에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폐위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은 ‘유사’에만 실려 있어요.
이에 대해서는 진지왕이 원래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나 있었지만 진흥왕 때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거칠부의 지원으로 조카 백정(훗날의 진평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579년 거칠부가 죽은 뒤 귀족 세력의 반발로 쫓겨났다는 것이죠. 신라 임금이 폐위됐다는 기록은 아주 드뭅니다. 진지왕의 뒤를 이어 26대 왕이 된 인물이 진흥왕의 장손이자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재위 579~632)이었습니다.

귀신이 된 임금이 비형랑을 낳았다는데…
바로 이 진지왕과 관련된 기록이 ‘비형랑’ 이야기입니다. 진지왕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평민 중 도화랑이라는 미녀가 있었는데 임금이 궁으로 불러 구애했어요. 그러나 아뿔싸, 도화랑은 유부녀였고 “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으니 차라리 거리에서 죽여 달라”며 거절했죠. 진지왕은 넌지시 “남편이 없으면 가능하겠는가” 물었고 도화랑에게서 “그러면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여기까지 스토리의 진행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 얘기처럼 진지왕이 도화랑의 남편을 죽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의외로 진지왕은 쿨하게 물러났습니다. 얼마 지나 진지왕은 폐위를 당했고 곧바로 세상을 떠났어요. 3년 뒤에 도화랑의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죽은 진지왕의 귀신이 도화랑 앞에 나타나 ‘남편이 없으면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습니다. 왕이 그 집에 7일을 머물렀는데 오색 구름이 집을 덮었고, 도화랑은 임신했습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비형이었어요. 그야말로 사람과 귀신의 혼혈인 ‘반인반귀’였죠.
진평왕이 그를 궁중에서 길러 15세 때 집사 벼슬을 줬습니다. 비형은 매일 월성(신라 궁궐) 담을 넘어 도깨비들을 거느리고 놀았다고 합니다. 이를 들은 진평왕은 뜻밖에도 그 도깨비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해 국가 재정을 절약하려는 정책을 씁니다. 월성 북쪽 신원사 근처에 다리를 놓으라고 지시한 것이죠. 하룻밤 새 돌다리가 건설됐고 ‘귀교’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진평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도깨비 중에 조정에 나와 정치를 도울 자가 있는가?” 비형이 길달이라는 도깨비를 추천했는데 충직하게 업무를 수행했고 흥륜사 남쪽에 문을 만들어 ‘길달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길달은 인간 세상 일에 싫증이 났는지 여우로 변해 달아났는데 비형이 부하 도깨비들을 시켜 잡아 죽였다고 합니다. 이후 신라 사람들은 ‘날고 뛰는 온갖 귀신들아, 비형랑이 이 집에 있으니 꺼지거라’라는 글을 적어 부적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비형의 정체는 ‘성골보다 신분 낮은 진골’?
그런데,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얘길까요? 일각에서는 ‘도깨비’를 당시 신라와 교역하던 중동 출신의 외국인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귀교를 만든 도깨비들을 밀교(대승불교의 한 분야) 승려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형의 정체를 “실제로 진지왕의 아들이었던 김용춘이었다”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김기흥 논문 ‘도화녀·비형랑 설화의 역사적 진실’). 진지왕이 폐위되고 나서 바로 죽은 것이 아니라 3년 정도 더 살다 도화랑에게서 아들을 봤다는 것이죠. 그런데 김용춘은 바로 신라 29대 임금인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이 되는 김춘추의 아버지였습니다.

경주 태종무열왕릉 앞에 세워진 석비. 진골 출신으로 왕이 된 무열왕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를 멸망시키며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입니다. /국가유산청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에서 최고 등급은 왕족인 성골, 그다음은 진골이었습니다. 그 아래는 하급 귀족에 해당하는 6두품, 5두품, 4두품이 있습니다. 훗날 지식인 계층으로 떠오른 6두품은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런데 성골 출신의 신라 왕은 28대 진덕여왕에서 끝나고, 태종무열왕부터는 진골 출신이 임금이 됩니다. 신분이 낮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던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은 성골 신분이 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비형랑 설화에 나온 것처럼 토목·건축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아 실제로 황룡사 9층 탑의 건설 책임을 맡았고, 마침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숨기지 말자’는 듯 비(非)성골 출신으로서 당당히 활약한 결과 아들 대에 이르러 왕위에 오르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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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교사가 '朝鮮' 한자에 경탄한 이유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나도는 우스개 글(humorous piece)이다. 제목은 ‘갓을 쓰고 다니는 조선인’. 작자와 출처는 확인할(identify its author or source) 길이 없다. 난데없지만(may seem out of the blue), 시절이 하도 수상하고 어수선해(be unstable and uneasy) 잠시 잊고자, 그냥 한번 웃어 보고자(simply have a laugh) 하여 소개드린다.
미국인 선교사(missionary)가 처음 조선에 와 보니 사람들이 갓을 쓰고 다녔다. 신기하고 궁금해서(out of wonder and curiosity) 한 양반에게 물어봤다. “머리에 쓴 게 무엇이오?” “갓이오.” “아니 갓이라니! 이 나라 사람들은 갓(God)을 항상 머리에 모시고 다닌다는 말인가. 게다가 발에는 신(神)을 신고(wear the Divine on their feet) 다니질 않는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from head to toe) 신을 받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겐 이미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descend upon them) 것 아닌가.”
“이 나라 이름은 무엇이오?” 양반은 붓으로 한자(Chinese character)를 써 보이며 말했다. “아침 조, 고울 선, 朝鮮이라 하오.” 그러자 선교사는 “아, 내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 온 것이 맞구나” 하며 한자로 朝鮮 쓰는 순서를 가르쳐달라고(teach the stroke order) 했다.
“朝는 먼저 열 十 자를 쓰고, 그 밑에 낮이라는 뜻의 날 日 자를 쓰고, 또 열 十 자를 쓰고, 그 곁에 밤을 뜻하는 달 月 자를 씁니다.” 선교사는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be taken aback and murmur). “낮(日)에도 십자가(十), 밤(月)에도 십자가(十), 하루 종일 십자가와 삶을 함께하고 있다는(live with the cross all day long) 뜻이구나.”
“鮮은 물고기 魚 옆에 양 羊 자를 씁니다." 선교사가 또 다시 감탄하며(marvel once more) 두 손을 모았다(clasp his hands together). “물고기는 그리스어로 ‘익투스(ΙΧΘΥΣ)’라 하는데, 다섯 알파벳이 각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뜻하는 머리글자인 두문자어(acronym)이고, 양은 ‘하나님의 어린 양’을 뜻하니 鮮은 완전한 신앙 고백의 글자(complete character of faith confession) 아닌가. 조선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복음의 나라(a country prepared by God for the gospel)임에 틀림없다.”
선교사는 조선 관련 영어 문서에 ‘조선 사람’이 ‘Chosen People’로 쓰여 있던 것을 떠올리며 또 한 번 경탄했다(be struck with amazement). “와우! 선택된(Chosen) 사람들(People), 조선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동방의 선민(選民·God’s chosen nation of the East)이로구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한시도 고요할 틈 없게 된 이 나라를 굽어살펴 주시옵소서(watch over this country). ‘익투스’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pray in the name of ΙΧΘΥΣ). 아멘!”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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