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숏폼에 의존하는 ‘어글리’ 정치]
[한국 '노벨의학상'은 정치가 받을 만하다]
[저질 정치예능 촬영장 된 국회]
유튜브 숏폼에 의존하는 ‘어글리’ 정치
[김승련 칼럼]
시인 닮은 정치인 대신 ‘숏폼 연예인’ 등장
막말 영상이 나쁜 진짜 이유는 공론장 잠식
정치인들에게 고(告)함… 제발 멈추라
지는 게 이기는 것… 유권자는 기억한다
정치부 기자 시절, 안도현 시인의 글을 읽고 정치인이라면 시작(詩作)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안도현은 시인을 ‘말로 세상을 바꾸는 존재’로 여겼다. 그는 시를 쓰는 태도에 대해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려 (길가의 들풀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고 썼다. 유권자 앞에 더 낮아지고, 삿됨 없이 정직한 언어로 세상을 마주하는 정치인들이 더 나올 수 있겠다 기대했다.
당시 생각이 부질없었음을 인정한다. 모두가 고개를 젓는 작금의 정치는 시적(詩的)이기는커녕 추문(醜文)이 너무 많아졌다. 국정 사유화, 계엄, 탄핵, 정권교체에 이어 거대 여당이 이끄는 국회를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갖는 이들이 더 늘었을 것이다. 요즘 법사위에서의 고성, 반말과 삿대질, 방미통위에서 벌어진 언어폭력을 통해 바닥에 떨어진 정치를 봤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든 현상이라지만, 정치인들은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한술 더 떠 이 흐름에 올라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다.
정치인의 저질 발언이 뭐가 새삼스럽냐고 반문할 수 있다. 2008년 11월 동아일보가 보도한 여야 대변인의 1년 치 논평 1000건 분석 기사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놀라운 건 상대 정당에 대한 공격성과 적대감에서 가장 부정적 점수를 받은 논평 2가지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극우 형제” “정권교체 저지를 위한 마지막 발악이 (민주당) 곳곳에서…”. 지금은 매일같이 듣는 이런 논평이 최악으로 평가되던 시절이었다.
2008년 기사를 보면 저격수 역할은 여야 부대변인들이 도맡았다. 당 지도부나 현역 의원이던 대변인들은 모진 비판거리가 있을 땐 당내 입지가 약한 부대변인들에게 넘겼다. 중진들이 한발 뺀 것이지만, 그렇게 만든 공간에서 타협과 절충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운과 함축의 맛을 담은 정치 논평이 박수받던 그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말의 품격이 떨어진 정치는 그 공격성만이 문제는 아니다. 사막 같은 정치 언어는 생각의 빈곤, 콘텐츠 부재를 가리는 외피가 돼 버렸다. “첫째, 둘째, 셋째”를 말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옛 정치인들이 그리울 정도다. 올망졸망하게 키 작은 정치인들만 넘쳐난다. 선수(選數)는 쌓았으되, 지도자다움을 키우지 못한 결과다. 대통령감, 당 대표감으로 여겨지는 거물이 점점 줄고 있다. 전체적으로 국회의원들 언어가 옛 부대변인과 비슷해졌다.
내실 없음은 숏폼 정치로 때우고 있다. 숏폼 속 정치인들은 연예인과 다를 게 없을 때가 많다. 한 세대 전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유행하던 말(“Politics is show business for ugly people”)이 한국에도 상륙한 것이다. 의역하자면 “정치인과 연예인은 똑같은 기질을 지녔다. 인물이 빼어나면 연예인을 하고, 그 반대는 정치를 할 뿐이지”라는 뜻이다. 이런 정치의 큰 해악은 국가 현안을 다뤄야 할 신문지면과 방송뉴스 시간을 뺏는다는 거다. 이번 주 경주에서 동북아 질서의 30년을 가늠할 한미, 미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고, 정부 어디선가는 AI 시대와 민생 복지 정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치인 싸우는 영상에 빠져든 대중은 무거운 주제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심했다”는 자성은 없다. 당 원로나 어른들도 뒷짐만 지고 있다.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싸울 때 보좌관들이 휴대전화로 영상 찍으러 따라다니는 게 정상이냐”는 지적이 안 들린다. 200년 전 나왔던 ‘독일 국민에게 고(告)함’ 강연 시리즈처럼 국회의장, 당 대표를 지냈던 이들이라면 피를 토하듯 촉구해야 하지 않나.
좋은 정치에 목마른 유권자들은 작은 일에도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정치가 먼저 허리 낮추고, 무릎 구부리는 걸 보고 싶어 한다. 욕심 덜어내고, 관조하고, 손 먼저 내밀며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시인들의 태도가 우리 정치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당들이 스스로 변할 여지도 크지 않다. 여전히 “악수는 사람과만 한다”거나 “여당과 잘 싸우는 게 먼저”라며 버티고 있다. 상대 당이 변해야 한다고 목청 높일 뿐 자당이 먼저 달라지겠다는 의식도 없다. 그럼에도 여의도에서 반말과 악쓰기를 멈추겠다는 다짐을 먼저 내놓는 정당이 나오길 바란다. 그럴 경우 그들은 굴복한 게 아니라, ‘지는 게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유권자는 언제나 그렇듯 정확하게 기억할 것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동아일보(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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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벨의학상'은 정치가 받을 만하다
[양상훈 칼럼]
질병 치료에 주는 의학상
'죽은 정치인' 살리기 전문인
한국 정치도 받을 만하지 않나
실용 내건 李 정부
뜻밖의 이념 정치, 입법 폭주
죽은 政敵 되살리는
'기적의 의술' 또 벌어지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13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추 위원장은 이날 출석한 조희대 대법원장 상대로 민주당 의원들이 질의하도록 했다. 대법원장은 통상 인사말만 하고 이석(離席)하는 게 관례지만, 추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을 이석시키지 않았다. /남강호 기자
올해 일본 과학자가 노벨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1인당 GDP를 앞섰다’ ‘일본은 IT에서 뒤떨어졌다’ ‘일본 사회는 변화 없이 답답해 발전하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일본의 저력은 우리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도 넓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너무 주관적이고 논란이 많은 노벨평화상과 문학상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본 노벨상 수상 분야는 26명 중 23명이 물리, 화학, 생리의학 등 과학이다. 우리 이공계의 인재 육성과 연구 환경, 풍토 등 실상을 보면 말 그대로 까마득한 수준이다. 상 받으려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벨상 시즌만 되면 답답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일본 학자가 노벨의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듣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언론계 선배가 자주 하던 농담이 갑자기 떠올랐다. 의사과학자 양성 길이 사실상 막혀 있는 나라에서 노벨의학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하다 문득 기억난 농담이었다. 그분은 “한국에선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노벨의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노벨의학상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에 주는 것인데, 치료 정도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면 당연히 노벨상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선배는 “김영삼 대통령이 말년 국정을 잘못해 두 번의 대선 낙선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김대중과 김종필을 살려냈고, 김대중 대통령은 완전히 망해 주민을 떼로 굶겨 죽이는 김정일을 살려내지 않았느냐”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 이후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다 죽은 문재인을 살려냈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는 윤석열에게 정치 생명을 주었고, 윤 대통령은 이재명과 조국 추미애를 되살렸고, 죽었다 살아난 추미애는 지금 나경원을 살리고 있다. 한 명 한 명 다 노벨상을 줄 수 없으니 ‘한국정치’ 명의로 단체상을 수여해야 할 정도다.
이 도돌이표 정치의 관성으로 볼 때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가 또 어떤 ‘기적의 의술’을 행해 누구나 죽은 것으로 보는 윤석열과 김건희를 살려낼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정치에서 벌어지는 기적의 의술은 그 핵심이 ‘오만’이다. 권력에 만취해 마구 휘두르다가 결국 제 눈을 찌르고 그 덕에 가장 증오하는 상대가 관 뚜껑을 열고 살아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돼간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에선 드물게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시장과 도지사 시절 대장동 사건 등 논란이 많지만 한편에서는 ‘일은 잘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래서 “실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을 때 기대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직 초반이라 그 기대를 접을 때는 아니지만 실용, 온건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연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운동권이 된 듯한 언행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입을 모아 재검토를 호소한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을 강행했다. 민주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법을 강행 처리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권한 밖인 민간 방송 사장 교체를 법에 명시하는 폭거도 저질렀다. 이 대통령은 언론계 대표들 앞에서 방송법 처리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하고선 실제로는 서둘렀다. 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합의한 정신을 민주당 대표가 무시하더니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곧바로 파기해버렸다. 그렇게 정부조직을 민주당 1당의 독단으로 바꿨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특검도 그런 식으로 연장했다.
이진숙 한 사람을 축출하기 위해 정부조직인 방통위를 없앴다. 그걸로 분이 안 풀렸는지 이진숙을 갑자기 체포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국회 상임위 국민의힘 간사를 정하는 것도 못 하게 막았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야당 몫이라며 차지한 국회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되자 여당 몫이라며 또 차지했다.
정부 수립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온 검찰을 개선 노력도 없이 없애버렸다. 대법원을 장악할 수 있는 대법관 대폭 증원과 이 대통령 재판과 관련된 것이라는 4심제도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이 와중에 김현지라는 사람의 국회 출석을 막으려 대통령실과 온 여권이 다 나선 것 같다. 정청래 대표의 야당 해산 위협은 시도 때도 없다. 지금 국힘이 워낙 이상해 새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임계점 부근에 와 있는 것으로 느낀다.
이 대통령이 이념 정치를 그만두고 실용으로 돌아와 노동, 규제, 교육, 공공 개혁으로 우리 경제와 사회를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바란다. 과유불급, 역지사지, 새옹지마의 지혜만 되새기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지 않고 지금처럼 무리한 폭주를 계속하면 그것이 ‘기적의 의술’이 돼 정치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또 되살리게 된다. 그때는 민주당이 폭주로 만든 법과 제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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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정치예능 촬영장 된 국회

무소속 최혁진 의원의 유튜브 채널. 사자후,핵사이다 같은 문구와 함께 그의 언행을 담은 쇼츠 동영상이 올라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원내부대표가 “대법원 국정감사 현장에서 쇼츠를 찍어 올린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쇼츠는 자극적 내용의 동영상 화면만 간추려 몇십 초 분량으로 만든 짧은 동영상이다. 지난 15일 국회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 현장 국감이라면서 대법정과 대법관 집무실 등을 돌아다녔고, 일부 의원은 이를 쇼츠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쇼츠에 자기 후원 계좌를 올린 의원도 있었다. 국정감사 현장이 정치인의 홍보용 유튜브 촬영장이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민주당 지도부조차 부적절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번 국회에선 강성 지지층의 관심을 얻기 위해 일부러 과격한 언행을 하고 이를 자극적 화면과 문구로 편집해 쇼츠로 올리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법사위와 과방위, 국방위처럼 여야 정쟁이 잦은 상임위는 저질 정치 예능 프로그램 촬영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인들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동영상 문구 역시 ‘사자후’ ‘극대노’ ‘폭발’ ‘드디어 참교육’처럼 저급한 시선 끌기뿐이다.
과거에는 몸싸움이나 욕설 같은 행위를 하면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쇼츠를 통해 강성 지지층에 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인기를 끌고 있다. 더 자극적인 언행을 해야 정치인으로서 인지도가 상승하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장을 면전에서 조롱하는 등 몰상식한 언행을 한 초선 의원도 후원금 한도인 1억5000만원을 거의 채웠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행정부 견제라는 원래 역할보다는 의원 권한을 개인 홍보나 돈벌이 수단으로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의정 활동은 뒷전이고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쇼츠 제작에 몰두하는 것은 쇼츠의 파급력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유튜브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3000만명이고,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은 140분 수준이다. 국민 2명 중 1명이 2시간 넘게 유튜브를 보고 있다.
정치인들의 비속어와 물리적 폭력이 담긴 쇼츠의 유해성은 폭력물이나 음란물과 다르지 않다. 국회가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자정에 나서지 않는다면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이 저질 정치 쇼츠를 추방해야 한다.
-조선일보(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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