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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불꽃일까] [김정은은 만만하지 않았다] .... [주민등록증]

뚝섬 2025. 11. 4. 07:41

[최후의 불꽃일까]

[김정은은 만만하지 않았다]

[금강산 현대주유소 철거 작전]

[주민등록증]

 

 

 

최후의 불꽃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쉽지 않겠지만 올해는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제 올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최고 수위의 공세로 가능한 한 많은 점령지를 확보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공세가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북한군과 쿠바 용병까지 투입하는 등 병력 자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덤핑 판매에 의존해 버티는 재정 역시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그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전히 희망을 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미국의 협상력은 여전히 군사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무력 개입에 나설 가능성까지 커지며, 세계 곳곳에서 갈등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로서 더 희망적인 요소는 유럽 내부의 균열이다. 재무장과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늘어난 군사비가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에서 이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사실상 중단해 이제는 유럽의 지구력이 러시아보다 먼저 한계에 이르고 있다. 급기야 트럼프가 푸틴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모두에게 고함만 지르면서 전황은 점점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 초기에 조심스럽게 예측했듯 대부분의 전쟁은 결국 파국 직전까지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애초 합리적 타협이 불가능해서 시작된 것이 전쟁이기 때문이다. 피와 죽음, 원한이 쌓여만 가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타협을 이끌어내기란 더욱 어렵다. 지금의 미국이 그런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미국의 강력한 개입 없이 휴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휴전이 이뤄진다 해도, 푸틴의 권력이 유지되는 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과 군비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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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만만하지 않았다

 

金 무응답으로 ‘판문점 번개 2탄’ 불발
6년 전 ‘트럼프 쇼 들러리’ 배신감 작용
향후 ‘기괴한 브로맨스’는 이어질 텐데
‘파격외교’와 ‘불확실성’의 간극 좁혀야

 

“저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그 이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각하가 해준 게 무엇입니까. 어떤 조치가 완화됐다든가 군사훈련이 중단됐습니까. 각하가 우리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저를 주기만 하고 아무런 대가도 못 받는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2019년 8월 5일자)에서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발신 시점은 6·30 ‘판문점 번개’ 회동 한 달쯤 뒤였다. 2·28 ‘하노이 노딜’의 충격에 빠져 있던 김정은은 트럼프의 트위터 깜짝 제안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트럼프에게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현직 미국 대통령’이란 새로운 기록도 추가해 줬다. 하지만 북-미 간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김정은은 편지에서 북-미가 실무회담을 하기로 했음에도 한미 연합훈련이 그대로 실시되는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트럼프의 쇼에 들러리만 서고 말았다는 배신감을 토로한 이 장문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둘 사이의 ‘러브레터’는 끊겼다. 이후 스톡홀름에서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아무런 진전 없이 결렬됐고, 그해 말 김정은은 자력갱생과 군사력 강화를 내건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지난주 트럼프의 거듭된 러브콜에도 김정은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북-미 정상 간 번개 만남 2탄은 무산됐다. 트럼프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지난 6년의 시간차를 너무 가볍게 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김정은으로선 당장 6년 전 한때의 반짝 기대감과 깊어진 실망, 그리고 오래 이어진 쓰라림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더욱이 지금의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매달리던 6년 전의 그가 아니다. 그간 차곡차곡 핵·미사일 무기고를 늘려온 데다 러시아 파병이란 승부수를 통해 반(反)서방 진영의 일원으로 중·러 정상과 나란히 설 만큼 위상을 끌어올린 터다.

사실 트럼프가 이번에도 번개 제안을 해올 것임은 북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미리부터 불응 방침을 세우고 대비한 듯하다. 트럼프의 순방 기간에 북-미 관계를 책임진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로 출장 보낸 것도, 전략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라는 저강도 도발을 한 것도 미리 준비한 대응 수순으로 보인다.

다만 세계 최강 권력자가 그렇게 매달리다시피 하는데도 김정은이라고 마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막후에선 비공식 채널을 통해 완곡한 거절의 뜻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김정은은 이번 무반응으로 대미 대화 조건, 즉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상태에서 적대시 정책 철회를 논의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렇게 번개는 불발로 끝났지만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러 “다시 오겠다”고 거듭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에선 사뭇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남북이)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라는 것을 알지만,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걸 위해 김정은과 또 모두와 함께 매우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고, 조금 인내심을 가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사실 트럼프에게도 6년 전 기억의 한편엔 불편함이 남아 있다. 하노이 결렬 직후부터 트럼프는 자신이 너무 거칠게 몰아붙인 게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는 재무부의 대북 제재를 취소했다가 번복하는가 하면 연합훈련 중단을 놓고 참모들과 충돌하기도 했던 트럼프의 갈팡질팡 행적이 적나라하게 소개돼 있다.

물론 지금의 트럼프도 그때와는 다르다. 주변에 그를 막아서는 참모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 번개가 성사됐다면 6년 전처럼 소득 없는 깜짝쇼로만 끝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손쉽게 옛날의 플레이북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저 손짓하면 김정은이 냉큼 달려올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이번 ‘밀당’에선 김정은이 한 수 위였다.

번개 2탄 불발이 거듭 확인시켜 준 것은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유별난 집착이다. 김정은이 적당한 거리를 두려 할수록 트럼프의 열망은 더 커진다는 워싱턴포스트의 관찰은 적확해 보인다. 지금 한반도엔 트럼프의 파격이야말로 80년 냉전 구도를 깰 유일한 기회라는 기대와 함께 그 변덕에 좌우되는 불확실성의 위험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걱정이 크게 엇갈린다. 그 간극을 좁히는 일이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우리에게 맡겨진 시급한 책무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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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현대주유소 철거 작전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겠다던 북한의 장담과는 달리 연락사무소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동아일보DB

 

지난해 봄, 금강산 온정리에 투입된 북한군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고난도 미션에 직면했다. 미션명은 ‘현대오일뱅크 금강산 주유소 철거’.

북한은 주유소를 철거해 본 경험이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도 지하에 연료 탱크를 묻는 형태의 주유소가 전국에 200개 정도 생겨났다. 가뜩이나 모자란 주유소인데 짓자마자 철거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금강산 주유소는 부실한 자재와 저급한 기술로 지은 것이 아니라, 현대가 1998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세운 것이다. 북한에 건설되는 첫 한국 주유소라는 상징성 때문에 허술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아는 유일한 철거 방법은 폭파시킨 뒤 건물 잔해를 내다 버리는 것이다. 북한은 쌓아 올리는 건 많이 해도 파내는 건 거의 하지 않았다. 뭐든 부족하니 기존 건물은 그대로 놔 두고 빈 땅에 새로 건설하는 데만 익숙하다. 그나마 평양처럼 부지가 부족한 곳에선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도 한다. 다만 그들이 철거해 온 건물은 대개 1950년대에 ‘평양 속도’라고 포장하며 날림으로 지은 것이 대부분이라 기둥 서너 군데를 폭파하면 풀썩풀썩 무너진다.

그런 북한이 금강산에서 맞닥뜨린 것은 차원이 다른 철근 콘크리트 구조다. 그것도 그냥 무너뜨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와 내부 탱크를 뜯어내는 작업이었다. 어쨌든 김정은의 명령이 하달됐으니 군인들은 유일하게 아는 발파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콘크리트가 어찌나 단단한지 폭약 넣을 구멍 뚫기도 쉽지 않았고, 폭파해도 뜯겨 나오는 양이 보잘것없었다. 껍질을 벗기듯 뜯어내고 또 뜯어내는 작업은 반년 넘게 진행됐다. 온정리 사람들은 지난해 여름 발파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한국은 웬만한 철거업체에 몇천만 원만 주면 일주일 안에 주유소 하나를 금방 뜯어내겠지만 북한은 경험도, 장비도 없다.

더욱이 그들이 금강산에서 뜯어내야 할 것은 주유소뿐만이 아니었다.

2019년 10월 23일 금강산을 방문한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현대적인 봉사 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은 한국이 지은 관광시설들을 ‘건설장 가설 건물을 방불케 하는 집들’ ‘피해 지역 가설막이나 격리병동’ 등에 비유하며 폄훼했다.

김정은 특유의 허세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우리 설계 역량도 튼튼하고, 강력한 건설 역량이 있으며 당의 구상과 결심이라면 그 어떤 난관과 시련도 뚫고 무조건 실현하는 우리 군대와 노동계급이 있기에 금강산에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를 꾸리는 사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는커녕 가설막이나 격리 병동 같다던 건물 몇 동조차 아직까지도 완전히 들어내지 못했다. 한국이라면 영세 업체라도 쉽게 끝낼 일을 ‘최고존엄’ 김정은의 지시에도 6년째 끝내지 못하고 쩔쩔맨다.

그동안 건물 하나하나 해체될 때마다 동원된 많은 군인과 금강산 주민들 입을 통해 북한에는 차원이 다른 한국 건설에 대한 신화들이 생겨났다. 건물을 보기만 했던 것과 해체하면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한국 건설에 대한 신화는 비단 금강산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6월 13일, 김여정은 한국을 향해 “머지않아 쓸모없는 (개성공단)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나흘 뒤 북한은 진짜로 이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폭약을 얼마나 썼던지 70m 떨어진 15층짜리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 유리창이 다 박살 났다. 하지만 정작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겠다던 건물은 높이 솟구쳤던 폭파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꿋꿋이 서 있었다.

전 세계가 보라고 진행된 ‘폭파 쇼’에 동원됐던 북한 최고 공병들은 경악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건물은 어떻게 지었기에 이 정도 위력의 폭발을 견딘단 말인가.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라는 지시를 집행하지 못한 우리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연락사무소 건물이 수작업을 통해 완전히 사라진 것은 4년 뒤인 지난해 3월이다. 종합지원센터는 지금도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금강산 주유소와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었으되 죽지 않았으니, 북한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린다면 ‘죽어서 더 빛나는 전설의 이름’이 됐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동아일보(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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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신원 파악 위해 처음 발급됐죠

 

얼마 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모바일 주민등록증 서비스가 잠시 멈췄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결제나 교통카드, 신분증 기능까지 쓸 수 있어서 지갑을 따로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도 많지요. 그런데 이번에 모바일 신분증이 중단되면서 불편을 겪은 사람이 적지 않았죠. 오늘은 이 주민등록증이 언제부터 생겼고, 그리고 왜 만들게 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제작한 주민등록증 샘플.

 

조선시대 때만 해도 호패를 사용했어요. 나무나 상아 조각에 이름과 나이, 출신지 같은 정보를 새겨 넣은 신분증이었죠. 신분에 따라 적는 내용이 달랐다고 합니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도민증’이라는 신분증이 생겼어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안이 혼란스러웠고, 피란민이나 월남한 사람이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답니다. 이런 상황을 악용해 간첩이나 범죄자들이 숨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사람들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도민증을 발급했어요.

 

도민증에는 이름, 출생지, 가족 관계, 직업 같은 정보가 들어갔어요.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 그 도민증을 반납하고, 새로 이사한 지역에서 다시 발급받아야 했죠.

 

그러다 전 국민이 통일된 신분증을 쓰는 ‘주민등록증’ 제도로 바뀐 건 바로 ‘김신조 사건’이 계기였어요. 이 사건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 공작원들이 서울로 몰래 침투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입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보다 앞서 1965년에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려 했어요. 하지만 당시 국민들은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려는 제도”라며 반대했기 때문에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국민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도민증을 폐지하고 주민등록증을 도입했죠. 향토예비군 제도와 고등학교의 ‘교련 과목’도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답니다.

 

주민등록증은 1968년 11월 21일부터 발급됐어요. 1호와 2호 주민등록증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받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주민등록증은 종이로 제작돼 위조나 훼손이 쉽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이 문제를 막기 위해 비닐로 코팅을 했지만, 주소가 바뀔 때마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새 주소를 적으려면 코팅을 벗겨야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주민등록증이 자주 손상되곤 했답니다. 이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부터는 플라스틱 카드 형태의 주민등록증이 도입되었어요. 카드 안에는 홀로그램이 들어 있어 위조나 변조를 막을 수 있게 됐지요.

 

지금의 주민등록번호는 앞자리 여섯 자리가 생년월일을, 뒷자리 일곱 자리가 성별과 등록 지역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지금과 달랐어요. 과거에는 앞자리 숫자가 ‘등록 지역’을 나타내는 번호였답니다. 이 제도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지금처럼 생년월일과 성별이 포함된 형태로 바뀌었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조선일보(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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