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도 退任 대통령 安全 지켜주지 못해]
[대장동 사건 '수뇌부'는 누구?]
헌법도 退任 대통령 安全 지켜주지 못해
[강천석 칼럼]
'直前 대통령'을 '국정자문회의 의장'으로 모시라고 만든 헌법 90조의 실패
반대하는 국민과 정당 인정하는 타협 정치만이 대통령 退路 열어줘

지난 9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대화하며 웃고 있다./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란히 앉아 사이 좋게 담소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헌법은 두 사람더러 그러라고 한다. 헌법 90조는 ‘국정 중요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국가 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고 그 의장은 직전(直前) 대통령이 맡는다’고 돼 있다. 헌법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박근혜 자문회의 의장, 이명박 대통령·노무현 자문회의 의장이란 정치 커플이 탄생했을 것이다.
87년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헌법 90조가 실제 운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 90조는 87년 헌법의 사족(蛇足)이다. 그러나 단순한 사족은 아니다. 현행 헌법이 얼마나 어렵게 탄생했는가를 알려주는 화석(化石) 증거이고, 대통령 재임 중에 퇴임(退任) 후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시도는 모두가 헛되고 부질없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교훈이다.
현행 헌법은 야당 투쟁과 6·10 항쟁의 산물이다. 저항에 부딪힌 절대 권력 전두환 대통령은 후계자 노태우를 내세워 직선제 헌법 개정을 받아들이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헌법 개정 작업은 난산(難産)이었다. 군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현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물러날 길을 터주는 게 가장 어려웠다. 잘못하면 민주화의 흐름이 역류(逆流)할 위험도 있었다. 야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고 군사 정권과 타협했다. 노태우는 후계자도 믿지 못하는 전임자를 안심시켜야 했다.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조항은 그렇게 헌법에 들어갔다. 1948년 제헌(制憲) 헌법과 그 이후 헌법 개정은 정치 세력 간 정치 타협의 산물이다. 유신(維新) 헌법만이 예외다.
다들 헌법 개정안을 보고 ‘상왕(上王) 통치 헌법’이라고들 했다. 현 대통령 위에 전임 대통령 있다는 야유다. 전두환은 헌법의 신변 보장 장치를 진짜 믿은 듯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여 일해(日海)재단이란 퇴임 후 활동 공간도 마련했다. 꿈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후임자 쪽에서 불법 재산 축적 비리(非理) 내용을 은밀하게 시중에 흘리자 전두환은 두 손을 들었다. 결국 강원도 인제 궁벽한 시골 절 부엌 딸린 단칸방에서 부인과 1년을 보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두 개의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5개 형사 재판 피고인 신분을 정리하지 않고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시한(時限)폭탄을 품에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하나는 불발탄(不發彈)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하나는 4년 6개월 후 임기가 끝나면 폭발하도록 정확한 시간이 입력(入力)돼 있다.
공직자선거법 위반 사건은 대법원이 유죄(有罪) 취지로 고등법원에 되돌려보냈다. 고등법원은 대법원 판결을 따르게 돼 있어 재판이 재개(再開)되면 유죄가 확정된다. 대장동 사건 주범과 북한 불법 송금 사건 주범은 각각 7년 8개월·8년의 중형(重刑)을 선고받았다. 대통령도 같은 사건으로 재판 중이었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를 들어 모든 재판을 중단했다.
‘형사상 소추’가 ‘수사와 기소’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도 포함되는지는 의견이 갈린다. 헌법에 이 조항을 둔 이유가 ‘대통령이란 특수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국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재판 역시 중단된다는 해석이 조금 더 유력하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면 모든 재판이 다시 진행된다는 데는 이견(異見)이 없다.
대법원장을 쫓아내도,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려도, 재판 4심제(審制)를 도입해도, 형법 조항에서 ‘배임죄’를 빼버려도 그날은 온다. 정청래 대표·추미애 법사위원장·최민희 과방위원장 등이 ‘대통령 재판 중지법’을 만들겠다고 소동을 피워도 그날은 온다. 그들 행동은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만들 뿐이다. 내려오지 못하면 그 끝은 생각하기도 무섭다. 헌법 속에 파놓은 방공호도 퇴임 대통령 안전을 보장 못 했다. 법률 몇 개 뜯어고친다고 대통령이 안전해지겠는가.
길은 하나뿐이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국민들을 인정하고 타협의 정치로 나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의 작은 일부다.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가 야당일 때 어땠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의 불안정한 법적 신분은 국정 운영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퇴임 후가 불안하면 국민의 환심(歡心)을 사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삼으려는 포퓰리즘으로 흐르게 된다. 벌써 그럴 조짐이 보인다. 세계가 바뀌는 이 전환기에 한국만 실기(失機)하게 된다. 퇴임 대통령의 안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민주당이 먼저 변해야 한다.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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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사건 '수뇌부'는 누구?

대장동 3인방. 왼쪽부터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뉴시스 ·뉴스1
김만배씨 등 대장동 업자들에 대한 1심 판결문은 그들의 배임 행위를 인정하면서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유동규씨의 금품 수수를 잘 몰랐으며 ‘428억원 분배 약정’ 또한 직접 이 대통령과 연관 짓기 어렵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정치 검찰의 조작 기소가 드러났다” “이 대통령과 무관함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며 공소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검찰의 기소를 거둬들여 사건 자체를 없애라는 것으로 ‘재판 중지법’보다 훨씬 강력한 요구다.
719쪽 판결문에 ‘조작 기소’ 판단이 담겨 있을까. 재판부는 10년이 넘는 성남시와 대장동 민간 개발 업자들의 유착 역사를 짚었다. 업자들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재선을 도왔고, 새누리당 소속 의원을 시의회 의장으로 만들면서 공사(公社) 설립 조례까지 통과시켰다.
업자들은 환지(換地) 방식의 민간 개발을 선호했지만 결정권은 성남시에 있었다. 성남시가 시장 공약인 ‘1공단 공원화’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수용 방식을 택하자 업자들은 ‘확실한 보장’이 필요해졌다. 공모 절차에서 반드시 사업자에 선정돼야 했다. 2014년 6월 단란주점에서 유동규씨 등과 ‘의형제 모임’을 가졌다.
이후 공모 절차에서는 건설사를 배제하는 등 ‘맞춤형’ 공모 지침이 만들어졌다. 재판부는 “경쟁이 필연적인 수용 방식에서 사실상 사업자로 내정되는 특혜를 받았다”고 명시했다. 그 대가로 유동규씨 측이 428억원을 약속받았다.
대장동 사업의 예상 개발 이익은 4000억~5000억원이다. 업자들의 대화 녹취록에도 “4000억짜리 도둑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출자 지분율 50.1%의 공사가 배분받은 이익은 고정 이익 1830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출자 지분율 7%에 불과한 업자들이 모두 가져갔다. 재판부는 “주민 토지가 헐값에 수용돼 업자들이 비용을 절약했다”며 “민간 업자들이 부동산 상승에 따른 이익을 왜 다 가져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의 백미는 재판부가 유씨 양형 이유에서 언급한 ‘수뇌부’라는 단어에 있다.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들 사이에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조율하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했다. 유씨 책임이 무겁지만 수뇌부만큼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재판부는 대장동 사건을 ‘장기간에 걸쳐 금품 수수 등을 매개로 형성한 유착 관계에 따라 서로 결탁하여 벌인 일련의 부패 범죄’라고 했다. 민간업자의 폭리를 방치한 행위가 곧 배임이고, 연관된 사람들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번 사건 피고인이 아닌 이 대통령에 대해선 연관성 판단을 유보했을 뿐이다.
집권 여당이라면 국민에게 박탈감을 주는 부동산 개발 비리를 점검하고 막는 게 우선이다. 판결문 어디에도 없는 ‘조작 기소’를 주장하며 공소 취소를 요구하면, ‘수뇌부’가 누구인지 따져볼 빌미만 줄 것이다.
-양은경 기자, 조선일보(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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