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핵 내놓을 리 없다, 우리도 '잠재적 핵 능력' 갖춰야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자신의 책 ‘좋은 담장 좋은 이웃’에 대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욕을 먹을 각오로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며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춘 후, 유사시 핵무장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경식 기자
좋은 담장 좋은 이웃
송민순 지음|생각의 창|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그는 2016년 출간한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노무현 청와대가 “북한에 물어본 후, 유엔의 대북 인권 결의안에 기권했다”고 밝혀 검찰 조사까지 받는 고초를 치렀다.
그랬던 그가 9년 만에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며, 우리도 이른바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춰 유사시 핵보유국으로 가자고 주장하는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을 펴냈다. 책 제목은 로버트 프로스트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한 ‘담장 고치기’라는 시(詩) 중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에서 착안했다. 푸른 초원을 가로지르는 담장에 하얀 문이 있는 평화로운 책 표지와는 달리 격론을 부르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5년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가한 북핵 6자 회담의 우리 측 수석대표로 북한 비핵화를 골자로 한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2007년에는 외교부 장관으로 북핵 프로그램 신고 등을 담은 2·13 합의 채택을 지휘했다. 북한 비핵화의 상징 같은 인물인 그가 이제는 북핵 해체가 불가능하다며 유사시 핵 무장을 주장한 데 대해 보수, 진보 진영에서 정반대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보수는 그가 북한 비핵화를 시대착오적 인물의 대명사인 ‘립 밴 윙클’에 빗대며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데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해법으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반긴다. 북핵 해체를 협상의 입구가 아닌 출구에 위치시켜온 진보는 ‘북한 비핵화 불가능 선언’을 환영한다. 그렇지만 그 해법으로 핵무장을 제시한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지난 4일 만난 송 전 장관은 파장을 예상하는 듯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욕을 먹을 각오로 책을 썼다”며 “2016년 ‘빙하는 움직인다’가 회고록이라면, 이번 책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안보와 통일 12개의 질문’이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했다.
그는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여섯 번의 핵실험을 거쳐 ‘핵무장 국가’가 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단언했다. 9·19 공동성명 ‘설계자’가 어떻게 입장을 바꾸느냐고 지적하자, 경제학자 케인스의 “사실관계가 바뀌면 내 마음도 바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 책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보고, 평화 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은 차가운 현실에 눈감는 것”이라고 했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공당하는 것을 목격한 김정은이 핵을 내놓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미국에만 기대지 말고, 자립형 동맹으로 가는 방안을 제시하며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의 핵우산’으로 맞춰진 핵 균형을 점진적으로 남북 균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레이건은 소련과의 군비 감축 협상 때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고 했다”며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하라, 그러나 만약의 경우에도 대비하라”가 우리의 전략이 돼야 한다고 했다. 우라늄 농축, 재처리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사이의 ‘방화벽’이 얇다는 속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주장하는 ‘남북 두 국가론’이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영향 받은 것처럼 비치는 데 대해선 적극 반박했다. “김정은에 1년 앞서 2022년 12월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22주년 기념식에서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며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통일도 지금은 현실적이지 않기에 소극적 평화를 관리하며 북한에 붕괴의 씨앗이 자라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빙하는 움직인다’를 펴냈을 때 사진을 찍는 듯한 현장 묘사와 유려한 글솜씨로 화제가 됐다. 이번에도 무거운 주제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한국은 힘들어하는 코끼리(미국)와 체질상 한계가 있는 용(중국) 사이에 있다”고 비유하거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라(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명언을 인용해 가급적 부드럽게 책장이 넘어가도록 했다. 송 전 장관은 “한국은 비싸면서도 진정한 평화에는 가깝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데, 차가운 평화를 거쳐 따뜻한 평화로 가는 경로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조선일보(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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