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논란? 영국이 답했다]
[도쿄역과 종묘는 다르다… 종묘만의 방식 고민해야]
종묘 앞 논란? 영국이 답했다

영국 런던의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 지역에 가장 상징적인 두 건물이 붙어 있다. 사진 오른쪽 영국 의회인 빅벤(시계탑)이 보이고 바로 뒤로 영국 왕의 대관식 등 주요 행사가 치러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 그 뒤로도 현대식 고층 건물이 빽빽하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인의 심장’이라 불린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등 굵직한 왕실 행사가 치러졌고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같은 인물들이 묻혀 있다. 하루 세 번 열리는 예배에는 영국성공회 교인과 관광객이 몰려 입장하려면 긴 줄을 서야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연평균 약 140만명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완공 600년쯤 뒤인 1859년, 약 200m 떨어진 곳에 당시로는 초고층 건물이 지어진다. 엘리자베스 타워, 흔히 ‘빅벤’이라 불리는 시계탑. 이 금빛 탑의 키는 96.3m로, 19세기 중반 3~5층이던 당시 건물 평균 높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수직적이고 뾰족한 양식의 건물은 현재까지도 런던 어디서나 눈에 띈다. 영국인들은 그러나 빅벤 건설 당시 이를 반대하기는커녕 “세계 최강 제국의 지위를 상징(symbolise Britain’s status as the world’s leading imperial power)한다고 여겼다’고 기록돼 있다.
사원에서 몇 분 걸으면 119m 높이의 오피스 건물 밀뱅크 타워가 보인다. 1960년대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UN과 세계은행 사무실 등으로도 쓰였다. 템스강 바로 건너엔 대형 종합병원과 거대한 런던아이까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고전적인 건물군과는 확연히 다르면서도 조화로운, 세계적 대도시 런던의 특색이다.
그런데 서울 도심은 어지럽다. 부동산 가격은 세계적인데, 한편에는 다 쓰러져 가는 판자촌이 있다. 서울시가 종로 일대를 “고밀(高密) 개발하겠다”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값을 못 하는 땅을 제대로 쓰자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걸 다수는 알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1395년 지어진 ‘종묘’다. 담장 기준 약 180m 떨어진 곳에 건물을 지으면 종묘의 한적한 경관을 망친다고 한다.
한국은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 세계 스타디움에서 K팝 콘서트가 열리고, K드라마와 영화는 해외에서 더 인기다. 연간 외국인 1103만명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600년 전 조선만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서울일 것이다. 종묘의 여유와 우리 역사는 소중하다. 하지만 이렇게 서울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이 과연 미래를 위한 일일까. 종묘 근처에 건물이 들어서면 그 유구한 가치는 훼손되고, 수천 년 이어온 한국인의 정신은 무너지는 걸까.
영국은 150년 전 이미 답을 제시했다. 런던뿐만 아니라 파리, 바르셀로나 등 글로벌 대도시들은 신구 건축물이 어우러져 더 독특하고 강력한 매력을 뿜어낸다.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선거를 위한 근시안적 반대가 아니라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국가적 비전’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정녕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꿈일까. 우리는 어떤 서울을 만들고 싶은가.
-김수경 기자, 조선일보(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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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과 종묘는 다르다… 종묘만의 방식 고민해야
일본 도쿄역 마루노우치 방면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고풍스러운 흰색 외벽의 6층 건물이 보인다. 옛 일본 중앙우편국 건물을 복합쇼핑시설로 리모델링한 ‘깃테 마루노우치’다. 그 위로는 유리벽 마천루가 솟아 있지만, 깃테 마루노우치만큼은 옛 건물을 그대로 살린 도쿄역과 어우러져 요즘 말로 ‘뉴트로’ 분위기를 풍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 인접한 세운4구역 개발을 두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고층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도쿄역 일대 개발이다. 중요 문화재인 도쿄역을 보존하는 대신 그 용적률을 주변 건물이 나눠 가지고, 문화재 바로 코앞에도 초고층 빌딩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쿄역이 그렇게 개발했으니 세운4구역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종묘와 세운지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도쿄역 개발 사례를 제 입맛대로 끌어오는 ‘아전인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주변 환경만 봐도 그렇다. 도쿄역에서 마루노우치 광장을 지나 두 블록만 걸으면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皇居)가 나온다. 전체 너비는 230만 ㎡, 외곽 정원만 100만 ㎡가 훌쩍 넘는 거대한 녹지다. 4구역에서 시작해 남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빌딩숲을 이루게 될 세운지구와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와 달리 도쿄역은 늘 사람들로 붐비는 근대 건축물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개발의 문법도 다르다. 깃테 마루노우치처럼 도쿄역 앞 건물들은 대부분 6, 7층 높이까지 옛 건물 외관을 보존하고 그 위에 빌딩을 올렸다. 덕분에 100년 전 모습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를 관광객과 회사원들이 뒤섞여 오가는 특유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고층 개발을 하며 나온 개발이익 일부가 도쿄역 복원에 사용되기도 했다. 4구역 개발이익을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녹지축을 조성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지만, 종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도쿄에는 도쿄역 일대처럼 초고층 개발을 한 지역도 있지만 시모키타자와나 다이칸야마처럼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저층 개발을 한 지역도 있다. 모두 그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기 위한 최적의 개발 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익선동과 서순라길의 오밀조밀한 건물들,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로 이어지는 경관은 이 일대의 고유한 콘텐츠다. 골목골목을 채운 관광객들이 이미 그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세운지구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런 고유한 장점을 스스로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세운지구 개발이 수십 년째 정체되면서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어 더 이상 개발을 미룰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의 새 계획이 건물 수를 줄여 녹지를 더 많이 확보하는 방법인 것도 맞다. 사람들이 늘 사용하고 드나드는,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문화재만이 생명력을 갖고 그 가치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모두 종묘와 세운지구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해야 한다. 불필요한 갈등으로는 종묘의 보존 가치도, 세운지구의 개발 가치도 모두 잃게 될 뿐이다.
-이새샘 산업2부 차장, 동아일보(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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