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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분노에 찬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게 하려면] ....

뚝섬 2025. 11. 20. 11:00

[청년들이 분노에 찬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게 하려면]

[이 땅의 청년들 앞에 길이 안 보인다]

 

 

 

청년들이 분노에 찬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게 하려면

 

내가 발송하는 외신 뉴스레터에서 최근 뜻밖에 많은 ‘좋아요’를 받은 기사가 있다. 젠슨 황의 깐부치킨 회동 이야기도 제친 그것은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 피터 틸이 온라인 언론 ‘더 프리 프레스’와 나눈 짧은 대담이었다. 이 기사는 내용도 어려운 데다 한국을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기사보다 공감 수가 10배 많았다. 제목은 ‘자본주의는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이다.

 

틸은 왜 현재 미국 청년 세대가 사회주의에 끌리는지 설명했다. 부모 세대와의 심리적 간극도 짚었다. “젊은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가 했던 대로만 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극적으로 변했고, 이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예전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세상이 자기 자녀 세대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합니다.” 요약하면 이렇다. 중산층 청년들은 노력해도 집을 못 사는 세상이 되었는데, 기성세대는 그런 현실 변화에 둔감하다. 그럼 청년들은 ‘에라, 이럴 바에야...’ 라며 조란 맘다니 같은 사회주의자에게 표를 준다.

 

이런 세대 갈등은 한국도 그렇다. 청년 세대는 머릿수에서도,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에게 밀린다. 복지 지출은 65세 이상에 집중되는 반면 사회복지 부담은 청년 세대에 몰린다. 청년 세대는 미래도 더 어둡게 느낀다. 2024년 기준, 35세 미혼 비율은 남성 80%, 여성 61%다. 여기에 출산율은 0.75이니 이 세대 사람들 과반수가 후손 없이 죽을 판이다. 지금의 20·30대는 인류 역사에서 독거 노인으로 삶을 마감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인지도 모른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20세기의 상식으로는 청년의 노년 우대가 당연했지만 21세기는 다르다. 이제는 머릿수 적은 청년층이 사회적 약자다. 적어도 청년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앞서간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 의료비와 간병비에서 환자 개인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보험 제도 개편을 준비한다고 한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일본 고령층 가구의 금융 자산이 청년층의 3~4배에 달한다. 하지만 그동안 75세 이상 고령자 의료보험 지급액의 약 40%를 청장년 세대가 보조해왔다. 이런 구조는 젊은 층에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보험료 및 의료비 개인 부담금 산정 시 고령자 금융 소득을 적극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돈도 없고 가정을 꾸리기에도 벅찬 밀레니얼 세대에게 부머 세대의 의료·간병비 부담까지 넘기지는 말자는 취지다.

 

어느 나라든 청장년층이 행복해야 인구도 늘고 경제도 번성한다. 피터 틸이 우려하듯 중산층 청년들이 모두 분노에 찬 독신주의자·사회주의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면 기성세대의 양보가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모든 세대에 골고루 기회를 주길 바란다.

 

-조진서 외신 뉴스레터 '오호츠크 리포트' 에디터, 조선일보(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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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청년들 앞에 길이 안 보인다

 

'월 천 보장'에 캄보디아로 떠난 청년들
누군 한 줌 재로, 누군 피의자로 돌아와
한국은 실업, 비정규직, 주거 비용 등 척박

청년들 앞길 열어줄 의무와 책임 버리고
자식에게만 부동산·축의금 준 권력자들
세금 값 못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월 천 보장’이라는 꼬임에 끌려 캄보디아로 떠났다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 대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에게 이 땅은 도저히 그 정도 소출을 기대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음이 분명하다. 세상 모든 난민의 공통점은 가난이다. 가족도 국가도 그 누구도 열어주지 못한 길을 찾아 청년은 떠났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문제가 터지자 정부는 뒤늦게 전세기를 끌고 캄보디아로 날아갔다. 청년들을 데리러 간다길래 억울한 청년과 가족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는 공항 장면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역대 최대 범죄자 송환이라는 기록과 함께 입국한 이들은 기내에서 미란다 원칙을 듣고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수갑을 찬 채 호송차 23대에 나눠 타고 관할 구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외교부 추산 캄보디아 내 실종 신고 건수는 8월 말 현재 550건, 이 중 80여 명의 안전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가 단 한 명이라도 찾아내 구출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왜 캄보디아로 갔을까. 구조적인 이유를 따지자면 한이 없다. 국내 정치 혼란과 공백에 따른 소극 행정, 국제화된 스캠 조직의 침투, 좁아진 청년 취업 시장, 쉬운 돈벌이 유혹, 희박해져 가는 범죄 의식, 지방 소멸, 청년 가난.... 불운하게 유명을 달리한 대학생 사건으로 당분간 캄보디아를 찾는 청년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나머지 사정이 나아진 건 결코 아니다. 가난도, 미래의 막막함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의 기회도 모두 그대로다.

 

지금 사회 문턱에 선 젊은이들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고, 평생을 일할 직장도 구하기 어렵다고 각종 지표는 웅변한다. 올해 청년 실업률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4분기 연속 고용 악화에 따른 결과다. 20대를 채용하는 제조업 등 주력 업종의 채용 문이 축소되고, 정부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도 갈수록 줄고 있다. 단기 알바를 전전하는 젊은이들의 체감 실업률은 3배에 달한다고 한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20대 취업자가 3년째 계속 감소하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기만 한다. 청년 신용 불량자도 늘어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소득 이동 통계에 따르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답한 사람은 17.3%에 그쳤다.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청년들은 불행하다. 비정규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중산층에 진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 되면 “돈을 모아서 집값이 내리면 그때 사라”고 했다가 평지풍파를 일으켜 물러난 국토부 고위 관리의 말은 애초부터 망발이다. 지금의 구조로는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지출해야 한다. 그동안 주거 안정과 자산 증식 역할을 해온 전세의 씨를 말리자 월세 비율이 높아져 청년들 주거 비용만 턱없이 올라갔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갚을 능력이 있어도 아예 돈을 빌리기 어렵게 해놓았다. 청년은 물론, 중산층 주거 상승 사다리조차 없애버린 것이다. 서울의 현금 부자나 지방 부호의 자제가 아니면 주택을 거래하는 일이 불가능해질 판이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를 웅변하는 지표는 따로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축적한 후, 그걸 자식들에게 떼어주다 하필 높은 자리에 가는 바람에 그게 드러난 사람들이다. 워낙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싫지만, 일단 생각나는 사람들은 있다.

 

우선 초등~중등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재개발 지역 상가를 각각 증여한 민주연구원장이 떠오른다. 또 강남에 주택 중 하나를 처분한다고 했다가 자식에게 증여한다고 했다가 다시 시세에 맞춰 높은 가격에 시장에 내놨다 비난이 일자 다시 가격을 낮춰 매매한 후, 아들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걸 대단한 희생처럼 떠벌린 금융감독원장도 있다. 딸의 결혼식을 국회에서 그것도 국정감사 기간에 치러 피감 기관들의 화환 세례를 받고 카드 결제로 축의금을 받아 파란을 일으킨 여당 국회의원은 독보적이다. 여기에 자신은 갭 투자로 이득을 보고서도 그걸 못하게 막는 정책을 줄줄이 내놓아 국민의 주거 사다리를 끊어 놓은 국토부 정책통들과, 그 사다리 위인 토지거래허가 지역에 집을 보유한 7할의 지금 정부 참모와 장차관급이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엔 그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자식들이 결코 성실히 일해서는 돈을 모으거나 집을 사는 것이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니 아비가 나서서 번 돈을 떼어 주거나, 어미가 힘이 있을 때 어떤 계기를 마련해 한몫 당겨 주지 않으면 결코 젊은이가 기반을 다질 수 없는 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지저분하지만 애틋하고, 불쾌하지만 인지상정인 부모의 도리를 다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그리고 그들이 가증스러운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이 땅의 고위층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살길과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피 같은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에게 부동산을 주기 전에 이 땅의 아들들이 부동산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을 다져주고, 딸 축의금 봉투를 세기 이전에 이 땅의 딸들이 행복한 결혼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도록 길을 닦아 달라는 것이 국민의 주문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 값도 못하는 천한 권력자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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