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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체제 위에 민족이 있다] [평양 외교관들이 침묵 속에.. ]

뚝섬 2026. 1. 6. 07:35

[국가와 체제 위에 민족이 있다] 

[평양 외교관들이 침묵 속에 묻어둔 생각]

 

 

 

국가와 체제 위에 민족이 있다 

 

4일 초음속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찾은 김정은. 그는 이날 “전략적 공격 수단들의 상시 동원성과 그 치명성을 적수들에게 부단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식시키라”고 말했다. 노동신문 뉴스1


새해 벽두부터 교황 레오 14세가 ‘성심당’ 창립 70주년 축하 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됐다. 성심당은 1950년 12월 흥남에서 미군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로 피란을 온 임길순 씨가 창립했다. 그는 1956년 먹고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다가 열차가 고장 나자, 대전에 내려 성당에서 내준 밀가루 두 포대를 밑천 삼아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신조로 영업해 왔다. 그런 성심당이 예외로 생각하는 곳이 있다. 2019년 임영진 성심당 대표는 흥남에 뿌리를 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통일이 된다면 평양 혹은 함흥에 분점을 낼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76년 전 흥남의 기적은 2세들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미래의 역사를 꿈꾸게 한다.

 

10만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 철수 작전은 기적만 만든 것이 아니다. 기자의 외할아버지도 1950년 흥남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왔다. 남쪽에 와서 새 가족을 이뤄 2녀 1남을 낳았지만 누구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강릉에서 살다 작고했다. 외할아버지의 월남은 남은 가족들에겐 재앙이었다. 탄압과 박해를 피해 계속 도망다니다가 북새통 기차역에서 5세밖에 안 된 어머니는 가족과 헤어졌고, 평생 혈육을 그리며 고아로 살아야 했다. 출신 성분의 굴레는 외손자인 기자에게까지 씌워졌다. 탈북해 서울에 온 기자의 뿌리도 1950년의 흥남과 이어져 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기자처럼 눈물을 줄줄 흘린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는 민족 분단의 아픔이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갈라진 민족은 피 흘리는 깊은 아픔이다. 합쳐져야만 아무는 상처다. 촌수도 없다는 부부는 갈라지면 남이지만, 피를 나눈 부모·자식의 인연은 버린다고 버려지지 않는다. 민족이란 그런 혈연이다.

둘로 갈라진 민족은 언젠가는 합쳐진다. 근래 독일이 그랬고, 예멘이 그랬다. 오늘날 한 민족이 두 국가로 나뉜 사례는 남북한과 중국-대만 정도이다. 대만은 청나라의 지배를 받은 기간이 200여 년에 불과하고, 1895년 이래 본토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그런 대만을, 중국은 민족이란 명분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하겠다고 칼을 간다.

 

하지만 누구보다 다시 합쳐져야 하는 한반도에선 우주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 벌어진다. 김정은은 오로지 패밀리의 세습 통치를 위해서 2년 전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걸고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민족의 허리를 영영 끊으려 획책하고 있다. 시작은 두 국가론이지만, 김씨 일가의 영속을 위해 앞으론 민족 부정의 논리도 개발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민족을 통일하려 한 지도자는 수없이 많이 봤어도, 멀쩡한 민족을 단절하겠다고 한 지도자는 거의 찾기 힘들다.

그런 김정은의 논리에 인구도 2배이고 국력도 훨씬 더 큰, 그래서 주도적이어야 할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통일부 수장인 정동영 장관은 새로운 논리인 양 ‘평화적 두 국가론’을 내걸고 한국 사회의 통일 담론부터 분열시킨다. 이는 김정은의 프레임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일이다. 적대적 두 국가로 살겠다는 김정은에게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로 살자”고 해봐야, 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강조해 봐야 결국 남는 것은 ‘두 국가’일 뿐이다. 혈연을 끊겠다는 김정은에게 우리는 혈연의 힘으로 맞서야 한다. 두 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 핏줄을 강조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두 국가를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이것은 김정은의 가장 취약한 약점이다. 왜냐하면 분단 이래 북한이 가장 강조해 내걸었던 구호가 다름 아닌 ‘우리는 하나다’와 ‘우리민족끼리’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두 국가나 체제의 통합까지 아우르는 의미인 ‘통일’을 넘어, 가장 원론적인 민족과 혈연의 담론으로 맞서야 한다. 김정은이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핏줄의 힘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수천 년을 같은 땅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합쳐져야 한다.” 국제사회도, 북한도 이 말 앞에선 반박할 논리가 빈약하다. 그게 바로 민족의 힘이다. 국가와 체제 위에 민족이 있다. 막을 수 없는 그 힘이 있기에 언젠가는 기자가 배를 타고 흥남항에 내려 ‘성심당 흥남점’에서 빵을 사 먹는 날은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순리이자, 인류의 순리이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동아일보(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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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외교관들이 침묵 속에 묻어둔 생각

 

[朝鮮칼럼]

대외사업 '전투' 시작
성과 부풀리고 결함 감추고 감시하며 침묵으로 위로
北 체제 무너질 리 없고 엘리트는 불안하고 무력해
침묵만이 그들을 보호한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부인 리설주, 딸 주애와 함께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2일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에는 “설날은 술날”이라는 말이 있다. 한 해를 보낸다고 한 잔, 새해를 맞는다고 한 잔, 어르신과 스승·선배들에게 새해 인사를 다닌다고 또 한 잔 마시다 보면 사흘 남짓한 휴일이 술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초의 외무성은 다르다. 지금쯤 북한 외무성에 있는 나의 옛 동료들은 지도부에 보고를 한 뒤 받은 ‘2026년 대외사업방향’ 초안을 해외 공관에 하달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새해 시작 전부터 외교관들은 ‘첫 전투’에 돌입한다. 대외사업방향이란 한 해 동안 북한 외교가 견지해야 할 총체적 노선과 지역별·국가별 전술을 담은 작전계획서다. 4대 강국 외교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 개발도상국 외교, 그리고 북한이 ‘적대세력’으로 규정한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한 전술까지 망라된다. 외무성은 지도부가 비준한 이 지침을 외교전략의 실제 집행단위인 해외 대사관에 포치한다. 해외 공관들은 받는 즉시 집행 계획을 세우고, 얼마나 빨리 ‘성과’를 만들어내느냐로 평가받는다.

 

새해가 되면 해외 파견 외교관들의 일정은 정해져 있다. 주재국 고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체제의 ‘위대성’을 설명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며, 남북 관계 단절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반복한다. 반응을 본국에 보고한다. 문제는 그 반응이 곧 해당 국가의 ‘대북 동향’으로 기록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외교관들은 면담자의 말 가운데 긍정적인 표현만 골라 부풀려 보고한다. 부정적인 신호는 곧바로 ‘외교적 성과 부족’이라는 낙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주재국 국가수반이나 친북 단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북한 지도부에 신년 축전을 보내도록 설득하는 일도 이 시기의 핵심 업무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니카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통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나라의 공관들은 수월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나 유럽의 공관들은 이 시기가 가장 고통스럽다. 실적은 적고, 비판이 쏟아진다.

 

이렇게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평가의 시간이 다가온다. 매월 마지막 주, 대사관들에 전문으로 배포되는 ‘월 사업 총화’에서는 모든 공관의 성과와 결함이 공개된다. 어느 대사관의 누구는 “공화국의 핵보유국 지위를 주재국 인사들에게 각인시키고 좋은 반응을 받아냈다”며 칭찬을 받는다. 반면 어디의 누구는 “주재국의 대북 동향이 나쁘다는 걸 빙자해 패배주의·요령주의에 빠져 주요 인사를 만나지 못했다”며 공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 외교관의 이름은 기록으로 남고, 귀국 후 총화와 인사, 승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총화 전문을 받은 날 밤이 되면 외교관들은 친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상처를 씻어주는 데 술보다 좋은 약이 없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또 한 달을 버틴다. 그러나 그 술자리에서도 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북한 외교관 사회는 서로를 감시하도록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북한 외교관은 모두 체제에 충성하는 엘리트다. 실제로 김정은 체제가 하는 모든 일이 옳다고 굳게 믿는 외교관도 적지 않다. 동시에 자신의 경력 발전과 가족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외교관도 많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충성의 표현’이라 여기며 지혜를 짜낸다. 문제는 그 충성이 신념이든 계산이든, 마음속 불안까지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외교관들은 국제 정세의 변화를 빨리 읽는다. 워싱턴과 베이징, 모스크바의 기류 변화, 유엔 회의장에 감도는 냉기, 국제 언론의 논조, 심지어 면담자의 표정까지 가장 먼저 체감한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외교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군사와 선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북한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은 또 다른 균열을 만든다. 해외에서 다른 사회를 직접 본 외교관들은 체제 선전과 현실의 괴리를 부정하기 어렵다. 평양 간부 자녀들의 특권과 일반 주민들의 궁핍한 삶을 떠올릴 때, 체제의 ‘정당성’은 스스로에게도 설명이 안 된다. 그러나 그 고민은 말할 수 없다. 침묵만이 그들을 보호한다.

 

북한 외교관들의 침묵은 체제의 경직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상황을 신중하게 읽는 신호일 수도 있다. 평양의 외교관들은 오늘도 말없이 보고서를 쓰고 성명을 읽는다. 그 조용한 태도 밑에는 냉정하게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가늠하는 그들의 심경이 깔려 있다.

 

“누구도 나의 운명을 지켜주지 않는다. 나와 가족의 운명은 나만이 지킬 수 있다. 세상이 열두 쪽 나도 이 체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순응하며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침묵 속에 그들이 묻어둔 생각이다. 

 

1월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합참은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도발을 "우리는 베네수엘라처럼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연합뉴스

 

-이일규 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조선일보(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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