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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양보 받은 트럼프] [사랑을 위해 버린 왕관]

뚝섬 2026. 1. 19. 06:26

[노벨상 양보 받은 트럼프]

[사랑을 위해 버린 왕관]

 

 

 

노벨상 양보 받은 트럼프

 

192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크누프 함순은 말년에 열렬한 나치 지지자였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나팔수 요제프 괴벨스를 만났을 때, 함순은 자신이 받은 노벨상을 그에게 주며 존경한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작가는 나치 부역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그의 나이 85세. 국민은 ‘노르웨이 현대문학의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그랬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정부는 함순을 감옥 대신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적 기능이 영구적으로 손상됐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의 마리아 마차도가 엊그제 백악관에서 자신이 받은 노벨상 진품 메달을 트럼프에게 직접 선물했다. 독재자 마두로 축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였다. 정상적인 품격을 갖춘 지도자라면 사양했을 선물이었다. 평생에 걸친 타인의 희생과 헌신을 덥석 받는 대신, 그 영광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모습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반응은 달랐다. “마리아는 내가 이룬 업적을 기려 그녀의 노벨상을 나에게 줬다. 이건 상호 존중을 보여주는 제스처”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썼다. 자신이 받을 만해서 받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메달이 담긴 대형 액자를 들고 활짝 웃는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평화상을 주관하는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즉각 공식 성명을 내고 “수상자와 메달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마차도가 작년에 이 상을 받은 직후 트럼프는 “내가 받을 상을 왜 네가 받냐”고 격노했다고 한다. 마차도가 베네수엘라 차기 지도자가 되지 못한 진짜 이유도 ‘내 상을 가로챈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번 노벨상 진품 증정은 트럼프의 마음을 달래보려는 ‘눈물겨운 외교’라고 썼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은 그만큼 오래됐고 유명하다. 오바마가 재임 시절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트럼프는 “세상은 불공정하다”고 푸념했다.

 

1기 트럼프 시절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도 트럼프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평화 협상·무역 협상을 위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노벨상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영광조차 냉혹한 국제정치 거래 도구로 추락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베네수엘라의 실권을 위한 정치적 조공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래저래 상의 권위는 곤두박질 중이다. 힘이 있으면 소장할 수 있는 트로피일 뿐인가. 이런 식이라면 노벨상 반대 운동이 일어나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어수웅 논설위원, 조선일보(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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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나토에 ‘그린란드 관세’”, 유럽 “미군기지 폐쇄 가능”. 80년 동맹 내분에 후끈 달아오른 얼음섬.

 

-팔면봉, 조선일보(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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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버린 왕관

 

Harry Belafonte 'Love, Love Alone'(1957)

 

90년 전인 1936년 1월 20일, 영국 왕 조지 5세가 세상을 떠나자 장남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했다. 하지만 그의 재위는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10일,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영국 역사상 자발적으로 왕관을 내려놓은 유일한 군주였다.

 

당시 영국 국교회는 이혼자의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국교회 수장인 국왕이 두 번 이혼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드워드는 12월 11일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세기의 로맨스’는 대서양을 건너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7년, 이미 그 전해에 차트 1위를 휩쓴 자메이카계 신성 해리 벨라폰테가 이 이야기를 칼립소 스타일의 팝으로 풀어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만이/ 에드워드 왕을 왕좌에서 물러나게 했네/ 그는 고귀했고, 위대했지만/ 사랑이 그를 퇴위하게 만들었네/ 그의 돈, 그의 가게는 가져가도 돼/ 하지만 볼티모어의 그 여인만은 남겨둬요(It was love, love alone/ Caused King Edward to leave his throne/ King Edward was noble, King Edward was great/ It was love that caused him to abdicate/ You can take his money, you can take his store/ But give him that lady from Baltimore).” 가수를 넘어 인권운동가로서도 고귀한 삶을 살게 되는 벨라폰테는 에드워드의 선택을 낭만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1937년 10월, 윈저 공작 부부가 된 에드워드와 심슨은 나치 독일을 방문해 히틀러와 차를 마시고 SS 친위대를 사열했다. 1957년 미국 대중은 에드워드를 로맨틱한 영웅으로 소비했지만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남자는 사실 반유대주의자이자 인종차별의 끝판왕이었고 게다가 나치 협력자였다. 그는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월리스와 35년을 함께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영광도, 행복도 아닌 그저 추방자의 것에 불과했다.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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