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얘기 같지 않은 '아프간 망국 백서']
[美 관세 폭탄보다 위험한 ‘남 탓’ 통상·외교]
먼 나라 얘기 같지 않은 '아프간 망국 백서'
탈레반 재장악한 아프간
마지막 미국 보고서 보니
분열과 부패로 자멸했다
지금 우리는 괜찮은가?
유엔 193 회원국 중 알파벳 순서로 첫 번째인 아프가니스탄은 ‘유령 정부’ 상태다. 2021년 8월 15일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에 기존 정부는 축출됐다. 그런데도 옛 국기와 함께 회원국으로 등재돼 있다. 폭정을 일삼는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다. 그렇다고 망한 나라가 살아날 리는 없다. 최근 해산한 미국 정부 기관 아프가니스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의 마지막 보고서는 그래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발간된 아프가니스탄재건특별감사관실 분기 보고서 표지. 탈레반 치하에서 다시 부르카를 쓴 여성들의 뒷모습을 담았다. /SIGAR
SIGAR는 미국이 2001년 ‘테러와의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친미 아프간 정부를 세운 뒤 재건 사업을 위해 설립돼 분기마다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그러나 재건은 실패했고, 최근 나온 137쪽짜리 최종 보고서는 ‘아프간 망국 백서’가 됐다. 재건에 참여한 군·정부 인사, 아프간 전 관료 등의 인터뷰를 곁들여 미국이 세운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신랄하게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 고위 인사 상당수가 탈레반 못지않은 악당임을 보여준다. 정적을 탈레반이라 모함해 미군 병력으로 소탕한 칸다하르 주지사 굴 아가 셰르자이, 미군 위세를 업고 살인과 고문을 일삼은 경찰 간부 압둘 라지크 등이 그들이다. 2010년 카불은행이 군·경 봉급에 쓸 미국 지원금을 대통령·부통령 가족이 저지른 사기 대출 피해를 메우는 데 쓴 사건은 수많은 부패 사례 중 하나다.
미국의 과오도 지적됐다. 성인 남성들이 소년들을 성 노리개로 삼는 오랜 악습이 성행했지만 미군은 현지 세력과의 관계를 고려해 묵인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은 2019년 대통령 선거 같은 썩은 권력 다툼에 악용됐다. 비방전과 부정 의혹으로 선거 뒤 다섯 달 만에 아슈라프 가니의 승리가 선언되자 경쟁 상대 압둘라 압둘라가 불복해 둘이 동시에 취임식을 여는 등 후폭풍이 이어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은 “가니가 다른 후보보다 뇌물을 더 많이 먹인 게 진실”이라고 했다. 다섯 달 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입성할 때 대통령 가니는 헬기로 탈출했다.

아프가니스탄재건특별감사관실이 해산 직전 펴낸 최종보고서. 아프가니스탄 친서방정부의 붕괴 과정을 분석했다. /SIGAR
재건 사업이 20년째이던 그해에도 국민의 3분의 1인 1220만명은 굶주리고 있었다. 부정·부패·빈곤으로 무너지는 나라를 집어삼키려 탈레반이 무섭게 진격해 왔지만, 미국 지도자의 인식은 현실과 괴리돼 있었다. 카불 함락 한 달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30만 병력이 7만5000 탈레반에 맞서고 있다”고 낙관했고, 함락 엿새 전 존 커비 국방부 언론보좌관은 “아프간군엔 탈레반에 없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나라를 잃고 미국에서 우버 기사가 된 칼리드 파옌다 전 아프간 재무장관은 “우린 30만 병력을 가진 적이 없다. 기껏 4만~5만”이라고 털어놨다. 미국이 쏟아부은 141억달러(약 20조6636억원)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보고서의 결론은 이랬다. “아프간에 민주주의와 안정 어느 것도 가져오지 못했고, 야망과 현실 사이 간극은 거대했다.”
이 비극을 보며 70여 년 전 한국을 떠올려본다. 전쟁 직후 상황은 아프간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킨 이승만, 미국 원조로 경제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 같은 지도자의 혜안, 오일쇼크나 IMF 환란 등 위기 때마다 뭉친 국민 결기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미국의 전후 재건 참여국 중 가장 빛나는 성공 사례다.
그러나 이젠 뿌듯함보다 불안함이 앞선다. 안보 불안, 경제 위기, 정치 분열과 부패, 사회 시스템 고장 등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린다. 한미 관계는 ‘철통 동맹’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만큼 삐걱대고 있다. 냉정하게 자문해야 할 때다. 우리는 괜찮은가? 혹시 아프간의 길로 퇴행하는 것은 아닌가?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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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관세 폭탄보다 위험한 ‘남 탓’ 통상·외교
새 정부 출범 후 진행된 대미 협상에는 일련의 패턴이 있다. 미국이 깜짝 발표(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를 하면, 청와대가 급한 불을 끄려 장관급 인사들을 ‘급파’한다. 비장한 표정으로 방미 길에 오른 인사들은 상대를 만나고 나와 “우리 측의 이야기를 잘 설명했고 미국을 이해(또는 설득)시켰다”고 전한다. 사태의 엄중함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25% 관세 재인상을 ‘통보’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잇따라 산업통상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장관이 미국으로 향했다. 결과는 ‘빈손 귀국’이었다. 설득에 실패한 장관들은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 통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김정관 산업부 장관), “미국이 우리의 제도와 시스템이 자신들과 다른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는 식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우리(정부) 문제가 아니라 국회 탓이고 미국의 무지와 오해 탓인 셈이다.
반면 외교안보 라인은 다른 진단을 내놨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9일 대정부 질문에서 방미 중 만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비관세 장벽 협상에 진척이 없으면 관세 인상으로 무역적자를 개선하려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 문제가 관세 인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뜻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보란 듯 “관세 합의가 흔들린 영향이 안보 분야에도 미친다”고 했다. 통상 라인의 관세 합의 관리 실패를 작심하고 지적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김 장관은 “법안이 통과되면 관세 재인상은 정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단들이 제각각인 건 책임을 외부로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한미 간 제도의 차이가, 비관세 장벽이 상황을 악화시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논리다. 때마침 12일 파행된 국회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그런 책임 회피에 불을 붙일 좋은 땔감이 된다. 미국의 청구서는 계속 달라지고 압박이 거세지는데 누구도 정책적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돼 가고 있다.
책임을 외부로 돌려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상대로부터 ‘어퍼컷’을 맞고 수습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 당국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현 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고위직이 줄줄이 급파돼도 상황 전개를 막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른 이유가 정말 법안 때문만인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남 탓을 하는데 탓하는 이유들도 다르다 보니 협상 상대에겐 ‘내부 합의도, 공유도 안 되는 정부’로 비칠 수 있다. 그런 자중지란이 관세 폭탄보다 더 위험하다.
한미 정상 간 합의인 조인트 팩트시트(JFS·공동 설명자료)를 도출하기까지 수개월간 분야별로 협상을 해왔더라도, 후속 조치를 이행할 땐 통상과 외교가 ‘이인삼각’으로 임해야 한다. 필요하면 한미 간 ‘외교·통상 장관 2+2회의’ 같은 형식도 염두에 둬야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통보는 이미 상수가 된 지 오래다. 예측 불가능성마저도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통상외교의 기본이다.
-신나리 정치부 기자, 동아일보(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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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법무장관, 의회서 與野 의원에게 “낙오자” “실패한 정치인” 공격. 싸움닭일수록 각광받는 ‘트럼프 월드’.
-팔면봉, 조선일보(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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