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맹 저울은 韓日 어느 쪽으로 기울겠는가]
[서울서 북한군 찬양한 러시아, 우리가 자초한 것]
[주가 이틀 새 18% 급락, 위기 때 드러나는 한국 경제 실력]
[17년 만에 1500원 찍은 환율… 3高 위기관리 나설 때]
[호르무즈 의존도 낮춘 사우디의 원유 수송 전략을 보라]
미국의 동맹 저울은 韓日 어느 쪽으로 기울겠는가
[김창균 칼럼]
美 최고 안보 위협은 대만
동맹국에 공동 대처 기대
日은 '피하면 동맹 아니다'
韓은 '우리와 무슨 상관'
이란 공격에도 뛰어든 美
메시지 발신도 동맹다워야

한미 연합·합동 의무지원훈련
트럼프 정부가 새로 내놓은 국가 안보 전략(NSS)과 국가 방위 전략(NDS)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양안 사태를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 부와 인구가 집중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접근권이 중국에 의해 거부되면 국가적 위기라는 인식이다.
지난달 주한 미군의 서해공중훈련도 이런 미국의 전략적 판단 속에 실시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훈련이 사전에 통보됐는지 여부를 놓고 한·미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이 훈련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전에 몰랐고 그래서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했다. 반면 주한 미군은 “한국 군 관계자들이 다 알고 있었던 사안인데 국방장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면 유감”이라고 했다. 말하는 측과 듣는 측의 ‘아이 엠 쏘리’ 의미가 달랐다. 주한 미군은 “우리는 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는 입장문까지 내놨다. 미군은 훈련하지 않으면 군사 역량이 감축되며 실전에 투입될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본다. 동맹과의 파트너십도 “강인하고 실전적인 훈련을 통해 구축한 신뢰와 힘에 바탕을 둔다”고 내부 문서에 적혀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군 내부에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느냐는 문제 의식도 불러일으켰다. 계엄 사태 문책으로 군 지휘부 수십 명이 경질되는 사태 속에서 정권이 못마땅해 하는 주한미군의 서해 공중 훈련 소식을 아무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2027년을 고비로 보는 양안 사태는 앞으로도 한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사활적 이해가 걸린 이 문제에서 한국도 당연히 한 편이 돼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전 때 함께 피 흘린 사이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 정부와 그 지지층은 양안 사태는 남의 문제라고 발을 뺀다. 70년도 지난 한국전쟁 신세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희생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으로 일단락된 게 아니다. 1955년 8월 첫 전사자를 시작으로 103명이 숨졌고 부상자는 1000명이 넘는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 육군 장교 두 명이 북의 도끼 만행으로 숨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69년 4월 15일, 미 해군 EC 121 정찰기에 탑승해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31명이 북한 미그기의 공격을 받아 전원 사망한 것이 단일 사건 최대 희생이다. 미국 요청으로 파병된 우리 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가 동해 공해상에서 북에 나포되는 과정에서 미 해군 일병이 전사했고 나머지 승무원 80여 명은 그해 말까지 억류 상태에서 신체적, 정치적 고문을 당했다. 하루 뒤인 1968년 1월 24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침투한 북한 무장 공비 도주를 차단하는 작전 과정에서 미 사병 2명이 숨졌다.
미 국방부는 비무장지대, 임진강 지역을 ‘적의 포화 지역’으로 선포했으며 이 지역 근무 미군에게 전쟁 지역 수당을 지급했다. 한국 근무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는 뜻이다. 주한 미군 전사자들 속에 10대 후반부터 20대 사병들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에서 무엇을 얻을 게 있다고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느냐”는 원망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동맹은 함께 목숨 걸고 싸우기로 약속한 사이다. 미국의 또 다른 동맹인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이 공격받을 때 달려가지 않고 도망친다면 그것은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양안 문제에 왜 우리가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했다. 동맹의 무게를 재는 미국의 저울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미국은 어느 쪽 동맹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것 같은가.
동맹의 건강을 탐색하는 미국 출장 일정 중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시작됐다. 미군 부대 영내에서 잡혀 있던 인터뷰 일정이 변경된 배경을 뒤늦게 짐작하게 됐다. 한미연합사 우리 측 전직 관계자는 “미국은 전쟁을 결심했고, 전쟁 중에는 신경이 극도로 곤두선다”면서 “우리 진보 정권 관계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칠까 걱정된다”고 했다.
귀국 비행장을 빠져 나와 국내 언론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란 초등학교 오폭’에 대한 비판과 “4만명의 자국민을 죽인 정권이 핵무기를 가지면 평화적으로 사용할 것 같으냐”며 이란 공격을 지지하는 미스 이란 출신의 목소리가 맞서고 있었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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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북한군 찬양한 러시아, 우리가 자초한 것
6·25 때 동족 가슴에 총질한 북한군 "위대하다" 찬양한 러
힘 있어도 비굴하게 구는데 누가 한국을 존중하겠는가

2026년 2월 24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외벽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지호 기자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서해에서 북한군이 쏜 총에 절명하고 소각 만행까지 당했을 때,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처사였다. 정부의 대북 정책 멘토라는 이들은 모여서 이런 말도 했다. “이씨와 가족에게는 굉장히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국민이 살해당했는데 분노하기는커녕 이를 가해자와 대화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북한 당국 눈에 이런 한국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불문가지다. 자국민이 죽어도 응징을 포기하는 나라는 하찮고 만만한 상대일 뿐이다.
얼마 전 주한 러시아 대사관이 러·우 전쟁 발발 4주년을 맞아 서울 한복판에서 벌인 행태를 보며 그때 일을 떠올렸다. 북한에 무시당하니 러시아도 우리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러시아는 대사관 건물에 ‘승리는 우리 것’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격전지인 쿠르스크 점령에 기여한 “북한군의 위대함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위대한 북한군’ 운운은 북한 인민군의 모태가 무엇이며 그들이 한국 땅에서 어떤 짓을 벌였는지 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언사였다. 인민군은 중국 국공 내전 당시 중공군 편에 섰던 조선의용군에서 비롯됐다. 그때 쌓은 실전 경험으로 6·25 때 동족의 가슴에 총질을 했다. 이번에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도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았고 유사시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북한군을 찬양했다. 이런다고 너희가 어쩔 거냐는 식이다. 이런 무시를 당하고도 우리 정부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한국의 대응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대한민국은 이런 능멸을 감내해야 할 약소국이 아니다. 군사력은 세계 5위이고 어엿한 무기 수출국이다. 핵은 없지만 재래식 전력은 북한을 압도한다. 지하 벙커에 숨은 김정은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현무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힘을 갖고도 비굴하게 구는 태도가 우리를 얕잡아보는 빌미가 되는 것이다.
서로를 지켜주려고 기꺼이 자기 피를 흘리는 국가 간 관계가 혈맹이다. 러·우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그런 사이가 됐다. 러시아는 북한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고 상호 군사 개입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이런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일 연합 훈련을 우리는 미국에 “일본 빼고 하자”며 무산시켰고, 최후의 생명줄인 한·미 연합 훈련조차 2023년 대비 30%나 줄였다고 한다. 지난해 북한 김여정이 “대규모 합동 군사연습을 연속 감행하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 없다”고 하자 예정된 훈련도 미뤘다.
북한이 우리와 마주 앉지 않겠다는 말의 진실은 잘사는 남한의 영향력이 북한에 미치는 게 두려워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군사 훈련을 구실 삼자 그들 하자는 대로 하는 한국은 다루기 쉬운 만만한 존재일 뿐이다. 북한은 지금껏 만만하고 나약하게 구는 남한에 대화를 구걸한 적이 없다. 북한을 압도하는 경제력과 문화, 무력을 지니고도 툭 하면 그들에게 “괴멸적 타격을 가할 것”이란 협박을 듣는 것도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나라가 이러니 장병들이라고 땀 흘려 훈련하고 국방의 결의를 다질 리 없다. 요즘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라 한다. 1만원 남짓 받았던 필자 세대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채무 조정을 받는 이가 지난 5년 사이 80%나 늘었다고 한다. 내무반에서 휴대전화로 사이버 도박에 접속해 게임 머니에 탕진하다가 빚까지 진다는 것이다. 이런 군을 둔 나라가 위력적인 무기를 지녔다고 한들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나라가 존중받는 것도 무시당하는 것도 모두 자기 하기 나름이다. 무시를 당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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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이틀 새 18% 급락, 위기 때 드러나는 한국 경제 실력

이란전쟁 여파로 코스피 지수가 급락 마감한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닥 지수 종가가 표시되어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일대비 698.37p(12.06%) 떨어진 5093.54에 장을 마감했다. /뉴스1
이란 사태로 4일 코스피는 역대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보다 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형주도 예외가 없었다. 코스피 거래 종목 중 98%가 하락했다. 이틀간 하락률이 18.4%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7년 만에 장중 1500원 선을 넘기도 했다.
한국 증시 하락 폭은 미국은 물론 일본, 홍콩 등 주요국보다 유독 컸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95%인 일본보다 70% 수준인 한국이 더 타격을 입었다. 한국 충격이 더 큰 것은 증시 비중이 큰 대기업이 대외 변수에 흔들리면 증시 전체가 가라앉는 취약성 탓이 크다. 산업 생태계가 다변화된 일본과 달리, 특정 이슈가 시장 전체의 리스크로 쉽게 전이되는 것이다.
증시가 단기 급등하면서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가 커진 측면도 있다. 코스피는 최근 8개월 만에 3000에서 6000까지 파죽지세로 상승했지만, 실제 경제 지표는 부진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역대 여섯번째로 낮은 1%에 그쳤고 산업 생산 증가율은 5년 만에 최저치, 실질 소비 지출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실물 경제는 여전히 부진한데 유동성(자금)의 힘으로 증시만 활황이다가 중동 사태라는 악재를 만나자 변동성이 증폭됐다.
주가는 단기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하면 오를 수 있지만, 장기적 상승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1년에도 수차례 시총 1위가 바뀔 만큼 역동적인 미국처럼, 우리도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노란봉투법과 경직적 주 52시간제 등 친노조 정책으로 일관하며 반기업 정책도 수시로 내놓고 있다.
소액 주주 보호나 지배 구조 개선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 이는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보조적 수단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 장벽을 허물어 경제의 체력 자체를 키워야 한다. 특정 대기업의 성과에 나라 전체가 일희일비하는 경제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대외 변수에 취약한 금융시장의 고질병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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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1500원 찍은 환율… 3高 위기관리 나설 때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종가(5,093.54)가 표시돼 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여파로 이날 코스피는 12.06% 하락하고 환율은 1500원대로 밀렸다. 박형기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4일 새벽 서울 외환시장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장중 한때 1500원을 넘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면서 달러 강세-원화 약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에 비해 12.06% 급락한 5,093.54에 마감됐다. 2001년 9·11사태 직후인 9월 12일(―12.02%)보다 큰 역대 최대 하락률이다. 코스피는 올해 5,000 선, 6,000 선을 돌파하며 단숨에 6,300 선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중동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단기 급등에 따른 경계감과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산업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다른 나라 증시에 비해 낙폭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 확전 양상에 따라 당분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역대 최고치(80.37)로 치솟았다. 빚을 내서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위험 관리에 무게를 둬야 할 때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주변 중동 국가의 정유·가스 시설을 무차별 보복 공격하자, 국제유가도 연일 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요하면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호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유가 상승세를 잡지 못했다. 브렌트유는 19개월 만에 최고인 배럴당 85달러를 넘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5달러 선에서 움직였다.
중동산 원유 수입 제한과 환율 상승 영향은 2, 3주 뒤 국내 휘발유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은 물론이고 수입물가와 국내 외식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전망치(2.2%)보다 높은 2.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 확전과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의 ‘3고(高) 뉴노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동 위기의 출구가 보이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조기 마무리되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이 장기화하면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수출이 위축되고 소비가 침체할 수 있다. 위기 장기화를 대비해 농수산물·식품 등의 유통구조를 점검하고 에너지 가격 안정을 통해 가계 부담을 덜어줄 고물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아일보(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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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의존도 낮춘 사우디의 원유 수송 전략을 보라

미국·이스라엘과 무력 충돌 중인 이란이 4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최소 10척의 선박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필요한 경우 미 해군이 가능한 한 빨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호송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필자는 1980년대 초 사우디아라비아 내 항구 두 곳을 오가는 유조선 항해에 참여한 적 있다. 사우디의 동해안에 해당하는 페르시아만의 라스타누라에서 서해안 쪽 홍해의 얀부를 오가며 원유를 수송하는 항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매우 전략적인 수송망이었다. 혹시라도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를 대비해 사우디 정부가 페르시아만의 원유를 홍해 쪽으로 옮겨놓는 체계였다.
이런 사우디의 대비는 곧 현실이 됐다. 1980년대 후반 이란·이라크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른바 ‘유조선 전쟁(Tanker War)’이 벌어졌다. 페르시아만을 오가는 유조선들이 미사일과 기뢰 공격을 받았고 세계 해운은 극도의 긴장 속에 놓였다. 서방 유조선의 피격 사건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모든 선박이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다. 중립국 국기를 단 선박이나 특정 국가와 우호 관계에 있는 선박은 비교적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 바다는 언제나 정치와 전략의 공간이었다.
오늘날 세계는 다시 해상 봉쇄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흑해 항로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상선들이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해상 요충지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약 20%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세계 경제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는다. 특히 대한민국은 더 취약하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 수송을 거의 전적으로 해상 운송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름값이 오르는 문제가 아니다. 정유, 석유화학, 전력 생산, 해운과 물류 등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결국 국민 생활에도 충격이 미친다.

글로벌 선박 실시간 추적 정보 플랫폼인 마린트래픽에서 공개한 지난달 28일과 2일(현지시각) 포착된 선박들의 이동 모습. 점은 정박되어 있는 배, 화살표는 현재 움직이고 있는 배를 가리킨다. /X
이제 우리는 해상 안보 전략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인식해야 한다. 첫째, 원유와 에너지 수입국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은 페르시아만에서 홍해로 원유를 보내는 육상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호르무즈를 거치는 해상 수송로 의존도를 낮췄다. 한국 역시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장기 계약 구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략 비축유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국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단기간에 수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비축유는 단순한 저장량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셋째, 위기 상황에서 사용할 대체 항로와 수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오늘날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경제 정책의 영역이 아니라 해양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요 해상 수송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 협력, 해군력의 역할, 해상 정보 체계의 구축은 모두 국가 안보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넷째, 우리 해군의 해상 교통로 보호 능력도 강화해야 한다. 세계 에너지 수송망이 불안정해질 때 자국 선박과 선원의 존재는 국가 경제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 과거 유조선 전쟁 시기에도 한국 선원들은 위험한 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해운과 선원은 단순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우리 수출입 화물의 99%가 바다를 통해 이동한다. 바다가 막히면 경제가 멈춘다. 1980년대 페르시아만에서 경험했던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바다의 전략적 가치가 위기 순간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바다는 단순한 운송로가 아니라 국가의 생명선이다.
-김인현 前 선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조선일보(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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