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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공연과 빈 공간] [ .. 'BTS 아리랑'의 역사적 뿌리] ....

뚝섬 2026. 3. 24. 06:25

[BTS 공연과 빈 공간]

[130년 전 헐버트 박사가 'BTS 아리랑'의 역사적 뿌리]

[보라색은 황제만 쓸 수 있었다]

 

 

 

BTS 공연과 빈 공간 

지난 2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 세종대로에서 구획별로 입장한 관람객들이 BTS의 아리랑 컴백 공연을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다. / 고운호 기자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이 도착한 21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 앞 세종대로. 무대 근처 좌석을 얻지 못한 관객들도 스탠딩석에서 스크린을 보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이날 눈에 띈 건 완충 지대처럼 곳곳에 배치한 빈 공간들이었다. 경찰 차벽으로 구획을 나누고 대피 공간을 확보해둔 것이다. 광화문부터 서울시청까지 BTS 관람 인파로 가득할 것이라던 예상(경찰 추산 26만명)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런데 한편으론 다행이다. 카메라에 담긴 풍경은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감도가 높아졌음을 빈 공간들로 웅변하고 있다. 이 사진은 동화면세점 건물의 한 사무실을 미리 섭외해 파노라마로 촬영했다.

 

-고운호 기자, 조선일보(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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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헐버트 박사가 'BTS 아리랑'의 역사적 뿌리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

 

3월 21일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 대사 방탄소년단(BTS)이 역사의 광장 광화문에서 멋진 새 출발을 선보였다. 국민 모두가 감동하며 찬사를 보냈을 것으로 확신한다. BTS는 앞으로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공연한다고 한다. 이들의 세계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고 한국의 문화유산도 더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

 

이번 BTS의 공연 주제는 민족의 혼이 서려 있는 전통 민요 아리랑이었다. 사실 아리랑은 음계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다가 130년 전인 1896년 미국인 교육자이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Hulbert·1863~1949)가 대중화·세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헐버트는 ‘조선의 성악(Korean Vocal Music)’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아리랑에 음계를 붙이고 노랫말도 채록했다. 만약 그가 130년 전에 아리랑에 음계를 붙이지 않았다면 아리랑의 대중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

 

헐버트는 아리랑에만 음계를 붙인 게 아니다. 그는 ‘조선의 성악’ 논문에서 조선의 전통 음악 전체를 학문적으로 평가하면서 ‘군밤타령’, 시조 ‘청산아’ 등에도 음계를 붙였다. 우리 음악사를 악보 없는 시대에서 악보가 있는 시대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음악이 조선인들에게 뗄 수 없는 존재”라며 “종달새도 조선인들처럼 선율을 아름답게 지저귀진 못할 것”이라고 조선인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했다.

 

헐버트가 이렇게 조선 음악 전체를 다루며 조선인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한 건 큰 의미가 있다. 당시는 서양인들이 조선의 노래가 벌레 우는 소리 같다고 비하하기도 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헐버트는 “조선의 귀로 듣기 전까지는 제발 조선의 노래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조선의 노래가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셰익스피어의 시가 운율이 맞지 않는다고 혹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래가 반드시 박자를 맞출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헐버트는 조선의 노래에는 서양의 박자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리랑을 조선 노래의 최고봉으로 평가하며 “아리랑은 영원한 한민족의 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리랑의 후렴구 노랫말에 대해 헐버트는 “서정시요, 교훈시요, 서사시”라며 조선인들의 음악성에 찬사를 보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다. 부르는 이마다 노래가 다르다.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바이런이나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 된다.”

 

헐버트의 아리랑 채보 원조설은 북한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 2018년 중국 선양에서 남북한과 중국 동포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북한사회과학원 소속 민속실장은 “조선 봉건왕조 말엽 우리나라에 왔던 헐버트라는 미국인이 채보한 것을 실은 ‘The Korean Repository’ 악보가 우리나라 최초의 아리랑 채보”라고 했다.

 

올해는 대한민국으로부터 ‘건국훈장’과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독립유공자 헐버트가 이 땅에 근대 교육을 태동시키기 위해 내한한 지 140주년이 되는 해다. 아리랑 채보 130주년이기도 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그를 기억하는 여러 행사를 펼치고 있다. 음악인들이 헐버트가 아리랑을 최초로 채보·채록하고 이 땅에 서양 악보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김동진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조선일보(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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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은 황제만 쓸 수 있었다 

 

진시황의 병마용 중 전차병, 기원전 221~206년경, 높이 약 190cm, 테라코타에 옻칠과 채색, 시안, 진시황릉 박물관 소장.

 

BTS의 귀환과 함께 서울 곳곳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무지개의 끝에 위치한 보라는 BTS와 공식 팬덤인 아미(ARMY) 사이의 변치 않는 믿음을 상징한다.

 

고대 문명에서 보라빛을 말하는 자색(紫色)은 오직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색이었다. 자연 세계에서는 무지개뿐 아니라 노을, 제비꽃, 자수정 등 도처에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보라색을 볼 수 있지만, 이를 물체에 고정할 안료로 만드는 일은 인류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였다. 고대 지중해 연안에서는 뿔고둥의 분비물을 썼는데, 수만 마리를 잡아도 겨우 옷소매를 물들일 정도의 양이 나왔으니 값이 황금보다 귀했다. 아무나 가질 수 없어서 더욱 욕망을 부추기는 보라는 그렇게 황제의 색이 됐다.

 

안정적인 보라색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최초로 성공한 건 고대 중국인들이었다. 그들은 바륨과 구리, 모래를 섞어 1000°C 이상의 고온에서 일정하게 구워내 오늘날 ‘한자색(漢紫色)’이라 불리는 안료를 만들었다. 엄청난 고난도 기술의 결정체였으니 이 또한 황제만이 쓸 수 있었다. 불멸을 꿈꾸던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기 위해 땅속에 도열한 수천 기의 병마용 중 전차병의 소매가 눈부신 보라색이다. 그저 흙빛인 줄 알았던 병마용은 사실은 모두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으나 1970년대 첫 발굴 당시 공기에 노출되자 순식간에 모두 바스러져 버렸다. 1990년대 중반에야 독일과 중국 연구진이 찰나에 사라지는 색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한자색의 존재가 드러났다. 

처음부터 보라는 ‘아미’의 색이었던 것. 그러나 오늘날의 보라는 억압적인 권력이 아니라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서로를 알아보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연대의 언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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