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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59분30초] [마라톤 부족]

뚝섬 2026. 4. 28. 07:08

[1시간59분30초]

[마라톤 부족]

 

 

 

1시간59분30초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에 주파하려면 100m당 17초 속도로 달려야 한다. 보통의 성인 남성이 거의 전력 질주해야 하는 속도다. 이런 페이스로 단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100m 달리기를 422회 반복해야 한다. 실제 경기에선 여러 변수가 있다. 바람, 날씨와 싸워야 하고 주변 선수들과 신경전도 치러야 한다. 그래서 2시간 내 완주는 인간 한계를 넘는 ‘마의 벽’이었다.

▷케냐 출신 사바스티안 사웨 선수(31)가 26일 영국 런던 마라톤에서 1시간59분30초의 기록으로 그 벽을 처음 깼다. ‘마라톤 황제’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8년 2시간 1분대를 기록했고, 5년 후 켈빈 킵툼이 2시간 35초로 바짝 다가섰는데 대기록은 사웨의 차지가 됐다.

▷‘서브 2(2시간 내 완주)’ 마라토너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선수들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 달리기의 ‘연비’를 높이는 기술이 발달한 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2시간 장벽이 곧 깨질 수 있다는 전망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회사들은 초경량 탄소 섬유 개발 등 성능 경쟁에 나섰다. 사웨가 신었던 97g 러닝화는 200g 안팎이던 신발 무게를 절반으로 줄이고 탄성을 높였다고 한다. 또한 런던 마라톤은 적당한 온도에 코스도 평탄해 베를린·시카고 마라톤과 함께 선수들이 기록 경신을 기대하는 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장비나 경기 환경이 선수들의 정신력보다 중요할 순 없다. 누구와 함께 뛰느냐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런던 마라톤에선 2등 선수도 1시간59분41초의 기록을 세웠다. 3위 선수 역시 종전 세계기록을 뛰어넘는 2시간28초였다. 한 대회에서 상위 3명이 모두 세계기록을 넘어선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선의의 경쟁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더 빨리 달렸던 사웨는 준우승 선수에게 고맙다면서 “우리는 서로를 도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2시간 내 완주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내 옆의 선수들뿐 아니라 나보다 앞서 경기했던 선수와도 겨룬다. 선배 선수가 불가능해 보였던 기록을 깨서 먼저 길을 내면, 그 뒤의 선수들은 새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달린다. 피겨스케이팅에서 4회전(쿼드러플) 점프는 한때 꿈의 기술이었지만 1988년 최초 성공 사례가 나온 뒤 정상급 선수들에겐 필수 기술이 됐다. 육상 100m 경기에서도 ‘10초 장벽’이 1968년 깨진 이후 기록 경신이 이어져 2009년 9초58(우사인 볼트)까지 단축됐다. 이제 사웨가 ‘서브2’ 시대를 열어젖힌 이상 예상을 뛰어넘는 마라톤 기록들이 줄지어 나올 것이다. 인간에게 한계란 없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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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부족

 

인간과 그레이하운드의 5㎞ 달리기 경주를 본 적이 있다. 처음 500m는 개의 압도적 승리. 이 품종의 전력 질주 속도는 시속 70㎞에 이른다. 하지만 곧 헐떡거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인간이 역전했다. 과학은 이를 인간 특유의 땀샘과 털 없는 피부로 설명한다. 개는 폐로 열을 식히지만 인간은 온몸의 땀샘 200만개로 열을 뿜어내며 체온을 조절한다. 인간은 뙤약볕 아래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종(種)이다.

 

인간 종 중에서 마라톤에 특화된 부족이 케냐의 ‘칼렌진’이다. 아프리카 동부의 해발 2500m 고산 지대에서 소를 키운다. 적혈구 수치가 높아서 심폐 기능이 탁월하다. 또 종아리가 가늘고 길다. 달릴 때 다리 들어 올리는 에너지를 크게 줄인다. 케냐 마라토너 75% 이상이 여기 출신이다. 칼렌진은 “내가 네게 말한다”라는 뜻이라는데 입 보다는 발로 말하는 부족인 것 같다.

 

▶이번 런던 마라톤에서 1시간 59분 30초로 2시간 벽을 깬 사바스티안 사웨는 이 부족 출신이다. 2019년 비공식 대회에서 사상 첫 ‘서브2′를 기록한 엘리우드 킵초게, 이번 대회 3위인 우간다의 제이컵 키플리모도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부족이다. 우승자 사웨는 전기도 없는 진흙집에서 자랐고 왕복 16㎞ 학교를 매일 뛰어다녔다. 점심 먹으려고 집에 뛰어 왔다가 다시 학교로 달려간 적도 많았다. 등하교 자체가 훈련이었다.

 

▶장거리에 케냐 칼렌진이 있다면 단거리는 자메이카의 트릴로니가 있다. 100m,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도 그렇다. 이 지역 출신 스프린터들은 단거리에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속근섬유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또 스포츠는 아니지만 네팔의 셰르파 부족은 낮은 헤모글로빈 수치로도 산소를 효율적으로 쓰는 특이한 대사 구조를 가지고 있어 고산(高山)에서 독보적이다.

 

▶마라톤 ‘서브2′는 과학의 도움도 받았다. 97g에 불과한 초경량 탄소 섬유 러닝화, 빠르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하이드로젤 음료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칼렌진 출신들이 압도하는 마라톤을 보면 ‘결국은 유전자’라는 결정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그들도 유전자만 믿고 달린 건 아닐 것이다. 우리 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 한계치보다 훨씬 빨리 ‘힘들다’는 가짜 신호를 보낸다. 이들 마라톤 선수들은 수만㎞의 극한 훈련으로 이 가짜 신호를 넘어서는 법을 터득하고 육체 고통의 한계를 훨씬 넓혔다. 사웨가 케냐 고원에서 소만 키웠다면 아무리 뛰어난 그의 유전자도 잠만 잤을 것이다.

 

-어수웅 논설위원, 조선일보(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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