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매일 만드는 '기적']
[박탈감 커지는 반도체 협력사들]
[하청 노조와 '농어민' 가세, 반도체 뜯어먹기 혈안]
[반도체 쏠림 못 벗어나면 ‘코리아 패러독스’ 온다]
삼성이 매일 만드는 '기적'

1987년 마흔다섯 살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승계했을 때 그룹 전체 영업이익은 2000억원 수준이었다. 취임 직후 이 회장이 “그룹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을 때 ‘세상 물정 모르는 몽상가’란 얘기까지 나왔다. 주력 계열사 제일제당조차 이익이 아닌 ‘매출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을 정도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국내 상장사 전체의 이익 총액이 1조 1000억원대였던 시절이었다.
▶삼성전자는 1995년 세계 최초 개발한 64메가 D램의 본격 양산에다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영업이익 2조 3000억원을 기록했다. 경영진은 “내 생전에 두 번 안 올 기적”이라고 했다. 곧이어 닥친 외환위기로 실적이 곤두박질쳤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2004년 분기(3개월) 이익 1조원, 2010년엔 한 달 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분 2017년 ‘1주일에 1조원’을 벌게 됐고, 마침내 올 1분기에만 57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연간 300조원이다. 근무 일수로 치면 ‘하루 이익 1조원’ 기업이 되는 것이다. 40년 전 이건희 회장의 1년 목표가 단 하루에 달성되는 것이다. 삼성은 지금 매일 기적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조원을 5만원권 지폐로 쌓으면 110㎞, 300조원은 660㎞이다. 대기권을 넘어서 우주의 시작점인 ‘카르만 라인(100㎞)’을 뚫고 올라가는 높이다.
▶한때 조 단위 이익은 사우디 아람코나 엑손모빌 같은 석유 메이저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아람코는 분기 영업이익이 600억달러(약 80조원)를 기록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제는 반도체가 ‘디지털 시대의 석유’가 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HBM과 고성능 서버용 메모리 시장을 선점하면서 반도체 기업들이 이익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
▶축배의 잔을 들기엔 세상의 급변이 너무 무섭다. 미국 S&P 500 기업 중 10년을 못 버티는 기업이 30%에 달한다. 오늘날 삼성의 성공은 숱한 위기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연구개발과 미래 투자에 사활을 걸었던 경영의 결과물이다. 닷컴 열풍의 주역들이 이제 대부분 사라졌듯 지금의 AI 호황에 잠시만 방심하면 반도체 기업도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 57조원이란 숫자의 경이로움보다 그것을 지키고 키워야 할 과제가 더 무겁다.
-이인열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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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감 커지는 반도체 협력사들
하이닉스 성과급, 소부장 협력사 직원은 2년 일해야 번다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의 파업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제출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의 첫 심리가 열린 지난달 29일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민경권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대표가 파업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우리 연봉 2년 치보다 많은 금액을 한 번에 보너스로 받는다니 ‘남의 나라 얘기’인 걸로 여기면서도 다들 일손이 안 잡히는 분위기죠.”(반도체 장비 협력사 관계자)
SK하이닉스가 향후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기로 하고,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대규모 보상 이슈가 반도체 산업을 넘어 사회 전체를 달구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 직원들의 감정은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보다 박탈감에 가깝다. 한 반도체 장비 협력사 관계자는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수주 증가, 그리고 언젠가 연봉이 오르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매출 3000억원 이상 반도체 협력사 상장사 41곳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약 7600만원이었다. SK하이닉스가 직원 1인당 지급한 평균 성과급 1억400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이번 성과급은 협력사인 두산테스나 직원 연봉의 2.5년치, 엠케이전자 2.3년치, 한미반도체 2.2년치에 해당한다. 같은 반도체 산업 안에서, 어느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느냐 여부가 수년 치 보상의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협력사 대부분은 별도 현금 성과급 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상한선이 존재한다.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 곳조차 비정기적 자사주 지급으로 대체하거나, 연봉 인상·직급 승진이 보상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협력사 직원의 보상은 결국 연봉 하나로 수렴되는 구조다.

◇협력사들 ‘낙수효과’보다 ‘소외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떠받치는 협력사 생태계 안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하다. 41개 협력사 가운데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단행한 곳은 13곳(31.7%)에 그쳤다. 이 중 30% 이상 오른 곳은 솔브레인·리노공업·엘티씨 등 3곳뿐이었다. 나머지 28곳은 한 자릿수 인상(20곳)에 그치거나 동결(3곳)·삭감(5곳)된 것으로 나타났다.
HBM(고대역폭메모리) 양산에 필수적인 증착 장비나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협력사들은 호황의 과실을 직원 급여로 나눌 여력이 생겼다. 영업이익률 14.5%인 솔브레인은 평균 연봉이 31%(7100만→9300만원) 올랐고, 리노공업은 30.3%(8988만→1억1707만원), 테스는 28%(1억→1억2800만원) 각각 뛰었다.
반면 소모성 부품이나 범용 공정을 맡은 업체들은 연봉이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본딩 와이어를 만드는 엠케이전자는 연봉이 1.8%(6240만→6125만원) 줄었고, 시스템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업체 두산테스나도 임금이 삭감됐다. 이들에게 ‘반도체 수퍼 호황’은 먼 얘기다. 한 반도체 부품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매출이 100 늘어나면 소부장에 내려오는 건 20 정도이고, 수많은 기업이 이를 쪼개 나눠야 한다”고 했다.
◇박탈감이 인재 유출로…“생태계 경쟁력 약화” 우려
협력사의 우수 인재들 사이에서는 낙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같은 반도체 공급망 안에서 밤을 새워 기술을 갈고닦아도, 어느 회사에 입사했느냐는 선택 하나가 수억원의 보상 격차를 결정짓는 현실 때문이다. 이 같은 박탈감은 인력 이탈로 가시화되고 있다. 복수의 협력사 관계자들은 “대체 불가능한 소재·장비 기술을 보유한 엔지니어들이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본격 가동하는 시점에는 협력사의 핵심 인력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 대거 빠져나가는 인재 블랙홀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보상 격차와 인력 이탈이 국내 반도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아무리 앞서 나가도, 두 거대 기업을 뒷받침할 소부장 생태계의 연구개발과 생산 역량이 고갈되면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재 IBK투자증권 코스닥리서치센터장은 “기술 인력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단기 성과 중심의 보상 경쟁은 협력사 핵심 인력 이탈과 생태계 내 인력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협력사의 R&D 투자가 약화되면 결국 공급망 전반의 기술이 흔들리고, 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경쟁력 약화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우정/황규락 기자, 조선일보(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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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조와 '농어민' 가세, 반도체 뜯어먹기 혈안

23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영업이익 15% 성과급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에 대해 “자신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나 부당한 요구를 해서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게 된다면, 해당 노조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고 했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삼성전자 이익은 현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익이 났으니까 그 회사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나눠도 되는 건가”라고 비판한 데 이어 대통령까지 노조 이기주의에 제동을 건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올 연간 영업이익 예상액 300조원의 15%인 45조원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주주 배당액(약 11조원)이나 연구개발 예산(약 38조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반도체는 노동 투입량보다 천문학적 자본 투자와 연구개발이 승패를 가르는 산업이다. 노동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이익에 기여한 부분은 투자, 연구개발에 비교할 수 없다. 앞으로도 TSMC 같은 글로벌 공룡들과 경쟁하고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을 따돌리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수십조 원이 현금 잔치로 빠져나가면 미래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익 나눠 먹기 주장은 협력업체와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SK하이닉스 협력업체 노조는 “하이닉스가 직원들에게 수억 원의 연봉과 성과급을 지급한 반면,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500만~600만원 수준의 상생 장려금만 지급했다”며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과도한 성과급 논란이 원청과 협력업체간 노노(勞勞) 갈등의 불씨가 된 것이다.
민주당 농어민위원장은 “반도체 산업 호황은 FTA 체결 과정에서 농어민들의 시장 개방이라는 막대한 희생이 축적된 결과”라며 “이익 일부를 농어촌에 환원하라”고 했다. 진보당 대표는 “삼성이 만들어 낸 초과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를 법제화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호남 유치론이 여전한 데 이어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삼성·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유치를 추진하겠다”는 야권 공약도 등장했다. 노조와 정치권 모두 반도체 산업을 살리고 키우는 문제보다 돈을 뜯어먹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반도체는 노조와 정치권이 나눠 가질 전리품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국가 전략 산업이다. 당장의 잔치를 위해 미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다. 지금은 ‘나눠 먹기’가 아니라 ‘더 크게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
-조선일보(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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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쏠림 못 벗어나면 ‘코리아 패러독스’ 온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에서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43%를 넘겨 50%를 바라보고 있다. 이 수치를 보니 과거 핀란드의 노키아가 떠오른다. 노키아는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점하던 핀란드의 삼성전자였다. 전성기였던 2007년, 노키아 홀로 핀란드 헬싱키 증시의 시총에서 차지한 비중이 34%를 넘겼다. 이즈음 ‘핀란드 패러독스’란 말이 나왔다. 핀란드는 연구개발(R&D) 투자, 교육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인데, 노키아를 빼면 기업 실적이 신통치 않은 역설을 뜻한다.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의 호황에 취해 다른 산업 육성에 소극적이란 지적을 받았다.
비슷한 현상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에 발표된 한국의 202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용은 5.13%로, 이스라엘(6.35%)에 이은 세계 2위다. 한국은 R&D 투자를 늘린 지 꽤 됐지만 반도체 기업 외에 증시를 이끄는 기업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교육 경쟁력 역시 우수한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기초 학력 수준은 높다. 우리가 사교육, 교육정책에 들이는 돈과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 보자. 한국판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나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벌써 나왔을 일이다. 현실에선 부를 대물림받는 대기업들이 시장을 이끈다. 한국에서도 ‘코리아 패러독스’란 말이 힘을 얻을 법하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어 다양한 혁신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한국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2%에서 올해 1.71%로 하락하고, 내년에는 1.57%로 또 떨어진다. 반도체가 이끄는 한국 수출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데 잠재성장률은 최저치를 경신하니 아이러니하다.
우리 반도체 기업을 노키아와 같으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언제든 침체기가 올 수 있는 일이다. 이럴 때를 위해 특정 기업 의존이 클 때의 여파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며 노키아의 휴대전화 시장이 붕괴하자 핀란드 무역 수지는 줄줄이 적자였다. 2013년 노키아 매각을 전후해 핀란드 경제는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 갔다.
코리아 패러독스를 해결하려면 핀란드가 노키아의 몰락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핀란드의 해법은 창업과 중소기업 육성이다. 핀란드 정부는 낡은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게 교육의 틀도 바뀌어야 한다. 교육 경쟁력이 높은데 빅테크 창업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교육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과도한 국영수 중심의 교육으로 기초 성적은 뛰어나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능력이나 AI 활용에 핵심적인 자기주도학습 능력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6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기조 연사를 맡을 2025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피터 하윗 미 브라운대 교수 역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혁신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도전하는 태도’를 가르치라고 제안했다. 반도체 호황에 취해 다른 산업을 육성할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조은아 경제부 차장, 동아일보(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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