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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검사] [‘저질 판사’ ‘저질 검사’] .... [재판의 미래]

뚝섬 2026. 5. 12. 06:42

[판사와 검사]

[‘저질 판사’ ‘저질 검사’]

[개천 용의 위로]

[재판의 미래]

 

 

 

판사와 검사

 

1998년 법조 기자 시절 판사실에 인사차 들렀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명함을 건넸는데 배석 판사 둘이 동시에 일어나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어디 앉으라는 얘기도 없었다. 어색하게 몇 분간 서 있다 자리를 떠났다. 검사실에 인사 가면 보통 차 한 잔 마시며 대화를 했다. 판사실과 검사실 분위기가 그렇게 달랐다.

 

▶2006년 대검 중수부가 론스타 관계자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대거 기각했을 때 검찰·법원 간부들이 설전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온도 차가 컸다. 검찰 관계자가 “수사에 인분(人糞)을 들이부은 것”이라고 직격하자 영장 판사는 “이미지가 아닌 팩트에 근거해 얘기해야 한다”고 ‘무미건조’하게 대응했다. 쓰는 말도 그렇게 달랐다.

 

▶당사자들도 서로간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 검사로 일하다 판사로 전직한 판사가 법원 소식지에 글을 썼는데 두 기관의 가장 큰 차이로 ‘사무실 분위기’를 꼽았다. 그는 “처음 출근한 판사실에 대한 인상은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검사실은 출입하는 사람이 많고 조사하는 소리로 항상 시끄러웠는데 판사실에선 조용히 책 읽고 연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 때의 단점이 판사의 장점이 됐고, 검사 때의 장점이 판사로서 단점이 됐다”고 했다. 사람 대하는 일이 많은 검사와 그렇지 않은 판사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물지만 법원 분위기가 답답해 검사로 전관한 판사도 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최초다. 6년여간 판사로 있다 1969년 검사로 전관했다. 이후 김수남 판사가 판사 생활 3년 만인 1990년 두 번째로 검사로 전관해 검찰총장까지 됐다. 그는 “(판사 때) 답답했고, 능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 검사로 옮겼다”고 했다. “판사와 검사 업무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그는 재직 시절 후배들에게 판사 같은 검사 되지 말고, 검사 같은 판사 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검사는 판사처럼 앉아서 기록만 보지 말고 현장 중심 수사를 해야 하며, 판사는 검사처럼 설치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올해 신임 판사 모집에 검사 230여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예년보다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들도 검사와 판사의 차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전환을 앞두고 신분이 안정적인 법원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선택을 탓할 수 없지만 신속한 피해 구제는 검찰의 기소가 출발이다. 검찰 공백으로 애꿎은 국민들이 고통 받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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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감찰위, ‘쌍방울 대북송금’ 수사한 검사 징계 청구안 논의. 권력은 유한하니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할 텐데.

 

-팔면봉, 조선일보(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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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판사’ ‘저질 검사’ 

 

법정에서 판사는 ‘슈퍼갑’이다. 재판 진행과 판결이 전적으로 판사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법관의 눈치를 살피고 지시에 따른다. 수사와 기소에서는 검사가 절대적이다. 피의자와 피고인은 “사건에 있어서는 검사가 하느님”(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느낄 정도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조용히 판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법관은 재판을 할 때 재판을 받는 것”이라는 아하론 바라크 전 이스라엘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검사의 언행과 판단은 추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재판과 수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변호사들이 지적하는 판검사의 대표적인 문제는 막말이다. 서울변회의 법관 평가를 보면 피고인에게 “예전 같았으면 곤장을 칠 일”이라거나 “반성문 그만 쓰고 몸으로 때우라”고 하는 등 거친 말을 한 판사들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검사에 대한 대한변협의 평가도 비슷하다. “피해자에게 변제할 돈은 없고 변호인 선임 비용은 있냐”, “죄를 지은 사람이 너무 당당한 것 아니냐” 등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다음으론 맡은 업무를 얼마나 철저하고 공정하게 처리했는지가 중요한 요소다. 별 이유 없이 재판을 1년 넘게 방치하거나 서면으로 제출한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공판을 진행한 판사, 원고와 피고를 혼동해 판결을 번복한 판사가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검사 평가에서도 피의자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은 채 불기소 처분하거나 증거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재판에 들어온 검사들이 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검사들은 옷을 벗은 뒤에야 남의 눈에 본인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변호사로 전업하고 법원을 다시 보게 됐다는 판사 출신의 정인진 변호사는 “인간 존중 없는 취급에 법대(法臺) 앞에 선 사람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고 썼다. 검사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도 “변호인으로서 검사를 보면 ‘나도 예전에 저랬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현직에 있을 때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성찰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밤잠을 아껴가며 재판과 수사에 전념하고 당사자들을 배려하는 판검사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판검사에게는 예외 없이 높은 윤리적 기준과 업무의 완결성이 요구된다. 재판과 수사의 당사자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일이어서다. “사법기관이라는 것은 온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과 명예 등을 결정하는 일을 가지기 때문에 자가(본인)의 수양을 더욱 긴급히 아니하면 안 될 것”이라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말은 지금도 판사와 검사 모두에게 유효하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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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용의 위로

 

양심 있는 속물들의 정의 수호… 드라마 ‘날아라 개천 용’ 인기
정의로운 척하다가 몰락한 현 집권 세력과 대비 이뤄

 

“판사든 검사든 심지어 대통령이든! 잘못했으면 뒤늦게라도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된다. 뭐가 두려워 은폐하고 무마하려고만 하나.”

 

다소 화난 듯한 이 글은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 용’ 방송 중 시청자들이 올린 실시간 채팅 글의 일부다. 포털 연예 코너에 이례적으로 과격한 반응이 나온 것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고발한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실화에 바탕을 뒀다. 주인공인 재심 전문 변호사 박태용(권상우 분)은 억울한 사람들을 변론하며 일약 스타가 된 인물로 ‘삼례 나라슈퍼 삼인조 사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 재심을 승소로 이끈 박준영(46) 변호사가 모델이다. 그가 맡았던 실제 사건들까지 이름만 바꿔 드라마에 그대로 등장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들이 남달리 대단한 정의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 중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을 돕겠다는 의욕이 넘치지만, 그걸로 유명해져 사건도 수임하고 돈도 벌고 싶다는 세속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대놓고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보여줍시다”라고 외친다. 기자인 또 다른 주인공 박삼수(배성우 분)는 특종 기사를 물어와선 “(이걸로) 빌딩 올려주겠다”고 허풍을 친다.

 

직업상 정의를 추구해야 할 주인공들이 돈과 출세에 한눈파는 모습은 오히려 리얼리티를 더해주는 요소다. 대형 로펌의 스카우트 제의에 환호작약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인 유력 정치인의 자서전 대필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다가 결국 거절하는 모습은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하루하루 고민하며 살아가는 소시민들과 닮았다. 그래도 이들은 항상 마지막에는 양심에 따라 정의의 편에 선다. 이는 묘하게도, 현 집권 세력의 모습과 대비된다. 페이스북에는 이런 후기도 올라왔다. “특별한 정의감으로 무장하고 대단한 집단인 양 행세하던 세력의 집권 후 도덕적 몰락을 지켜봐서 그런지… ‘그래, 우린 다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한 속물들이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결단에서 양심을 따를 뿐’이란 캐릭터에 호감이 간다.” 항상 근엄한 얼굴로 정의와 공정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그다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실망감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사진=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 용'에서 박태용 변호사 역의 권상우(왼쪽)와 박삼수 기자 역의 배성우.

 

드라마는 ‘개천 용’의 복권(復權)도 시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이른바 ‘가개붕 행복론’으로 멸종 위기에 몰린 동물(?)을 당당하게 제목으로 썼다. 조 전 장관은 과거 “10대 90 사회가 되면서 용이 될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중략) 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개천을 살기 좋게 바꾸자는 입바른 소리였으나, 그의 자녀 대학원 입시 관련 특혜 의혹이나 사모펀드 투자 관련 소문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선 내심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이 드라마는 ‘내 자식이, 내가 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비정상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국의 말[言] 같은 건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번 정권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개천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면서 자신들은 도통 구름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광화문 집회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민을 ‘살인자’라 부르고, 여당 의원은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한테 “의원님 살려주십시오 예산, 한번 하세요”라고 한다. 이런 오만한 태도는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다.

 

이런 집권 세력을 보면서, 코로나로 발이 꽁꽁 묶여 바깥 출입도 못 하고 입도 뻥긋 못 하게 된 국민들은 드라마에서나마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며 위로받고 있다.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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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미래

 

'암흑의 중세기'는 정말 그렇게도 어두웠을까? 우선 이름부터 수상하다. 그리스·로마 문명의 찬란한 과거, 그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된 현대 역사 중간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시대라는, 그다지 명예롭지 않은 이름을 가지게 된 '중세기'.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기원후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1453년까지를 대략 중세기라고 보자면, 무려 천 년 가까운 기간이다.

고작 70~80년 사는 우리 인간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1000년이라는 긴 시간. 언제나 어둡고 절망적이지만은 않았을 거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나누었고, 아이들은 숨바꼭질하며 활짝 웃었을 거다. 결국 중세기도 사람이 사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재판소에서만큼 중세기는 말 그대로 암흑 그 자체였다. 고문과 폭력은 당연했고, 육체적 고문 없이 받아낸 진술은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시련 재판(trial by ordeal)'에서는 피고가 견뎌낼 수 있는 '시련의 강도'를 통해 죄의 유무를 판단했다. 만약 불 위를 걷고, 끓는 기름을 붓고, 발에 돌을 매달아 물속에 집어넣어도 살아남는다면, 판사들은 피고의 무죄를 선언했다. 그렇게까지 끈질긴 목숨은 신(神)이 내린 무죄일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 계몽주의, 법치국가. 우리는 이제 한 인간의 심판을 더 이상 신에게 맡기지 않는다. 독립적 수사, 과학적 증거, 그리고 고대 로마법에서 시작된 '무죄 추정(in dubio pro reo)'은 현대 사법 제도의 핵심이다. 하지만 판사, 검사, 경찰, 변호사 모두 결국 인간이 아니던가? 인간이기에 본인이 직접 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재판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법원에서 신이 사라졌기에 현대 사법 제도가 가능해졌다면, 미래 인공지능 시대와 맞는 사법 제도는 어쩌면 불완전한 인간이 법원에서 사라져야만 가능할 수도 있겠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조선일보(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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