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무노조 경영]
[삼전닉스 프롤레타리아 혁명]
[AI발 수출 호황이 절로 장기 성장 보장하진 않는다]
TSMC 무노조 경영

2009년 3월 대만 TSMC 본사와 창업자 모리스 창(張忠謀) 자택 앞에서 직원 수십 명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당시 CEO 릭 차이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적이 악화되자 인사 평가 하위 840명을 일괄 해고한 게 발단이었다. 직원 30명 이상이 노조 설립 의사를 밝혔다. 대만 노동조합법상 설립 최소 요건인 30명을 채운 것이다. 1987년 설립 이후 지속돼온 TSMC 무(無)노조 경영에 경보가 켜졌다.
▶이 사태를 계기로 모리스 창이 CEO로 복귀해 직접 수습에 나섰다. 그는 “인사 평가는 각기 다른 상사가 매긴 것이어서 극히 주관적”이라며 전원 복직을 선언했고, 노조 설립 시도는 동력을 잃었다. 아내 소피 창도 농성 직원들에게 만두와 두유 등 식사를 제공하며 남편을 도왔다.
▶TSMC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대만은 노조가 약한 나라로 꼽힌다. 1949년부터 1987년까지 국민당 정부는 계엄령으로 파업을 금지했고, 대형 국영기업 위주로 친정부 노조를 구축했다. 민간 노조가 본격화한 것은 민진당이 첫 정권 교체를 한 2000년 이후다. 30인 이상 신청 요건도 노조 설립을 어렵게 한다. 대만 전체 기업의 97%가 30인 미만 소기업이라 원천적으로 노조를 만들 수 없다. 한국은 2인 이상 신청하면 노조를 만들 수 있다.
▶모리스 창의 무노조 소신은 1970년대 미국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재직 시절부터 굳어졌다. 그는 대만 언론 인터뷰에서 “노사 분쟁이 미국 자동차 산업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좋은 기업은 직원들에게 노조를 결성하지 말도록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대신 TSMC는 스톡옵션을 부여해 직원들을 주주로 만들고, 대만 업계 중 최고 임금과 복지로 노조 결성 필요성을 사전 차단했다.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부르는 대만 국민들의 인식도 무노조 유지에 한몫했다.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TSMC가 해외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7월 지급할 성과급을 당초 예상보다 15% 삭감하려 한다는 소문에 직원들 동요가 커지고 있다고 대만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부 직원은 사내 게시판에 “삼성전자처럼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추진하자”는 글을 올리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이 해외 경쟁업체로 번진 것이다. 모리스 창은 2018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창업자 없는 TSMC가 40년간 반도체 성공 신화를 만든 무노조 경영을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나지홍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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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닉스 프롤레타리아 혁명
[선우정 칼럼]
혁혁한 투쟁 성과는 노동자 혁명 역사상 최고액일 것이다
한국만 홀로 이러다 거덜날 게 뻔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제발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본사 /뉴스1
물적 성과로만 보면 이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벌어진 일은 21세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러시아혁명 때 노동자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쟁취한 로마노프 황실의 재산이 지금 돈으로 400조원 규모라고 한다. 역사가들이 이것저것 끌어들여 최대한 부풀린 액수라고 하는데, 여하튼 혁명 역사상 최고액이다. 그런데 한국의 두 회사 노동자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심지어 지도부 일부가 럭셔리 휴가까지 챙기면서 혁명에 필적하는 대가를 얻어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노동자가 보장받은 성과급 기준은 각사 영업이익의 10~12% 수준이라고 한다. 국내외 투자회사가 전망한 두 회사 영업이익 추정치를 중간값 기준으로 추산하면 3년간 성과급은 대략 260조원 규모다. 반도체 경기에 따라 더 줄 수도, 늘 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의 성과급을 두 회사 노동자들은 향후 10년 동안 약속받았다고 한다. 쟁취가 아니라 그냥 횡재를 한 것이다.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엄청나다. SK하이닉스의 순자산이 120조원(2025년 말)이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진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회사 노동자가 3년 동안 받을 260조원에 적정 수준의 부채를 더하면 산술적으로 하이닉스 규모의 설비를 가진 반도체 기업 2개를 만들 수 있다.
돈이 노동자에게 풀렸다고 나쁜 건 아니다. 소비를 일으켜 내수가 확대되고 부동산 경기도 좋아진다. 두 회사 성과급 이슈로 이미 주식시장에서 유통·음식·화장품 등 소비재 내수주가 급등했다. 각자에게 돌아갈 돈이 수도권 신축 아파트값 수준이기 때문에 두 회사 셔틀버스가 지나다니는 경기도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있다고 한다. ‘셔세권’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SK하이닉스급 반도체 기업 2개를 날리면서 얻은 노동자의 행복이다.
그 정도 성과급이면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조만간 미국 주식시장 상장으로 750억~800억달러를 조달한다. 원화로 120조원 정도다. 세계 증시 역사상 최대라고 한다.
스페이스X는 투자 설명서에서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 돈을 쓰겠다고 했다. 재사용 거대 발사체 ‘스타십’을 상용화하고, 스타십을 이용해 달에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고, 달을 징검다리로 화성을 개발해 인간의 이주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 사명은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고, 의식의 빛을 성간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일론 머스크의 허장성세라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높이 120m, 무게 5000톤의 스타십이 하늘로 치솟고, 로켓 타워가 일명 ‘젓가락’ 팔로 낙하하는 거대 발사체를 잡아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120조원이 들어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노동자가 받는 성과급이면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한국은 스페이스X급 기업을 날린 것이다.

13일(현지시각) 스페이스X 스타십 슈퍼헤비가 지구에 수직 착륙하는 장면. 발사탑의 젓가락 팔로 1단 슈퍼헤비 로켓을 잡고 있다. /X
나라가 예산 260조원을 국민에게 나눠줬다고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정치적 기회비용은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경제적 기회비용은 스페이스X처럼 더 많은 이익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가의 꿈을 이루는 선택지다. 따라서 정상적 기업가라면 이번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두 기업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모든 원인을 제공한 SK하이닉스는 바람도 불기 전에 누웠다. 비합리적 선택으로 한국 산업을 뒤흔들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병철, 최종현, 이건희 회장이 살아 돌아온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그동안 한국의 노사 균형은 노동자 중심으로 너무나 기울었기 때문이다. 파업 손실 대부분을 회사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면 어떤 경영자라도 시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너무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노동자의 성과급을 영업이익에 연동하면 영업이익을 결정하는 투자 비용 결정까지 노동은 필연적으로 관여하려 한다. 가면 안 되는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공산당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라고 했다. 21세기 연봉 1억원 노동자에게 사슬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얻을 것은 전 세계”라는 마르크스의 선동은 먹을 파이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지금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 듯하다. 혁명은 반도체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익을 낸 모든 산업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돈벼락을 맞았다고 형제끼리 아귀처럼 달려들어 나눠 먹는 집구석이 성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더 큰 문제는 혁명의 상처를 한국 기업만 입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경쟁 기업은 혁명은커녕 제2의 SK하이닉스, 제2의 스페이스X에 잉여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그곳 노동자는 뭐 하고 있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제발.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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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발 수출 호황이 절로 장기 성장 보장하진 않는다
반도체 수출이 K증시-수출 호황의 중심에
성장 기반은 편중돼 ‘좋은 경기’와는 달라
반도체 산업도 공급막 병목에 취약점 있어
호황 이익 재투자하고 새 성장엔진 키워야
한국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뜨겁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은 반도체 호황과 수출 회복, 기업 이익 개선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이렇게 주가가 오를 때는 늘 어떤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요즘 그 이야기는 단연코 AI와 반도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 아니겠는가. 물론 막연한 기대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와 AI 서버 수요가 늘고 있고, 그 흐름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메모리 반도체, 저장장치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AI 플랫폼을 주도하는 나라는 아닐지 몰라도 AI를 움직이는 제조업 기반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오르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가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 호황이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이 호황이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이다.
우선 지금의 호황은 한국 경제 내부에서 발생한 성장 잠재력의 발로라기보다 글로벌 AI 투자 붐이 한국 반도체 수출로 이어진 결과이다. AI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데이터센터, 서버, HBM, 메모리 반도체,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같은 제조업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한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나라다.
숫자도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4월 한국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0% 증가했지만, 반도체 수출은 173% 늘었고 컴퓨터 관련 수출도 SSD 수요 등에 힘입어 516% 증가했다. 5월 수출에서도 20일 현재 전체 수출은 64.8% 증가했는데, 반도체 수출은 202.1% 늘어 전체 수출의 41.7%를 차지했다. 반면 승용차 수출은 10.1% 감소했다. 수출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 회복의 무게중심은 아직 상당히 편중돼 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단순히 “경기가 좋아졌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반도체가 잘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발생한 AI 수요 충격이 한국 수출과 기업의 주가를 밀어 올리는 것과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가 전반적으로 단단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호황이 장기적인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적어도 두 가지 병목을 잘 빠져나와야 한다. 첫 번째 병목은 글로벌 공급망에 있다. 한국은 반도체를 잘 만드는 나라이지만, 반도체와 AI 인프라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원료를 모두 국내에서 조달하지는 못한다. 핵심광물, 즉 희토류, 갈륨, 게르마늄, 특수가스, 고순도 소재 등은 글로벌 공급망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유럽연합(EU)의 핵심광물 비축 논의는 이 문제가 단순한 조달 문제가 아니라 산업 안보의 문제가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AI 인프라 가치사슬의 핵심 부품 공급자이지만, 아쉽게도 그 가치사슬을 작동시키기 위한 원료와 소재의 단순 구매자일 뿐이다. 이 부분에서 공급자의 위치를 갖지 않는 한 이 좁은 길을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 길을 빠져나오려면 기업이 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함께 도와야 한다.
두 번째 병목은 투자 재원에 있다. 반도체 제조업은 지속적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규모의 산업이다. 땅을 파면 나오는 석유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반도체 분야의 ‘초과이익’ 논란은 반도체 투자에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줘 매우 우려스럽다. 당연히 성과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이익은 현재 소득이면서 동시에 시장 경쟁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투자 재원이기도 하다. 차세대 공정, HBM 이후 기술, 설비 투자, 고급 인력 확보가 계속 필요한 산업에서 호황기 이익을 어떻게 재투자할 것인가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지속 가능한가의 문제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주어진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가 저절로 장기 성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반도체 분야의 호황은 기업의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핵심 소재와 원료의 공급망에서도 이제는 우리 기업이 공급자로 우뚝 서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강한 엔진이지만, 이 하나만으로 성장의 긴 여정을 갈 수는 없다. 조선, 방산, 바이오, 전기차, 로봇 등 다른 엔진들도 동시에 힘을 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에만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성장 기반을 찾을 것인가이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조선일보(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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