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격차가 20배를 넘으면 생기는 일]
[우리가 늦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연봉 격차가 20배를 넘으면 생기는 일
삼성전자 노사의 잠정 합의에 따라 연봉 1억 원인 반도체(DS)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받게 될 성과급은 약 6억 원으로 추산된다. 연간 총 7억 원을 버는 것이다. 반면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경기 화성 공장에서 웨이퍼를 운반하는 근로자는 최저임금(시급 1만320원)을 받는다. 이 노동자가 5인 미만 영세 업체 소속이라면 주말·야간 근무를 해도 가산수당을 못 받는다. 심할 경우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과는 20배가 넘는 연봉 격차가 날 수 있다.
드러커 “CEO 연봉도 직원 20배 이상 안 돼”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자(CEO)의 보수가 일반 직원 연봉의 20배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드러커의 법칙’이다. 그는 1986년 펴낸 책 ‘프런티어의 조건’에서 “임원 보수와 기업 성과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며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질 경우 ‘함께 일한다’는 의식이 약해지고 팀워크와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기업 CEO와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1965년 20 대 1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져 2012년에는 354 대 1이 됐다. 결국 근로자들이 분노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였고 미 의회는 CEO 급여를 공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드러커가 1996년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탐욕이 10년 후 문제가 될 것”이라며 밝힌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격차가 용인될까. 2014년 하버드대 마이클 노턴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대기업 CEO가 비숙련 근로자보다 얼마나 급여를 더 받아야 하는지 40개국 5만5238명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평균 4.6배였다.
답변은 국가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한국 응답자는 대기업 CEO가 비숙련 근로자의 10배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했다. BTS나 이정후 같은 슈퍼스타가 아닌 다음에야 숙련도와 성과, 맡고 있는 책임의 차이로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는 급여 격차는 많아야 10배 수준이란 얘기다.
한국의 경우 ‘52시간 근무제’에 따라 삼성전자든 하청업체든 일하는 시간은 주 52시간 이하라는 특수성도 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같은 시간 일했는데 연봉이 20배 이상 차이 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협상에서 근로자 측을 대표한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라며 하청기업 근로자와의 격차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메모리사업부 고졸 생산 직원이 비메모리사업부 박사 출신 연구원보다 성과급을 훨씬 많이 받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성과급 잔치 뒤에 남을 사회적 균열
물론 로또 당첨자에게 취약계층을 도우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삼성전자 직원에게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위해 성과급을 양보하라고 강제할 순 없다. 문제는 업황이 좋았다는 이유로 초고액 성과급을 받게 된 수만 명이 우리 공동체에 미칠 영향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막대한 성과급을 당연한 보상으로 받아들이고 하청기업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노력과 실력 때문으로 돌릴 때,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프리랜서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시급 차이를 보면서 사회의 보상 체계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잃을 때도 사회적 자본의 토대인 신뢰와 결속이 흔들리게 된다.
드러커의 경고는 단순히 임금 격차가 시기심을 낳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동료의식이 희미해지고, 작은 사안에도 내부 갈등이 폭발해 성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없을 것이란 우려였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
-장원재 논설위원, 동아일보(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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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늦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알고 지낸 지 올해로 14년 된 대학 시절 친구 네 명이 있다. 유학생으로서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아이 엄마였다. 우리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삶에 중요한 순간마다 만나 서로를 축하해 줬다. 돌아보면 20대 초반 시절 맺은 인연 중 지금까지 이어진 몇 안 되는 우정이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지난주 우리 넷 중 세 번째로 짝을 찾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자연스럽게 남은 한 명에게 시선이 향했다. “너는 언제 시집가냐”라는 말이 가볍게 오갔다. 그는 나와 동갑이고 내 삶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이기도 하다. 최근 소개팅을 했다는 친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인생에 별다른 스토리 없이 살아온 것 같다”고 자조하듯 말했다. 이어 자신이 어딘가 뒤처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스토리가 없는 삶’이란 존재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많고 적음이 삶의 밀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차이는 언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있을 뿐이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지금 돌아보면 충분히 준비된 선택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기준도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았고 판단도 깊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을 만났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전과 삶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다. 21세의 나는 방향성이 흐릿했다면, 34세의 나는 좀 더 분명해졌다. 그 차이는 단순히 나이 때문이 아니라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늦었다’고 느끼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집, 자산과 같은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 갖춰지지 않으면 시작조차 쉽지 않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타인과의 비교에 노출되기 쉽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면 선택을 미루게 된다. 올해 3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여자 31.6세, 남자 33.9세다.
몽골은 아직까지는 한국과 다른 결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사회질서가 남아 있다. 과거에는 한 가정에서 네 명 이상의 자녀를 두는 것이 흔했고, 지금도 줄긴 했지만 두세 명을 두고 있다. 평균 기대수명이 약 62∼67세 수준인 몽골에서는 삶의 시간에 대한 감각 역시 한국과는 다르다. 물론 변화는 시작됐다. 자녀 수가 줄어드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결국 몽골 역시 한국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회가 자본을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결혼과 출산은 점점 더 ‘조건’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나만 늦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개인 선택의 결과일까, 아니면 사회 구조의 결과일까. 한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렸던 부탄은 인터넷이 보급된 후 외부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불행을 인식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 역시 발전과 동시에 불안을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사는 사회일수록 비교는 더 치열해지고, 비교가 많아질수록 결핍의 감각은 선명해진다. 결국 풍요는 안정을 보장하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이어진다. 욕심과 탐욕이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탐욕과 불안이 사회 전체의 흐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삶의 특정 단계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더 이상 개인만의 일도, 또 사회 구조만의 일도 아니게 됐다. 그래서 단순히 선택지를 좁히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기준과 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무엇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무엇이 삶을 흔들리게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무너지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시계와 조건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늦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늦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벗드갈 몽골 출신·글로벌 비에이 유학원 대표, 동아일보(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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