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도전국의 침묵, '중국 패권 시대'는 과연 가능한가]
[덩샤오핑의 두 얼굴]
패권 도전국의 침묵, '중국 패권 시대'는 과연 가능한가
[朝鮮칼럼]
조건이 미성숙한 상태로 패권 도전 선언했지만 美GDP 추격은 거듭 후퇴
베네수엘라·이란 사태에 中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미국 패권시대 지속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 정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류 역사에서 패권국의 교체는 기존 패권국을 능가하는 국력을 보유한 신흥강국의 등장으로 이루어져 왔다. 패권국이 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국력은 무엇보다도 군사력이지만, 그러한 군사력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탄탄한 경제력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대미 패권 도전을 선언한 2012년 말 당시 중국 GDP는 미국의 절반을 넘어섰고,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무렵에는 약 63% 수준까지 추격해 왔다. 그 빠른 추격 속도에 비추어 당시 국제사회는 2027년 또는 2028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경제 패권을 장악하리라고 전망했다.
패권국이 되기 위한 조건은 첫 번째는 경제력, 두 번째는 이를 토대로 건설한 군사력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패권국 교체는 도전국이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압도적 군사력을 건설하고 세계적 질서 유지를 감당할 의지와 실행 능력을 입증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이 세 번째 조건이다. 미국은 1870년대에 당시 패권국이던 영국의 GDP를 추월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엔 이미 세계 최강국이었으나, 패권국이 되려는 의지가 없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실제 패권국이 되었다. 일본은 냉전 종식 후인 1995년 미국의 GDP를 71%까지 추격했으나, 패권 도전 의지가 전혀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패권 도전의 조건이 미처 성숙하지 않은 시점에 서둘러 도전을 천명함으로써 미국의 강력한 응전과 견제를 자초했다. 1980년대 중국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 중앙군사위 주석은 1990년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책을 최소 100년간 유지하라는 유훈을 후계자들에게 남겼다. 마오쩌둥 주석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69년 ‘굴을 깊이 파고 식량을 많이 비축하되, 패권자라 칭하지 말라(深挖洞 廣積糧 不稱覇)’는 교시를 남겼다. 그러나 시진핑은 섣불리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공통된 전략적 교시를 무시한 채 서둘러 패권 도전을 선언했다.
이는 중국으로서는 전략적으로 큰 실수였지만, 수세에 몰려 있던 미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일 중국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교시에 따라 어둠 속에서 몰래 충분한 힘을 길러 압도적 경제력을 구축한 후에 패권 도전에 나섰더라면 아마도 미국은 이를 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추월할 시기로 예상되던 2027~2028년을 불과 10년 앞두고 2017년 출범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의 경제적 팽창을 막고자 강력한 디커플링 정책을 단행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국의 미국 GDP 추격은 2021년의 76%를 정점으로 후퇴를 거듭해 2025년 말에는 64%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영구히 원천 봉쇄하고자 무역 규제와 공급망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경제력 대결에서 급한 불을 끈 미국은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방위 관세전쟁과 동맹관계 재조정을 통해 과거의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을 복원하려는 구조 변경에 돌입했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이 패권 도전을 위해 세계 각지에 구축한 핵심 거점들을 와해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중국은 중남미의 최대 전략 거점인 파나마와 베네수엘라를 상실했고, 중동 지역 최대 전략 거점이자 에너지 공급원인 이란은 체제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파나마, 베네수엘라, 이란 사태 전반을 통해 한 가지 크게 의아스러운 점은 패권 도전국 중국의 존재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군사적 지원은 물론 외교적 중재나 전략적 개입의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그간 국제사회가 당연시해 온 ‘중국 부상론’을 근본부터 재검토하게 만든다. 혼돈의 국제정세 속에서 이어지는 중국의 침묵은 중국이 아직 패권의 무게를 감당할 수준의 책임 있는 강대국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패권은 일방적 선언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경제력과 군사력의 외형적 규모만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전략적 이익과 우방국을 지켜낼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그에 따른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 패권국의 필수 조건이다. 중국의 오랜 침묵은 중국 패권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기보다는 미국 패권 시대의 장기적 지속을 더욱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용준 한미우호협회 회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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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분야 경험 全無 30대 충성파를 정보기관 총괄에 앉힌 트럼프. ‘政敵 공격용’ 정보만 캐오라는 뜻인가.
-팔면봉, 조선일보(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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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두 얼굴

덩샤오핑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포스터 앞 광장에서 운동을 하는 선전(深圳)의 시민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1989년 6월 4일 나는 천안문 광장, 총성에 흩어지는 시위대 속에 있다. 탱크가 밀고들어오는, 인민해방군대의 무력진압이다. 1980년대 후반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물가 상승, 실업 문제 등이 심각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된 인민들, 특히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은 정치의 민주화(‘인민’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에 가까운)와 전폭적인 부패 척결 등을 요구했다. 이건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설령 그것까지는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시위대 안에는 여러 가지 분파가 뒤섞여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흘러갈 공산이 컸다. 이게 덩샤오핑이 대참극을 무릅쓰고 진압을 선택한 간명한 이유다. “20만명이 죽는다 해도 국면을 통제하고 20년의 안녕을 쟁취할 것”과 같은 덩샤오핑의 말들 속에는 공산주의자의 냉혹함과 정치가의 고뇌가 뒤엉켜 있다.
1989년 천안문 시위의 발단은 4월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 전 총서기 사망의 추모 인파였다. 5월이 되자 그 인파는 100만명에 육박해 베이징을 메웠다. 6월의 대비극을 ‘제2차 천안문 사태’라고 부르는 것은, 1976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그것을 ‘제1차 천안문 사태’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해 4월 온건파인 주은래 사망 추모 인파가 모여들어 마오쩌둥의 심복 4인방의 전횡을 규탄하기 시작했고, 4인방은 이들을 민병대와 경찰을 동원해 진압, 체포했다. 물론 제2차 천안문 사태의 희생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조차도 아니었다.
덩샤오핑은 이 사태를 조종한 배후로 지목돼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9월 9일 마오쩌둥이 죽고 4인방이 실각하면서 1976년의 시위는 ‘인민의 정당한 요구’로 재평가받아 덩샤오핑이 화려하게 복귀하는 발판이 돼주었다. 이런 덩샤오핑이 13년 후 탱크를 앞세워 인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상황과 등장인물은 비슷한데, 클라이막스와 결과가 달랐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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