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의 '올바름' 상실한 韓의료 현실]
[추락하는 WHO]
이종욱의 '올바름' 상실한 韓의료 현실
'亞 슈바이처' 고 이종욱 박사
20년 지나도 WHO에서 추모
그가 강조한 '올바름' 정신
한국선 왜 찾아보기 어려울까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집행이사회 회의실에서 이종욱 박사 서거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회의실 화면에 나온 영상은 이 박사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올해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기간이던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WHO 사무총장(2003~2006년)으로 활동 중 과로로 세상을 떠난 고(故) 이종욱 박사의 서거 20주기 추모식이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생전에 많은 도움을 받은 중국, 에티오피아, 라오스, 스리랑카, 탄자니아 등 6국이 고인을 기리기 위해 공동 주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현 WHO 사무총장은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나아갔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며 “매일매일 그가 WHO에 남긴 유산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많은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겠지만, 이 박사는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2003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인 WHO 사무총장에 선출된 인물이다. 원래 공대를 나온 그는 의사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20대 중반에 서울대 의대에 다시 진학한 ‘늦깎이 의학도’였다. 의대 시절부터 시간을 쪼개 경기 나자로마을의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고, 인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와도 그 시절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다.
미국 하와이대에서 공중보건학 공부를 마친 뒤엔 “학교에 남아달라”는 지도 교수의 제안을 고사하고 남태평양에 있는 섬 사모아로 향했다. 그곳 의료원에서 한센병 환자와 원주민을 살피다 1983년 남태평양지역 한센병 퇴치 팀장으로 WHO에 합류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2006년 5월 서거할 때까지 23년간 WHO에 몸담으며 한센병과 결핵, 소아마비, 에이즈 퇴치 등 국제 보건의료 분야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사무총장 재임 기간에는 세계 감염병 정보를 24시간 내내 수집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했고, 직접 60여 국을 발로 뛰며 현장을 누볐다.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는 자리였음에도 해외 출장을 갈 때면 “가난한 나라들도 WHO 분담금을 내는데, 그 돈으로 호강할 순 없다”며 비행기 일등석을 사양했다. 업무용 차량으로 친환경 소형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고, 탈 때는 뒷좌석이 아닌 운전석 옆자리에 앉던 일화도 전해진다. 자신과 운전자가 같은 ‘WHO 직원’임을 강조한 겸손한 리더였다.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이 박사의 20주기 추모식이 WHO 본부에서 열렸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선 이토록 존경받는 이 박사를 배출한 우리나라의 아이러니한 현실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매년 대입 때마다 불고 있는 ‘의대 열풍’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 소아과·외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의사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응급 환자가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를 탄 채 몇 시간씩 길을 헤매는 일도 빈번하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의료 격차가 심화되면서, 졸업 후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대입 특별 전형(지역의사제)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의료계에선 이런 상황을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불합리한 수가 체계를 비롯해 필수분야 의료진의 법적 리스크를 정부가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다. 다만 이 박사의 발자취를 다시 들여다보며,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스스로를 진지하게 돌아보길 바랄 뿐이다. 그는 생전에 늘 “우리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한국 의료 현실에서 이보다 더 와닿는 말이 있을까 싶다. 우리 사회의 아픈 진실을 고요히 관통하고 있다. 이종욱 박사가 남긴 ‘올바름’의 의미를 깊게 새겨보았으면 한다.
-김봉기 기자, 조선일보(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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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WHO
2005년, 의학의 신(神) 문양이 들어간 'WHO(세계보건기구) 깃발'이 펄럭이는 차량이 조선일보사 건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이종욱 WHO 사무총장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동남아를 막 순방하고 온 방역 사령관 모습이었다. 그는 각국 언론에서 "WHO가 신종 전염병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해 공포에 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감염병 확산 시 국제 공조로 퇴치하는 세계보건규칙을 만들었다. 우한 사태가 그 규칙에 따른 6번째 비상사태 선포다.
▶2015년 6월 우리나라서 메르스가 막 퍼지던 시기, WHO에서 조사단이 날아왔다. WHO는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하면 조사단을 해당 국가에 보내 통제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그들은 마치 방역 사찰관 같았다. 한국의 정보 공개가 늦어져 각 나라가 상황에 제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질책'도 있었다. 그런 WHO가 우한서 신종 코로나가 대거 발생하던 시기에 중국 현지 조사를 안 했다.

▶거브러여수스 현 WHO 사무총장은 연일 중국 두둔하기 바쁘다. 그는 5일 "중국의 조치로 우한 폐렴 해외 확산을 막을 기회의 창을 갖게 됐다"며 "이 기회의 창을 놓치지 말자"고 했다. "중국에 대한 이동 제한을 하는 나라가 늘어나면 공포가 늘어난다"며 여행과 교역 제한 조치를 반대한다. 질병과 싸우는 국제기구 수장이 아니라 마치 중국 정부 '대변인' 같은 모습이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북쪽 빈국 에리트레아 출신이다. 자국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감염병 관련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웃 에티오피아 보건부를 맡으면서 에이즈를 22%, 뇌수막염을 68% 줄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보건 전문가라기보다 의료 사업 관련 기금과 원조를 크게 늘린 외교 전문가에 가깝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 수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중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2017년 아프리카 출신 첫 사무총장이 됐다.
▶요즘 WHO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국제 의료계에서 나온다. 미국이 예산 지원을 대폭 줄이고, 국가 대(對) 국가 직접투자 방식의 의료 사업에 집중하면서 재정난이 심화됐다. WHO 직원의 80%는 일이 생길 때마다 채워지는 비정규직이다. 메르스 담당자도 한 명이다. 전염병 정보는 미국 질병관리센터에 의존한다. 상당수가 현장서 역학조사 한번 안 해본 '회의 전문가'라는 비판도 나온다. 어디서건 의료와 방역이 정치에 휘둘리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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