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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호남 독점, '파란 나라'의 실상] [광기와 타락의 禁酒法.. ] ....

뚝섬 2026. 6. 5. 09:30

[민주당 호남 독점, '파란 나라'의 실상] 

[광기와 타락의 禁酒法... ] 

[멍청한 禁酒法이 남긴 교훈]

 

 

민주당 호남 독점, '파란 나라'의 실상

 

광주·전남북 유권자 34~44%가 민주당원
공고한 독점 구조로 민주주의 파괴 횡행
"너희들은 피해자다" 속삭이며 표밭 유지

5·18도 진보 진영에 의해 철저히 사유화
정권은 한예종 이전도 전리품으로 추진
예술인들이 기득권의 실체 목격하기를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이전 법안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문화예술 산업은 예술가와 투자자, 제작사, 교육기관, 관객이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생태계다. 서울에 집중된 이 생태계와 단절된 채 학교만 옮긴다면 K-문화예술 인재의 요람인 한예종이 지금의 명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6·3 지방선거에 맞춰 추진된 이 계획은 문화예술 산업의 발전이나 학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보다는 정권의 전리품 배분에 불과했다. 학생들의 성명 발표와 반대 여론이 이어지면서 논의는 중단됐다.

 

평소 광주의 문화예술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기업의 투자 환경 조성과 기존 대학 지원이 우선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예종이 광주에 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예술인들이 ‘진짜 기득권’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예술계에는 반기업·반보수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 영화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처럼 보수 정치인과 언론, 기업가를 ‘거악’으로 설정한 작품들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이러한 인식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예술인들이 광주에 온다면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광주는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민주당과 노조, 그리고 특정 시민단체들이 절대적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민주당의 험지인 경북에 출마한 임미애 의원과 남편 김현권 전 의원의 분투기를 그렸다. “꽃은 되지 못하더라도 거름은 될 거다. 거름이 되어야 서울에 꽃이 핀다”는 예고편의 대사를 보며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이미 비례대표 의원직을 지냈고, 출마한 선거마다 20~30%대 득표율을 기록해 선거비용 전액 보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경북은 더 이상 ‘빨간 나라’라기보다 파란색이 섞인 보라색 지역에 가깝다. 

 

경북의 험지에 출마하는 민주당 파란 후보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빨간 나라를 보았니'의 한 장면.

 

반면 호남은 진정한 의미의 ‘파란 나라’다. 2024년 총선 당시 호남 28개 지역구에서 비민주당 후보 가운데 선거비를 보전받은 인물은 이정현·정운천 전 의원뿐이었다. 이 높은 벽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경악할 통계가 나온다. 전북은 유권자의 44.4%인 67만3905명이 민주당원이다. 전남은 유권자의 37.2%(58만2498명), 광주는 34.7%(41만6897명)가 민주당원이다. 대구의 국민의힘 당원 비율 12.4%, 경북의 17.7%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이런 공고한 독점 구조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호남의 무투표 당선자 126명 중 125명이 민주당, 나머지 1명은 진보당 소속이었다. 경선 승리가 곧 당선이니 구태가 판을 친다. 장성에서는 경로당 주민의 휴대폰 10여 대를 모아 ARS 투표를 조작하려 했고, 화순에서도 대리응답 적발로 경선이 멈췄다. 광양에서는 현금 781만원을 쌓아두고 불법 전화방을 운영하던 예비후보가 적발돼 자격이 박탈됐다. 선관위가 들이닥쳤을 때 문이 잠겨 있지 않았을 정도로 범죄 자각이 없는 매관매직의 현장이건만, ‘민주주의 성지’라는 이곳에서 민주주의 파괴 행위는 화제조차 되지 않는다.

 

이곳은 기업가가 아닌 노조와 시민단체가 ‘갑’이다. 대기업 노조는 임금협상을 넘어 지역 내 현안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일부 시민단체는 복합쇼핑몰 입점까지 가로막았다. 여기에 과도한 공공기여 요구까지 더해지니 호반, 중흥, 우미 등 향토 건설사는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다. 그러니 지역 경제는 더욱 위축됐고, 결국 중앙재정 의존도가 높아졌다. 호남 지역의 재정 자립도는 전국 최하위권인 반면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가장 높다. 교통사고 보험금을 노린 한방병원 비율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예술인들의 작품을 소비해줄 민간 자본이 부족하니 정권이 추진하는 프로파간다 사업에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그 먹이사슬에 편입되지 못한 예술인들은 호남을 떠나고 있다.

 

5·18은 진보 진영에 의해 철저히 사유화됐다. 참배하러 오는 보수 정당 지도부를 테러하고, 젊은 직원들의 마케팅 실수를 빌미로 국가 권력이 불매운동을 부추기며 평소 보수 성향 목소리를 내온 기업가를 압박한다. 하지만 과거 5·18 전야제 당일 유흥주점 술자리에 참석했던 김민석, 송영길, 우상호 등은 수십 년간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하며 이번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도 출마했다. 심지어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는 5·18을 자신의 주취 폭행 사건에 대한 알리바이로 활용했다. 오월 단체들이 주최하는 전야제 행사에는 보수 인사와 언론을 ‘액(厄)’이라 비하하는 노래까지 등장했다. 스타벅스 측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면서도 민주당 인사들의 5·18 사유화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5·18을 통해 호남 유권자들에게 “너희들은 영원한 피해자”라고 속삭이며 독점적 표밭을 유지한다. 

 

지난 4월 28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예술극장 앞에서 한예종 총학생회가 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 발의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한예종 학생들이 이런 광주의 모습을 본다면 ‘보수 정당과 기업가는 악’이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도시를 쇠퇴시키는지, 진정한 지방분권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가의 역할, 진보뿐 아니라 보수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광주의 기득권 구조와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파란 나라’의 실상을 담은 예술작품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파란 나라 보여주기’는 없던 일이 됐지만, 이번 소동을 통해 많은 이가 그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아보는 계기는 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한예종 출신이 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은식 내과 전문의·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조선일보(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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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타락의 禁酒法... 

 

세상을 오염시킨 악법은 교훈을 남겼다

 

1920년대를 망친 금주법
풍요의 시대, 술 제조·소비 불법화
밀주 유통돼 돈은 범죄조직 속으로
부패 경찰·정치인·판검사에 뇌물…
악법은 목적·이름 바꿔 반복된다
 

 

소설과 영화에 이어 뮤지컬로도 제작된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과 타락이 교차하는 192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1차 대전 승리 이후 경제·문화적 풍요를 맞이했지만 금주법이라는 악법 뒤로 위선과 부정부패, 범죄가 판치는 혼돈의 시대를 그렸다. /오디컴퍼니

 

1920년대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함께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됐다. 문화적으로도 다른 나라를 압도한 독서와 교양의 시대였다. 대다수 미국인은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냈고, 작가들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리더스 다이제스트’(1922년), ‘타임’(1923년), ‘뉴요커’(1925년) 같은 잡지들이 잇따라 창간됐다. 뉴욕에서 12개 일간지가 발행될 만큼 신문 산업도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경제가 절정에 이르렀던 미국 사회의 화려함 뒤에는 도덕적 위선과 타락, 아메리칸 드림의 공허함도 있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담아낸 바로 그 시대였다. 이 신흥 강국에서 벌어진 금주법(禁酒法) 사태는 당혹스러울 만큼 기이했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술?

 

1919년 비준된 수정헌법 18조에 따라 미국에선 모든 술의 생산·제조·판매·소비가 불법화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 금주법은 한 남자의 집념에서 시작됐다. 오하이오 출신인 웨인 휠러(1869~1927). 그는 어린 시절 술에 취한 농장 일꾼이 부주의하게 휘두른 쇠스랑에 다리를 다쳤고, 그 사건 이후 술에 적대감을 품게 됐다.

 

휠러는 변호사를 거쳐 오하이오 주의 술집반대연맹 회장에 오르며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1905년 그는 금주법을 두고 오하이오 주지사이자 미래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 마이런 헤릭과 정면 충돌했다. 당시 오하이오는 뉴욕,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주로 정치적 위상이 막강했다. 주지사 헤릭이 “오하이오 주에서 모든 술을 금지하자”는 술집반대연맹의 과격한 요구에 동의하지 않자, 휠러는 그의 정치적 입지를 무너뜨리는 공작을 시작했다.

 

목표는 선명했다. 금주법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을 공직에서 몰아내고, 금주법을 통과시키는 것. 휠러는 ‘정계의 거물을 무너뜨리면 모든 정치인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국가·헌법·국민·가치 등 공익이 아니라 출세와 사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휠러와 그의 지지자들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 

 

1920년대 미국에서 금주 운동을 펼쳐 금주법 도입을 현실로 만든 웨인 힐러(1869~1927). /위키피디아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치고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지만 그렇다고 음주가 만악의 원인일 수는 없다. 그러나 휠러는 그런 논리를 폈고, 헤릭을 음주의 해악에 무지한 정치인, 술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냉혈한으로 몰아갔다. 다음 주지사 선거에서 헤릭은 참패했고 대통령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오하이오 주의 정치적 미래는 나중에 29번째 대통령이 될 평범한 부지사 워런 하딩(1865~1923)에게 돌아갔다.

 

휠러가 승리하며 금주법 통과되다

 

휠러의 전략은 성공했다. 정치인들은 술집반대연맹과 척을 지는 순간 재선 확률이 급락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앞다퉈 휠러 앞에 무릎 꿇었고, 그의 이름을 딴 ‘휠러주의(Wheelerism)’가 전국에서 대세를 이뤘다. 1917년이 되자 27개 주가 금주법을 관철시켰다. 수정헌법을 만들려면 9개 주의 지지가 더 필요했는데, 1차 세계대전이 휠러에게 돌파구를 열어줬다. 당시 양조장 대부분은 독일계 미국인들의 소유였다. 선전선동의 대가 휠러는 반(反)독일 정서를 금주운동의 동력으로 활용했다. “맥주 마시는 것은 반역행위”라는 선동이 먹혀들었다. 1919년 네브래스카가 36번째로 금주법의 대의에 동참함으로써 수정헌법 18조가 의회에 상정됐다.

 

하지만 당시 주류사업은 미국에서 5번째로 큰 산업이었다. 이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금주법에 의해 불법화되자 많은 사람이 실직했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하로 숨어들었다. 연방·지방 정부는 주류 산업에서 매년 20억달러를 세금으로 거두고 있었다. 그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부의 손을 떠나 범죄자들 손으로 넘어갔다. 

 

1920년대 미국 뉴욕의 거리에서 경찰 간부들이 보는 가운데 단속 요원들이 하수구에 밀주를 버리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악법은 누군가에게 돈이 된다

 

금주법의 시대는 부정과 부패, 위선과 타락의 시대였다. 이 법은 시행되자마자 미국 전체를 오염시켰다. 단속 요원들은 술을 압수해 원래 소유주에게 되팔았다. 주류 밀매상과 술집 주인들은 부패한 경찰·공무원·판검사·정치인에게 주기적으로 뇌물을 건넸다. 치료 목적으로만 위스키를 처방하던 의사들은 백지 처방전을 팔아 수입을 올렸다. 가장 큰돈을 번 건 시카고 마피아 알 카포네 같은 범죄자들이었다. 금주법 시대에 벌어들인 자금으로 거대한 범죄 조직들이 형성됐다. 

 

알 카포네 /FBI

 

금주법은 거꾸로 술 소비를 늘렸다. 틀어막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 심리다. 금주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휠러는 “공업용 알코올에 독성 물질을 섞어, 밀주를 마시는 자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멈출 줄 모르는 광기(狂氣)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76년 출간된 ‘미국의 식생활(Eating in America)’에 따르면 1927년 한 해에만 1만1700명이 독성 밀주를 마시고 사망했다. 섬뜩하고 기이한 금주법은 13년간 지속됐다. 금주법이 옳다고 믿던 소수의 광기와 금주법으로 돈을 버는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금주법은 1933년 수정헌법 21조에 의해 폐기됐다. 미국 사회가 망가진 뒤였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휠러는 이미 6년 전에 사망했다. 금주법 시대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지만 결국 다 잃어버린 개츠비의 최후처럼 공허하다. 세상을 오염시킨 악법은 교훈을 남겼다, 한번 일어난 일은 과거가 아니라 이름과 목적만 바뀌어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교훈을.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도덕이 해이해지고, 재즈가 유행하고, 불법이 난무하며, 주가는 끝없이 치솟았던 1922년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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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우월주의 단체 KKK도 세력 확장

 

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가 자양분

 

1920년대는 증오의 시대였다. 남북전쟁 전후가 전성기로 알려진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 KKK(쿠 클럭스 클랜)는 사실 진보와 개혁의 물결이 일던 시기에 폭발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미국이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설파하던 1920년대였다. KKK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변화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 당시 주류 세력이 이들의 교묘한 전략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20년 미 시카고에서 벌어진 집회에서 ‘KKK’의 상징인 가운과 고깔모자 차림을 한 회원들. /위키피디아

 

KKK는 지역마다 표적이 달랐다. 중서부에서는 가톨릭 교도와 유대인을, 서부에서는 동양계 이민자를, 동부에서는 유대인과 남부 유럽계 이민자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흑인은 전국에서 타깃이 됐다. 대중은 KKK의 이념에 열광했고, 공공연하게 두둔했다. 절정기에 KKK 회원은 500만명에 달했고, 연방의원 75명도 KKK 회원이거나 공개적으로 KKK 지지를 선언했다. 오클라호마와 오리건은 주지사도 KKK 회원이었다.

 

몰락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1925년 3월, 인디애나주 KKK 지부장 스티븐슨이 젊은 여성을 참혹하게 구타하고 잔인하게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티븐슨은 자신의 권력을 믿고 처벌을 피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안은 엄중했고 종신금고형이 선고됐다. 분노한 그는 KKK와 관련된 인디애나주 최고위층 인사들의 부패를 폭로했다. 주지사부터 인디애나폴리스 시장, 공화당 지부장, 시의원과 판사까지 KKK의 추악한 부패 사슬에 얽혀 있었다. 국민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전국 KKK 조직은 순식간에 붕괴됐다.

 

하지만 KKK가 완전히 소멸했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타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조직과 이념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를 기다리며 숨어 있을 뿐이다.

 

-송동훈 문명 탐험가, 조선일보(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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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禁酒法이 남긴 교훈  

 

금주법 시대의 밀주 단속 현장. /rarehistoricalphotos

 

하나의 법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것이 임무를 완수해 더는 필요가 없게 됐거나 원래 무용했거나 악법이었거나 하는 등의 경우일 것이다. 1933년 12월 4일 미국 워싱턴, 나는 빅밴드 재즈가 흥겨운 지하 비밀 술집에서 위스키를 마신다.

 

말이 비밀 술집이지 취객으로 붐비는 이곳은 항상 이와 같았다. 대략 13년간 미국인들을 ‘바보들의 모순’ 속에서 살게 만든 금주법(禁酒法) 시대가 내일, 수정헌법 제21조를 유타주가 36번째로 비준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36개 주는 당시 미국 전체 주의 4분의 3을 넘기는 경계선이었다. 금주법이 왜 시행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들과 음모론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근본적인 테마(Thema)는 어리석은 금지’의 결과다. 오히려 금주법은 음성화된 주류 사업을 번창하게 했고 마피아와 경찰, 정치인과 공무원 등의 범죄와 부패만 더 창궐하게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범죄율과 알코올 중독률 등이 상승해서,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금주법을 주장하던 시민 단체 어머니들이 금주법 강성 폐지론자로 변모하기도 했다.

 

금주법의 사례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유로도 이어질 수 있다. 말은 도덕적인 거 같은데 실행해 놓고 보면 ‘블랙 코미디 지옥’과 역효과 재앙이 펼쳐지고, 그로 인해 이득을 독점하는 특권층이 양산되는데 그 특권층은 이 억압을 주도한 자들로 드러난다. 피해자에는 그 특권층을 지지했던 자들 역시 포함되는 게 이 미친 짓의 하이라이트(highlight)다.

 

21세기에는 이런 위선으로 포장된 무지와 사기가 형태를 바꿔서 사회적, 문화적 ‘도그마 생태계’를 구성해 돈과 정치 권력을 취한다. 가령 NGO의 선택적 정의나 PC주의가 만드는 ‘넌센스(nonsense) 중세(中世)’가 그러하다. 금주법은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임무를 완수해서 사라진 게 아니다. 요즘도 가면을 쓴 금주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은 더 오르고, 규제하는 자들이 이득을 챙기며, 그들에게 권력을 준 국민은 주택 소유에서 차단된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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