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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민주당과 대통령의 두 갈래 길] ....

뚝섬 2026. 6. 8. 09:48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민주당과 대통령의 두 갈래 길]

[어느 집단에나 40%는 상황에 따라 이기적 또는 이타적]

[플라톤도 당황할 한국 대통령의 말]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민주당과 대통령의 두 갈래 길

 

[朝鮮칼럼]

전국 선거 3연승했지만 서울시장 등 뼈아픈 패배.. '윤석열 덕'은 시효 다해
쓴약 삼고 민심 따를까, 공소취소 등 밀어붙일까.. 오늘 기자회견서 밝혀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6·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16개 광역단체장 중에서 12자리를 차지했다. 4년 전엔 국민의힘이 12군데서 이겼으니 그대로 되갚았다. 하지만 “경북 한 곳 빼고는 민주당이 싹쓸이해 ‘15대1’ 스코어가 나올 것”이라는 애초 전망과는 차이가 상당하다.

 

기초자치단체장 결과를 보면 격차는 더 줄어든다. 전체 227곳 가운데 민주당은 119곳, 국민의힘은 95곳에서 당선됐다(조국혁신당이 호남 2곳, 무소속은 영호남 고루 11곳). 4년 전에는 국민의힘이 145곳, 민주당이 63곳이었으니 더블스코어 이상이었다.

 

게다가 함께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원래 차지하고 있던 의석 가운데 4자리나 잃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부산북갑 국회의원, 유의동 경기평택을 국회의원에게 당한 패배가 뼈아프다. 이런 까닭에 여론과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여권 내부에서도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2024년 총선, 2025년 조기 대선, 이번 2026년 지방선거까지 전국 선거에서 3연속 대승을 거뒀지만 여당으로 치른 이번 선거 결과가 제일 성에 안 찬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질 판이다.

 

눈치 없이 가벼운 언행, 선거 막바지 전북 사수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을 정도의 전략 부재로 정청래 대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명픽’ 정원오·하정우와 ‘뉴이재명’ 모자를 쓰고 나온 김용남도 졌다. 막판 이재명 대통령의 접전지 방문은 선거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아마 민주당 득표에는 꽤 도움이 됐을 거다. 하지만 자기 SNS 계정을 통한 대통령의 여러 날 선 발언,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투표 독려 메시지, 기표소에서 도장 찍힌 투표용지를 들고 나와 사무원을 호출한 문제적 모습 등은 야당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였다. 김어준도 여전히 여당 후보들을 줄 세웠다. 이러니 딱히 누구를 찍어 탓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이렇게 쉬운 방식으로 선거를 치러서 이기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확률이 높다. 윤석열 덕’은 시효가 다했다. 그나마 이번엔 ‘장동혁 덕’을 꽤 봤는데 2년 후 총선에도 통하겠나?

 

그래도 좋게 보자면 정부·여당은 크게 내상을 입지 않을 만큼 딱 안성맞춤의 백신을 맞은 셈이다. 마침 8월에는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고 청와대·내각 개편도 초읽기다. 민심에 반응하기 딱 좋은 기회다. 무엇보다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오늘이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한 시민들이 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앞에서 재선거를 주장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참정권 침해 사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향후 대처 방안을 밝혀야 한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 된 사안에 대해 목청을 높이며 다른 나라 총리, 기업의 마케팅 문제에 대해서도 맹렬히 질타하던 대통령이 유독 이번 사태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평소와 달리 진중한 태도를 보이니 ‘오해’가 쌓일 판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시기와 절차만 국민 의견을 수렴”하라 했던 조작기소 혹은 공소취소 특검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참정권 보장을 위한 선관위 개혁보다 그게 더 급한 일인지, 정말로 하긴 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주가지수와 수출 실적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경제 이슈 중 찜찜한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방선거 기간 수도권 여당 후보들조차 정부와 꽤 다른 이야기를 하던 부동산 문제가 그렇다. 말 폭탄과 규제 폭탄은 계속 투하되는 것인가?

 

초과이익에 대한 국민배당금’ 논의하자며 계란 들고 닭 잡아먹을 생각하는 꼴인 AI도 그렇다. 현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에는 AI수석실, 대통령 직속으로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신설됐다. 그런데 10개월 만에 수석은 부산에, 장관급 상근부위원장은 광주에 출마했다. 황당한 일이다. 이제 그 자리는 비어 있다. 일이 돌아가긴 돌아가고 있나?

 

이 대통령과 민주당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쓴약으로 삼고 민심을 따르는 게 첫 번째 길이다. 방향은 분명하지만 실천은 꽤 어려울 거다. 두 번째는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하고 싶은 거 해치우는 길이다. 공소취소를 밀어붙이고 ‘완전한 내란종식’을 위해 ‘검찰개혁에 이은 사법부 개혁’과 또 뭐 언론개혁이든 여러 개혁에 매진하는 거다. 많이 해봐서 잘 아는 방향이다. 어느 길로 갈지 이 대통령이 밝혀야 한다.

 

-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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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단에나 40%는 상황에 따라 이기적 또는 이타적

 

30%는 이기적, 30%는 이타적… 평범한 40%가 공동체 변화 좌우해
그래서 정치가 중요, 政敵 악마화 대신 상생 추구하는 일꾼에 맡겨야
 

 

사람일까, 상황일까? 인간의 본질을 연구해 온 많은 학자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고전적인 질문이다. 예를 들어,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행동은 개개인의 고유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그것보다는 제도, 환경 같은 맥락, 즉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심리학자 리 로스는 지금까지 널리 인용되는 간단한 실험을 해봤다. 우선, 한 대학교 기숙사의 사감에게 평소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행동이 도드라진 학생을 추천받았다. 그렇게 선별한 학생을 적절히 섞어서 무작위로 둘로 나눴다. 한쪽 그룹에는 ‘공동체 게임’을, 다른 쪽 그룹에는 ‘월스트리트 게임’을 할 거라고 말하고서 상호 협력 여부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공동체 게임을 할 거라고 언급한 그룹의 구성원 가운데 약 70%는 상대와의 협력을 선택했다. 이 가운데는 평소 사감이 “이기적인 자식”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도 포함돼 있었다. 반면, 월스트리트 게임을 언급한 그룹에서는 평소 “착한 사람” 평가를 받던 이들을 포함해서 약 67%가 자기 잇속만 챙겼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이겼다.

 

2004년에 발표된 이 실험 결과를 접했을 때, 오히려 다른 숫자에 관심이 갔다. 굳이 공동체 게임이라고 강조까지 했는데도 꿋꿋이 자기 잇속을 챙긴 약 30%가 있었다. 반대로 월스트리트 게임을 하니 ‘네 잇속을 챙기지 않으면 당한다’라고 경고를 받았는데도 협력을 선택한 약 33%가 있었다.

 

혼자서 ‘30% 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세상의 비밀이 이 간단한 실험에 숨어 있다. 세상에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기꺼이 타인과 협력할 준비가 된 약 30%가 있다.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악다구니를 쓰며 자기 잇속만 최우선으로 챙기는 약 30%가 있다. 이타적 행동의 미담으로 세상이 살 만해 보이다가도, 냉혈한과 사기꾼 소식에 인류애가 사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양극단의 30% 사이에 상황에 따라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40%가 있다. 그들은 평소에는 타인과 협력하면서 어울려 살아가다가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기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의 평범한 모습이다. 이 세상이 좀 더 함께 살 만해지려면 바로 이들 40%를 이기적인 행동보다는 이타적인 행동으로 이끌어야 한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강남구청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장련성 기자

 

한국 사회의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저신뢰’ 사회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제도(상황)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촘촘하게 구성원의 일탈을 감시하고 제재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었다. 교사는 잠재적인 뇌물수수자고, 과학자는 잠재적인 연구비 횡령자이며, 보육 교사는 잠재적인 아동 학대범 취급을 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상황을 만드는 데에 핵심 역할을 하는 정치인도 문제다. 대통령부터 툭하면 “불법” “엄벌” “패가망신”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린다.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양대 정당의 주요 정치인은 상대를 악마화하고 양극단의 극렬 세력에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생결단식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황이 낳은 결과는 자명하다.

 

앞의 실험으로 비유하자면, 한국 사회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우리는 월스트리트 게임을 하고 있으니 네 잇속만 챙겨, 잘못하면 너는 아웃이야!’ 하는 상황 신호를 계속 주는 모습이다. 그 결과, 당연히 상황이 바뀌면 기꺼이 타인과 어울리고 협력하면서 이타심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 40%를 이기적인 행동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학자 아이리스 보넷과 브루노 프레이는 일면식도 없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소액을 주고 다른 쪽 파트너와 자유롭게 나눠 갖게 했다.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상대에게 한 푼도 안 주고 다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학생은 28%에 불과했다.

 

역시 지독하게 자기 잇속만 챙기는 약 30%가 이 실험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돈을 나누기 전에 파트너끼리 얼굴을 한 번씩 확인하게 했다. 서로 얼굴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한 푼도 주지 않은 학생의 비율은 28%에서 11%로 떨어졌다. 나중에는 파트너의 개인 정보를 살짝 알려줬다. 결국, 모든 학생이 소액이라도 파트너와 나누기로 결정했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에게 ‘신뢰’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주면 본래 이타적인 30%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40%까지 기꺼이 이타적인 행동에 동참한다. 거기에 자기 평판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까지 만들면 언제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 30%까지 본색을 숨기고 이타적인 행동에 동참하게 할 수 있다.

 

결국 이 판을 바꾸는 열쇠는 정치에 있다. 상황 신호를 만드는 것도, 부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마침 그 판을 바꿀 기회가 6월 3일 우리에게 있었다. 당선자의 면면을 살펴보자. 상대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딱지 붙이기보다, 내가 발 디딘 지역 사회를 ‘공동체 게임’의 공간으로 바꿀 진짜 일꾼이 보이는가?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 조선일보(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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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도 당황할 한국 대통령의 말

 

투표 독려하며 "최악의 저질들"
플라톤의 취지를 잘못 인용했고
갈라치기 화법은 너무 감정적…
더 신중하고 품위있게 말하기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플라톤의 말대로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투표 하셨나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엑스 캡처

 

오늘 기자회견을 하는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말이 간결하고 곧았으면 한다. 말재간을 자제하시고, 거친 말을 삼가시길 바란다. 그동안 대통령의 말은 품위의 하한선을 넘나들 때가 있었다. 스타벅스의 이벤트 논란과 관련, 대통령은 ‘저질 장사치’ ‘비인간적 막장 행태’ ‘인간의 탈’ 같은 과한 표현을 했다. 말도 힘 빼고 쳐야 멀리 간다. 상대를 비판할 땐 겸손해야 한다.

 

대통령의 투표 독려는 심했다. “투표 포기는 (…) 공동체를 해치는 그들을 편드는 것”이라 했다. 누굴 거명하진 않았으나, ‘공동체를 해친다’는 건 무서운 말이다. 한 발짝 더 나가면 ‘반국가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제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대통령은 ‘공동체’란 말을 6번 썼다. “공동체를 배반한 이들을 단죄” 같은 표현이다. 이 말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부당 축적한 재산” 같은 표현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취임사 때부터 ‘대동 세상’ ‘공동체’를 강조해 왔고, 최근엔 ‘약탈 금융’이란 말도 하던데 운동권 콤플렉스로 오해받기 좋다.

 

대통령은 5월 31일 “투표 포기는 (…) 국민을 속이고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며 나와 가족의 삶을 망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 했다. 어금니를 앙다문 말투였는데 논리 구성이 요령부득이다. 지금 ‘사익을 챙기고’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쪽은 집권 세력이다. 권력이 있어야 남용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대통령은 플라톤을 인용했다면서 “정치 무관심의 대가(代價)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 말했다. 순간 뜨악했다. 같은 편이면 선량하고, 반대편은 최악 저질인가. 마치 내부의 적을 상정한 듯 감정적이었다. 갈라치기를 해서 ‘정치적 스파크’를 일으키는 수법은 대통령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플라톤 인용이 어색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쓴 ‘국가’에서 관련 대목은 플라톤의 발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과 대화 중에 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사람들이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를 당하는 것일세.”(‘국가’ 제1권 347c)

 

그런데 대통령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최악의 저질’로 바꿨다. 영문법으로 지적한다면 ‘비교급’(worse)을 ‘최상급’(the worst)으로 바꿔 놓았다. 표현이 강하다고 메시지가 강력한 건 아니다. 억지 ‘최상급’보다 ‘진실’만을 말할 때 전달 효과가 크다.

 

게다가 플라톤은 ‘모든 시민이 꼭 투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 대화를 전한 것이 아니었다. 플라톤은 참여 민주주의가 아니라 ‘철인 정치’를 주장했다. 플라톤이 전한 소크라테스의 말은 “통치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면 자신보다 못한 부적격자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는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본투표 당일까지 “플라톤의 말대로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투표하셨나요?”라고 했다. 제발 적당히 하면 좋겠다.

 

대통령 메시지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선출된 그들이 (…) 충직한 머슴이 될지, (…) 악성 지배자가 될지는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옛날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3월 초 꼬맹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앞으로 순한 양이 될지 무서운 호랑이가 될지는 너희들 손에 달렸다.” 대통령이 국민을 초등생 취급한 건 아니겠지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말이 지나치면 화가 되어 돌아온다. 아무쪼록 오늘 회견을 하는 대통령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말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시기 바란다. 알고 있는 부분만 정직하게 답하면 된다. 그리고 비유법 좀 안 쓰면 좋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분향하고 있다. 추념사에서 대통령은 ‘공동체’란 말을 6번 썼다. “공동체를 배반한 이들을 단죄” 같은 표현이다. /뉴시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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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Radiohead ‘2+2=5′(2003)

 

1949년 6월 런던의 출판사 세커앤드워버그에서 소설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저자의 이름은 에릭 블레어. 하지만 필명인 조지 오웰로 더 알려진다. 소설의 제목은 ‘1984’.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진실부(Ministry of Truth) 직원 윈스턴 스미스는 신문 기사를 고쳐 쓰는 일을 한다. 당(黨)의 예언이 빗나가면 과거 기록을 수정해 예언이 맞았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당이 ‘2+2=5’라고 선언하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

 

조지 오웰이 그린 이 섬뜩한 디스토피아는 그 이후로 수많은 아티스트의 영감을 자극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 소설을 뮤지컬로 만들려다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자 ‘1984’라는 노래를 남겼다. 록밴드 뮤즈는 오웰과 헉슬리의 세계관으로 가득 채운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3년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가 여섯 번째 앨범 ‘Hail to the Thief’를 발표했다. 이라크전 개전 직후였다. 보컬 톰 요크는 전쟁에 반대했지만 영국 정부는 여론을 무시하고 참전을 결정했다. 앨범의 오프닝 트랙은 소설 ‘1984’에서 제목을 직접 빌려왔다. “당신은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꿈꾸는 자인가/ 나는 영원히 집에만 있으련다/ 2 더하기 2가 언제나 5가 되는 그곳에(Are you such a dreamer/ To put the world to rights?/ I’ll stay home forever/ Where two and two always makes up five).”

 

이 노래는 저항의 언어가 아니다. 방관의 고백이다. 2003년의 톰 요크가 겨냥한 것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총리였다. 그러나 그 화살은 사실 다른 곳도 향하고 있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전쟁이 시작되던 날 소파에서 뉴스를 보며 채널을 돌렸던 사람들을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2+2=5’를 선언하는 데 이제 고문실이 필요하지 않다. 클릭 몇 번으로 충분하다. 오웰이 두려워한 것은 권력의 폭력이 아니라 진실의 소멸이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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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개헌해서라도 선관위 견제받게 하겠다”. 선관위 개혁 나올 때마다 미지근하셨는데 이번엔 진심이시길.

 

○2030세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개표장 앞에서 사흘째 항의. 청년의 분노를 색안경 끼고 보면 큰코다칩니다.

 

○인도에선 입시비리·취업난에 분노한 청년들, ‘바퀴벌레黨’ 만들어 거리로. 밟으면 꿈틀하는게 지렁이뿐이랴.

 

-팔면봉, 조선일보(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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