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간다움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의지]
[戰場의 음악회]
음악, 인간다움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의지

전쟁이 시작되면 인간은 살아남는 일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먹을 것과 피란처를 구하고, 가족의 안전을 확인한다. 그래서 전쟁 뉴스 속에서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극장이 파괴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 눈앞에 삶과 죽음이 오가는 상황에서, 음악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은 언제나 예술을 사치처럼 보이게 만든다. 총성과 폭격 앞에서 음악은 너무 무력하고,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는 지하 공간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하르키우는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도시라 전쟁 초기부터 가장 심각한 공격을 받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공습경보가 일상이 됐고, 많은 시민들이 한동안 지하철역과 지하공간을 피란처로 삼아야 했다. 정상적인 공연장은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예술가들은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과 전선이 드러난 공간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이어갔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지상에서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는데, 지하에서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전쟁은 사람에게서 일상을 빼앗아 가지만, 예술은 그 무너진 일상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끝까지 붙잡게 만든다. 음악은 총알을 막을 수 없고 건물을 복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아직 살아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이런 장면은 역사 속에서도 반복돼 왔다.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에게 포위됐고, 도시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몰려 갔다. 굶주림과 추위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거리는 침묵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도시에서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는 포위전이 시작된 레닌그라드에서 교향곡 7번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대피했지만, 작품은 곧 소련 전체에서 ‘저항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1942년, 레닌그라드 한복판에서 이 작품을 실제로 연주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세워졌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였다. 단원 대부분이 굶주림과 전쟁으로 죽거나 전선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아 있던 연주자들은 영양실조 상태였고, 리허설 도중 쓰러지는 일도 반복됐다.
그래도 연주의 의지는 이어졌다. 당국은 전선에 흩어져 있던 군악대 연주자들까지 불러 모았고, 쇼스타코비치의 악보는 포위망을 뚫고 레닌그라드로 전달됐다. 폭격과 포위 속에서 가까스로 도착한 악보는 도시의 마지막 숨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1942년 8월 9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홀에서 교향곡 7번이 연주됐다.
그날 연주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연주는 스피커를 통해 도시 전체와 독일군 진영 방향으로도 송출됐다. 굶주린 연주자들은 거의 움직일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연주를 이어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음악은 단순한 교향곡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는 외침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쟁은 단지 사람의 생명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전쟁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은 단순한 취미나 위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음악을 아름다움과 연결해서 생각한다. 물론 음악은 아름답다. 그러나 음악의 진짜 힘은 단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음악은 인간이 가장 무너진 순간에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삶이 완전히 폐허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다시 하루를 버티게 하고 살아가려는 의지를 붙들어 준다. 그래서 음악은 평화로운 시대의 사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극한의 상황 속에 놓였을 때 더욱 절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지만,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려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음악은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고 폭격을 멈추게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힘은 될 수 있다. 그래서 전쟁 속의 음악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의지이기도 하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동아일보(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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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場의 음악회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1992년 5월 어느 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 한복판에 적국 세르비아 민병대가 쏜 포탄이 떨어졌다. 빵을 사려고 줄 서 있던 시민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발 다음 날, 텅 빈 거리에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첼로를 꺼내 들었다. 사라예보 필하모닉 소속의 이 연주자는 폭격의 잔해 속에서 첼로를 켰다. 그가 연주하는 동안 포격은 중단됐다. 건물 곳곳에 숨어 있던 세르비아 저격수들도 그를 쏘지 않았다. 연주는 22일간 지속됐다.

▶옛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15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 가운데 교향곡 7번은 ‘레닌그라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제정 러시아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렸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이 도시를 870여일간 봉쇄하는 바람에 100만명 넘게 아사한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교향곡 ‘레닌그라드’는 그곳에서 태어난 쇼스타코비치가 나치에 맞서 싸우는 고향 동포들에게 바친 곡이다.
▶당시 교향곡 연주는 레닌그라드 라디오 교향악단이 맡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단원들이 리허설 도중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때마다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시민과 군인이 빈자리를 채웠다. 봉쇄가 한창이던 1942년 8월 9일, 마침내 전쟁터 한복판에서 곡이 연주됐다. 포연 속에 울려퍼지는 연주를 들으며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곡을 감상했다고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우리가 겪은 교향곡이다.”
▶나치 희생자였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이번엔 우크라이나인들이 악기를 들었다. 수도 키이우에선 키이우 클래식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며칠 전 독립광장에서 야외 콘서트를 열었다. 독립광장은 2014년 유럽연합(EU) 가입을 갈망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친러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한 역사적인 장소다.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선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전투가 없을 때면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전란에 휩쓸린 주민들을 위로한다.
▶교향곡 ‘레닌그라드’ 악보는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나치의 봉쇄를 뚫고 서방에 전해졌다. 전 세계가 그 곡을 연주하고 듣는 것으로 침략자를 규탄했다. 전쟁 동안 미국에서만 62회나 연주됐다. 지금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우크라이나 접경 도시에서도 반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 소리가 연일 울려 퍼지고 있다. 음악은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평화를 향한 염원은 강철처럼 단단하다. 푸틴이 그 선율을 끝까지 외면했다간 파멸당한 나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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