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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짜리 자격증과 히딩크의 배고픈 혁신] [日 월드컵 감독은.. ] ....

뚝섬 2026. 6. 30. 10:07

[3년짜리 자격증과 히딩크의 배고픈 혁신]

[日 월드컵 감독은 고졸 비주류]

[팀 스포츠에 진심인 美정치인들]

 

 

 

3년짜리 자격증과 히딩크의 배고픈 혁신

 

네덜란드는 3년마다 갱신하는 지도자 자격증이 명장의 비결
철저한 실력 검증 우선하도록 우리 축구·정치 시스템 리셋을
 

 

2002년 월드컵 때 포르투갈과의 본선 D조 마지막 경기에서 박지성이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성공시킨 후 팔을 활짝 펼친 채 히딩크 감독을 포옹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조선일보DB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을 선물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 ‘마이 웨이(My Way)’를 집필하던 당시, 필자는 본사 선배와 함께 네덜란드 현지에서 두 달 반을 머물렀다. 매일 암스테르담과 아인트호벤을 오가는 히딩크 감독의 차량에 동승해 구술을 받아 적고, 녹음한 파일을 밤새 풀어 글로 옮기며 그의 삶을 추적했다.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 고향 바르세벨트의 이웃들도 만났다. 그의 평생 연인 엘리자베스의 조력을 받으며 써 내려갔다.

 

필자가 집요하게 파고든 질문은 하나였다. 화려한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니었던 그는 어떻게 축구 변방의 국가들을 세계 정상급으로 올려놓는 마법사가 되었을까.

 

그 답은 정교한 ‘시스템’과 끊임없는 ‘공부’에 있었다. 전문대 졸업장이 전부였던 히딩크는 선수 은퇴 후 동네 축구팀을 맡아 한 단계 올라설 때마다 엄격한 자격증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그는 암스테르담 시내 어느 허름한 건물 앞을 지나면서 “바로 여기서 몇 달씩 수업을 들었다”며 “최종 시험을 통과해야만 다음 상위 리그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때 4년제 대학 학위도 받았다고 한다.

 

히딩크를 배출한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축구 지도자 교육 시스템을 자랑한다. 네덜란드 축구협회의 자격증은 유럽축구연맹(UEFA) 가이드라인에 따라 프로 최상위 리그를 지휘할 수 있는 ‘UEFA Pro’부터 ‘UEFA A·B·C’, 그리고 생활체육 단계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촘촘하게 구성돼 있다. 1부 리그 정식 감독이 되기 위한 최고 등급인 ‘UEFA Pro’ 과정은 전술 고도화는 물론 미디어 대응, 구단 경영진과의 소통, 수백억 원대 선수단의 심리를 관리하는 최고경영자(CEO) 코스로 악명이 높다.

 

이 시스템이 가장 무서운 것은 평생 보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네덜란드에서 모든 지도자 자격증의 유효 기간은 딱 3년이다. 자격증을 갱신하려면 3년 동안 최신 전술 세미나, 비디오 분석, 스포츠 심리학 강좌 등을 이수해야 한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지도자는 가차 없이 자격이 박탈된다. 이 냉혹한 검증 체계가 바로 인구 1700만명의 소국 네덜란드가 히딩크, 요한 크루이프, 루이스 판 할 같은 세계적 명장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원동력이다.

 

당시 그에게 미래의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히딩크는 ‘평생 공부하는 자세’라고 답했다. “나는 자격증을 받기 위해 전문 심리학까지 공부했다. 선수들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기량을 극대화하는 지도력을 보여야 성공한다.”

 

이런 시스템에서 다져진 히딩크였기에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파벌과 학연·지연 중심의 관행을 단칼에 타파할 수 있었다. 오직 실력과 데이터만으로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무명 선수를 과감히 발탁했고, 세계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잇따라 패하며 ‘오대영’이라는 비난을 받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며 기적을 일궈낸 그의 마법은 한국을 넘어 호주·러시아 등에서도 이어졌다.

 

오늘날 히딩크의 인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축구장 밖에서도 유효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시가총액 1조달러(1500조 원)를 넘나드는 고래로 성장한 한국 민간 기업들과 달리, 우리 정치권과 축구 행정가들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80년대 동네 구멍가게의 패거리 정치 공학에 머물러 있다. 철저한 실력 검증도, 주기적인 업그레이드도 없이 우물 안에서 얄팍한 말장난과 팔 비틀기식 행태만 반복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3년짜리 면허증 체계가 없었다면 오늘의 명장 히딩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축구도 한국 정부도 시스템을 리셋해야 한다.

 

-최우석 국제 담당 에디터, 조선일보(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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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월드컵 감독은 고졸 비주류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1993년 ‘도하의 비극’을 꼽는다.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종료 20초 전 이라크 선수가 동점골을 넣는 순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 골로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모리야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괴롭고 슬픈 일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그 후로 나를 지탱해 왔다”고 돌이켰다.

▷한국에서는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경기가 모리야스 감독에게 각별한 건, 그가 선수로서 유일하게 출전한 월드컵 예선전이었기 때문이다. 모리야스 감독은 국가대표가 되긴 했지만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축구 명문고 출신도 아니었고, 실업팀에 입단할 때도 마지막 순번으로 지명됐다. 실업팀 감독이 “빠르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으며, 강하지도 않다”며 지명을 망설였다는 후문도 있다.

▷실업 선수가 된 후에도 2년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오전에 회사에서 일하고 오후에 축구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워 3년 차에 주전이 됐다. 이후 17년 동안 357경기에 출전했지만 주로 팀을 떠받치는 살림꾼 역할이었다. 2004년 지도자 변신 후에도 유소년 코치로 시작해 8년 만에야 자신이 선수로 뛰었던 구단의 감독이 됐다. 누가 봐도 ‘잡초형’에 가까운 커리어다.

 

▷2018년 일본축구협회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그를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지명하자 일본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J리그 우승을 3차례 이끌었지만 외국인 명장도, 축구 명문대 출신도 아닌 고졸 비주류 감독이 해외파 스타 군단을 이끌 수 있겠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협회는 청소년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맡기며 그에게 미래를 걸었다. 모리야스 감독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연파하며 그 믿음에 답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고 전술에 적극 반영하는 스타일이다.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한 유럽 빅리그 선수들로부터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새벽 몇 시든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선수를 직접 호텔 로비에서 배웅하는 인간미도 있다. 다만 시간 준수, 동료 비방 SNS 금지, 내부 갈등은 내부에서 풀기 등 세 가지 원칙만큼은 흔들림 없이 지킨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일본은 튀니지를 꺾고 네덜란드, 스웨덴과 비기며 무패로 32강에 진출했다. 핵심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자리를 모리야스 감독이 발굴·육성한 젊은 선수들이 메웠고, 그 과정에서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평가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역경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비주류로 살면서 겪은 실패와 역경이 그를 ‘역전 감독’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장원재 논설위원, 동아일보(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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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스포츠에 진심인 美정치인들 

 

에릭 슈미트 공화당 상원의원이 10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의회 자선 야구 경기에서 그림 같은 다이빙 캐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만큼 스포츠에 진심인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런 열정이 지금 북중미 월드컵이나 프로 풋볼(NFL)·농구(NBA)·야구(MLB) 같은 엘리트 체육에만 국한돼 있는 건 아니다. 도시의 피트니스센터는 대개 새벽 4~5시면 문을 여는데, 해가 뜨기도 전부터 운동으로 아침을 여는 남녀노소로 열기가 후끈하다.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체육을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선 종목을 하나 정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 만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동네 리그는 물론 전국을 누비며 각종 대회에 참석하는데, 이걸 따라다니며 서포트하는 게 부모의 임무다.

 

이러니 정계에도 왕년에 잘나갔던 체육 선수 출신이 많다. 지난 10일 의회 자선 야구 경기에서 좌익수로 나와 명품 다이빙 캐치를 선보인 에릭 슈미트 공화당 상원의원은 대학 시절 야구 선수로 뛰다 로스쿨에 진학한 뒤 정계에 입문했다. 선발투수로 출전해 7이닝을 완투하며 공화당의 승리를 이끈 그렉 스투비 하원의원도 고교에서 야구를 했다. 해군사관학교 재학 중 축구 선수로 활동한 토드 영 상원의원은 미국의 월드컵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앞두고 그림 같은 발리슛을 영상으로 인증하며 “국가대표에 남는 자리 하나 없냐?”고 물었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은 프린스턴대 유니폼을 입고 수준·인기가 NBA 못지않은 대학 리그를 누빈 적이 있다.

 

야구, 농구 같은 팀 스포츠의 힘은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혼자만 잘해서 이길 수 없으니 역할 분담, 리더십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항상 룰 안에서 경쟁해야 하고, 동료는 물론 감독·심판과도 보조를 맞춰야 하니 규율이 몸에 밴다. 혈기가 왕성할 때 부대끼며 같이 땀 흘린 경험은 강렬하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란 걸 보여주는 사회적 증명이기도 하다. 미 주류 사회의 정치인, 기업인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선수 경력을 어필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물론 미국 정치도 아름답지 않다. 당파 싸움이 빈번하고 보는 이들을 낯 뜨겁게 하는 수준 낮은 언쟁도 종종 벌어진다. 그래도 스포츠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그게 정치 양극화 시대에 숨구멍을 틔워주고,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하게 만든다.

 

문득 여의도의 정치인들은 신체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 궁금해졌다. 스마트폰 속 한 줌 소셜미디어가 세상의 전부인 양 말하고 행동하는 금배지나 그 지망생들은 누군가와 같이 땀 흘려가며 무언가를 성취하고 실패해 본 경험이 있나. 시끄럽다는 주민 민원 때문에 학교에서 운동회를 못 하고, 내 아이가 다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부모 등쌀에 교사들이 소송이 무서워 체육 수업을 꺼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잘 나가고, K컬처가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들 이런 나라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조선일보(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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