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은 복불복이다]
[특급호텔 빙수 전쟁]
수박은 복불복이다

'수박 도시락'을 배달 주문하면 손질의 귀찮음 없이 달콤한 수박을 맛볼 수 있다. 단, 가격은 반 통에 약 3만원. /인스타그램
수박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다. 멜론이다. 망고다. 대체로 나는 열대 과일을 좋아한다. 과일은 역시 열대에 자라는 게 맛있다. 강한 햇빛에 당도가 높아지는 덕이다.
수박은 귀찮다. 먹고 나면 일이 많다. 껍질이 너무 두꺼워서다. 처리하는 방법도 복잡하다.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다. 하얀 부분도 마찬가지다. 씨는 일반 쓰레기다. 나는 씨를 따로 골라내는 게 귀찮아 그냥 먹는다.
요즘은 수박을 배달 앱으로 시켜 먹는다. 통째로 시키지도 않는다. 가지런히 잘라 놓은 상태로 시켜 먹는다. 당연히 더 비싸다. 요즘 수박 한 통은 대체로 3만원이다. 잘라서 파는 곳은 반 통에 3만원 정도다. 내 귀찮음을 처리해 주는 대가가 1만5000원이다.
그나마 저렴하게 수박을 팔던 곳이 앱에서 사라졌다. ‘수박 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반 통 2만원 정도 팔던 체인점이다. 요즘 온라인 과일 가게들은 수박에만 이런 문구를 써놨다. ‘비가 많이 와서 당도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다. 사람들 불만이 너무 많아서다.
수박은 복불복이다. 참외는 하나가 달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걸 먹으면 된다. 수박은 너무 크다. 하나가 달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당연히 다른 과일보다 사람들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마포 유명 김치찌개집이 얼마 전 배달 앱에서 사라졌다. 문을 닫은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사람들 요구가 구체적으로 너무 많아서라고 한다. 고기에 붙은 기름이 많아도 불만이고 적어도 불만일 것이다. 옛날식으로 많은 양을 푹 끓이는 집이라 요구를 다 들어줄 수도 없다. 이러다가는 수박도 못 시켜 먹는 날이 올 것이다.
시장에서 두들겨 보고 사던 시절에는 불만이 없었다. 자기 선택이다.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남의 선택에는 원래 불만이 많다. 나라면 더 좋은 수박을 골랐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탓이다. 그랬을 리가 없다. 참고로, 이 글은 정치 관련 글이 아니다. 요즘은 수박 이야기만 꺼내도 사람들이 두들길 준비를 한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7-22)-
______________
특급호텔 빙수 전쟁

해마다 여름이 오면 특급호텔들 사이에 빙수 전쟁이 벌어진다. 특히 S호텔과 내가 있던 J호텔의 경쟁은 전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치열했다. 공식 발표는 없지만, 업계에선 승패를 다 안다. 그 무렵 몇 해 동안은 우리의 승세였는데, 타이틀을 지켜야 하는 챔피언이 더 불안한 법이다. 질까 봐 잠도 안 온다. 어느 날 재미있는 영상 하나가 눈길을 붙들었다.
그해 여름 내가 개발한 샤인머스캣 빙수를 고스란히 흉내 내다가 결과물이 엉망으로 실패하는 과정이 명랑하게 담겨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진지하면서도 발랄한 말투, 위선도 위악도 없는 솔직함과 건강함. 구독자 3만이 안 되는 신출내기 유튜버였지만, 그런 젊은이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빙수를 만든 요리사라고 실명을 밝히고, 찬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댓글을 남겼다. 말미에는 언제라도 호텔로 놀러 오라고 적었다.
며칠 뒤 정말 연락이 왔고, 호텔로 찾아왔다. 나는 빙수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고 그의 활동을 응원한다는 말도 전했다. 그날의 만남이 담긴 영상이 나가자 하루 만에 조회 수가 100만을 넘었다. 특급호텔 총주방장과의 만남이라는 그림이 눈길을 끌었겠지만, 그보다는 기획된 만남이 아니라 격려의 댓글로 시작된 실제 우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상에서 사람 냄새를 맡은 것이다. ‘셰프님 진짜 진심이구나’ 같은, 영상에 잔뜩 달린 선한 댓글들 또한 잔잔한 감동이었다. 얼마 뒤 그는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다시 감사 인사를 보내왔다. 반듯하고 훌륭한 젊은이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니, 참으로 큰 보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가끔 그의 채널에 들어가 구독자 수를 살핀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표시를 누르며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는 이제 구독자 36만의 파워 인플루언서다. 음식에 진심인 젊은이들을 사랑한다. 언제라도 기꺼이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평생 알아낸 모든 비법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다.
-유재덕 파불루머, 조선일보(26-07-22)-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餘暇-Cit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돈가스, 폭신한 돼지고기와 바삭한 튀김옷의 조화] .... (6) | 2026.07.19 |
|---|---|
| [보양식보다 휴식이 보약이다] [삼복더위 보양식의 ‘지존’은 염소?] (1) | 2026.07.19 |
| [화가 유영국을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이병철·이건희가 본.. ] (0) | 2026.07.15 |
| [에어컨 켜자마자 18도 설정, 더 빨리 시원해질까?] [폭염 시대… ] (0) | 2026.07.14 |
| [순대] [세련된 외관, 표준화된 맛 대신 누구나 입맛 따라 순댓국] .... (2) | 202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