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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번 징용배상 문제, 前·現 정부가 공동 책임지고 풀어야] ....

뚝섬 2022. 8. 22. 08:34

[시간 번 징용배상 문제, 前·現 정부가 공동 책임지고 풀어야] 

[징용 피해자 모독한 99엔] 

[다시 뜨는 '히노마루 비행기']

 

 

 

시간 번 징용배상 문제, 前·現 정부가 공동 책임지고 풀어야

 

서울 용산역 광장의 강제징용 노동자상./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징용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 재산의 현금화 결정을 미뤘다. 일본 기업의 재항고를 심리 없이 기각하고 현금화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할 수 있는 기한을 넘긴 것이다. 대법원은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가기 전 정부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징용 배상 문제는 직접적으로 4년 전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책임 있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징용은 일제의 지배와 통치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한국 입장에서 불법이다. 따라서 피해를 본 한국 국민이 불법에 가담해 이익을 본 일본 기업에 대해 배상권을 갖는다. 하지만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청구권 협정에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유무상 5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으면서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이 조항을 들어 대법원의 배상 결정은 한국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가 57년 전 협정 한 줄로 다 끝났다는 일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 청구권까지 해결됐다고 약속한 한국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법원의 최종 배상 판결은 2018년 나왔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해결했어야 한다. 하지만 문 정부는 책임은 외면하고 “죽창가” 운운하면서 반일 감정을 자극해 정치에 이용하고 합리적 논의를 방해했다.

 

-조선일보(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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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피해자 모독한 99엔

 

‘내 목숨 값 99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인 정신영 할머니(92)가 이 한 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할머니의 통장에는 일본 돈 99엔, 한국 돈으로 931원의 입금 내역이 찍혀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 강제노동을 할 당시 받아야 했던 후생연금을 일본 측이 77년 만에 액면가 그대로 보낸 것. 할머니는 “애들 과자값도 아니고… 이걸로 일본 사람들 똥이나 닦으라고 해라”며 분개했다.

▷정 할머니는 1944년 만 14세 나이에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사로 끌려갔던 강제징용 피해자다. 배가 고파 쓰레기통에서 밥을 주워 먹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1년 넘게 노역에 시달렸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노역 기간에 가입했던 후생연금(근로자 연금)의 탈퇴 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자료가 불에 탔다며 확인조차 거부하던 일본 후생성은 정 할머니가 내민 연금번호를 받고 나서야 마지못해 가입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보낸 연금탈퇴 수당이 단 99엔이었다.

▷일본의 개정 후생연금보험법에는 연금탈퇴 수당을 지급할 때 화폐가치 변동에 따른 차액을 보전해 주는 규정이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모두 적용되는 이 규정이 유독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예외다. 처음도 아니다. 일본은 앞서 2009년에도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99엔, 2014년에는 ‘연금 가입 기간이 좀 더 길다’며 4명에게 199엔을 보냈다. 그나마 당시 환율로 1000원대를 넘었던 99엔은 이젠 정말 껌 값도 안 된다.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자 우롱이나 다름없다.

 

성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의 기계적인 대응은 피해자들을 할퀸 또 다른 상처였다. 이들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동전을 던지며 항의했고, 재심사 청구를 비롯한 법정 싸움에도 나섰다. 오랜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이제 전범기업들의 실질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강제징용 피해자 중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이들은 유족을 포함해 1000여 명. 고령의 피해자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한일 관계의 핵심 뇌관이다. 정부는 해법을 찾기 위해 ‘대일 저자세 외교’ 비난을 감수하면서 일본과의 외교적 협의를 시도하고 있다. 반발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느라 쩔쩔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막상 책임을 져야 할 일본은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99엔 송금’을 반복하며 공분과 반발만 부추기고 있다. 이래서야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어떻게 일본에 보낼 수가 있겠는가. 8·15 광복절이 다가온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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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뜨는 '히노마루 비행기'

 

야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는 군국주의 시설로 악명이 높다. 이 악명을 더욱 심화시키는 곳이 신사 안에 있는 '유슈칸(遊就館)'이란 전쟁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붉은 히노마루(일장기)를 그린 검푸른색 전투기를 바로 접한다. 진주만 공습과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에 사용된 야스쿠니의 상징 '제로센(零戰)'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히노마루와 벚꽃이 그려진 '오우카(櫻花)'란 괴상한 비행 물체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타고 조종해 적(敵)을 타격하도록 만든,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인간 폭탄'이다.

유슈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이런 병기를 보면서 '전쟁의 잔인성'을 떠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70년 전에 벌써 이런 비행기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는 소감도 자주 들었다. 실제로 제로센을 비롯한 '라이텐(雷電)', '하야부사' 등 일본 전투기는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첨단 전투기로 이름을 날렸다.

 

전쟁 직후 미군이 가장 경계한 일본의 기술은 항공 분야였다. 진주만 공습 때 당했던 끔찍한 체험이 반영됐다. 기술의 명맥을 끊기 위해 모든 일제(日製) 전투기를 파괴하고 자료를 몰수했으며 기업을 해체했다. 그것도 모자라 '항공금지령'을 내려 항공기 제조와 연구 자체를 금지했다. 그 공백이 10년이 넘는다.

일본은 검질긴 나라다. 특히 기술에 관해 그렇다. 1956년 금지령이 풀리자 일본 정부는 '5인의 사무라이'라고 불린 기술자를 한 지붕에 모았다. 전전(戰前)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소속돼 '제로센'을 만든 호리코시 지로. 일본 최고 명문 제1고등학교와 도쿄제대 공학부를 수석 졸업한 천재였다. 인간폭탄 '오우카'를 만든 기무라 히데마사. 도쿄제대 교수를 지내면서 전투기 제조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이외 3명도 전쟁 당시 전투기 제조의 특급 엘리트였다.

이들은 감추고 있던 '제로센' 도면을 꺼냈다. 전투기 도면을 토대로 개발을 거듭해 프로펠러 여객기 'YS-11'의 설계를 완성했다. 전투기 기술이 여객기 기술로 거듭난 것이다. 그 후 설계를 토대로 항공기 제작을 주도한 인물 역시 미쓰비시 출신인 도조 데루오, 'A급 전범'으로 전후 미군에 의해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차남이었다. "넌 기술자로 살아남아 보국(報國)하라"는 도조의 유지(遺志)가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YS-11' 생산은 1972년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중단됐다. 양산에 성공해 182대를 생산한 직후였다. 채산성이 악화됐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항공 패권을 장악한 전승국 압력에 굴복한 탓이라는 설도 있다. 이 결정으로 일본의 항공기 생산은 다시 30년에 가까운 공백을 맞게 된다.

20일 아침 일본 조간신문을 펼치니 1면에 '히노마루 제트기, 비원(悲願)의 취항'이란 큼지막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 항공사들이 미쓰비시가 개발에 성공한 제트여객기를 대량으로 도입해 노선에 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항공기 역사의 세 번째 도전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다른 전투기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전후 해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이 열린 1964년, 후계기업들은 '미쓰비시' 간판 아래로 재집결했다. 해체되지 않은 기술자들의 염원이 기업을 부활시킨 것이다. 지금 그 염원이 '히노마루 비행기'를 또 한번 세계의 하늘에 띄우려 하고 있다. 일본의 '기술(技術) 민족주의'가 다시 비상(飛上)하는 순간이다.

 

-선우정  도쿄특파원, 조선일보(0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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