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사회와 대통령의 소통]
[똑같은 ‘오만의 위기’가 아니다]
[위험 수위를 넘긴 한국의 ‘진영 정치’]
말 많은 사회와 대통령의 소통
[朝鮮칼럼]
갓 100일 된 정부에 대해 비판·조롱으로 넘쳐나는 말들… 건설적이기보단 파행 심화
윤 대통령의 직설적 스타일… 때로 得보다 失 많더라도 '쇼통' 뒤에 숨는 것보단 낫다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 추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 초년생 정부의 좌충우돌과 시행착오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질책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 조롱, 분석, 처방이 연일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 글을 편하게 쓰자면 여기 묻어가는 게 대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악마의 대변인처럼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이러한 비판이며 훈수는 온당한가. 지나친 우려일지 모르지만, 혹여 이처럼 넘쳐나는 말들이 건설적 비판으로 작용하기보다, 이제 갓 100여 일 된 정부의 혼선과 국정 운영의 파행을 심화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회의 작동에서든 말의 과잉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경계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는 국가의 명운이 종종 이에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가 김훈은 병자호란 당시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말로 싸우다 무너진 국가의 정경을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아래처럼 묘사했다.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廟堂)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아 출렁거렸다.'(남한산성, 9쪽).
2022년 8월 우리 사회의 모습은 1636년 겨울 국난 상황에서 빚어진 일들을 무색하게 한다. 진영으로 갈라진 정치 집단과 언론은 사나운 눈길과 독한 혀들을 잠시도 놀리는 법이 없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시비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입을 다물면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어 또 다른 시비를 낳는다.
이렇듯 24시간 감시와 공방의 대상이 되는 최고 권력자의 말은 어떠해야 할까. 어디에도 답이 없는 정치의 오랜 난제지만, 주목할 유형들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왕에 대해 김훈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임금은 늘 표정이 없고 말을 아꼈다. 지밀상궁들조차 임금의 음색을 기억하지 못했고 임금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했다. (중략) 목소리가 낮고 멀어서 상궁들은 머리를 숙여서 임금의 목소리를 들었고, 나이 먹어서 귀가 어두운 내시들은 옥음을 모시지 못했다.'(10~11쪽 발췌)
필자의 눈에 100여 일 전까지 우리 사회를 이끈 전(前) 대통령의 소통이 그러하였다. 피아를 막론하고 그의 말은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듣는 이들이 각자 알아서 해석해야 하는 의도적 모호함이었다. 그 결핍을 정교하게 연출한 이미지 소통, 이른바 '쇼통'이 메웠다. 그 결과 적대적 진영 간의 틈새는 더욱 깊어지고, 이들이 주고받는 말은 한층 모질어졌지만, 그는 지지율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보전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8.18/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이 점에서 이전 대통령과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명료한 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소통이었다. 그는 자신을 품으려던 진보 집권 세력의 위선에 맞서 자기 말을 지켰고, 핍박받았고, 국민은 그런 그를 이 사회의 최고 권력에 올렸다.
수많은 눈과 입이 권력자 주변을 에워싸고 물어뜯을 거리를 노리는 말 많은 사회에서 윤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은 출근길 문답의 말실수며 문자 메시지 누출 사건처럼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계산을 넘어 민주주의 실천 차원에서 그의 진솔하고 적극적인 소통은 분명 진전된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말실수를 피하자고 대통령이 무(無)소통 내지 반(反)소통으로 돌아서야 하는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대통령이 쇼통 뒤에 숨어야 하는가. 이를 통해 그와 가족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지키란 얘기인가.
진영으로 갈라진 말 많은 사회에서 건설적 비판과 악의적 공격의 경계는 사실상 사라지고 없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비판에 귀를 열되, 끝없는 트집 잡기를 통해 자신을 위축시키거나 속칭 가스라이팅하려는 시도를 걸러내야 한다. 출근길 문답을 지속하고, 각종 식사 자리며 문자 등을 통한 격의 없는 소통도 활발히 전개하는 게 옳다.
윤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소통 활동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자신의 말이 진실성과 공정성을 상실할 위험이다.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논란이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이처럼 가장 근접한 이에 대해 진실 되고 공정한 소통을 지켜갈 수 있을지가 윤 대통령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선일보(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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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오만의 위기’가 아니다
尹, 이명박 문재인과 다른 정치적 환경
정권 초 민심위기, 남은 4년 반전 계기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게 531만 표 차이로 압승했다. 이어진 2008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153석)과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등 범보수 세력은 국회 185석을 차지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여권은 ‘고소영’ 인사,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등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25개 구청장 중 4곳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민심이 가장 싫어하는 게 오만이다. 역대 대선과 정권 5년을 보면, 오만한 태도 때문에 대선에 승리하고도 짧은 시간 만에 집권세력이 스스로 미래를 걷어차는 일이 반복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폐족(廢族)’이라고 했던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10년 만에 문 대통령 당선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그냥 집권한 게 아니라 557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승리했다. 이어진 2020년 총선에서도 대승했다. 내부에서 ‘20년 집권’이라는 오만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캠코더’ 인사, 임대차 3법 통과 등 독주가 이어졌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기로에 섰다.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다짐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취임 100일 만에 민심은 등을 돌리려 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민생 살리기, 미래를 다시 세우는 정책 수립을 위해 온 나라가 힘을 모아도 불안한 시기에 집권세력이 염치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탓이 크다. 급기야 직전 여당 대표는 대통령을 향해 공개 비난을 시작했고, 자당과의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의 인사 참사와 정책 혼선도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지지자들조차 “이런 사람들을 계속 믿어도 되나” 하는 신뢰의 위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늘 요동치는 게 민심이라지만 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 때와 크게 다르다.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압도적 총선 승리로 여의도 세력을 대거 물갈이 시킬 수 있었다. 정적(政敵)과 비토 세력이 힘을 잃었고, 새로 공천을 받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단단한 다수파 친위세력을 구축했다. 불통 속 정책 추진과 무리한 인사를 감행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그런 정치적 조건이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지지층 구조도 다르다. 이념적 지역적 성향이 강했던 과거 정부와 달리 서울 출신인 윤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들 가운데에는 비판적 지지가 상대적으로 많다. 지지층 이동이 쉽다는 뜻이다. 하루빨리 민심을 되찾지 못할 경우 어느 순간 정권 중반부터 고립무원에 처할 수 있다. 여의도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뜻을 배제한 정계 개편, 개헌 등에 나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현실화될 경우 윤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국정 장악 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집권 초 불안정한 민심을 반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국민은 그래도 최소 연말까지, 적어도 1년은 지켜볼 것이다. 연말 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정비하고, 대통령실과 내각을 보강하면서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단순하다. 민심을 잡고 지지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이제 윤 대통령 자신에게 달렸다.
-길진균 정치부장, 동아일보(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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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수위를 넘긴 한국의 ‘진영 정치’
다양한 의견 공존, 열린 토론 찾기 힘든 시대
진영 내 권력과 의견 다르면 배신자로 낙인
우리 정치 ‘야만의 시대’ 언제 끝나는가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의 사후 시바타 가쓰이에와 일본 열도의 패권을 다투었다. 임진왜란 9년 전의 전투에서 도요토미에게 패한 시바타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오다의 누이이기도 한 시바타의 아내는 이전 결혼에서 얻은 세 딸을 남기고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전국시대 최고의 미녀로 유명했던 어머니를 닮아 세 딸 모두 외모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첫째인 자차는 도요토미의 측실이 되어 아들 히데요리를 낳고 오사카성의 실권을 장악했다. 둘째인 하쓰는 지방 영주의 정실이 되었고, 셋째인 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과 결혼해 에도성(지금의 도쿄)의 안주인이 되었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언니와 동생 중 하나를 잃어야 하는 둘째 하쓰는 두 가문의 공존을 위한 협상에 진력을 다했지만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둘째의 애타는 노력도 헛되이, 오사카성이 함락되었을 때 둘째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며느리이자 동생의 딸이었던 센히메뿐이었다.
둘째가 오사카성과 에도성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힘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후 자녀가 없던 그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없었다. 무사들의 존경을 받는 오다의 조카이면서 도쿠가와 안주인의 언니였지만 그가 만일 첫째처럼 어느 성의 실권을 쥐고 있었거나 남자였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하를 다투는 싸움에서 중립이나 중도란 있을 수 없었다. 주군의 뜻에 거슬리는 의견을 개진한 자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처참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검수완박 이슈로 세상이 한참 시끄러울 때 만난 한 정치학자는 한국의 정치 환경이 전근대 시대로 퇴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나는 그 노학자의 혜안에 언제나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근대 이전에는 권력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권력 다툼은 목숨을 건 투쟁이어야만 했다. 조선 시대에도 다른 견해를 가진 당파가 공존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19세기 들어 일당 독주 체제가 굳어졌다. 20세기 초 서양에서 공부한 선각자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선거에서 패배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 서양의 정치 제도에 매우 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들이 꿈꾸던 대로 한국은 식민지 시대와 독재 시대를 끝내고 드디어 민주 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의견의 공존, 열린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그 노학자의 진단이었다.
그 노학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마치 오사카성과 에도성처럼 각 진영이 높은 벽을 세우고 진영 밖에 있는 자들은 공존할 수 없는 적이라고 선언하는 모양새다. 권력을 잡으면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을 잃으면 보복에 시달리고, 그래서 권력이 있을 때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성을 쌓아 두려고 한다.
진영을 장악한 이들은 진영 내 권력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매몰차게 잘라낸다. 박근혜 시대에는 친박을 넘어 진박이 나왔고 유승민이 진영 밖으로 몰렸다. 문재인 시대에는 문파를 넘어 대깨문이 나왔고 금태섭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윤석열 시대에는 윤핵관과 이준석의 다툼이 거세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박지현이 이른바 개딸들의 표적이 됐다. 유승민, 금태섭, 이준석, 박지현에게 잘못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견을 말하는 자를 내부 총질을 한다며 몰아세우면 누가 권력에 거스르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에도 문제가 많지만 트럼프와 대적한 공화당 의원이나 아베에 대적한 자민당 의원이 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들어보기 어렵다.
노학자의 한탄을 들으며 나는 에도와 오사카에 성을 구축하고 어느 한쪽이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던, 주군과 다른 뜻을 개진하면 배신자로 몰살하던 그 야만의 시대가 떠올랐다. 근대 문명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야만성을 순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야만의 유산이 남아 있다.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문재인에서 윤석열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우리 정치의 야만성은 여전하다. 이 야만의 시대는 언제 끝나는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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