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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본 실리콘밸리 성공 비결] 네거티브 규제는 '안 된다고 명시한 것' 외에는 모두 할 수 있는 방식.. [직장 내 호칭 변화]

뚝섬 2019. 11. 4. 07:32

도로에서 본 실리콘밸리 성공 비결

 

한국에서 20년을 운전하다 실리콘밸리에 왔는데 며칠간 도로에서 애를 먹었다. 유턴(U-turn) 때문이었다. 차를 돌려야 하는데 유턴 허용 표시가 없어 초보처럼 계속 직진만 했다. 한참 후에야 다른 차를 보고 깨달았다. 딱히 금지 표시가 없으면 어디서든 유턴해도 된다는 것을. 한국에선 '유턴 표지판' 같은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미국은 명백하게 금지하는 곳 외에는 어디서나 유턴이 가능했다. 말로만 듣던 '네거티브(negative) 규제'였다.

네거티브 규제는 '안 된다고 명시한 것' 외에는 모두 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금지 목록에 추가한다. 반면 한국은 '된다고 명시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다. 세상에 없던 신()사업이 나왔을 때, 한국은 법 조항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지만 미국은 일단 해볼 수 있는 것은 이 차이 때문이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도로 곳곳에 엄청난 액수의 교통위반 벌금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101번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카풀 차선 위반, 최소 벌금 490달러'라는 무시무시한 표지판〈사진〉을 만날 수 있다. 1차로는 탑승자가 2명 이상인 차량만 달릴 수 있는 카풀 차선이다. 이를 어기면 최소 57만원의 벌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시내 곳곳에도 '적색 신호 위반, 최소 벌금 336달러( 40만원)'와 같은 위협적인 표지판이 서 있다. 한국의 버스전용차로, 신호 위반 벌금( 6만원) 7~10배 수준이다. 이런 표지판을 만나면 일단 자세부터 고쳐 앉게 된다. 명확한 규정과 자유를 주되 이를 어기면 호되게 처벌하는 일종의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그래서인지 자율적으로 법을 잘 지키는 분위기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한적한 주택가 사거리에서 한 시간 동안 차들이 'STOP(정지)' 표지판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멀찌감치 앉아 지켜봤다. 미국 도로에서는 STOP 사인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 3초간 대기했다가 좌우를 살피고 출발해야 한다. 경찰이 없을 법한 곳인데, 100대 중 45대가 차를 잠시 세웠다가 출발했다. 사거리에서 맞은편이나 좌우 양쪽에서 오는 차가 없어서 굳이 멈출 필요가 없는 경우만 센 것이다. 38대는 속도를 살짝 줄이면서 통과했다. 아예 안 지킨 차는 17대에 불과했다. 법 규정대로 정확히 3초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 주택가 도로에서 대부분 차를 잠깐 멈추거나 속도를 줄였다가 출발했다.

처음에 낯설었던 '틴팅(tinting·선팅)' 규정도 이젠 옹호론자가 됐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햇볕 따갑기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차 앞유리와 운전석·조수석의 양쪽 창문은 짙은 틴팅이 금지돼 있다. 안전 때문이다. 도로 위의 모든 차는 내부가 훤히 보인다. 살이 타면 선블록을 바르고, 눈이 부시면 선글라스를 낄 뿐 불평하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이 보이니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게 되고, 사거리와 횡단보도에서도 눈짓으로 인사하며 양보하게 된다. 한국처럼 까맣게 칠한 승합차를 혼자 타고 버스전용차로를 내달리는 꼼수도 불가능하다. 차창(車窓)처럼 '투명한 규제'에 대한 신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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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도전해보게 한다. 최대한 자율을 보장한다. 대신 규범을 어기면 엄청난 타격을 준다. 이때 규범·벌칙은 투명하고 공평하게 적용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은 매일 달리는 도로에도 스며 있었다.

 

-박순찬 실리콘밸리 특파원, 조선일보(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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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호칭 변화


특파원 때 미국 정부 관리를 만나 '미스터 ○○'했더니 "내 아버지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니 그냥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미국에선 처음 인사 나눈 후엔 대개 서로 이름을 부른다. 존댓말 문화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선 낯설다. 그런데 이름만 부르니 대화의 내용과 질이 달라졌다. "차관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데이비드, 넌 어떻게 생각해?"는 완전히 다른 대화다. 거리감이 좁혀지고 눈높이가 달라졌다.

한국계 미국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2012년 취임식 때 직원들에게 자신을 미국 이름 '(Jim)'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은행 안에서 일할 땐 '김 총재님'이나 '김 박사님'이 아니라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라고 한 것이다. 그런 김 총재가 한국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났을 땐 한국말로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해요"라고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단둘이 있을 때도 '선배님'이라 부른다. 문화에 따라 친근감과 격의 없는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칭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CJ 2000년부터 '부장님' '과장님' 대신 이름 뒤에 ''자를 붙였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했다. 한 임원은 "딸 같은 비서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니 적응이 안 되더라"고 했다. 젊은 직원들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호칭만 바꿨을 뿐인데 존중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SK는 과장·차장·부장 대신 이름 뒤에 '매니저' 'PL(프로젝트 리더)'을 붙여 부른다. 제일기획은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모두 이름 뒤에 '프로'란 호칭을 쓴다. 카카오는 각자 '대니얼' '니콜' 등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른다.

삼성전자도 ''이나 '프로'같은 호칭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윗사람 눈치 보는 문화로는 세계 1등 기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5단계 직급도 줄여 의사 결정 단계를 간소화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처럼 창의적인 IT(정보기술)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조직 문화부터 바꿔 보겠다는 것이다.

▶2002
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평소 선수들이 선후배 가리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이었다. 경기 중 긴박한 상황에선 간단히 이름만 부르는 게 더 효과적이다. 호칭 바꾼다고 당장 수직적 문화가 수평적으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선 최고 경영자가 평사원들과 자주 만나 주요 현안과 성과를 공유한다. 거기서 인턴사원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호칭 파괴가 실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정도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강인선 논설위원, 조선일보(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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