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국경에서 바라본 중국의 '동해 出海' 파장]
["김정은은 경제 지도자 될지, 암살당하는 독재자 될지 선택해야"]
북·중·러 국경에서 바라본 중국의 '동해 出海' 파장
두만강 통해 동해·태평양 진출하려는 중국, 동북아 안보 흔들어
김정은은 협상 테이블서 전략적 몸값 높여… 한·미·일 공조 필요
중국 훈춘시 방천(防川) 망해각(望海閣)에 올랐다. 5월 중·러, 6월 북·중 등 연이은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강조한 동해 출해를 현장에서 둘러봤다. 네 번째 방문인데 코로나 이전보다 조망 시설이 보강되고 현대화된 모습이었다.
멀리 푸른 동해를 바라보니 왼쪽은 러시아 하산시, 오른쪽은 북한 라선시 두만강동 마을이다. 가운데로 눈물 젖은 두만강이 유유히 흐른다. ‘닭 울음소리 3국에 들리고, 개 짖는 소리 3국을 깨우며, 웃음소리 이웃 나라에 전해지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3국 접경 지역임을 시사한다. 먼발치에서 북러를 잇는 철교가 두만강을 가로지른다. 하지만 정작 중국은 눈에 보이는 동해로 나갈 수 없다. 북·러 경계가 중국이 15㎞ 거리의 동해와 접하는 것을 막았다. 팀 마샬의 베스트셀러 ‘지리의 힘’이 강조한 묘한 국경 지역이다.

역사는 1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1860년 청나라는 제2차 아편전쟁 패배로 영국·프랑스·러시아와 각각 베이징 조약을 체결했다. 앞서 아이훈 조약으로 흑룡강 이북을 넘겨준 데 이어 연해주와 남부 하바롭스크 지방의 40만㎢를 러시아에 할양했다. 1886년 ‘중러 훈춘 동계조약’으로 중국의 바다 진출이 간신히 인정됐다. 1991년 중소 국경 협정 제9조는 오성홍기를 단 중국 선박이 두만강 제33계점 이하에서 동해로 항행할 수 있음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서류상의 권리일 뿐, 중국 선박은 동해로 나갈 수 없었다.
북중러 3국 관계와 지정학적 이해가 끊임없이 엇갈렸다. 세 나라의 경제 발전 수준과 협력 의지도 달랐다. 무엇보다 도강(渡江)의 물리적 조건이 최악이었다. 1938년 장고봉 사건 이후 일본은 강바닥에 말뚝을 박아 항로를 막았다. 수십 년간 방치된 두만강 하류는 토사가 쌓이고 연안 섬들이 뒤엉켜 대형 선박이 통항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이 초급장교 시절 근무했던 작은 섬 녹둔도가 토사로 러시아 국경에 붙어 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장벽은 교량이다. 1959년에 건설된 북·러 우의교의 철제 상판 높이는 7~11m에 불과해 대형 화물선은 다닐 수 없다. 2024년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 후 착공돼 지난달 완공한 신(新) 북·러 공로교 역시 상판 높이가 8m이며, 교각이 촘촘하다. 두 교량이 두만강 하구를 동시에 가로막는 ‘양교쇄강(兩橋鎖江)’의 구조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3국 국경지대가 주목받은 것은 1991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이 출범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세 나라의 이해는 또 달랐다.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해주 연안의 항만 등 아태지역 연결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중국은 훈춘을 창구로 삼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자루비노, 북한의 나진항, 청진항을 동해와 연계하는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을 추진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자본을 활용한 라선시의 특구 개발을 노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6월 8일 김일성광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환영하는 의식이 성대히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뉴스1
한 세기 넘게 잠자던 중국몽이 동해에서 꿈틀대고 있다. 국제정치는 생물처럼 움직인다. 베이징은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한다. 동북 3성 물류 거리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훈춘에서 15㎞ 거리 두만강 하구 대신 1000㎞를 돌아 다롄항을 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탈피하려 한다. 동해 출해만 확보하면 바로 태평양으로 진출한다. 대만을 동쪽에서 포위하는 해상 안보 구상도 펼 수 있다.
지난 5월 베이징 중·러 정상회담 이후 시 주석은 “출해 문제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기존의 ‘건설적 대화’에서 ‘1991년 협정 제9조 정신에 따라 북한과 함께 계속 3자 협상을 잘해 나간다’는 표현으로 격상했다. 문장 한 줄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30년간 움직이지 않던 러시아가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5년 차에 들어선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힘의 방정식을 바꾸었다.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는 극동 개발을 모색한다. 열쇠는 중국의 자본과 물동량이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사상 최고치인 러시아가 두만강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북-러 국경에서 자동차 다리 양측 구간을 연결하는 작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4월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7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시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동해 출해를 직접 명시하는 대신 “변경 통상구의 전면 재개통, 민항 항공편과 국제 여객열차 운행 재개” 등 두만강 연계 경협을 강조했다. 북한 경제를 대륙의 물류·경제권에 편입하여 만주를 태평양과 연계하는 대규모 구상이다. 중국은 설비·시공 인력을 대고 북·러는 물길과 항구를 연다. 교량을 높이며 하상 준설은 중국 자본으로 해결하고, 그 대가로 항행 규칙과 물류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다.
훈춘에서 육로·철도로 라선까지 이동한 뒤 동해로 출항하는 철도-해운 연계 복합 물류(鐵海聯運) 방식이다. 투먼-나진 도로와 나진항 1·3부두를 사용하는 구상이다. 동시에 두만강 하류 물길을 열어 직접 동해로 나간다. 김정은은 두만강 출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림으로써 중·러 사이에서 전략적, 경제적 몸값을 극대화한다. 중국의 두만강을 통한 동해 출해는 동북아 해상 안보 및 물류의 판을 바꿀 것이다.
일본은 초긴장 상태다. 서쪽에 있던 적이 북쪽에서도 나타나는 형국이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이 동해 진출에 성공하면 홋카이도와 사할린 사이의 소야해협을 거쳐 북극해로 이어지는 부동 해로를 확보하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해군 북부전구 소속 군함 5척이 지난 3월 말부터 동해상에서 일본 측의 감시 체제를 정밀 조사했다. 중국의 군사적 실력 행사가 시작됐다고 일본은 우려한다.
미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중·러 3자 물류·안보 협력의 제도화는 미국의 대북 제재 체계를 구조적으로 잠식한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대만·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을 돌파해야 하는데, 두만강을 통한 동해 진출은 도련선을 우회하는 북방 출구다. 중국이 동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되면, 우리로선 새로운 해군 전력이 필요하다. 두만강가의 상황과 각국 복안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것이 우선이다. 안보와 경제 두 관점에서 고심이 필요하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조선일보(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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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대통령, “앞으로 선거 없다” 사실상 북한식 종신집권 천명. K-열풍 틈타 ‘NK-독재’도 수출됐나.
-팔면봉, 조선일보(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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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경제 지도자 될지, 암살당하는 독재자 될지 선택해야"
[전략 보고서 '김정은의 대담한 도전' 펴낸… 방찬영 키메프대학 총장]
'돈 줄 테니 변화하라'는 햇볕정책 방식은 곤란
전략적 청사진 갖고 北에 개혁 처방전 줘야
1993년 訪北 당시 김용순 '북한 많이 어렵다, 개혁·개방 가능성 말해달라'고 요청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핵(核)보유로 인한 손익 계산을 해봤다. 국제 제재로 북한 GDP는 -4.6%로 떨어졌다. 나라 운영이 안 된다. 통치 자금도 만들 수 없다. 당신이 체제 유지를 하려면 공개 처형을 계속하는 수밖에는 없다. 인권 문제에다 탈북자들은 더욱 늘어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 계획이 중도에 무산됐다."
방찬영(80) 카자흐스탄 키메프대학 총장은 작년 말 방북을 추진했다. 그는 구(舊) 소련 연방 카자흐스탄의 개혁·개방에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외국인으로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경제특보와 경제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방찬영 총장은“북한은 체제 내 개혁으로는 안 되고,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팔순 나이에 "북한 개혁·개방이 마지막 숙원 사업"이라며 북한 전략 보고서를 만들었다. 방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강연안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그러자 북한에서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 담당 부서에서 책임을 져야 할까봐 김정은에게 보고도 안 했을 것이다. 김정은을 만났으면 '당신이 살려면 비핵(非核)으로 가야 한다. 경제적 분석을 해보면 체제 관리 능력을 잃었고 파탄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대놓고 말해줬을 것이다."
서울에 체류 중인 그와 두 차례 만났다. 어떤 문제에서는 격렬한 논쟁도 있었다.
그는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채 끝나지 않은 1993년과 1994년 두 차례 들어간 적이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개혁·개방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초청받았다.
"당시 평양에서 만난 김용순 통일전선부장(2003년 사망)은 '북한이 많이 어렵다. 미국이 우리를 압살하고 있다.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뒤 1996년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북 아태위원회 사절단과 만나 북한 개혁·개방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어떤 내용이었나?
"북한이 개혁·개방을 단행하면 김정일 통치 체제는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 밖이다. 그때 개혁·개방을 반대했다는 뜻인가?
"당시에는 그랬다. 북한에서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식의 개혁·개방을 해내기가 어려웠다. 주체사상과 권력 정통성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남쪽에는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 존재하고 있기에 자칫 개혁·개방을 하다가는 정권이 먼저 무너질 수 있었다."
―어찌 납득이 안 되는데….
"북한의 경제 낙후는 주체사상과 선군(先軍)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정치 체제의 개혁 없이는 개혁·개방이나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
―정치 개혁을 먼저 하도록 주문하면 되지 않았나?
"김정일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구현자로서 권력을 승계했고 정통성을 확보했다. 주체사상을 포기하는 것은 정통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개혁·개방을 할 수가 없었다."
―중국처럼 '경제특구(特區)'를 통한 점차적인 개방은 가능했지 않았나?
"경제특구에는 합영법, 송금법, 토지임대법 등이 마련되고, 노동시장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개성공단의 예로 보듯이 북한 정부가 계약 주체가 되어 노동력을 일괄 공급하는 식이면 개방의 의미가 없다. 체제 내 개혁으로는 안 되고,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때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또 개혁·개방을 뒷받침할 돈도 없었고…."
―개혁·개방을 위해 돈이 필수적인가?
"개방은 그전까지 사상(思想)교화, 처벌 등으로 통제해온 북한 사회의 모든 부조리가 공개되는 걸 의미한다. 그런 수단을 더 이상 쓸 수 없다. 당과 군 엘리트나 주민들을 '돈 인센티브'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기업의 보상 시스템처럼?
"그렇다. 또 개혁의 핵심은 '사유화(私有化)'다. 자본·기술·경영 노하우가 없는 국영기업은 사유화가 될 경우 거의 다 도산한다. 엄청난 부작용이 생긴다. 배급 제도도 무너진다. 주민 복지 제도와 기반 시설 인프라를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때는 이런 돈을 받아낼 상대가 없었다. 해온 대로 그냥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을 때 북 사절단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충격받을 게 뭐 있는가. 해온 대로 하면 되는데?
"기대를 꺾은 것이다. 살길을 찾아 달라고 했는데 도움이 안 된 거다. 암 환자에게 '수술해도 안 된다'고 하면 화내는 것과 같다. '박사님은 다시는 북한에 못 들어온다'는 경고를 받았다. 내가 너무 솔직했다. 학자의 양심으로 거짓말할 수 없었다."
―독재 정권 체제의 안정만 염두에 두고, 그 속에 있는 주민들의 고통은 생각 안 했나?
"무슨 뜻인가?"
―개혁·개방으로 정권이 붕괴되면 그거야말로 북한 주민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김씨(
金氏)의 세습 독재 체제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정권 붕괴는 통제 불능의 혼란만 낳고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이는 남한에도 재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할 수 있는 기회다."
―김정일 정권 때는 개혁·개방이 어렵다고 했다가, 지금에 와서는?
"개혁의 당위성이 생겼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체제'를 물려받았다. 경제 규모에서 장마당의 비율이 50%로 커졌다. 이제는 개혁·개방을 해도 아버지(김정일) 때처럼 부담이 안 된다. 무엇보다 핵(核)무기의 보유로 상황이 급전됐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 정권은 체제 관리가 어렵게 됐고, 동시에 이로 인해 개혁·개방을 추진할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핵무기로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북한이 핵과 화학무기 등을 모두 포기하는 조건으로 남한에 연간 300억달러씩 10년간 받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체제 보장 약속을, 일본에는 식민지 보상을 지불받고…. 이렇게 하면 개혁·개방의 밑천이 된다."
―북한이 돈을 받는 조건으로 핵 포기를 할 리도 만무하고….
"북한 체제를 유지하려면 이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통치 자금도 못 만드는 형편이 된다. 김정은이 북한의 위대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지도자가 될지, 아니면 암살당하는 독재자로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연 300억달러(31조원)씩 10년간 줘야 한다고 했나?
"심도 있는 경제 분석을 통해 나온 액수다. 300억달러 중 100억달러는 현찰로 받아 엘리트 계층 관리와 인건비 등에 쓴다. 나머지 200억달러는 '바우처(voucher)'로 받아 한국 기업들에 인프라 건설을 맡기는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활로가 된다."
―우리 국민이 그런 천문학적 지원에 동의할 것 같은가? 국민 세금을 더 거둘 것인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GDP의 2.5%다. 급격한 붕괴로 인한 통일 비용은 이보다 열 배나 더 든다."
―통일된 상태라면 감수해야 할지 모르나, 분단 상태에서 우리가 북한 경제 개발을 위해 연간 31조원을 내놓는 걸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 말고는 북핵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다. 10년에 걸쳐 완벽하게 비핵화를 검증하고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든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이 북한 개발에 참여하면 경제적 살길이 열린다. 한반도가 동북아의 경제 허브가 될 수 있다."
―햇볕정책을 채택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막대한 대북 지원을 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핵무기였다고 보수층은 보는데?
"나는 햇볕정책에 찬성한 적이 없다. '우리가 돈을 주니까 너희가 변화해라'는 햇볕정책은 곤란하다, 포괄적인 북한 개발 청사진을 갖고 '너희가 발전하려면 이렇게 개혁·개방을 하라'고 처방전을 줘야 한다. 그런 청사진이 없이 가령 경수로 건설에 얼마를 지원해주는 식은 도움이 안 된다."
―솔직히 우리는 북한 정권에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현 정권의 '한반도 상호 신뢰 프로세스 원칙'은 이제 의미가 퇴색됐지만, 북한이 믿을 수 있는 자세를 보이면 도와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현 정권의 신뢰 프로세스 정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뭔지 모르겠다. 선언만 있지 내용이 없었다.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역대 정부는 늘 북한의 변화에 손을 내밀어 왔다. 다른 계산을 하고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은 북한이지 않은가?
"진정성 있는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평화 공존·통합이 목적이지, 북한이 원치 않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줘야 한다."
―북한 권력 수뇌부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집단이면 벌써 살길을 택했다. 이제는 공포정치를 일삼는 김정은 정권의 교체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압박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나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나 전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의 보고서는 김정은에게 전달되지 않았는데.
"오는 10월 우리 대학에서 중국·러시아·영국 전문가들을 불러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시진핑과 푸틴에게 전달되게 할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이 다시 북한에 접근하는데?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실패한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원치 않는다. 오히려 북한이 개혁·개방하고 화해 국면이 되면 미군의 영향력이 준다."
☞방찬영은
1975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교수 겸 아시아문제연구소장을 맡아 구(舊)소련의 경제 문제 전문가로 알려졌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에서 강연을 했고 고르바초프와도 면담했다. 그 뒤 소련 연방인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연결돼 개혁·개방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 시장 경제를 담당할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설립을 제안했고, 1992년 중앙당 공산당 간부학교 건물에 키메프대학을 세웠다. 대학 지분 중 60%는 그의 소유, 나머지 40%는 국가가 갖고 있다. 이 대학은 서방 교수진에 의해 영어로 강의하며, 학비는 8000달러가 넘는다. 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한다. 최고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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