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세대와 6·3세대의 뒤늦은 깨달음]
[4·19 주역들의 이승만 재평가, 나라에 희망 주는 화해와 통합]
['1948년 건국'이라 하지 못할 이유 없다]
4·19세대와 6·3세대의 뒤늦은 깨달음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있어 4·19 가능”
“불가능하다던 산업화, 日 손잡고 성취”
4·19혁명 51주년이던 2011년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이 4·19묘지에 참배하려다 4·19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승만과의 화해는 4·19정신 폄훼라는 것이었다. 12년이 흐른 지난 26일 이번에는 4·19 주역들이 이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묘역을 찾았다. 대학 시절 “이승만은 하야하라”고 외치던 이들이 백발이 되어 “이승만의 공은 인정하자”고 했다. 참배객 중 한 명인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85)에게 단체 참배의 배경을 물었다. 그는 4·19 때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이었다.
“이 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들었을 땐 민주주의를 살려냈다는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살면서 그가 아니면 이 나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늦었지만 우리가 (이승만 재평가에) 솔선수범하자고 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뀐 계기는….
“솔직히 진짜 하야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국민이 원하면 내려가야지’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더라. 내심 그를 다시 봤다. 그 후 한국정치사를 연구하며 서울시 인구가 200만 명이던 해방정국에 정치 단체가 600개였고 그중 약 80%는 좌파 성향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대로 뒀으면 공산화됐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막아낸 것이다.”
―그의 공을 인정하는 건 4·19정신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4·19세대의 정치 이상과 이승만의 이상이 다르지 않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켰기에 4·19도 가능했다. 우리의 참배가 4·19정신 중 지금 가장 절실한 관용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4·19 주역들이 이 대통령 묘역을 찾던 즈음 1960년대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했던 6·3세대가 이를 재평가하는 칼럼을 일간지에 게재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 대사를 지낸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83)는 국교 정상화에 찬성했던 부친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인 백봉 라용균 선생으로 당시 야당 몫의 국회 부의장이었다.
―1960년대 한일협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함석헌 선생은 ‘이 나라의 政府냐, 일본의 情婦냐’라고 규탄했고,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지를 표했다가 ‘왕사쿠라’ 소리를 들었다.
“부친에게 정부 편을 드는 이유를 따져 물었더니 ‘우리나라가 농업만으로는 살 수 없는데,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 산업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유일한 기회가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전두환 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김재익 수석과 학생 시절 친했는데 그땐 김 수석도 ‘우린 능력도 자본도 시장도 없어 자동차 공업 같은 건 못 한다’고 하던 시절이다. 결국 부친의 정치인생은 그걸로 끝이 났다.”
―언제 부친이 옳았음을 깨달았나.
“6·3항쟁 20여 년 후 미국 외교문서를 연구하며 알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 3만 달러로 인하공대를 설립했는데, 당시 미 외교관들은 ‘벼 품종 개량에나 쓸 일이지’ ‘가당찮은 야심’이라고 했다. 우리가 산업화하는 길은 일본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친은 정치인이면 ‘지금 여기서(hic et nunc)’ 가장 요긴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은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얘기해도 정치인은 일단 맞서 싸우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4·19세대와 6·3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챈’ 정치인들을 생각했다. 그런 인물이라면 더더욱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뿐 아니라 저것 또한’이라는 원칙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나.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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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주역들의 이승만 재평가, 나라에 희망 주는 화해와 통합
4·19 혁명 주역 50여 명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 묘소를 참배했다. 63년 전 “이승만 하야”를 외치다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은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의 과오뿐 아니라 공을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잡고, 김일성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고, 거부하던 미국을 이끌어 한미동맹을 맺었다. 어느 하나라도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농지개혁의 결단을 내리고, 지금의 교육제도를 정착시켰으며, 황무지 같던 나라에 원자력 연구소를 세웠다.
역대 모든 한국 대통령에겐 공과가 있다. 이 전 대통령에겐 집권 연장과 독재라는 큰 과오가 있다. 말기엔 고령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거대한 공적을 세우고도 철저하게 과오만 부각된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혼자였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은 이기붕 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반일(反日)주의자였다. 미국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승만 라인’을 그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지킨 사람이다. 일본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미국의 모든 정책을 대놓고 반대했다. 심지어 재일동포들의 모국 방문조차 막기도 했다.

4·19 혁명의 주역 50여명이 지난 26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 전 대통령의 반일은 너무 심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경이었지만 한국에선 엉뚱하게 ‘친일’이란 딱지가 붙게 됐다. 일제 때 관료들을 일부 기용했다고 하지만 4·19 후 민주당 정권은 일제 관료들을 더 많이 기용했다. 국내 반대파들은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한 이 전 대통령을 친미주의자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몇 권의 책과 일부 세력의 집요한 선전 공세는 반일주의자를 ‘친일’로, 용미주의자를 ‘친미’로 둔갑시켰다. 이들에게 이승만의 ‘죄과’는 소련과 김일성을 막은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이승만 죽이기’는 ‘독재’ ‘친일’ ‘친미’가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있지도 않은 ‘불륜설’까지 지어냈다. 반이승만 가짜뉴스가 가장 판친 곳은 수십년간 학교 교실이었다. 지금 청년들은 이승만의 본모습을 전혀 모르는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이 전 대통령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이승만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건국 대통령이 역사의 패륜아로 낙인찍혔다”고 한 보훈처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부가 어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초대 대통령 기념관이 아직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김일성 족벌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누가 부정하겠나. 4·19 주역들의 이승만 재평가는 모처럼 나라에 희망을 주는 화해와 통합의 길이라고 평가한다.
-조선일보(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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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건국'이라 하지 못할 이유 없다
야당,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두고 "얼빠진 주장"이라며 저급한 비난
'1948년 체제' 극복해야 한다는 철지난 분단사관∙민중사관 드러내
임시정부·해방·대한민국 출범은 대립이 아니라 과정으로 해석해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점으로 잡은 발언에 대해 일각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의원 등 야당에선 "반역사적·반헌법적 주장"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졌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건국 50주년을 기념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재임 시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기에 이런 공격은 자가당착이다. 그들 논리라면 두 대통령도 "반헌법적"이고 "얼빠진" 것이다. 왜 그때는 가만있다가 자신들이 정권을 잃은 후에야 이런 극렬한 반발을 하는가.
그리고 지난 22일 강만길·이만열 교수 등 국사학자들이 중심이 된 역사학계 일부가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 반역자인 친일파를 건국의 주역으로 탈바꿈하려는 '역사 세탁'"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사드 배치 반대 등 온갖 사회 이슈를 오지랖 넓게 다 거론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정치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터무니없는 논리 비약과 매도는 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들은 여러 번 반복된 뻔한 얘기라 식상할 정도지만, 논거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안쓰럽기도 하다. 건국 기점 논쟁은 훨씬 높은 수준에서 전개돼야 한다.
굳이 건국절이라 안 해도 되고, 건국 대신에 다른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 하지만, 독립을 했고 나라가 세워졌다는 의미에서 건국이란 용어를 기피할 이유도 없다. 역사 교과서에는 고려건국·조선건국 등의 용어로 새 나라의 건립을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고조선이나 대한제국이 아니기에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고 얘기할 수 있다. 19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이 '잉태'된 것이기에 큰 의미를 갖는다. 왕정 복고가 아닌 민주공화정을 추구하고, 독립된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자는 이상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세운 것이고, 그 정신과 법통을 이어받은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러 지면을 통해 1919년을 '정신적 건국'으로 표현했다. 이때가 진정한 나라의 수립은 아니라는 것을 잘 인식한 쪽은 바로 임정 인사들 자신이었다. 1941년 11월 임정에서 발표한 '건국강령'은 독립과 새 나라 건국의 청사진을 밝힌 좋은 예이다.
임정이 주창한 국민주권과 국가 주권의 이상이 실현된 때가 1948년이었다.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선거이자 보통선거였던 5·10선거에서 국민주권이 구현됐고, 같은 해 12월 12일 유엔총회가 대한민국을 승인함으로써 국가 주권이 성립됐다. 유엔 감시하의 5·10선거를 통해 왕국 혹은 제국의 신민(臣民)으로 살던 사람들이 비로소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 변모했고, 선거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했다. 내각과 사법부가 구성되면서 1948년 8월 15일 제1공화국이란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것은 국가의 '탄생'이었다. 제헌의회와 정부가 이날을 독립기념일로 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또한 유엔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승인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 '출생신고'를 완료했다. 국가의 3대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확보된 것이다. 그러니 임정 수립에서 공표된 민주공화제와 독립운동의 이상을 정신사적으로 계승하고 현실적으로 구현한 1948년 대한민국 탄생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임정을 위시한 독립운동의 의미를 오히려 고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방 직후 38선 이북은 소련의 주도로 친소적인 단독 정부 수립이 착착 진행됐고, 1946년 2월에 사실상 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가 결성됐다. 더구나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이북은 중국 공산군의 후방 기지 역할을 했기에 이미 한반도 통일은 요원한 일이 돼버렸다. 이런 국제 정세를 간파한 이승만 박사가 38선 이남이라도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만들자고 한 것이 바로 정읍 연설이었다. 여기서 이승만은 궁극적으로 자유통일을 통한 대한민국의 완성을 구상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자유통일을 통해서 진전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반쪽에서만 대한민국이 설립됐다 해서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원래 13개 주만 건국을 한 것이고 점점 그 외연을 넓혀갔다.
임정과 1945년의 해방,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출범은 결코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1948년 건국에 대해 비이성적인 비난을 하는 배경에는 1948년 체제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철 지난 분단사관·민중사관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사실이 이럴진대 '1948년 건국'을 언급한다고 해서 무조건 반(反)헌법적이라느니 친일파라느니 음해하는 공허하고 저급한 주장들은 중단해야 한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조선일보(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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