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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의 틀을 깬 UAE, 담대한가 무모한가] [아랍에미리트(UAE)] ....

뚝섬 2026. 5. 11. 15:40

[걸프의 틀을 깬 UAE, 담대한가 무모한가]

[아랍에미리트(UAE)]

[부르즈 칼리파]

 

 

 

걸프의 틀을 깬 UAE, 담대한가 무모한가

 

OPEC 탈퇴하고 석유 증산… 사우디 견제 피해 '인도양 국가'로
이스라엘 방공망도 들여오자 이란 분노, 小國의 도박 성공할까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국제금융지구에 요격된 이란의 드론이 떨어져 한 빌딩 외벽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X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5월 1일부로 석유수출국기구(오펙·OPEC)를 탈퇴했다. 홀로서기를 통해 석유를 양껏 팔겠다는 의지다. 연 500억달러 내외의 추가 수입이 예상된다.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 재정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돈이 오펙 탈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지정학 전략 변화가 핵심이다. 사우디의 품을 떠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탈(脫)걸프 노선’으로 읽힌다. 석유 카르텔을 약화시켜 유가의 하방 안정을 원하는 미국에 준 큰 선물이기도 하다.

 

사우디와 UAE는 걸프협력이사회(GCC) 내에서 막역했다. 그러나 최근 점차 멀어졌다. 빈살만의 사우디가 UAE의 성장 전략과 겹치는 비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부터다. UAE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금융, 물류 및 관광 거점 모델과 사우디의 야심 찬 ‘비전 2030’ 프로젝트는 적잖게 겹친다. 경쟁 관계다. 사우디는 아부다비나 두바이 소재 외국 기업의 지역 본부를 리야드로 옮기라 압박 중이다. UAE에 사우디는 친근한 이웃 국가에서 거친 경쟁국으로 바뀌어 갔다. 여기에 이란은 늘 골칫거리다. 국가 안보에 실존적 위협이자 부담이다.

 

역내 강국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낀 국가의 한계는 분명했다. UAE 모하메드 대통령은 ‘걸프 국가’를 벗어나 ‘인도양 국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홍해-동아프리카-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해상 거점을 곳곳에 만들면서 인도양 네트워크 국가를 꿈꾸고 있다. 지정학에서 이야기하는 ‘레벤스라움’ 즉 생존 공간의 확대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UAE는 예멘, 소말리아, 수단 등에 대리 세력 네트워크를 구축, 주로 반정부 세력과 연대하며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이곳에서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사우디와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특히 예멘에서 첨예하게 충돌했다. UAE가 예멘 남부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자, 수니파 중앙정부를 편드는 사우디는 분노했고 예멘 남부 UAE 거점 항구를 공습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UAE의 오펙 탈퇴는 충돌의 또 다른 단면이다. 균열은 더 커지는 중이다. 

 

아랍의 맹주이자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임하는 사우디와 척을 지는 선택은 현명한 것일까? 강대국과 접경하는 중견국 또는 약소국엔 늘 고민이 있다. 이웃 강대국 힘의 자기장에 휘말리기 쉽기에 바깥에서 협력할 파트너를 찾아내야 하는 부담이다. UAE는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이스라엘과의 밀착이었다. 급변침은 아니었다. 2020년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통한 안보 협력, 그리고 2022년 인도·이스라엘·미국과 함께 구축한 국제경제협력포럼, 즉 각국 머리글자를 딴 I2U2 간 경제 협력의 큰 그림은 이미 그려왔다. UAE는 인도양 국가를 꿈꾸면서, 안보는 물론, AI·신재생에너지·바이오 등 미래 신기술의 주력 기반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추기로 결단했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UAE는 이스라엘의 걸프 전진 기지로 보였다. 이스라엘과 UAE 간 하루 10여 차례 내외의 항공편이 오갔으며, 많을 때는 이스라엘발 편도만 14편에 달했다. 양국은 경제, 안보, 정보 및 인적 교류 등에서 역내 어떤 나라들보다 서로 가까워졌다. 사우디 역시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2023년 양국 수교 가능성은 무르익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미국도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에 따른 이스라엘의 보복 응징으로 인한 가자 사태로 뒤틀렸다. 아랍의 맏형 사우디로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 혐의를 받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와 도저히 협력할 수 없었다. 빈살만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이전까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아예 못을 박았다. 반면 UAE는 아랍 및 국제사회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거침없이 확대해 왔다.

 

이란은 아연 긴장했다. 바다 건너편에 적국 이스라엘이 밀고 들어와 이란 턱밑에 진을 친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이란은 시아 벨트 끝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와,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위협해 왔다. 이른바 전략 심도(strategic depth)의 우위다. 그러나 아브라함 협정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테헤란은 아부다비와 두바이에서 모사드 비밀 요원들이 이란 정보를 캐며 암약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담을 가졌다. 이란의 눈에 UAE는 이스라엘의 전위다. 

 

2026년 3월 1일 플래닛랩스 PBC가 촬영해 배포한 위성사진으로, 발사체 공격 이후 두바이 상공으로 연기가 치솟는 모습이 담겨 있다.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의 여파로, 2월 28일과 3월 1일 아랍에미리트(UAE)와 다른 걸프 지역 미국 동맹국들을 겨냥해 수백기의 드론과 미사일이 발사되자 두바이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연합뉴스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집중 공격을 받은 UAE는 한 발 더 나갔다. 아예 이스라엘의 방공망 아이언돔을 들여왔다. 이스라엘 군복을 입은 정규군이 아랍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가자 사태로 이스라엘이 아랍권의 분노를 사는 와중에 UAE가 이스라엘과 손잡고 군사협력에 나선 장면은 놀랍고도 상징적이다. 국가 이익의 계산은 한없이 차갑다. 통념과 역사적 맥락은 물론 민족 정서를 뛰어넘는다. 안보 우려와 미래에 대한 절박함은 UAE의 거침없는 선택을 이끌어냈다.

 

본래 UAE는 걸프 왕정 국가 중에 가장 중용의 외교를 펼친다는 평을 받아온 나라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거치면서 중간지대 외교를 버리고, 미국, 특히 이스라엘과 아예 동맹처럼 밀착하는 중이다. 확전을 막기 위해 거중 조정에 나선 사우디의 움직임과는 사뭇 다르다. 담대하다는 평가와 무모한 선택이라는 평이 엇갈린다. UAE가 마주할 위험 요인이 여기저기 보인다. 사우디와의 관계는 빨리 추스르지 않으면 두고두고 부담일 것이다. 이스라엘군을 끌어들였기에 향후 이란의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을 훨씬 높인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중동을 떠나면 UAE는 어떻게 될까? 위험 요소가 담긴 가정과 추론이 이어진다. 그러나 심모원려의 중동 최고 전략가라 불리는 UAE 모함메드 대통령의 결단이기에 그의 의중이 궁금하다. 아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국면이지만, 중간지대를 버리고 확고히 한 편을 선택한 UAE의 미래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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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

 

英 통제받던 토후 7국이 모여 독립국가 

 

1971년 12월 2일 아랍에미리트(UAE)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던 역사적인 날, 사람들이 국기를 게양하며 축하하고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4~17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 초청을 받아 국빈(國賓) 방문했어요. 두 정상은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는데요. UAE가 국부펀드 300억달러(약 37조원)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죠. UAE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데요. UAE 첫 번째 원자력발전소인 바라카 원전은 한국형 원전이 처음 수출된 것이기도 해요.
7개 토후국 연합해 국가 만들어

아랍에미리트의 에미리트(emirate)를 직역하면 '에미르(emir·토후)가 다스리는 국가들'이라는 뜻인데요. 토후(土侯)란 '영국 보호 아래 국가를 지배하던 전제군주'를 의미합니다. 아라비아반도 동부에 있는 아부다비·두바이·샤르자·라스 알카이마·아즈만·움 알쿠와인·푸자이라 7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고 나서 연합한 거예요. UAE는 아랍(Arab) 토후국(Emirates) 연합(United)을 뜻합니다.

통상 7개 토후국 중 수도이자 총면적 8만3600㎢ 4분의 3을 차지하는 아부다비 에미르가 대통령을 맡고, 나머지 토후국 에미르들이 각료가 돼 UAE를 통치해요. 면적은 한반도 3분의 1쯤 되죠. 예를 들면 UAE 경제 중심지인 두바이 에미르는 UAE 부통령 겸 총리 역할을 합니다. UAE는 19세기부터 영국 보호령이었다가 20세기 독립했고 에미르가 세습제이기 때문에 아직 역대 대통령은 3명밖에 없답니다.

UAE에서는 일찍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어요. 페르시아만(灣)에 접해 있어 메소포타미아 지역, 인도, 지중해 등지를 이어주는 무역 중계지로 발전했죠. 특히 라스 알카이마 지역은 과거 주요 항구이자 진주 채취 산업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답니다.

7세기쯤부터는 이슬람교가 전파됐고 이란과 가깝기 때문에 페르시아 문화 영향도 받았어요. 여러 부족이 중심 세력으로 발전하면서 토후국들이 생겨났는데요. 18세기 아부다비에서는 바니 야스 부족이, 라스 알카이마 지역에서는 카와심 부족 등이 발흥하며 토후국으로 발전했어요.

영국 보호 아래 발전하기 시작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가 유럽과 인도를 잇는 항로를 개척했는데요. 이 항로를 지나면서 포르투갈은 16~17세기 150여 년간 페르시아만 일대를 지배했습니다. 포르투갈은 무력을 사용해 인도양과 오만만(灣)에 진출했고 토착 세력을 몰아낸 다음 후추와 향신료 무역을 장악했어요. 하지만 17세기 들어 포르투갈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토착민들 저항과 다른 유럽 강대국들, 특히 영국·네덜란드와 경쟁에 부딪혀 무너진 거죠.

18세기가 되면서 영국이 이 지역 무역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는데요. 영국은 페르시아만을 인도와 연결되는 무역 거점으로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유럽 다른 국가들을 차단하기 위해 해군력을 동원했어요. 영국은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아랍 토후국들과 분쟁을 벌였습니다. 카와심 부족이 대형 선박을 건조하고 페르시아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자 1819년 영국군은 대대적으로 카와심 부족 선박들을 파괴하고 약탈했어요. 이후 1820년부터 아부다비·샤르자·아즈만 등 토후국들이 영국과 휴전 협정을 맺어 트루셜 스테이트(Trucial States·협정국가)로 불리게 됐어요. 이 협정은 영국이 토후국들을 평화적으로 보호하는 내용이었어요. 대신 토후국들은 해안가에 요새를 세우는 등 영국에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게 금지됐답니다.

이후 평화가 찾아왔고 천연 진주 무역과 중계무역이 활성화됐어요. 19세기 말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서양 열강이 페르시아만 주변으로 진출하자 1892년 토후국들은 영국과 배타(排他)협정을 맺고 영국에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해줬어요. 이 협정에 따르면 제3국이 침략할 시 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죠. 물론 토후국들은 영국의 동의 없이 제3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영국은 토후국들 내정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국가 토후들은 영국 보호를 받으며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영국 철수 후 독립… 에너지 강국으로

1968년이 되자 영국은 페르시아만에서 1971년까지 철수를 마친다고 선언했어요. 이때 아부다비와 두바이 통치자가 만나 연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토후국들을 연합할 것을 결의합니다. 아랍에미리트는 공식적으로 1971년 12월 2일 탄생했으며 매년 이날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어요. 연방은 원래 6개 토후국으로 구성됐다가 이듬해 라스 알카이마가 합류, 일곱 번째 토후국이 되었답니다.

UAE는 건국 이후 육지와 바다 곳곳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됐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뤘어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여성 지위도 향상됐습니다. 국제의회연맹(IPU)에 따르면 UAE는 2008년 여성 9명이 의회에 진출했고, 현재 UAE 의회 의석수 절반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어요. 중동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5위 안에 드는 높은 수치예요.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오후(현지 시각) UAE 아부다비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3호기 가동 기념식에 참석해 손뼉 치는 모습. /뉴스1

UAE는 원자력·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어요. 2009년 6월 수도 아부다비에 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 확대를 위한 국제기구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본부를 유치하기로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 재생 및 대체 에너지 분야를 개발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UAE 원자력공사(ENEC)를 설립했어요. 이때 UAE 최초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한국과 바라카 원전 사업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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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의 갈등]

1971년 영국이 철수하고 UAE가 성립되는 혼란한 시기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 3개 섬을 점령했어요. 그레이터 툰브(Greater Tunb), 레서 툰브(Lesser Tunb), 그리고 아부 무사(Abu Musa)라는 이름의 이 섬들은 북쪽으론 이란과, 남쪽으론 UAE와 접하고 있죠. UAE는 해당 섬에 대한 주권 회복을 주장하고 있어요. UAE는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해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를 바라지만 이란은 이를 거부하는 중이에요. 이외에도 이란의 핵 문제와 군사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UAE는 미국·프랑스 등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답니다. 
 

보라색 부분은 포르투갈이 16~17세기 점령했던 페르시아만 일대 지역을 나타낸 것.

 

-기획·구성=안영 기자/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조선일보(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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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칼리파

 

3일에 1개층씩 골조 올라간 '마천루의 제왕'

 

중동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두바이를 관광과 경제의 허브(hub)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두바이에 다양한 개발 사업을 활발히 추진했다. 이 중 ‘버즈 두바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 될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와 세계 최대 쇼핑몰이 될 두바이몰, 그리고 오피스단지인 비즈니스 허브, 고급 주거단지, 아파트단지 등을 함께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이 ‘부르즈 칼리파’이다. 부르즈 칼리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높이 828m, 160층 규모이다. 여의도 63빌딩의 3배 높이에 이르는 부르즈 칼리파는 고층부에 아파트·호텔·사무공간을, 저층부에 쇼핑센터 등 상업 시설을 갖춘 복합 빌딩이다.

 

■두바이 고유의 ‘사막의 꽃’ 형상

초고층 건물은 1990년대 후반부터 그 중심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높이와 함께 지역적, 문화적인 상징성이 보다 많이 표현되고 있다. 이슬람적 형태 요소인 팔각형 별의 평면을 사용한 ‘페트로나스타워’(말레이시아 소재)와 대나무를 연상케 하는 ‘타이베이101’(대만 소재)이 대표적이다. 시어즈타워의 설계사이기도 한 SOM사도 부르즈 칼리파의 설계에 걸프만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인 맥락을 적용했다. 이에 건물은 두바이 고유의 사막의 꽃(Blue Dick)의 형상과 이슬람 건축 양식을 활용해 디자인했다. 평면 형태는 중앙 코어를 중심으로 꽃잎 모양을 가진 3개의 평면들이 연결된 Y자이며, 평면은 상부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후퇴해 기준층인 7층에서 957평인 면적은 147층에서는 230평으로 줄어든다.

상층부로 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평면은 하중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 외에 전경을 최대한 조망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준다. 또한 해안가의 강한 바람에 대한 영향을 줄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건물 자체는 거대한 높이에도 불구하고 둔탁하지 않고, 날렵한 느낌을 주는 형상을 띠게 됐다. 건물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의 혼합 구조로 153층까지는 철근 콘크리트, 154층부터는 철골 구조다. 건물에 사용된 콘크리트는 800kg/㎠의 고강도 콘크리트다. 특히 건물 안전성 확보를 위해 부르즈 칼리파는 최대 초속 36.4m의 바람과 규모 7.0 이상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3일에 1개층 올리는 최단기 시공

부르즈 칼리파는 여러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신기술들이 적용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베식스(벨기에), 아랍텍(UAE)과 컨소시엄을 이뤄 공사했다. 총 8억 7600만 달러에 이 공사를 낙찰받은 삼성컨소시엄은 160층 이상이 될 건물을 47개월이란 기간 내에 완공해야 했다.

 

페트로나스타워를 조기 준공한 경험이 있는 삼성물산은 공기(工期) 단축 방법으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층당 3일의 공사가 가능한 공정을 마련했다. 타워크레인의 양중 없이 콘크리트 타설이 가능하도록 형틀 자체의 유압잭을 이용해 상승하는 형틀 시스템, 2개 층의 철근을 지상에서 사전 조립한 후 들어올려 설치하는 철근 선조립 공법, 그리고 초고층으로 압송이 가능하며(525m 높이까지 압송 가능) 빠른 공사 진행을 위해 강도가 조기 발현되어야 하는 고강도 콘크리트 배합 기술 등이 그것이다.

 

부르즈 칼리파는 3일에 1개층씩 골조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첨단 공법을 사용했다. 완공 일을 맞추는 것은 높이의 경쟁에 이은 또 다른 전쟁이다. 부르즈 칼리파 공사에서는 엄청난 자재 물량과 인원 투입에 대한 완벽한 계획 수립이 필수적이었다. 초단기로 공정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양중 계획, 수직 물류 계획 등 치밀한 시공 계획이 마련됐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초고층 건물의 건축에는 항상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에 대한 고심과 그로 인해 탄생한 빼어난 기술들이 있었다. 엄청난 높이의 하중 지탱과 높아질수록 강화돼야 하는 지진과 바람에 대한 안전성,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공사를 시행해야 하는 시공 기술이 뒷받침돼야 했다. 초고층 건물은 그 건설 계획이 시작됨과 함께 새로운 구조 방식, 새로운 시공 기술, 보다 혁신적인 관리 기술 등 건설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발전들을 낳아 왔다. 초고층 건물은 기술을 시험하는 무대, 새로운 발전을 위한 장소가 되었고 부르즈 칼리파 역시 이러한 무대 속에 있다.
 

 

■높이를 향한 무한 경쟁

최근 초고층 건물 디자인과 그 상징적 요소들이 보다 중요한 부분이 됐지만 여전히 높이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부르즈 칼리파의 높이는 시공 도중에도 비밀에 쌓여 있었다. 처음 SOM사가 지명설계 경기에서 당선됐을 때 부르즈 칼리파는 140층 규모, 550m 높이의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후 같은 두바이 내에서 추진되는 초고층 건물과의 경쟁으로 최종 높이는 828m로 조정됐다.

1930년 경쟁 건물보다 65㎝ 낮게 설계했던 크라이슬러빌딩은 ‘크라이슬러빌딩의 비밀’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높이를 감췄고 완공 전 30여 분 간의 조립으로 56m의 첨탑을 세워 세계 최고의 건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비록 1년 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그 자리를 내줬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는 지붕 높이가 시어즈타워보다 낮지만 65m의 첨탑으로 세계 최고 건물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세계 1위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초고층 건물의 경쟁은 역사 속에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성유경 건설산업硏 연구위원, 조선닷컴(17-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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