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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부자가 사는 곳인가, 부자가 되는 터인가] ....

뚝섬 2026. 1. 25. 05:50

[강남은 부자가 사는 곳인가, 부자가 되는 터인가]

[지난해 여름 박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

 

 

 

강남은 부자가 사는 곳인가, 부자가 되는 터인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개발 계획
뉴욕·도쿄처럼 혁신 사례 돼야
 

서울 서초구 미도산에서 찍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일대. /김두규 제공

 

흔히 서울 강남을 ‘부의 상징’이라 말한다. 자연스럽게 풍수상 길지라는 평이 따른다. 그러나 냉정히 살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점을 가장 명확하게 짚은 인물이 박시익(1943~) 박사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후 고려대에서 국내 최초로 풍수지리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터에 대해 늘 솔직담백하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박 박사의 지론은 단순명쾌하다.

 

부자가 되는 터가 있고, 부자가 사는 곳이 있다.” 그에 따르면 강남은 후자에 가깝다. 부자들이 모여 살기에 편한 곳이지, 기업과 부가 창출되는 터는 아니다. 실제로 대기업 본사가 강남보다 강북, 특히 사대문 안에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강남 전체가 길지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풍수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한 곳에는 예외 없이 굵직한 건물과 기업이 들어섰다.

 

풍수상 길지의 조건은 용·혈·사·수(龍·穴·砂·水)를 구비해야 한다. 주산에서 이어지는 지맥[龍]이 분명해야 하고, 건물이 안착할 방정한 터[穴]가 있어야 하며, 주변의 산과 언덕[砂]이 이를 보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요건은 물[水]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땅은 처음부터 드러나기보다 대개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운이 따라야 한다.

 

잠실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대표적이다. 한강과 석촌호수에 둘러싸인 이곳은 전형적인 득수국(得水局), 즉 ‘물명당’이다. 그러나 이 땅은 처음부터 풍수를 따져 잡은 터가 아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자금 마련을 위해 체비지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박세직 위원장은 최악의 경우에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롯데를 선택해 강권했고, 신격호 총괄회장은 기업보국이라는 신념에 따라 이를 수락했다.

 

이후 롯데는 대박을 터뜨렸다. 땅속에서 질 좋은 모래가 나왔다(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퇴적된 모래). 당시 건설 붐으로 모래 가격은 문자 그대로 금값이었다. 모래를 팔아 매입 대금 상당 부분이 충당될 정도였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땅에 무엇을, 어떻게 짓느냐였다. 신격호 회장은 “언제까지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 그 나라의 빛나는 볼거리로서 마천루만 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탄생한 롯데월드타워는 세계에서 여섯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으로 대한민국과 서울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롯데월드타워가 한창 지어지던 때, 현대차그룹은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115층, 571m 규모의 신사옥을 짓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롯데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현대차그룹이 높이를 낮추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지만 실현됐다면 대한민국 최고 마천루가 됐을 것이다.

 

193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최고 높이를 놓고 경쟁했다. 이 경쟁은 결과적으로 뉴욕의 ‘마천루 숲’을 선도했고, 도시 가치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둘은 경쟁자가 아닌 대대적(對待的) 존재였다. 필자는 롯데와 현대차가 강남 평지에 새로운 ‘마천루 숲’을 견인하는 대대적 관계가 되기를 기대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물을 허물고 최고 60층 이상 주상 복합 단지와 입체 환승 센터 등을 짓는다는 내용의 구상안을 발표했다. 이 터는 ‘장소성(placeness)’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경부선과 호남선, 그리고 신세계백화점이 결합된 이곳은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이용해 온 장소다. 서울로 오는 사람, 서울을 떠나는 사람, 그리고 오는 사람 맞이하고, 가는 사람 작별하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필자는 인근 ‘S아파트’에서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살았다. 오가는 길에 이곳을 유심히 살폈다. 고속버스터미널 남쪽에는 미도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이 있다(미도아파트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사이).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품고 있다. 두 공원을 이고 있는 지맥은 청권사(효령대군 묘와 사당)를 지나 우면산으로 이어진다. 필자의 산책 코스였다. 도심 개발 속에서도 중심 지맥이 전혀 다치지 않고 미도산까지 내려오다가 한강을 조금 앞두고 멈춰 선다. 바로 지금의 고속버스터미널 자리다. 큰 용[황룡·黃龍]이 큰 강을 건너는 황룡도강형(黃龍渡江形)의 길지가 분명하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복합 개발 구상안은 이 터가 가진 장소성과 풍수적 가치를 구현해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변모시킬 마천루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뉴욕이나 도쿄의 혁신적인 도심 개발 사례들처럼, 서울의 공간 가치를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두규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조선일보(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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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박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미르·K스포츠재단과 민정수석 의혹을 들여다보던 특별감찰관실을 무력화시킨

정권 실세들이야말로 박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내몬 주범들이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 의혹이 터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줄곧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최순실은 '소소하게 심부름해주고 그냥 충실히 도와준 사람'이었을 뿐이고 최씨가 사익(私益)을 추구한 부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 관리에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불찰'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매주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갖고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서 사적으로 단 한 푼이라도 챙긴 게 있느냐"며 박 대통령의 무죄(無罪)를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처럼 언론의 일방적 의혹 보도로 탄핵 찬성 여론이 80%에 이르는 상황에서 헌재(憲裁)가 탄핵 결정을 내린다면 억울한 누명(陋名)의 희생자가 됐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2012년 대선 직전 박 대통령과 했던 인터뷰를 떠올리게 된다. 그날 박 대통령은 중앙선관위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였다. 그런 박 대통령이 딱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하면 친·인척과 측근 비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서였다. 박 대통령은 이 질문 자체를 자신에 대한 불신 내지는 부당한 공격으로 여긴 듯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측근 비리 방지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해 대선에선 친·인척과 측근의 발호를 막기 위한 특별감찰관 신설 공약도 내놨다. 이에 따라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지난해 여름 '국기(國基)문란 사범'으로 내몰린 끝에 물러난 이석수 전 감찰관이다.

이 전 감찰관은 검찰 출신이다. 검사 시절부터 모나지 않은 성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특별감찰관 업무도 요란하지 않게 다뤄왔다. 야당 등으로부터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질책성 추궁을 받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그가 졸지에 반(反)국가 사범이 된 것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면서다.


이 전 감찰관은 우 전 수석과 각별한 사이다. 우 전 수석이 같은 대학, 같은 과 후배다. 둘은 검사 시절 지방 지청에서 함께 근무했다. 둘 사이가 갈라진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조선일보가 우 전 수석 처가의 강남역 땅 거래 의혹을 처음 보도한 이후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 전 수석에 대한 감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직무 유기이고 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상적인 법 집행을 하는 이 전 감찰관을 쫓아냈다. 본지 취재 기자와 통화한 것을 '감찰 내용 누설'이자 '국기 문란 행위'라고 몰아붙였다. 누설이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의 내용에 이런 엄청난 죄를 갖다 붙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전 감찰관은 그 직전에 안종범 당시 청와대 수석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세우면서 대기업들에 출연을 요구한 것을 조사했다. 최순실 일당이 사익 추구의 놀이터로 삼았던 두 재단 설립 문제를 들여다본 것이다. 이 사실은 이 전 감찰관이 물러난 이후 드러났다.

이 정권은 이 전 감찰관을 쫓아낸 데 이어 그가 임명한 감찰담당관 6명 전원에게 사표를 요구했다. 특별감찰관실이 일체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정권 차원에서 작심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인사혁신처와 법무부까지 동원됐다. 먼저 예산을 끊었다. 월급도 안 나왔고 한때 사무실 전기까지 끊어졌다고 한다. 5개 정부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 16명 중 13명이 결재권자가 없어서 원래 소속 부처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대기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젠 되돌릴 수 없게 돼 버렸지만 지난해 여름 특별감찰관실이 제대로 감찰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로 하여금 현직 청와대 수석이 발벗고 나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을 들여다보게 했다면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는 극단적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감찰을 통해 최씨 일당의 비위를 적발하고 사법 심판에 세웠다면 또 한 번 권력형 비리가 터진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대통령이 당장의 고통과 힘든 시간을 감내하기로 작정하고 권력 주변의 의혹에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면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특별감찰관실을 공격하는 우 전 수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이 철석같이 믿었던 우 전 수석 등 이 정권의 고위 인사들은 일제히 '최순실을 몰랐다'고 하고, 일부는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자신들의 무능 내지는 직무 유기를 요란하게 합창하고 있는 꼴이다. 이들 중 누구 하나 당당하게 앞에 나서서 대통령을 변호하려 들지도 않는다. 박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몬 주범은 바로 이들이다.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조선일보(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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