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탄 심리학자의 마지막 선택]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마치고 싶다]
[조력존엄사]
[안락사 찬성률, 왜 76%로 급증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위해]
노벨 경제학상 탄 심리학자의 마지막 선택
[한삼희의 환경칼럼]
인생 결말부의 존엄 상실을
무의미하다고 믿은
카너먼의 죽음은
자신의 인지 이론인
'피크값-끝값 법칙' 적용한
극도의 합리적 선택이었나
정치 뉴스 과잉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정치도 환경도 아닌,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인생에서 행복의 의미는 뭔가.
3월 14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대니얼 카너먼의 1년 전 죽음에 관한 기사가 올랐다. 고인과 30년 지기였던 칼럼니스트 제이슨 츠바이크가 썼다. 카너먼은 행동경제학 창시자다. 심리학자이면서 노벨 경제학상(2002년)을 받았다. 그의 책(Thinking, Fast and Slow·생각에 관한 생각·2011년)은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다. 카너먼은 작년 3월 27일, 만 90세를 넘긴 3주 뒤 세상을 떴다. 당시엔 사망 경위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츠바이크에 따르면 그는 스위스의 조력사(助力死) 시설을 찾아가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카너먼은 마지막 며칠을 가족과 프랑스 파리에서 박물관, 공연장, 맛집을 순례하며 보냈다. 그는 죽기 직전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아직 활동할 수 있지만 콩팥 기능이 쇠약해졌고 가끔 정신도 깜빡깜빡한다”면서 “인생의 마지막 몇 년간 치를 고통과 존엄의 상실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츠바이크는 “카너먼은 투석을 받는 상태도 아니었고 인지 기능의 심각한 저하도 없었으며 건강이 양호했다”고 했다. 죽기 나흘 전엔 자기 이론을 설명하는 팟캐스트 인터뷰도 했다.
카너먼의 선택은 그의 인지 이론, ‘피크값-끝값 법칙(peak-end rule)’을 의식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카너먼은 1996년 발표한 실험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154명을 상대로 60초마다 고통 정도(경험 고통값)를 ‘0~10’의 척도로 표현하도록 했다. 수면 내시경이 없던 시절이었다. 짧게는 4분, 길게는 69분 걸린 검사 후엔 전체 검사의 고통 지수(기억 고통값)를 종합 평가하도록 했다. 그런데 기억 고통값은 수검자가 매 순간 느낀 경험 고통의 누적값과는 상관이 없었다. 고통(검사)의 지속 시간과도 관계가 없었다. 기억 고통값은 검사 중 고통 최고값(피크값)과 마지막 3분의 고통값(끝값)을 평균한 값으로 나왔다. 예컨대 수검자 A는 8분밖에 검사받지 않았지만 고통 피크값은 8점이었고 끝값이 6점이었다면 기억 고통값은 7점이었고, B는 24분이나 검사했고 피크값은 A와 같은 8점이었지만 끝값이 2점에 머물렀다면 기억 고통은 5점에 불과했다. 수검자들의 기억 고통은 매 순간 경험 고통의 누적 합계가 아니라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고통 대표값(피크값과 끝값)에 지배됐다.
카너먼은 행복에도 ‘경험 행복’과 ‘기억 행복’이 있다고 했다. 경험 행복은 순간순간 실시간으로 느끼는 감정 행복(emotional wellbeing)을 말한다. 그것은 애착을 갖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반면 기억 행복은 지나온 삶의 의미를 평가하는 인생 만족도(life evaluation)를 뜻한다. 예를 들어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을 쓰던 4년은 자료 수집과 원고 집필에 짓눌린 고통의 시기였다고 했다. 경험 행복 측면에선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책이 호평을 받자 그 4년에 대한 만족도는 치솟았다. 과정값(경험 행복)은 낮았고 결과값(기억 행복)은 높았다.
카너먼은 2009년 갤럽의 미국인 45만명 설문 조사를 토대로, 경험 행복은 연간 가구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다가 소득이 7만5000달러를 넘으면 소득이 더 늘어도 행복도가 더 상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돈으로 경험 행복을 사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기억 행복, 즉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만족도는 7만5000달러를 넘어선 다음에도 소득이 더 늘수록 더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을 가졌다면 그날그날의 행복을 누리는 데 돈의 역할은 크지 않다. 다만 인생 전체에 대한 만족도에선 돈의 발언권이 작지 않았고 거기엔 사회적 성공과 타인 비교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카너먼은 경험 행복과 기억 행복은 완전히 별개이고, 두 행복은 충돌하기 일쑤라고 했다. 기억 행복을 원하면 경험 행복을 포기해야 하고, 경험 행복을 누리면서 기억 행복까지 얻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둘 다 중요하며 선택은 개인 몫이라는 것이다.
츠바이크가 취재한 카너먼의 동료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은 “(카너먼은) 삶의 고된 무게가 삶의 즐거움을 넘어서기 시작하는 시기에 관한 계산서를 뽑아봤을 것”이라고 했다. 치매를 앓다가 2018년 먼저 세상을 뜬 아내를 돌본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카너먼은 피크값-끝값 법칙에 따라 90년 인생의 해피엔딩을 만들어냈다”고 썼다. 세계 최고 지성은 장(長)수명 시대의 ‘자기 죽음 통제권’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떠났다.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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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마치고 싶다
“너 어떻게 죽고 싶어? DNR(심폐소생술 거부) 어디까지 할 거야?”
환자의 연명치료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결국 보호자들이 DNR 동의서에 서명을 하러 병원을 찾는다. 그날 동료들과 퇴근길에 나누는 대화는 늘 이렇다. 참고로 나는 속칭 ‘콧줄’이라 불리는 ‘L-tube(비위관 영양)’부터 거부하고 싶다. 근무했던 부서가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암 병동이어서 그런지 연명치료에 매우 부정적인 편이었다. 환자들의 편안한 죽음을 본 적이 없고, 간호사 친구들도 대부분 연명의료에 부정적이다. “난 부모님한테도 미리 DNR 동의서 받아놓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동료도 있었는데 실천에 옮겼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죽음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진 않다. 국내 첫 존엄사 사례로 꼽히는 ‘김 할머니 사건’ 이후 2018년 2월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시행되었고,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미리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서류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19세 이상의 건강한 성인이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작성하는 문서이다. 둘째, 연명의료계획서다.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한 유보나 중단을 작성한다. 셋째,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DNR 동의서)다. 소생이 불가능하거나 생명 유지 치료의 도움 없이 생존이 어려운 환자가 본인의 CPR(심폐소생술) 거부를 작성하는 문서이다.
우선 세 가지 서류 모두 의미 없는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으로, 존엄사나 안락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연명의료 관리 기관 통계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022년 5월 기준 약 130만명이 작성했다. 이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아직 나는 임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절차가 복잡하고 작성 가능한 기관이 한정적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DNR 동의서를 보호자에게 주로 받는 편이다. 즉, 환자의 임종 직전에 CPR을 어디까지 할 것인지를 보호자에게 묻는 것이 보편적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하던 나는 ‘DNR 예찬론자’가 되었으나 요양 병원으로 이직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요양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치료가 아닌 장기 요양을 위한 곳으로 인력이 적고 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중환자는 DNR 동의서를 먼저 써야 입원을 받아주기도 한다. 중환자가 아니면 재원 기간이 길어져 더 큰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 보호자가 아무 치료도 하지 말아달라며 DNR 동의서 작성을 원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DNR 예찬론이 사라지고 좀 더 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 병원은 비싼 치료비를 감당해서라도 환자를 살리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서 임종 직전까지 DNR 동의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가 흔했다. 반면에 요양 병원은 보호자들에게 면회를 요청하거나 연락을 자주 하면 오히려 싫어하기 때문에 DNR 동의서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 DNR 동의서가 없는 경우에는 의미 없는 CPR을 반복했다. 어느 병원에서 임종을 맞든 원하는 대로 죽긴 어렵겠다는 결론을 마음속으로 내린 지 오래다.
간호사를 하기 전에는 어떻게 살지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죽을지 자주 생각한다. 젊다면 위관 영양과 수혈까지만 시도하는 DNR, 늙어서는 집에서 낙상을 해도 좋으니 재가 요양, 치매에 걸리면 공기 좋은 요양원에 보내주고 가족들이 한 번씩 면회를 왔으면 한다. 꽤나 구체적이라 누가 들으면 시한부 환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마지막 순간에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내 나름의 준비다.
-박소진 간호사, 조선일보(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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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존엄사
말기 암 환자인 40대 공무원 A 씨. ‘온몸이 부서지는 통증’에 시달리던 그는 평화롭게 생을 끝내기로 하고 스위스로 간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존엄사, 즉 의사조력사(physician-assisted suicide)를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A 씨는 2019년 국내 언론의 탐사보도에서 한국인 최초로 조력사한 인물로 소개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첫 법안이 나왔다.
▷조력사는 안락사와 함께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방법이다. 안락사는 타인에 의한 생명 중단을 말한다.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 죽게 하면 적극적 안락사,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소극적 안락사다. 2018년 연명의료법 시행 이후 소극적 안락사는 합법이 됐다. 조력사는 의사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치사량의 약을 먹거나 주사하는 일종의 자살행위다. 자살은 범죄가 아니지만 자살을 도운 의사는 자살방조죄로 처벌받는다. 15일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연명의료법 개정안)은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불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조력사를 허용한다.
▷우리에게 죽을 권리가 있을까. 조력존엄사 입법은 이에 답하는 과정이다. 조력사 반대론자들은 생명권은 기본적 인권으로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주장한다. 설사 죽을 권리를 인정해도 타인에게 도움을 요구할 권리까지 인정하긴 어렵다고 본다. 찬성론자들은 행복을 추구할 헌법상 권리에 따라 죽음의 방식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죽을 권리를 프라이버시권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스위스는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1942년부터 내외국인 모두에게 조력사를 허용하고 있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호주의 빅토리아주 등도 조력사가 가능하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저지, 워싱턴주 등 일부 주에서만 조력사를 허용한다. 조력사가 불법인 주에 사는 말기 환자가 허용되는 주에 가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안락사 또는 조력사법 찬성비율이 76.3%로 나왔다. 5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50%였다. 찬성 이유로는 ‘남은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죽음에 대한 권리여서’ ‘고통의 경감’을 꼽은 이가 많았다. 또 다른 존엄사인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한 사람이 4년간 20만 명이 넘고,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써둔 사람도 123만6000명이다. 존엄한 죽음 없이 품위 있는 삶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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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찬성률, 왜 76%로 급증했을까
코로나로 호스피스 휴업 속출… 완화의료 인프라 붕괴 영향인듯
“웰다잉 제도 제대로 안만들면 안락사 요구 더 거세질 수밖에”
호스피스·완화 의료는 수개월 내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여주는 서비스다. 이 중요한 서비스 인프라가 신종 코로나 사태 와중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지난해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가운데 21곳이 휴업을 했다는 것이다. 국공립 의료기관이 운영해온 호스피스 병상을 코로나 병상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주춤해졌지만 상당수는 아직도 휴업 상태다. 풀가동해도 턱없이(1000병상 이상) 모자라는 판인데 인프라가 무너졌으니 말기 환자들은 어떤 임종을 맞았을까.
그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통계 수치가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찬성 비율이 76.3%로 높아졌다. 2008년과 2016년 조사에서는 찬성률이 50% 정도였다. 여기에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말기 환자에 해당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경우 ‘조력 존엄사’를 신청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안 의원은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겪어보니 불가피할 경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존엄사)을 시행한 지 이제 겨우 4년이 지났다. 아직 이 제도가 안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안락사는 또 다른 문제여서 도입하기 전에 많은 논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해야 하고 예상 부작용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 시간과 토론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안락사 찬성률이 높아졌을까.
혹시 호스피스·완화 의료 인프라가 무너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가 코로나 치료와 웰빙에 치중하느라 웰다잉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국내 완화 의료 인프라는 원래 부족했다. 지난 2020년 한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8만2204명 가운데 23.0%(1만8907명)만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전체 사망 환자로 따지면 6.2%에 불과하다. 미국은 전체 사망자의 51.6%가, 영국은 암 사망자의 95%가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서비스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병원들이 제공하기를 꺼린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대표적인 웰다잉 예산인 호스피스 기관 지원 예산은 올해 96억원에 불과하다. ‘문재인 케어’를 하면서 초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진료비는 지난 4년간 10배가량 늘어 지난해 1조8476억원으로 늘어났다. MRI 예산의 100분의 1(180여억원)만이라도 웰다잉 인프라에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안락사 찬성률이 이렇게 높아졌을까. 윤영호 교수는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웰다잉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요구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김범석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장은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임종을 지켜보았다. 김 센터장은 “제도와 인프라는 발전하는 것이 상식인데 어떻게 완화 의료 인프라는 퇴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여건에서 왜 완화 의료 일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눈앞의 환자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나 스스로가 좀 더 편하게 죽고 싶다”며 “어떻게 보면 나 좋자고, 좀 더 좋은 완화 의료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도 언젠가 맞을 삶의 마무리에서 ‘나 좋자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때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존중받으며 삶을 마무리하는 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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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尊嚴死), 어떻게 죽을 것인가..
10월 23일부터 10개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심폐소생술 등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 의료로 고통받는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길어진 노년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8월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법)이 호스피스 영역부터 시행되고, 내년 2월4일부터 연명의료 영역에서도 시행된다.
호스피스(hospice):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통증 관리, 영양 공급 등 의료적 처치와 영적 돌봄, 위안을 제공하는 활동.
존엄사(연명치료 중단)와 관련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된 것은 1997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이 사건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부인의 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후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환자의 동생이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대법원은 부인에게는 살인죄를, 환자를 퇴원시켰던 보라매병원 의사들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해도 의사들이 이 사건을 들먹이며 요구를 거부했다. ▶더보기
이런 풍조는 2008년 '김 할머니'사건을 통해 바뀌게 된다. 이 사건은 우리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첫 사례로, 사회 각계에서 '연명치료 중단' 지침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식물인간 연명 치료' 법정에 서다
연명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 이상이 무리한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명 치료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의사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를 놓고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갈등을 겪는 사례도 빈번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명에게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할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법은 연명 치료로 고통을 계속 받는 대신 스스로 생을 끝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존엄사' 법으로도 불리운다. 이 법의 기본 취지는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연명 치료 본인이 결정하는 게 최선
환자 본인은 직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해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보완적으로 환자 가족 2인이 동일하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진술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가능하다.
연명의료 중단, 환자의 뜻 모르면 가족전원 동의해야
Q: 영양 공급도 중단하나?
A: 영양·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통증 완화 치료도 계속한다.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만 중단할 수 있다.
Q: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인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는 어떻게 다른가?
A: 사전의향서는 만 19세 이상인 사람이 평소 직접 작성해 두는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 상태와 치료법, 연명의료 시행법과 중단 결정, 호스피스 제도 등을 설명하고 의사가 작성한다. 실제로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때는 두 서류의 효력이 같다. 법에 따라 신설되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구'에서 이 서류들을 등록·보관하고, 임종이 닥치면 관리기구를 통해 실시간 조회할 수 있게 된다. ▶연명의료 시범사업 기관 현황
Q: 어떻게 작성하나?
A: 연명의료계획서는 통일된 서식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의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환자가 동의하면 의사가 작성하게 된다. 사전의향서도 일정한 서식이 만들어지며, 의료기관이나 비영리법인(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상담받고 작성하면 된다.
Q: 등록 후 생각이 바뀌면?
A: 얼마든지 철회나 수정이 가능하다. ▶더보기
의료계는 이 법이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이상적(理想的) 법령'이라고 주장한다. 담당의사와 관련 분야 전문의 한 명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라고 동의해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중단 의사표시를 스스로 밝히는 게 원칙인데, 연명의료중단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지도 않고, 명확한 의사표시도 불가능한 경우엔 배우자·직계비속·직계존속 중 2명 이상의 일치한 의견을 받아야 한다.
의료계는 임종을 앞두고 직접 서명을 못 할 정도로 힘이 없는 환자를 상대로 참관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환자의 뜻을 녹음하도록 한 규정 등을 따를 자칫 비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종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원하느냐"라고 묻고 녹취하도록 한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남용을 위한 장치 마련은 물론 '임종을 앞둔 환자'라고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의학적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법의 인식이 낮아 시행 초기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임종기' 환자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는 하는 문제도 있다. 웰다잉법에 따르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등 2명이 판단하도록 규정했다. 의료계에선 사전적 의미대로 해당 전문 분야에서 3∼4년 레지던트 훈련을 마친 뒤 진료 과목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의사만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게 하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의료 전달체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어길 경우 현장 의료진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많고, 세부 규정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연명의료를 중단했다가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의사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지 않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각 병원 중환자실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의료계는 주장했다. ▶곧 임종 환자에 "인공호흡기 원하세요?" 물어보라니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
존엄사란 사람으로서 존엄함을 유지하며 죽는 것을 말한다. 즉,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이나 가족이 동의를 거쳐 더 이상의 연명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락사는 약물 투입 등을 통해 고통을 줄이고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아름답게 맞이하는 죽음, 웰다잉(Well-Dying)을 위해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대의대에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병에 걸렸을 때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아는 환자들은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웰다잉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제대로 정착돼 '웰다잉'을 실현하려면 한국인 특유의 '의료집착' 문화가 먼저 개선되어야 하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전문학회는 주장한다. 또한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병 상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사전에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환자가족 전원 동의로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환자가족이 맞는지와 환자가족 전원 동의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편이고, 의료현장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갈등은 대부분 환자가족의 경제적인 부담에서 시작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연명의료법남용 방지책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말기암(癌)으로 판정받은 사람의 97%가 항암치료를 받고, 호스피스 치료보다 5배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병상에서 항암제 투여와 주삿바늘로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어떻게 사람다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진지하고 엄숙하게 요구된다. ▶'좋은 죽음'보다 '마지막까지 좋은 삶'
여전히 우리 정서로는 자신이 원하더라도, 사실상 죽음의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좀 더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생소한 중환자실이 아니라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너희와 함께 한 세상이 참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人間다운 죽음을 맞는 첫걸음
-구성= 뉴스큐레이션팀, 조선닷컴(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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