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보기를 연예인 보듯… "회장님 일상이 궁금해요"]
[평창올림픽, 이건희 수사]
[1996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법정과 2017년 이재용 부회장의 법정]
재벌 보기를 연예인 보듯… "회장님 일상이 궁금해요"
反재벌 정서는 옛말
달라진 대중 시선

재벌을 현실 너머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흥미로운 캐릭터’로 소비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뉴스1·두을장학재단·김동환 기자·신세계그룹
“원피스 명품이겠지?” “어느 브랜드 제품이야?” “10만원대라는데?”
지난 9일, 한 행사에서 ‘그녀’가 입은 회색 원피스가 맘카페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화제가 됐다.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제품 정보 좀 알려 달라”는 게시물이 잇따랐다. 곧 해당 원피스가 국산 브랜드 제품으로 가격은 17만7000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청담동 매장을 방문해 직접 입어 본 뒤 샀다더라” “수백만 원대 명품인 줄 알았는데 의외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화제의 주인공은 연예인도, 인플루언서도 아니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었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두을장학재단 장학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이 사장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그가 입은 옷에도 관심이 쏠린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지난달에도 있었다.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이 아들의 해군 장교 임관식에 참석하며 착용한 검은색 선글라스와 코트, 토트백이 ‘올 블랙(All black)’ 패션으로 주목받았다. 이 가운데 프랑스 브랜드 선글라스는 60만원에 가까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임세령 선글라스’로 불리며 품절 대란을 빚기도 했다.
재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경영 성과와 업적, 성공 서사 등의 능력이 주된 관심사였다면 최근에는 무엇을 먹고 입는지, 어떤 말투와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가 화제의 중심에 놓인다. 특권과 불공정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보다 “소탈하다” “부티난다”는 평가와 함께 호감과 관심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가운데, 재벌을 현실 너머의 ‘신화적 존재’나 불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 실존하는 ‘흥미로운 캐릭터’로 마주하면서 생긴 변화”라고 분석했다.
◇연예인 응원하듯 “회장님, 힘내세요”
산업화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재벌은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불렸지만 한편으론 정경 유착이나 특혜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재벌은 권위적이고 오만하거나, 서민과 동떨어진 인물로 그려지곤 했다. 중저가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이 비치기라도 하면 “‘서민 코스프레’ 한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재벌이 긍정적으로 회자되는 경우는 주로 ‘맨손 창업’이나 ‘불도저식 경영’ 같은 성공 서사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치맥(치킨+맥주) 회동’ 당시 세 사람을 보려는 시민들로 매장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야유 대신 환호가 이어졌다. 인기에 힘입어 해당 치킨 매장에는 “(회동을 했던) 테이블 좌석 이용 시간을 한 시간으로 제한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기운 받아가겠다’며 찾는 고객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의 모습이 밈(meme·유행 콘텐츠)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이재용 회장이 3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깡통시장을 방문했을 당시의 장면은 영상으로 확산돼 지금까지도 각종 패러디로 재생산되고 있다. 시민들이 “이재용”을 연호하자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하는 동작이다. 이 회장이 “사장님, 저는 어묵 국물 좀”이라고 말했던 어묵집은 ‘쉿, 어묵집’ ‘이재용 맛집’으로 불리며 손님들의 방문 후기가 지금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연예인 일상에 관심을 갖듯 소셜미디어 팔로우를 하고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각각 79만명과 7만명이다. 1년 넘게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는데도 과거 게시물에 “회장님, 힘내세요” “게시물 좀 올려 달라” 같은 댓글이 달린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재벌 3·4세 역시 자신의 배경을 숨기지 않고 유튜브·방송 등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과거였다면 ‘집안을 앞세워 대중의 관심을 얻는다’는 비판이 뒤따를 법도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배경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지난 17일 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범현대가 집안 출신 레이서인 신우현(22)씨가 출연했다. 신씨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조카로, 어머니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셋째 딸인 정윤이씨다. 학업을 이유로 팀 활동을 잠시 중단한 아이돌 그룹 소속 가수 애니(24·본명 문서윤)는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장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며 팬들과 소통했다. DL그룹 4세인 이주영(26)씨는 구독자 5만여 명의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말투·성격·이미지·패션이 궁금해
재벌을 둘러싼 설문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달라진 대중의 시선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성인 14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벌’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드는 감정 1위는 ‘부러움’(52.2%)이었다. ‘불신’과 ‘분노’는 각각 13.6%와 4.2%였다.
대중은 연예인 같은 유명인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재벌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재벌 관련 이슈에서 가장 관심 가는 요소를 묻자 ‘말투·성격·이미지·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 응답이 27.3%로 가장 많았다. 2위는 ‘재산 규모·기업 순위‘(26.7%), 3위는 ‘경영 성과·사업 전략‘(25.3%)이었다. 재벌의 패션 정보가 화제가 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43.9%가 ‘자연스러운 문화 소비·연예인 소비와 다르지 않다’고 답해 비율이 가장 높았다. ‘흥미는 있지만 과하다’가 27.4%, ‘불편하거나 씁쓸하다’가 15.9%였다.

◇반재벌 정서 언제든 커질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람들이 재벌의 캐릭터에 주목하게 된 배경을 정보 습득 방식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찾는다. 과거 대중에게 재벌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고 사적 일상이나 생활 방식이 전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재벌 개인의 말투와 옷차림, 일상의 모습이 빠르게 퍼지고 재생산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시간으로 이미지가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추상적인 성공 서사보다 구체적인 캐릭터와 이미지가 더 빠르게 소비된다”며 “현대 사회는 상품의 물질적 기능보다 그 상품이 상징하는 이미지 자본을 소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기업을 대표하는 재벌도 그 대상이 된 것”이라고 했다.
과거처럼 정경 유착이나 대형 비리 이슈가 반복적으로 터지지 않는 상황도 재벌 개인의 이미지가 먼저 소비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꼽힌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한국의 반(反)재벌 정서에는 민주화 이후 잇따라 드러난 비리 문제와 외환위기 등으로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경험이 작용했다”며 “최근에는 이러한 이슈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데다 AI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기업과 재벌을 바라보는 태도가 한층 부드러워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5년 기업호감지수(CFI)’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기업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56.3점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유로는 ‘국가 경제에 기여’(40.8%)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이런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재벌 개인의 캐릭터를 편견 없이 보게 하는 심리적 바탕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재벌가에 대한 지나친 ‘팬덤화(化)’를 우려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 총수는 이윤 창출과 일자리 마련과 같은 경제적 기여와 사회적 책임을 잣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라며 “개인적 매력에 가려져 경영 본질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무뎌지는 일이 없도록 법 준수와 윤리 경영 같은 기본을 지키고 있는지 냉철하게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태 교수도 “재벌 총수의 개인적인 일탈이나 기업을 둘러싼 반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경우, 지금의 호의적인 분위기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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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이건희 수사
8일 수사 당국은 두 가지 중요한 수사 내용을 공개했다. 둘 다 삼성을 향한 것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석방 사흘 후, 평창올림픽 개막 하루 전이다.
경찰이 오전에 나섰다. 차명 계좌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한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이 회장의 차명 계좌 규모를 4000억원대라고 했다. 남의 이름으로 돈을 관리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데 대한 형사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2007~2010년 일이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했다.
저녁엔 검찰이 나섰다. 이번엔 2009년 일을 들고 나왔다. 역시 이 회장이 건재할 때 일이다.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 수십억원을 대신 냈다는 단서를 잡았다고 했다.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제 소유주라는 의혹을 받는 기업이다. 검찰은 이날 삼성전자 본사와 R&D센터를 압수 수색했다.
죄가 있으면 밝혀야 한다. 밝혀낸 혐의를 수사 당국이 공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발표에 과장이 있어선 안 되고 수사에 감정이 배어서도 안 된다.
이날 알려진 차명 계좌는 경찰이 새로 밝혀낸 게 아니다. 이미 이 회장이 2011년 국세청에 신고하고 2014년 실명 전환을 끝낸 것이다. 세금 1300억원도 냈다. 선대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기업 자금을 빼돌린 비자금도 아니다. 당시 국세청은 조세 포탈 혐의를 찾지 못해 고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7년이 지난 지금 경찰은 이 판단이 잘못됐다며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정권 교체를 전후해 경찰이 검찰 못지않은 수사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보인 게 재벌 수사다. 삼성 수사도 그중 하나였다. 이 회장 자택 공사에 회삿돈이 들어갔다는 의혹이었다. 여기서 시작한 수사가 4000억원 차명 계좌와 탈세 사건으로 부풀어 올림픽 하루 전 공개됐다.
검찰의 수사도 지적할 부분이 있다. 삼성이 다스의 소송 비용을 대납했다는 시점은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이다. 검찰은 그 대가로 이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은 게 아닌가 의심한다. 하지만 그의 사면은 이유가 있었다. 이 회장은 당시 IOC 위원이었다. 이 회장을 사면해 국가적 숙원이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2년 후 평창은 올림픽을 유치했다. 누구도 그의 공헌을 부인할 수 없다. 법원의 이재용 부회장 석방에 당국이 느끼는 패배감을 짐작한다. 아무리 그래도 올림픽 전날 그래선 안 됐다.
어제 신문에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 조그맣게 실렸다. 평창올림픽 유치 발표 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3년 후 그는 쓰러졌다. 지금까지 의식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없다. 어제 열린 평창올림픽 개막식에도 그는 참석하지 못했다.
-김은정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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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법정과 2017년 이재용 부회장의 법정
글 | 엄상익 변호사

/photo by 조선DB
1996년 8월26일 오후 2시경 대통령에게 돈을 준 죄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게 징역3년이 선고됐다. 그리고 21년이 흘렀다. 같은 법원의 법정에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한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통령에게 돈을 준 뇌물공여죄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정경유착의 뿌리는 세대교체가 돼도 정권이 수없이 바뀌어도 뽑히지 않는다. 병상의 이건희 회장은 아들을 보면서 그때 법정에 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1996년 1월의 칼바람이 서초동 언덕의 법원을 휘몰아치던 날이었다. 대법정에는 노태우대통령과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나란히 서 있었다. 검사가 이건희 회장에게 물었다.
“왜 대통령에게 250억이나 되는 거금을 주었습니까?”
“3공화국 때부터 관례 비슷하게 돈을 주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돈을 정치자금이라고 불렀습니다. 일 년에 의례껏 한두 번은 청와대에 정치자금을 냈습니다. 기업을 하는 저희에게는 그것은 당연하고 관례같이 생각이 됐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기업이 어떤 뎁니까? 아무 관련도 없이 그런 거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겁니까? 삼성이 상용차 사업을 추진하는데 편의를 봐달라는 취지가 들어있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기업에 대해서 권력이 해코지를 하고 부당하게 손해는 나지 않게 해달라는 목적은 있었습니다. 그게 더 강했어요. 3공 때부터 피해를 제일 많이 본 것이 저희 삼성입니다. 그런 것들이 일종의 세금같이 생각됐습니다.”
검사의 신문이 끝나고 재판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물었다.
“왜 돈을 줄 때 꼭 돈세탁을 해서 줍니까?”
“돈세탁을 하지 않으면 받지를 않아서 주고받는 측에서 피차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금액인데 영수증 한쪽 받지 않고 줍니까?”
“3공화국 때는 청와대에서 전화를 하면 돈 달라는 거고 5공 때는 영수증을 줬어요. 6공 때는 ‘이심전심’으로 했습니다.”
화두 같은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알쏭달쏭했다. 심리가 종결되고 변론을 할 때였다. 한 변호인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니까 이 법정이 생긴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 법정이 열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뼈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심리가 종결됐다. 그 다음날 텔레비전 뉴스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샴페인 잔을 부딪치는 이건희 회장의 미소 짓는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 얼마 후 선고법정이었다. 재판장은 이렇게 판결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이건희 피고인의 경우 뇌물의 액수가 크지 않고 국가 경제정책과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한 공이 큽니다. 또한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인 점을 참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용서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재판장이 불쑥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이 뇌물죄로 처벌되는 마당에 그걸 준 재벌회장이 비록 그룹경영에 지장이 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용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돈을 받은 대통령도 사면이 됐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아버지 대가 끝이 나고 경영권을 승계 받은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똑같이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죄로 법정에 섰다. 이재용 부회장측은 독대를 할 때 대통령이 역정을 내서 돈을 주었다고 했다.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면 기업이 해코지를 당한다는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일심 재판부는 ‘이심전심’으로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 부정청탁을 주고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이십 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도 ‘이심전심’이란 말을 했었다.
정말 마음과 마음이 통해 돈을 준 것일까. 재벌은 단 한 푼이라도 쉽게 돈을 내놓지 않는다. 그게 기본체질이다. 돈을 쓰면 몇백 배의 이익을 노린다. 그게 비즈니스 마인드다. 권력의 ‘갑질’에 빼앗긴 것이다. 해코지당해 그룹이 해체되어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다. 이왕 돈을 줬으니까 본전을 톡톡히 뽑아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심전심은 단순하지 않고 양면성을 가진 복잡한 심리다.
이십년 전 재판장은 대통령을 유죄로 하는 마당이어서 삼성 회장도 유죄로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순서가 거꾸로 된 것 같다. 삼성 회장이 유죄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유죄라는 예측이 나온다.
권력이나 그 측근들이 끊임없이 기업들의 목을 조이면서 돈을 뜯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낸 회고록에서 돈에 대한 문제는 변명도 할 수 없는 그의 허물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 재벌은 정말 피해자이기만 할까.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에 속속들이 인맥을 형성하면서 돈을 풀어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은 것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권력과 돈의 끈질긴 관계가 끊어졌으면 좋겠다. 특혜 없는 돈은 없다. 대통령이 재벌과 인연을 끊는 게 사회의 양극화를 좁히는 첫걸음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조선Pub(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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