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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아픔도 잠시, ‘맥아더 개혁’ 열광한 日 민중] [이승만과 맥아더의 손]

뚝섬 2023. 1. 6. 09:53

[패전 아픔도 잠시, ‘맥아더 개혁’ 열광한 日 민중]

[이승만과 맥아더의 손]

 

 

 

패전 아픔도 잠시, ‘맥아더 개혁’ 열광한 日 민중

 

[20세기 일본사]

 

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가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해 9월 27일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총사령부 총사령관(오른쪽 사진 왼쪽)을 만나 포즈를 취한 히로히토 천황. 편안한 자세의 맥아더와 긴장한 듯한 천황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동아일보DB

 

《1945년 8월 15일 정오, 사상 처음으로 일본 천황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다. ‘옥구슬 같은 목소리(玉音放送)’는 아니었다. 연합국이 제시한 무조건 항복(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히로히토 천황은 적군이 “새롭게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자꾸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고 있으니, 참화가 어디에 미칠지 실로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수십만 명이 즉사했으니 ‘잔학한 폭탄’인 것은 맞지만 히로히토, 그가 할 말은 아니었다.》

 

역사상 최초 외국군 日 본토 점령


히로히토는 “앞으로 제국이 맞게 될 고난은 분명 심각할 것”이라며 “격정에 사로잡혀 함부로 일을 일으키거나 동포끼리 배척하고 시국을 어지럽혀 대도를 그르치고 세계에 대하여 신의를 잃을 것”을 경고했다(유인선 외 ‘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중 일본근현대 편). 내가 ‘결단’을 내려 전쟁을 끝냈으니 앞으로도 내 말을 잘 따르라는 말투다.

그러나 그런 허세와는 달리 히로히토와 천황제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이미 이승에 없었으니, 히로히토도 그리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1500년 계속돼 온 천황제 자체가 폐지되든가, 천황제는 유지하되 히로히토를 처벌 혹은 처형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히로히토 퇴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사람은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였다.

 

일본은 남들은 다 받는 외침을 거의 받지 않은 희한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맥아더 군대가 들어오기 전까지 일본 땅에 발을 들여놓은 외국군은 13세기 몽골군이 유일했다(해적 침입이나 작은 변경분쟁 제외). 고려·송나라 병사와 함께였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규슈 북부에서 가마쿠라(鎌倉) 막부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태풍을 만나 패퇴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가미카제(신풍·神風)다. 침략은 받았지만 단기간이었고 그나마 변경 지역에 국한되었다. 이때 전쟁을 이끌었던 막부 싯켄(執權) 호조 도키무네(北條時宗)는 19세기 중반 이후 페리가 개항을 요구해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구국의 영웅으로 자주 소환되었다.

역사상 두 번째, 그리고 700년 만에 경험하는 외국군이 맥아더 군대였으니 일본인들의 충격을 짐작할 만하다. 외국군에 점령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전쟁은 끝난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변경이 아니라 수도, 즉 천황이 있는 곳에 외국군이 진주했고, 천황과 일본의 운명이 그들 손에 있었다.

일본은 무조건 납작 엎드리는 길을 선택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창 들고 “미국 놈들 때려죽이자”던 국민들은 맥아더를 칭송하는 수십만 통의 편지를 전국 각지에서 보냈다. 한 시골 노인은 “옛날에는 천황 사진을 놓고 아침마다 경배했지만 지금은 장군님 사진을 놓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 맥아더를 흐뭇하게 했다. 끊이지 않던 ‘지사(志士)’들의 테러도 온데간데없이 사려졌고, 그 ‘용맹’하다던 ‘황군(皇軍)’은 점령군에게 총 한 발 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의회는 유지되었지만, 사실상의 ‘일본 총독’ 맥아더가 그 후 6년간 일본을 좌지우지했다. 그것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동아일보(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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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맥아더의 손

 

'흘러간 것은 새로운 것의 서막일 뿐이다(What is past is prologue).'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현판에 적힌 글귀다. 사진은 NARA가 소장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오른쪽)과 맥아더 총사령관 모습. 1945년 9월 시작된 미군정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끝난다. 사진 속 이승만과 맥아더의 맞닿은 손이 상징적이다.

 

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부 앞 국기 게양대에 걸린 국기는 일장기에서 성조기로 바뀐다. 그렇게 시작된 미군정 3년은 지금 한국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이 시기는 광복과 6·25전쟁 사이의 과도기일 뿐이다.

그 희미한 빛을 추적해 미군정을 사진 중심으로 정리한 책 '미군정 3년사'(눈빛 刊)가 출간됐다. NARA에서 발굴한 사진과 남북한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을 엮었다. 1950년 10월 평양에서 미군이 노획한 '북조선 민주주의 건설 사진첩'(1946년 제작) 같은 희귀 자료도 공개한다.

영광의 역사도, 오욕의 역사도 망각해서는 안 될 역사. NARA 현판에 적힌 글귀가 섬뜩한 이유다. '미군정 3년사'(박도 엮음) 655쪽에서. 

 

-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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