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벨스 뺨치는 여론조사
얼마 전 한 신문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시행한 여론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제목은 "검찰 수사 불공정 48.8%, 공정 43.0%"였다. 그러고선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여론이 다소 우세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조사의 질문은 "최근 청와대 전·현직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울산시장'이나 '유재수'란 단어는 아예 없었고, 이
사건들과 거의 관련 없는 '국회의원'을 불쑥 끼워 넣었다. 이렇게 모호하게 질문하고선 '검찰 수사가 불공정하다'는 식으로 해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달 초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는 공수처 찬성이
71%라고 발표했다. "고위 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 설치 법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의 찬반을 물은 결과다. '고위 공직자
범죄'를 수사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설문지에는
정권이 인사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수처를 만드는 건 권력 강화책에 불과하다는 야당의 반론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KSOI는 지난 7월 '한·일
갈등이 총선에 긍정적'이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보고서에서 인용된 여론조사를 한 회사다. 이와 관련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서 공직선거법 준수 촉구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여야가 논란 중인 선거법 개정은 연동률 캡, 석패율제, 이중등록제 등 무슨 말인지도 모를 방식이 얽혀 있지만, '사표(死票) 방지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으로
포장해 찬반을 물은 조사회사도 있다. 선거법 내용을 제대로 알 리 없는 응답자들을 찬성
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꼼수' 여론조사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 4·3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선 여당과 단일화한
정의당 후보가 고작 0.5%포인트 차이로 당선했다. 하지만
선거 일주일 전 조원씨앤아이 조사는 24%포인트, 중앙일보
조사팀은 12%포인트 차이로 정의당 후보가 크게 앞섰다. 그래도
여심위는 왜 이런 조사 결과가 선거 직전에 발표됐는지 검증하지 않았다고 한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근 만난 한 언론학자는 "엉터리 여론조사가 언론을 통해 퍼져도 지금 제도로는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그런 면에서
왜곡된 여론조사는 매우 심각한 가짜 뉴스"라고 했다.
여권은 가짜 뉴스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왜곡이 의심되는 여론조사가
쏟아지는 것에 대해선 여권에 유리해서인지 아무 말이 없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민주주의를 좀먹는 엉터리
여론조사를 규제할 방안을 정치권은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조선일보(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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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지지'라는 늪
여권(與圈)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하면 이에 반발하는 지지층이 이탈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하기 이전엔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70~80%가 '지소미아를 계획대로 종료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얼마 전까지도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소미아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한 직후인 23~24일 실시한 MBC 조사에선 대통령 지지층의 72%가 '종료 연기는 잘한 결정'이라며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 지소미아를 종료해도, 연기해도 '잘했다'고 칭찬했다. 이른바 '묻지 마 지지'다.
문 대통령을 향한 '묻지 마 지지'는 주요 정책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갤럽은 경제, 고용·노동, 교육, 대북, 국방, 외교, 인사(人事), 복지 등 8개 분야 정책을 평가하는 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층의 43%가 '잘못하고 있는 정책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부정 평가 항목이 한 개에 불과한 경우(20%)까지 포함하면, 지지층의 다수인 63%가 정부 정책에 거의 불만이 없었다. 또 갤럽의 11월 둘째 주와 셋째 주 조사에선 대통령 지지층에게 '왜 지지하냐'고 물었더니 '모름·응답
거절'이 1위였다.
구체적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도 지지를 보내는 팬심(Fan心) 가득한 지지층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다.
'묻지 마 지지'는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다. 그게 신기루였다는 것도 이미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도 임기 4년 차인 2016년 2월까지 4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콘크리트 지지층의 존재를 과시했다. 당시에도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 이유 1위가 '모름·응답 거절'이었다. 역시 맹목적 지지가 많았다는 의미다. 얼마 후 지지층이 허망하게 산산조각 난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도 팬덤의 폐해를 강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2017년 초 탄핵 정국 때 "묻지 마 지지로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불러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현 정부 들어 '좀비를 닮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성 지지층의 기세는 더 맹렬해졌다. 조국 사태에서 보았듯이 열성 지지층에만
호소하는 '팬덤 정치' 양상도 더 심해졌다.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 연기에 대해 "대통령의 원칙과 포용
외교의 판정승"이라고 한 것은 지지층을 붙잡기 위한 포장술이었다. "소득 주도 성장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등 엉뚱한 주장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지층은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대상이지 기만의 대상이 아니다. '이니
마음대로'를 외치던 지지층도 멀지 않아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게 바로 레임덕의 시작이다.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조선일보(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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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가는 여론조사 不信
[여론조사 시즌이 왔는데… 7가지 궁금증, 전문가에 물어봤다]
-응답자 정치성향의 비대칭, 與지지층이 조사 호의적… 실제로 20~30%p 더 참여, 野지지자는 응답 꺼려
-내 주변 여론과 다른데… 연령·지역·소득수준
등 비슷한 사람들이 어울려… 이들이 전체 민심은 아냐
-노인이 받으면 끊는다? 남자·60세이상·서울거주 30명 할당한 조사라면 다 채운 후엔 조사안해,
'38.7 vs 27.9%'(MBC 본사·코리아리서치), '58.3 vs 28.8%'(MBC 경남·리얼미터).
같은 날(5월 3일) 발표된 경남지사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 여론조사 결과다. 김경수 후보 지지율이 조사 회사에 따라 2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 것이다. 전화면접원(코리아리서치)과 ARS(리얼미터)로
방식이 다른 두 조사를 놓고 정치권에선 "어느 쪽이 진짜 표심이냐"란 논란이 일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80%, 50%를 넘는 데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不信)이 커지는 이유와 궁금증을 심층면접을 통해 풀어봤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여론조사 회사에서 면접원들이 전화 조사를 하고 있다.
① 왜 정확도 떨어지나
한규섭 교수는 "민심을 정확히 못 읽는 여론조사가 많다"며 "1년 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요즘 여론조사에 실제보다 20~30%포인트 더 많이 참여하는 '응답자 정치 성향의 비대칭'이 주요인"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야권 지지층이 여권 강세 분위기에서 자신들이
소수란 위축감으로 여론조사 참여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요인"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조사 회사들이 여론조사 참여자 '편향'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 유권자들이 결과 해석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전화면접원 조사와 ARS 조사가 서로 크게 다른 결과를 내고 있는데,
최적의 표준화 방식 개발 같은 해결책을 못 내놓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② 응답률 너무 낮은데 믿을 수 있나
올 4월 이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선거 여론조사 243개 중 응답률 5% 미만인 조사가 36% 정도였다. 총
응답자 1000명인 조사에서 '응답률 5%'는 전화가 연결된 2만명 중
1만9000명이 거절했거나 도중에 끊었고 1000명만
끝까지 대답했다는 의미다. 응답률 하락은 휴대전화 확산과 정치 불신 등에 따른 현상이다. 박민규 교수는 "조사 회사들은 응답률 관련 자료를
세세하게 밝히며 엄격한 검증을 받아 부실 조사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응답률이 낮은 최근 대다수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상대적으로 여권에 호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편향성을 줄이기 위해 조사 회사들이 응답률 향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원호 교수는 그러나 "많은 요소가 여론조사 품질을 결정하므로
응답률만0고 품질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③ 댓글 조작, 조사 결과에도 영향 미치나 |
이양훈
이사는 "사람들은 주로 연령과 지역, 소득수준 등이
비슷한 그룹과 어울린다"며 "연령과 지역에
따라 정치 성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얘기로만 전체 민심을 파악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지지율이 높았을 때는 지금과 반대로 당시 야권 성향이 강했던 20~30대에서 '여론조사가 내 주변 의견과 다르다'는 불만이 많았다.
⑤ 노년층이 나이 밝히면 조사를 중단하는데…
이는 국내 선거 여론조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할당표집, 즉 성(性)·연령·지역별 인구 비례에 맞게 표본을 할당해 조사하는 방식과
연관이 크다. 일례로 전체 표본 중에서 남자·60세 이상·서울
거주자를 30명으로 할당했을 경우 이를 다 채우면 서울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남자는 더 이상 조사하지 않는다. 김지연 대표는 "노년층은 외부 활동이 많고 귀가 시간이 늦은 청·장년층에 비해 할당이 빨리 채워진다"며 "조사 도입부에 나이를 물었을 때 이미 할당이
다 채워진 연령대로 밝혀지면 조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⑥ 여론조사 조작 가능성 있나
김석호 교수는 "최근 여론조사와 관련된 조작의 증거는 없다. 문제는 질(質) 낮은 조사에 의한 자료 수집에 있다"고 했다. 그는
"전문성 없는 조사회사 난립과 질 낮은 조사 결과의 양산을 막기 위해 여심위가 존재하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김지연 대표는
"모든 조사 과정이 CATI(컴퓨터를 활용한 조사) 시스템에 기록으로 남는다"며 "여론조사 대상자의 전화번호는 무작위로 생성되거나 선관위를 통해 통신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상번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정 번호만 골라 조사할 수 없다"고 했다.
⑦ 여론조사 정확성 높이는 방법 뭔가
박원호 교수는 "값싸게 빨리 실시되는 국내 여론조사 현실이 걸림돌"이라며 "여론조사가 공공재라는 인식 아래 정치권에서
여론조사를 규제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지원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석호 교수는 "학계·언론·조사업계·정치권이 함께 여론조사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했다.
[여론조사 자꾸 빗나가자 … 선진국선 "오류 원인을 찾아라"]
2016 美 대선, 英 브렉시트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에 큰 충격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성 논란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2016년 미국 대선과 영국 브렉시트(EU 탈퇴) 투표에서 여론조사가 현실과 크게 어긋났었다. 휴대전화 확산으로 표본 추출 방식이 복잡해지고 응답률이 하락한 영향이 크다.
1997년 36%였던 미국 내 여론조사 평균 응답률은
2012년 이후 9%로 하락했다('퓨리서치센터' 자료). 하지만 미국의 평균 응답률은 여전히 한국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미국의 응답률 계산 방식은 훨씬 까다롭다. 우리나라의 응답률은
전화를 받은 사람 중 끝까지 응답을 해준 사람들의 비율인데, 엄밀히 말하면 협조율이다.
미국은 전화를 했는데 아예 안 받은 접촉 실패 수까지 분모에 포함해 계산한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올해 4월 30일 발표한 남북
정상회담 평가조사의 응답률은 12.2%였지만, 미국 방식으로
계산하면 2.5%로 떨어진다. 박민규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도 엄격한 응답률 기준을 적용해서 품질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여론조사협회(AAPOR)는 2016년 대선
직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5개월 후 "표본에 트럼프가
취약한 대졸자 비중이 너무 컸다" 같은 자성(自省)적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도 여론조사 오류의 원인 규명과 신뢰성 향상을 위해
업계와 학계가 공동 노력하는 선진국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도움 주신 분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지연 케이스탯 대표, 박민규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양훈
칸타퍼블릭 이사,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나다순)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조선일보(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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