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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혁명' 성공 뒤엔 주부들… 증언으로 재구성한 종량제 30년] ....

뚝섬 2024. 11. 17. 05:32

['생활 혁명' 성공 뒤엔 주부들… 증언으로 재구성한 종량제 30년]

[한강 공원의 쓰레기]

[인정할 수밖에 없는 '멋진 퇴장']

울릉도의 울분… "중국 쓰레기 때문에 못살겠다"]

 

 

 

'생활 혁명' 성공 뒤엔 주부들… 증언으로 재구성한 종량제 30년

 

증언으로 재구성한
쓰레기 종량제 30년

 

새해 첫 주 어느 날, 오전 8시 30분쯤이었을 것이다. “전국에 계신 주부님들, 도와주십시오!”

 

환경부 공무원이 TV에 나와 봉투 하나를 쥐고 펄럭펄럭 흔들며 외쳤다. “이게 잘 찢어져야 되는 겁니다. 안 찢어지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손에 든 것의 정체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안 찢어져야 사용하기 편할 텐데, 잘 찢어져야 한다니 이게 무슨 말? 그의 모습은 KBS ‘아침마당’에서 생방송되고 있었다. 전국 단위의 종량제 도입 닷새째 되는 날. 이 공무원이 아침마당에 출연한 것은 정책 성패(成敗)의 ‘키’를 주부들이 쥐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구가 지난해 새롭게 디자인한 종량제 봉투. 북극곰이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일반 쓰레기 봉투, 재사용 봉투, 음식 쓰레기 봉투.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종량제가 곧 시행 30주년을 맞는다. 1995년 1월 1일 국가 주도로 시작된 종량제는 무려 ‘단 10일’ 만에 국민의 90%가 참여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저게 가능한 일이냐”는 세계적 찬탄(혹은 경악)을 받았다. 하루 평균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시행 이전인 1994년 4만9191t에서 1년 만에 3만6052t으로 27%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재활용품은 8927t에서 35% 증가(1만2039t)했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의 일부 지자체에서도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시한 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

 

배경에는 불편을 감수한 국민적 희생과 시민 의식이 있었다. 종량제 시행 첫해 1월 3일부로 환경부 폐기물정책과장(현 자원순환정책과)을 맡은 이규용(69) 전 환경 장관의 증언을 통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종량제 안착 과정을 재구성했다.

 

◇새해 벽두의 쓰레기 전쟁

 

“새해의 첫 출발이 쓰레기로 뒤범벅됐다. (…) 전국 주택가 골목길마다 처리비를 물지 않으려고 시민들이 미리 내다 버린 쓰레기로 산더미를 이뤘다.”(본지 1995년 1월 4일 자)

 

난산이었다. 신년 연휴가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 본지는 1월 3일 당시를 “새해 벽두의 쓰레기 전쟁”이라 기록했다. 골목마다 쌀통이나 이불 등 온갖 쓰레기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12월 31일부터 1월 1일 사이 버려진 쓰레기는 평소의 3~4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쓰레기 홍수.

 

원인은 1월 1일 시작된 종량제. 주부 이모(62·서울 은평구)씨는 “그때는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린다’는 개념이 생경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쓰레기는 굴러다니는 아무 봉투에나 넣어 집 앞에 던지면 끝이었다. 고층 아파트의 집 안에는 1층의 대형 철제 쓰레기통으로 연결되는 통로(쓰레기 배출구)가 있어, 봉투에도 담지 않고 털어내면 만사 오케이였단다. 이 때문에 1~2층에서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이전에도 사실 쓰레기 처리 비용은 부과되고 있었다. 재산세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소득과 쓰레기양이 비례한다’는 원칙을 적용한 건데, 일괄 적용하다 보니 국민 입장에선 쓰레기를 줄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 모순을 개선한 것이 ‘버린 만큼의 비용을 지불한다(오염자 부담 원칙)’는 종량제.

 

그러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쓰레기봉투를 직접 ‘돈 내고’ 사는 건 엄연히 다른 법. 당시 20ℓ 쓰레기봉투 가격은 전국 평균 240원. 마을버스를 탈 수 있는 돈이었다. 연휴를 끼고 종량제가 실시됐기에 약국 등 봉투 판매소가 문을 닫아 봉투를 살 곳조차 마땅찮았다. 그리하여 법 시행 이전과 시행일 새벽, 집 안의 쓰레기를 몽땅 길거리에 버리는 난리가 벌어진 것이다.

 

◇전국이 “이 불편한 걸 왜 해”

 

“아니, 난 뭐 바보라서 돈 주고 쓰레기 버립니까?” “왜 느닷없이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요?” 새해부터 환경부는 민원 전화로 불난 호떡집이 됐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법 지키는 사람 따로 있고 안 지키는 사람 따로 있느냐’는 항의가 쏟아진 것. 가짜 종량제 봉투가 유통되고, 집 앞에 내놓은 봉투에서 쓰레기는 쏙 빼고 봉투만 훔쳐 가는 도둑까지 등장했단다.

 

“불편해 죽겠다” 전국이 아우성이었다. 함께 시행된 분리수거제에 대해선 “재활용품 구분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몰라서 못 버린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지침에 따라 수거함을 설치해야 하는 지자체조차 “수거함 확보가 어렵다” “현실을 모르는 지침”이라며 항의했다.

 

“잠시 탈모가 왔을 정도(!)”로 고통받던 ‘신임 과장’은 그리하여 아침마당 출연을 결심한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하는 일은 주로 주부 몫이었고, 이들의 마음을 잡아야 참여율이 획기적으로 오를 테니까. 

 

환경부가 쓰레기 종량제 실시를 알리는 신문광고

 

◇불편해도 봉투는 터져야 한다

 

주부들의 가장 큰 불만은 “봉투가 너무 잘 찢어진다”는 것. 봉투가 곧 돈이다 보니, 한계치까지 꾹꾹 담아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환경 부담을 덜자는 종량제 취지를 살리려면 봉투가 ‘잘 터져야’ 했다. 청소차는 종량제 봉투를 수거한 뒤 압축한다. 이때 봉투가 터져야 내용물이 공기와 접촉해 매립지에 묻은 뒤 비교적 빨리 썩는다. 그래야 15~20년 뒤 해당 토지를 재이용할 수 있다. 즉, 봉투는 ‘청소차에 실리기 전까지만 터지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 강도를 높이려 봉투의 플라스틱 성분 비율을 늘리거나 두껍게 만들면 분해 기간이 오래 걸려 또 다른 ‘비닐 공해’가 발생할 수 있고, 봉투 값도 오른다. 실험 끝에 봉투 두 종류의 두께를 0.015㎜, 0.025㎜로 하되, 오차 범위(10%) 내에서 ‘터질 수는 있되 가장 두껍게’ 만들기로 했다. 다만 터지지 않은 봉투를 낫으로 찢는 인원을 김포 매립지 등에 별도로 고용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주부들에겐 이렇게 설명했다. “생활의 편리함과 환경 사이의 접점이 필요합니다. 주부님들의 이해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가 호소한 날 기준, 1월 1~5일 평균 전국 참여율은 64%. 광주광역시(87%) 등 지방 참여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지만 서울 40%, 인천 19%, 경기 48%로 수도권 참여율이 낮았다. 이 전 장관은 “종량제 봉투를 쓰던 사람도 무단 투기한 모습을 보고 그만두게 될 판이었다”며 “일주일 안에 전국 참여율을 90%로 올리지 못하면 실패한 정책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10일 만에 참여율 90% 넘어

 

“종량제는 획기적인 생활 혁명이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본지 1995년 1월 7일 사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본지를 비롯한 언론이 종량제의 필요성을 주창하기 시작한 1월 6일부터, 쓰레기 발생량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 시작했다. 6일 하루 김포 매립지에 반입된 쓰레기는 1만5900t으로, 종량제 실시 전인 1994년 12월의 하루 평균 반입량 2만1626t에서 26% 줄었다.

 

그 중심에는 불편함을 감수한 주부들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 곳곳서 종량제 봉투 사용을 독려하는 반상회가 열렸고, 부녀회 조직이 분리수거를 하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 수거함을 준비하지 못한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바구니를 마련해 재활용품을 수집하기도 했다. 시장에 갈 때 장바구니를 들었고, 샴푸와 그릇 세척제 등은 리필제품을 쓰기 시작.

 

그리하여 1월 9일, 마침내 전국 종량제 봉투 사용률이 평균 90%를 돌파했다. 전국을 뒤흔든 대소동이 끝나고, 10일 만에 종량제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편하다”면서도 지킬 건 지키는 우리 국민들. 

 

디자인 감각이 가미된 종량제봉투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포장 폐기물과 플라스틱 문제

 

이 사례는 대만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모범으로 주목받는다. 1990년대 중반 ‘쓰레기 섬’이라 불렸던 대만은 2001년 종량제를 도입, 수거차가 주 5일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음악을 울리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들고나와 수거차에 버린다.

 

현재도 종량제 도입은 쉽지 않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의와 안락함을 일부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 2005년부터 종량제를 추진해 2차례 연기 끝에 올 8월부터 종량제를 실시하기로 한 홍콩은 결국 “불편한 데다 비용 부담까지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에 시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줄었던 쓰레기가 최근 몇 년간 다시 늘고 있는 건 개선해야 할 과제다. 온라인 쇼핑 증가로 인한 포장재와 배달이 일상이던 코로나의 흔적이다. 1994년 475kg이던 우리나라 1인당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종량제 시행 직후인 1995년 387kg으로 감소했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전면 실시한 2013년엔 353kg까지 줄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다시 400kg대를 넘어 2022년 446kg이 됐다. 이 전 장관은 “환경 문제는 개인이 불편을 감수하고 양보해야만 개선할 수 있다”며 “급증하는 포장 폐기물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때 됐는데 지금은 왜 안 되나. 다시 외친다, Again 1995! 

 

안성시 시설관리공단에서 관계자가 플라스틱 베일(bale·더미)을 쌓아 올리고 있다. /박상훈 기자

 

-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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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공원의 쓰레기 

 

한여름 일본 전역에선 불꽃축제(하나비·花火)가 벌어진다. 도쿄의 아사쿠사 하나비는 일본 3대 불꽃 축제로 꼽힐 만큼 명물이다. 7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스미다가와(隅川) 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러 해마다 100만명이 몰린다. 사람들은 아사쿠사역에서부터 지정된 길을 따라 거북이걸음으로 움직인다. 손에 손에 불꽃을 보며 먹을 음식을 들고 있다. 몇년 전 이곳을 다녀온 친구는 "그렇게 많이들 모였는데 끝난 뒤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더라"며 신기해했다.

▶국내에선 초가을 여의도 불꽃축제가 유명하다. 지난해 100만명 몰렸다. 그런데 축제가 끝난 뒤 두 도시 모습이 많이 다르다. 한강 공원엔 20m 간격으로 컵라면·치킨 등 쓰레기 무덤이 생긴다. 수거하는 쓰레기가 매년 30t 이상이다. 최근 도쿄 특파원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가 "몇년 만에 돌아와 보니 거리가 더 지저분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일본과 비교돼서 더 그럴 것이다.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 선수단과 응원단이 보여준 뒤처리 매너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16강전에서 벨기에한테 역전패당한 날 일본인들은 눈물이 범벅된 채 주머니에 페트병을 주워담았다. 일본 선수들이 사용한 라커룸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탁자엔 '감사합니다' 메모가 남아 있었다. 대표팀 스태프가 청소했다고 한다. CNN은 이를 '일본 선수들의 고급스러운 고별인사'라고 전했다. 

 

▶2002년 월드컵 한·미전 거리 응원 때 서울시청 앞에 40만명이 모였다. 열기는 넘쳤지만 시민들은 자제했고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4년 후 월드컵 토고전 때는 광장에 먹다 버린 생수병과 맥주 캔이 가득했다. 외부 시선이 있다거나 무슨 캠페인이 있으면 조심하지만 대부분 막 한다. 18일자 조선일보 2면에 실린 사진을 보니 고질병이 그대로다. 한강 공원에 분리수거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쓰레기통마다 먹다 남은 음식이 가득하다.

▶한강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민 휴식 공간이다. 그러나 한강 공원을 걸을 때마다 노천 음식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대야로 앞으로 더 많은 시민이 나와 먹고 마실 것이다. 전국의 해수욕장 백사장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에선 몇년 전 축제 기간 맥주캔에 바코드를 넣어 그걸 갖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덴마크에선 재활용 판지로 만든 일회용 쓰레기통을 대량 보급해 공원과 축제 장소 쓰레기를 크게 줄였다. 우리는 시민의식도 아직 모자라고 제도나 행정도 못 따라가고 있다.
 

 

-안석배 논설위원, 조선일보(1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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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수밖에 없는 '멋진 퇴장' 

 

아시아인을 경멸적으로 표현할 때 두 눈을 잡아당겨(pull their eyes to the side)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동작을 취한다(make the slant-eye gesture). 눈이 쫙 째진 시늉을 한다(put on an act of being slit-eyed).

중남미에선 "꼬메 까까(Come caca), 꼬메 까까" 외쳐대기도 한다. 스페인어로 "똥 먹어라, 똥 먹어라" 놀려대는(poke fun at them)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이라고 하면 태도가 확 바뀐다. 정중히 대한다(treat them politely). 일본 경제력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기도(due to the awe of its economic strength) 하지만,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는(be well-mannered and modest) 인식이 퍼져 있어서다.
 

 

중남미에서 철천지원수(sworn enemy)인 일본의 덕을 봤다는 한국인들이 있다. 지금은 일본 못지않은 경제 대국이 돼서 그런 거지만, 과거엔 일본인으로 착각해 잘 대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일본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긍정적 영향을 미친(exert a positive effect)

것이다.

일본이 월드컵 16강전에서 역전패해
(suffer a reversal) 탈락했지만(be knocked out of it), 특유의 매너로 칭송을 들었다(earn accolades). 벨기에에 연장 시간 결승골을 내주며 3대2 역전승을 허용해(give up a come-from-behind victory with a stoppage-time winner) 비통하고 황망한(be heart-stricken and devastated)지경임에도 팬들은 관중석을, 선수들은 탈의실을 깨끗이 청소해놓고 갔다.

팬들은 마지막 순간 충격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despite the last-gasp stunning loss) 경기장에 남아서 머물렀던 자리를 꼼꼼히 치웠다(stay behind and meticulously clean up after themselves). 미리 가져온(bring along in advance) 쓰레기봉투(garbage bag)에 경기 중 흥분했을 때 흐트러진 음식 찌꺼기, 포장지 등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gather up litter such as food waste or wrappers scattered in the heat of the moment). 눈물을 흘리면서도(shed tears) 가슴 아픈 패배의 실망감을 참아가며(fight back the disappointment of the heartbreaking loss) 어릴 때부터 주입된 습관(a habit drilled into them from childhood)을 다하는 모습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come as a surprise).

선수들도 본보기라는 찬사를 들었다(be hailed as an example). 탈의실을 티끌 하나 없이 치워놓고 갔다(leave their changeroom spotlessly clean). 완벽하게 깔끔해(be impeccably tidy)
음식을 주워 먹어도 될 정도였다. 종이 한 장만 남아 있었는데, 러시아어로 "감사하다"는 인사가 적혀 있었다.

외신은 "일본인들이 전 세계에 자신들의 삶 방식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며
(demonstrate pride in their way of life) 아주 멋진 퇴장을 했다(bow out in great style)"고 전했다. 

 

-윤희영 편집국 편집위원, 조선일보(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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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울분… "중국 쓰레기 때문에 못살겠다"

 

폐어구·기름 등 마구 버려… 정부에 오염 대책 마련 호소

 

동해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들이 최근 울릉도 항구 주변으로까지 진출했다. 중국 어선 수백 척이 울릉도로 몰리면서 선박 운항 차질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 '어종 가릴 것 없이 싹쓸이한다'고 알려진 쌍끌이 어선이다. 중국 어선들은 울릉도 바다에 폐어구와 쓰레기, 폐기름을 마구 버리고 간다. 울릉도 어민들은 "중국 어선이 심각하게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28일 경북 울릉군에 따르면 최근 울릉읍 저동항 외항에서 서면 통구미 연안까지 중국 어선 200여척이 진을 쳤다. 지난해 819척, 올 들어 564척 등 최근 4년간 2953척이 울릉도 인근에 몰려왔다. 최근 울릉도에 나타난 중국 어선 중에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유류 운반선과 냉동 운반선도 있었다.

울릉도 해상에 중국 어선이 몰려들자 어민들의 자망과 통발이 손상되고 어선이 충돌하는 등 해상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 어선들은 항구 입구를 막아 선박 운항에도 차질을 일으킨다. 지난 25일 오전에는 3500t급 국내 선박이 사동항 근처에 도착했지만 한 시간 넘게 입항하지 못한 채 바다에 떠 있어야 했다. 선박은 어업지도선과 해경 고속 단정이 출동해 중국 어선들을 정리한 뒤에야 항구에 들어갔다. 올해 두 번째 지연 입항이었다. 조업 도중 기상 악화로 급히 돌아오던 울릉도 어민도 불편을 겪는다. 울릉도 오징어 채낚기 선주 김모(64)씨는 "정부에서는 경비 함정과 어업지도선을 동원해 중국 어선 주변만 맴돌면서 감시·감독하는 것이 전부"라며 "정부가 나서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울릉=권광순 기자, 조선일보(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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