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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 수능 감독관] [수능 정답 유예] [국어 '불(火)수능']

뚝섬 2024. 11. 14. 05:58

[‘극한 직업’ 수능 감독관] 

[수능 정답 유예] 

[국어 '불(火)수능']

 

 

 

‘극한 직업’ 수능 감독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을 했던 A 교사는 시험 다음 날 낯선 전화를 받았다. “나 변호사인데, 당신이 내 딸 인생을 망가뜨렸으니 당신 인생도 망가뜨리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A 교사는 전날 한 여학생이 시험 종료 벨이 울린 뒤에도 답안지를 마킹하는 부정행위를 하자 이를 제지했는데 그 학생 아버지가 걸어온 협박 전화였다. 며칠 뒤엔 수험생 어머니까지 학교로 찾아와 ‘A 교사 파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올해부터 수능 감독관들이 이름이 아닌 일련번호가 적힌 명찰을 차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건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매년 수능 후엔 수험생들 민원이 수백 건씩 쏟아진다. “감독관 잠바가 바스락거려 신경이 쓰였다”부터 “감독관이 한곳에 너무 오래 서 있어 방해가 됐다” “자꾸 돌아다녀서 집중이 안 됐다”는 상충되는 불만까지 가지각색이다. 극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수험생들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교사들은 감독은 하되 ‘공기’처럼 존재하기 위해 기침도 참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다.

▷수능 감독관은 보통 3교시, 많게는 4교시를 들어간다. 한 교시마다 70∼100분이다. 시험 시간을 칼같이 못 맞추거나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집단 커닝 같은 부정행위라도 벌어지면 징계를 받을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점심시간은 50분인데 앞 교시가 지연되고, 뒤 교시 시작 10분 전부터 대기하려면 20∼30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이러니 매년 11월 찾아오는 수능 감독 업무를 교사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보통 저연차 순으로 차출되고, 고3 자녀를 둔 교사들은 감독관에서 제외돼 부러움을 산다.

 

올해 수능은 감독관 구인난이 여느 해보다 심했다. 고3 재학생이 지난해보다 많고, 의대 증원 영향으로 N수생도 늘어나 응시생은 전년 대비 1만8000명 증가한 반면 감독관은 7600명이 줄었다고 한다. 시험실 한 반에 배치되는 수험생 인원은 24명에서 28명으로 늘어나 감독관들 부담이 더 커졌다.

중고교 교사들은 대학이 학생을 뽑기 위해 치르는 수능에 왜 우리만 동원되느냐고 불만이다. 응시생의 35%가량이 N수생이니 대학 교직원들도 감독을 나눠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직원들은 그들대로 수시전형을 관리하느라 여력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연세대에선 논술고사 감독관이 시험 시간을 착각해 문제지를 잘못 배포하는 바람에 시험 무효 소송과 경찰 수사로까지 번졌다. 무서워서 감독관 하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하다. 시험 한 번에 청춘들 인생이 걸린 우리의 과열 입시가 감독관을 ‘극한 직업’으로 만들어버렸다. 수능일인 오늘(14일)은 52만 명 수험생 못지않게, 7만 명의 감독관에게도 고단한 하루가 될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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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정답 유예 

 

2022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10일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받아든 성적표에 생명과학Ⅱ 성적이 공란 처리돼 있다./연합뉴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입시생 중에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수험생 6000여 명은 이 과목 성적이 공란인 채 수능 성적표를 받았다. 출제 오류 논란이 벌어진 생명과학Ⅱ의 20번 문제를 놓고 수험생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정답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성적 처리를 하지 말라’고 정답 효력 정지 처분이 나왔기 때문이다.

 

▶동물 개체 수는 ‘마이너스 한 마리, 마이너스 두 마리’ 하는 식으로 셀 수가 없는데 생명과학Ⅱ의 20번 문제를 풀면 마이너스 값이 나온다. 이 문제를 틀린 수험생들은 출제 오류를 주장했지만, 문제를 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문제를 푸는 과정이 중요한 만큼 오류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생명과학Ⅱ는 30분 만에 20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이 한 문제에 15분이나 써버려 시험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수험생도 있다. 결국 수험생들이 소송으로 맞섰다.

 

▶2014학년도 수능의 세계지리 8번 출제 오류는 1년 만에 판가름이 났다. 교과서에는 EU(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권역보다 크다고 되어 있다. 세계 금융 위기로 2010년 무렵부터 EU와 NAFTA 경제 규모가 역전됐다. 평가원은 교과서대로 정답을 발표했는데 오류 논란을 제기한 수험생들은 소송도 불사했다. 1심은 평가원이 이겼는데 2심에서 뒤집혔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수능 치른 지 1년 만에 8번 문항을 전부 정답 처리하고 1만8884명의 성적을 다시 매겼다. 대학들도 입학 사정을 다시 해서 4년제 대학 430명, 전문대 203명 등 총 633명을 추가 합격시켰다.

 

▶입시 출제 논란은 50여 년 전 ‘무즙 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학년도 서울 중학교 입시에서 ‘엿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됐다. 발표한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는데 무즙도 맞는다고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실제 엿을 만들어 서울시교육위로 몰려가 “무즙 엿 먹어라” 시위까지 벌였다. 이듬해 무즙도 정답이 됐고 추가 합격자들이 나왔다. 이 사건은 과열 경쟁의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는 한 단초가 됐다.

 

▶카카오톡의 오픈 채팅에는 ‘생2(생명과학Ⅱ) 피해자 소송 단톡방’이 개설돼 있다. 별칭을 ‘망한 생2′ ‘생2 피해자’ ‘서울대 못 쓰는 생2러’ ‘억울해’ ‘왜 인정을 안 하니’ 등이라고 붙인 수험생들이 재판 정보를 나누며 소송에 임하고 있다. 시험 한 문제에 인생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입시 세대의 절박함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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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수능'

 

1993년 대입 수능시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수험생들은 해마다 수능 난이도에 울고 웃었다. 너무 어려우면 '불(火)수능', 쉬우면 '물(水)수능'으로 불렀다. 2001년 수능은 특히 국어와 수학이 어려웠다. 1교시 국어 시험이 끝나자마자 짐 싸들고 고사장을 뛰쳐나간 중도 포기자가 속출했다. 정부가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 갈 수 있다'며 쉬운 수능을 약속한 이른바 '이해찬 1세대'가 당시 고3이었다. 학부모, 수험생들이 들끓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 약속을 믿은 학부모, 학생들이 충격을 받아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까지 했다.

▶1997, 2008, 2010년에 이어 그제 치러진 수능도 불수능 대열에 합류했다. 국어·수학·영어 세 과목 모두가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동·서양의 우주론과 만유인력의 법칙, 질점(質點) 등을 버무려 낸 국어 31번이 '킬러(killer) 문제'였다. 주변에 '질점' 개념을 아는 이가 별로 없었다. 백과사전에는 '물체의 질량이 총집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점'이라는데 여전히 아리송했다. 작년 수능 국어에서도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환율 오버슈팅' 문제가 나와 수험생들을 당황케 했다. 

 

▶45문항을 묻는 수능 국어 문제지는 16쪽이다. 5분 안에 한쪽을 풀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지문을 읽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과거 수능 국어 문제를 풀어봤다는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문제를 배배 꼬아놓았다. 분노가 치민다"고 했었다. 그러나 현행 입시제도에서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면 변별력이 높은 '킬러 문제' 출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렵기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게 일본 도쿄대 입시다. 본고사가 있던 1980년대 이전 서울대 준비생 상당수가 도쿄대 기출 문제를 구해 공부했지만 "너무 어렵다"며 두 손 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도쿄대 입시는 지금도 거의 전 문항이 '킬러' 수준이라고 한다.

▶올해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선 '모든 진리는 결정적인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의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가' 같은 문제가 출제됐다. 독일 대학 시험에선 시와 소설 등에서 제시문을 발췌해 '분석하고 당신의 생각을 써라'는 주관식 문제를 출제한다. 그런데 우리는 교사가 교실에서 지문을 읽어가며 일일이 해석해주고, 학생들은 고사장에서 정답 찍기를 한다. AI 혁명 시대에 갖춰야 할 창의성 키우기 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래서야 우리 젊은이들이 나중에 다른 나라 인재들과 겨룰 수 있겠는지 걱정이다.

 

-박은호 논설위원, 조선일보(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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