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년
프랑스 왕세자 샤를이 파리 근교 몽트로 다리 위에서 '용맹공'이라
불리던 부르고뉴 공작을 만났다. 잉글랜드 침략에 맞서기 위한 두 지역의 '정상회담'이었다. 다리
가운데 나무 벽으로 막은 공간을 만들고 두 정상이 경호원 10명씩만 데리고 들어가 평화 회담을 하기로
약속했다. 신변 안전장치였다. 그런데 샤를 경호원들은 용맹공이
나무 벽을 넘어 들어서자마자 도끼로 찍어 죽여버렸다. 그 시대 정상회담은 실전(實戰)이었다.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악수로 맞붙었다. 서로 손가락 관절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6초간 힘을 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흰 손마디(white-knuckle)
외교'라고 불렀다. 주먹을 꽉 쥐어 흰 뼈가
드러날 정도로 공포를 일으키는 외교란 뜻이다. 평소 트럼프는 손아귀 힘으로 기선을 제압하곤 했는데 마크롱에게는
오히려 당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중국도 의전 싸움에 능하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가 열린 항저우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찌 된 일인지 레드카펫을 깔아주지 않았다. 오바마가
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는 미국 기자들을 내쫓으려고도 했다. 당시 미·중은 사드, 남중국해, 인권문제 등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중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를 두 번이나 하석(下席)에 앉혀 시진핑을 만나게 했다. 반면 일본 특사는 엊그제 시진핑과
동등하게 마주 보고 앉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각 심리전'으로 악명
높다. KGB 첩보원 시절 늦게 등장해 급하게 원하는 것을 몰아붙이는 심리 전술을 배웠다고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4시간15분, 아베 일본 총리는 3시간, 모디
인도 총리는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영국 여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70분을 기다렸는데
푸틴을 보자 난데없이 독일어로 환영 인사를 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을 맹비난하던 독일을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제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지각왕' 푸틴을 30분 기다리게 만들었다. 푸틴은
30분 늦었는데 김정은이 1시간 지각으로 맞섰다. 의전
무례에서 북이 한 수 위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석유 지원이나 제재 해제 등 실질적
성과를 얻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제 귀국 일정을 앞당긴 것도 이상하다.
북 외교팀이 자신들의 '신(神)' 김정은이 '차르' 푸틴보다
위대한 존재라는 모양새에 집착하다 실속을 놓친 것은 아닌가.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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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말려 올라가고, 푸틴이 준 동전 떨어뜨리고… 김정은 의전 실수 연발… 김여정이 옆에 없어서?
동생 빼곤 누구도 金 만지지 못해… 김여정 있었으면 금방 수습할 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러시아 방문은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진행됐지만 '의전 실수'가 자주 눈에 띄었다. 김정은의 해외 방문 때마다 그를 밀착 보좌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현장에서 보이지 않은 것과 연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처음 만났던 25일 오후부터 북한 측은 사소한 의전 실수를
반복했다. 전용차에서 내려 푸틴 대통령에게로 걸어가는 김정은의 인민복은 상의 일부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재킷에서 엉덩이 부분을 가리는 용도로 재단된 벤트(vent)라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이 말려 올라가며 김정은의 엉덩이 부분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 대북 소식통은 "유일하게 김정은의 신체에 손을 댈 수
있는 김여정이 현장에 없어 일어난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만찬 연회 때도 실수 연발이었다. 김정은은 푸틴 대통령에게 동전을 선물로 받았다. 러시아 고유 풍습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 동전을 떨어뜨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푸틴 대통령을 바라봤다. 이 실수 직후 김정은은 푸틴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통역과 대화를 나눴다. 상대방이 '외교 결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외교가에선 "평소처럼 김여정이 가까이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거나, 금방
수습할 수 있었던 사소한 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앞서 24일엔 김정은 전용 열차가 블라디보스토크역 플랫폼에 마련된 '레드카펫' 위치에 맞춰 정차하지 못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열차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지만 끝내 '레드카펫'과 아귀를 맞추지 못했다. 북한 측 경호 인력이 당황하며 손을 'X자' 모양으로 흔드는 장면도 취재진에 포착됐다.
-윤형준 기자, 조선일보(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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