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로 잠들다] ....

뚝섬 2023. 3. 15. 10:46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로 잠들다]

[일본이 한국의 진정한 파트너가 되려면]

[아베 國葬의 이토 히로부미] 

[아베의 일본판 대국굴기] 

[일본의 경제 보복이 선거용?]

["참의원 선거뒤 보복 풀릴거라 생각하면 오산"]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로 잠들다

 

1960년대 일본 문학계에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나타나서 작가 지망생들이 붓을 꺾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 주인공이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다. 1950년대 후반 등단해 ‘만연원년(万延元年·1860년)의 풋볼’ 등 세계적 명작들을 남긴 그가 타계했다고 일본 언론이 13일 전했다. 오에를 추모하는 이들은 대문호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일본의 양심’으로 그를 기억한다.

▷“일왕이 사람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에 놀랐고 실망했다.” 오에는 1945년 8월 15일 라디오로 일왕의 항복 선언 연설을 들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1935년 태어나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그는 어릴 적 “일왕은 신비한 하얀 새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왕 역시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느꼈던 충격과 미 군정 체제에서 경험한 민주주의가 오에의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58년 소설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하며 필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3년 아들이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나면서 그의 삶은 크게 바뀐다. 낙담한 오에는 생후 한 달 된 아들을 병원에 놔둔 채 히로시마로 떠났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을 돌보던 의사에게서 ‘아픈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선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미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도쿄로 돌아와 아들을 돌보며 쓴 소설 ‘개인적 체험’ 등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는 “아들과 공동 집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오에는 평소 조용하고 배려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한국인들이 자택으로 찾아온다고 하면 문패 위에 한글로 이름을 써서 붙여놨을 정도였다고 윤상인 전 서울대 교수는 전했다. 하지만 폭력, 특히 국가의 폭력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에세이에서 “권력이 쌓아올리는 사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적으로 저항하는 목소리를 한결같이 계속 내는 길밖에 없다”고 썼다. 그리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오에는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며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일왕이 주는 문화훈장을 거부했다는 이유 등으로 극우세력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협박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지인들과는 전화 대신 팩스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노년까지 집회에 참여해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이 또 한 명 귀천했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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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의 진정한 파트너가 되려면

 

[특파원칼럼]

25년 전 韓, 망언 딛고 대승적으로 판단
“새 시대 개척” 기시다, 전향적 화답해야

 

한국과 일본 모두 가장 사이가 좋았던 때라고 꼽는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맺을 때도 일본에서 마냥 환영하는 반응만 나온 것은 아니다.

총무상 시절 “일본은 식민지 시대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고 망언한 에토 다카미 의원은 김 대통령이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만찬을 한 날에도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바뀔 때마다 (일본이) 사과와 반성을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해 물의를 빚었다. “한일 기본조약으로 해결했는데 이제 와서 웬 사죄냐”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면 한국이 청구권을 들고 올 것” 같은 말들이 집권 자민당에서 나왔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일왕 만찬장에서 과거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사기로에 놓였던 납치 사건(1973년 중앙정보국이 일본에서 김 대통령을 납치한 사건)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한일 관계에서 대승적 태도를 보여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에서였다. 한국의 통 큰 태도에 오부치 총리는 기자회견장에서 “일본 정부 책임 있는 사람들이 서명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왜곡하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부치 총리의 이 발언은 안타깝게도 이후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전적으로 일본 책임이다.

거센 논란 속에도 한국 정부가 과감하게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결론 내린 배경은 25년 전과 다르지 않다.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한 큰 결단이라는 것은 일본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일 관계를 양자 관계 틀로만 보는 일본의 시야가 좁다.” “글로벌 국가 전략으로 한일 문제를 다루는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 일본 한반도 전문가들이 기자에게 들려준 냉정한 평가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중국의 강화되는 해양 진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엄중해진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하면 양국이 과거사로 다툴 여유가 없다. ‘왜 피해자인 한국이 양보하느냐’는 비판이 한국에서 나오지만 거꾸로 보면 이렇게 대승적이고 과감한 결단이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 국제사회에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언제나 사죄만 요구한다”고 일본이 퍼뜨린 ‘한국 피로증’은 한국이 스스로 끊어냈다. 지난 10년 넘게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한일 관계의 공도 일본에 넘겼다. 이제 일본이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5년 전 일본 총리가 문서로 약속한 사죄와 반성조차 총리 입으로 되풀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일본 외교의 퇴행’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강제동원은 없었다. 이미 다 끝난 일”(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이라며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는 태도는 한일 관계 개선의 장애물이다. 일본 최고 명문 가이세이고교 출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해 모교 창립 150주년 기념 회보에 “시대적 전환기에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글을 썼다고 한다. 지금 한일 관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 정부도 ‘할 일 다 했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로하고 반발하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두 차례 보상을 했어도 피해자들은 한일 협정에 따른 식민지배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와 고속도로 짓는 데 쓰느라 충분한 보상과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가 대의와 외교 전략이 옳아도 역사가 인간에게 남긴 응어리를 치유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통 큰 대일 외교도 국내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래야 일본도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존중한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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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國葬의 이토 히로부미

 

[특파원 리포트]

 

27일 도쿄의 니혼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추도사가 끝나고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동료 대표 자격으로 단상에 올랐다. 울음을 꾹 참는 초등학생처럼 목소리는 떨렸고 말투는 어눌했다. “7월 8일, 그날 나는 당신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고 했다. “2012년 당신은 지병 탓에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주저했고, 내가 긴자의 야키토리집에서 3시간 동안 설득하고야 고개를 끄떡였다”며 “스가 요시히데라는 생애에 끝까지 기억할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했다. NHK의 카메라는 유족인 아키에 여사가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을 비췄다.

 

27일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가 도쿄의 니혼부도칸(日本武道館)에서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 참석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도쿄의 구단시타에는 일반인을 위한 헌화대가 마련됐다. 검정 정장을 입은 20대 남성부터 기모노를 차려 입은 70대 할머니까지 손에는 흰 국화를 들고 4㎞가 넘는 긴 행렬을 늘어섰다. 잡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행렬이었다. 행렬이 지나는 한 공원에 자동 분무기가 안개 같은 물을 뿜어내고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은 피하기보단 일부러 헌화할 국화를 분무기에 가까이 댔다. 이날 2만3000여 명이 헌화했다.

 

안중근 의사의 총격에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가 돌연 등장한 건, 스가 전 총리의 추모사 말미였다. 스가 전 총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친구 이토 히로부미를 보내고 읊은 노래만큼, 마음을 제대로 읊은 () 없다”며 ‘마음을 끝까지 주고받은 사람이 먼저 떠났다. 이제 이 세상(일본)은 어디로 가야 하나’를 읊었다. 장례식장에서 이례적인 박수가 터졌다. 일본제국 육군의 창설자인 야마가타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지휘한 인물로, 일본 군국주의의 아버지 불린다.

 

일본인을 울린 2367자(字) 추도사와 2만3000여 국화는 아베를 잃은 일본 보수·강경파가 앞으로 나갈 길을 엿보여준 장면이지 않을까.

 

최근 한두 달 새 도쿄를 방문한 한국 정치인과 관료들은 다들 “일본은 문재인 전 정권과 다른 윤석열 정부에 호의적” “K팝을 좋아하는 일본 젊은이들을 보면 아무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극소수의 혐한 세력만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은 한국이 아닌 일본 국민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한일 관계는 한국이 일본과 마주 서서, 각자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해관계를 밀고 당기는 일이다. 일본의 선의로 얻는 선물 같은 아니다.

 

아베 전 총리의 입버릇은 ‘세계의 중심에서 일본을 꽃피우자’였다. ‘전쟁하는 정상국가론’이라는 아베의 신념은 상당수 일본 국민의 지지 속에 스가 전 총리 등 정치인에게 이어질 것이다.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지만 그들의 장례식은 1909년과 1922 일본 국민의 추모 속에 국장으로 치러졌다. 일본 국민에게 그들 또한 일본을 위한 정치인이었을 따름이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조선일보(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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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일본판 대국굴기 

 

20년 준비한 아베의 경제전쟁 '戰後 레짐' 탈피 위한 신헌법
전초전이 對韓 무역 보복… 시간은 우리편 아냐
 

 

2014년 10월 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사가미오노시(市)의 분주한 취재 현장엔 묘한 공기가 돌았다.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 발표가 예정됐는데 일본 한 시민단체가 유력 후보에 올랐다. 일본 주요 신문과 방송국 취재진 수십 명이 바삐 움직였고 방송 카메라는 '라이브(Live)' 표시를 화면에 띄우고 생중계했다. 하지만 잔칫상을 기대하는 흥분은커녕 냉랭함마저 느껴졌다. 평화상 수상자로 파키스탄의 10대 인권운동가가 선정되고 이 시민단체가 탈락하자마자 TV 라이브는 서둘러 끊겼다. 일본 특유의 "탈락했지만 일본인이 여기까지 온 것만도 대단하다"는 자기 위안 보도도 없었다. 일본 취재진의 뒷모습에선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이유는 노벨 평화상 후보인 이 단체의 이름이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을'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 보유를 금지한 일본헌법 9조(평화헌법)에 평화상을 달라는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이 노벨 평화상에 선정됐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헌법을 대표해 아베 신조 총리가 오슬로의 시상대에 서는 주인공이 된다. 당시 일본엔 '아베 총리를 망신 주려는 메이와쿠(민폐)'라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한국에선 아베 총리의 '정상국가론'이 일부 극우의 지지만 받는다고 믿지만 일본 여론이 딴판이 된 건 벌써 오래전이다. 아베 총리는 20여년 전부터 2차 세계대전의 결과물인 평화헌법에 억눌린 비정상적인 일본을 헌법 수정을 통해 제자리로 돌리자고 했다. 그는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자위대 아빠 이야기'를 한다. 중학생 아들이 자위대 장교인 아빠한테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는 위헌(違憲)이래'라고 말했다는 스토리다.

지난 5월 헌법기념일에 아베 총리는 "2020년에 신(新)헌법을 실현하겠다"며 "선두에 서서 책임지고 밀어붙이겠다"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 상당수는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은 헌법 수정 강행에 앞서 꼭 끊어내야 할 과거 굴레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전후 레짐(체제)의 탈피'인 신헌법 제정을 위해선 종군위안부·징용근로자 등 일제강점기,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과거사와 연관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제 보복이 전후 세대인 아베 총리(1954년생)의 오랜 꿈을 이루는 전초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6개월 넘게 100가지 넘는 보복 카드를 준비했다"거나 "아베가 골프장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 앞에서 구르는 망신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미국을 우군으로 만들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정부의 WTO 제소와 같은 대응에 일본 주요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전략 물자의 해외 유출을 관리하는 건 자유무역과는 상관없다"고 맞대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허둥지둥이다. 일본이 한국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콕 집어, 일본산(産) 소재의 수출을 사실상 막았는데도 정부 안팎에선 "이달 21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 쓰려는 일회용 카드이니 조금 기다리면 지나갈 일"이라든가, "한·일 대립을 싫어하는 미국이 예전처럼 나서주면 해결될 문제 아니냐"는 인식 수준이다. 이런 인식이다 보니 정부·여당의 아이디어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 수준을 집중 투자한다'는 국산화 대책이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수십조원씩 영업이익을 내는 우리가 1조원이 없어 일본산 핵심 소재에 끌려다니겠느냐"며 실소했다.

안타깝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일부 진보 측 인사들이 아무리 고종을 개혁 군주라 미화해도, 그는 제국주의 침탈을 못 막은 무능한 통치자다. 부디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을 사랑한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신(新)경제 제국주의를 이겨낸 냉정한 지략가로 기록되길 바란다.

 

-성호철 산업2부 차장, 조선일보(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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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 보복이 선거용?

 

日, 독자 경제제재 나선 건 처음… 安保라는 공통분모도 사라져
불매운동, 반일 시위 조장은 기업과 국민을 인질로 삼는 것
 

 

어느 집단에서나 구성원들이 거스르기 힘든 '분위기'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암묵적 규율이 유독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일본 작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공기(空氣·구키)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일본인에게는 모든 논의나 주장을 초월해 구속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기'의 지배라는 것이다. 어떤 '공기'가 형성되면 누가 결정을 내렸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용 3대 핵심 소재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데 대해 21일 참의원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금 일본을 짓누르는 '공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전후 일본이 특정 국가에 대해 독자적으로 경제제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일본의 경제제재 조치는 유엔 결의안을 따랐을 뿐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유엔 제재 플러스 알파가 기본이다. 태평양 전쟁의 발발 원인을 미국의 경제 봉쇄 탓으로 돌리는 일본의 집권층은 경제제재에는 늘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일본이 이번에 작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일본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을 더욱 옥죄어야 한다는 의견이 아베 총리의 개인 지지율(51%)을 훌쩍 넘는 58%로 나타났다. 20대 유권자들의 아베 지지율은 70%에 달할 정도로 열광적이다. 아베 총리는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백기를 들고 항복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징용 피해자의 개별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반세기 이상 지탱해온 한·일 관계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렸다. 외교 조약도 최후의 결정권은 사법부가 쥐고 있다고 우기는 정부를 상대로 외교가 기능할 리가 없다. 위안부 합의 파기를 시작으로, 욱일기 배척, 레이더 분쟁 등 적폐청산식 반일 노선을 줄기차게 펼쳤다. 일본 입장에서는 합의 사항이 계속 뒤집히는데, 다시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지켜질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됐다. 과거에는 한·일 관계가 어려워도 안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하에서 그런 공통분모는 없어지고 서로 간의 약속은 무용지물이 됐다.

일본의 조치 발표 일주일 만에 문 대통령이 내놓은 반응을 보면 반일(反日) 프레임은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싸움을 걸어온 것이니,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일본 측이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또한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생기면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전면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미국이 못 본 척 방치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은 아베의 손에 달려 있다. 일본이 한국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한국 측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일본으로선 협상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집을 버려야 한다. 일본의 '공기'를 잘못 읽거나 능력을 오판해서 정면충돌로 간다는 시나리오는 악몽이다. 한 여당 중진의원은 "이 정도 경제 침략 상황이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키고 반일 시위에 앞장서라는 말로 들린다. 기업과 국민들을 인질 삼아 옥쇄(玉碎)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중국에서도 안 통했다. 2012년 중국의 대규모 반일 시위 이후 일본 기업들은 소리 소문 없이 중국을 빠져나갔다. 일본의 유니클로가 중국에서 동남아 국가로 빠져나가는 데 2년이 채 안 걸렸다. 한번 각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나라, 그게 일본이다.

 

-정권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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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뒤 보복 풀릴거라 생각하면 오산" 

 

[한일 외교 원로에게 듣는다] 신각수 前주일대사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18일까지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일본의 추가 보복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각수(64) 전 주일(駐日) 대사는 8일 "아베 내각이 수출 규제를 이달 21일 참의원 선거에 맞춰 '반짝' 하는 것으로 본다면 큰 오산"이라며 "아베 내각은 선거 이후에도 '한국 때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 전 대사는 이날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7월 18일 전까지 일본이 추가 보복을 못 하도록 특사를 보내든 외교 채널을 총동원하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며 "상황이 시급한 만큼 양국 고위 당국자 간의 직통 채널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 지난달 19일 우리 측에 '제3국 중재위' 설치를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답변 시한인 오는 18일까지 침묵하면 추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는 "도덕적 우위에 있는 우리 쪽이 먼저 일본을 접촉해 보복 조치를 철회하도록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며 "강대강(强對强)으로 가면 경제뿐 아니라 국제적 평판에서도 우리가 잃는 국익이 일본보다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치와 국제법 전문가인 신 전 대사는 외교부 조약국장, 1·2차관을 역임했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 냉각됐던 이명박 정부 후반(2011~2013년) 주일대사를 지냈다.

―이명박 정부 때도 한·일 관계 나빴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당시가 한·일 관계의 밑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지하까지 떨어진 것 같다. 단발적인 독도 방문과 달리 이번 사안은 2015년 양국이 맺은 '위안부 합의'의 무력화, 1965년 체결한 청구권 협정과 충돌하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일련의 과거사 관련 법적 문제라 훨씬 심각하다."

―이렇게까지 악화한 근본 이유는 뭔가.

"한국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은연중에 법은 시대가 바뀌면 같이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인식하게 된 반면, 일본은 어떻게 된 법이든 한 번 정해졌으면 끝까지 그걸 준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 정부가 전(前) 정부의 잘못된 합의라며 위안부 합의를 일방적으로 사실상 파기해버리고 얼마 안 지나 강제징용 배상 판결까지 나왔다. 그러자 일측이 전례 없는 강경 대응으로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어쩔 수 없다는데.

"삼권분립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선 한 국가가 국제조약이나 관습법을 어겨 상대국에 손해를 주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사법부가 한 거라 우린 책임이 없다'며 면피성 주장을 하는 건 국제사회에서 수용될 수 없다.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일본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일본은 한국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사드 사태' 때는 중국에 별소리 못하고선, 일본에는 큰소리치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빨리 서로 감정을 풀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도 무산됐다.

"오사카에서 김정숙 여사와 아키에 여사는 화기애애했다. 지금 상황에선 양국 퍼스트레이디들이라도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무게감 있는 인사를 특사로 보내야 한다."

―일본이 대화 거부한다는 말도 나온다.

"내가 주일 대사로 있던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그달에만 일본 외무성에 네 번이나 초치돼 항의를 받았다.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지방에 내려가 일본 여론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싸우더라도 대화는 해야 한다."

―먼저 손을 내밀면 일본이 받아줄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우리 정부뿐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성금을 전달하자 많은 일본 사람이 감동하고 한국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미우나 고우나,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분명 손을 잡을 것이다."


-노석조 기자, 조선일보(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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