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정치 풍자' 내로남불] 조국 수호' 집회에 나온 다른 개그맨은 '개념 연 예인' 반열에.. [虛業의 美學]

뚝섬 2019. 10. 21. 06:47

'정치 풍자' 내로남불

 

2007년 미 대선 때 CBS방송에서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이 이죽거렸다. "알고 보면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공통점이 많다. () 한 사람은 결혼 생활에 문제가 많은 '뻣뻣남'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결혼 생활에 문제가 많은 남자와 사는 '뻣뻣녀'라는 거죠." 뉴욕 시장을 지낸 줄리아니가 세 번 결혼한 것, 힐러리가 '성추문' 남편과 사는 걸 비꼬았다. NBC의 간판 코미디언 제이 레노는 틈만 나면 빌 클린턴의 불륜 스캔들을 입에 올렸다. 시청자는 배꼽을 잡았다. 지지자들은 속이 불편했겠지만 '프로그램 폐지'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중국에는 정치 풍자가 아예 없다. 시진핑 주석을 만화 '곰돌이 푸'에 비유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를 풍자하다 퇴출당한 미국 TV 만화 방송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남겼다. "중국 검열을 환영한다. 시 주석은 곰돌이 푸를 전혀 닮지 않았다. 이제 됐냐?" 이 에피소드는 정치 풍자가 민주주의와 독재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걸 알려준다.


 

▶한국에서 정치 풍자 코미디가 첫선을 보인 건 1986년 김형곤씨가 열연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다. 이 프로는 정권 서슬에 방송 중단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민주화 이후엔 5공 비리 청문회로 드러난 부정도 신랄하게 풍자했다. 개그맨 최병서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같은 '핵인싸'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맘대로 복사하며 인기를 얻었다.

▶개그우먼 김영희씨가 최근 팟캐스트 방송을 접었다. 다른 출연진과 '금수저'를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다 "조국 딸 느낌이 나요, 박탈감을 느껴요"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더 신중하겠다"고 했지만 친문 세력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했다. 고교생 병리학 논문 제1저자와 황금 스펙, '무조건 장학금' 이상의 금수저가 어디 있다고 이 정도 말도 못하나. 반면 '조국 수호' 집회에 나온 다른 개그맨은 '개념 연 예인'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조국이 아니면 안 되게 됐다"고 외쳤다 한다
.

▶정치 풍자가 '풍자'가 되려면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편이 하면 '풍자'고 상대편이 하면 '인권유린'이라는 기준은 내로남불이다. 기괴한 나체를 그려 여성 정치인을 모욕할 때는 열광하더니 '조국 딸 느낌'이라는 한마디를 했다고 방송을 접게 한다면 독재와 다름없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10-2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虛業의 美學

 

JP는 명언을 남겼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필자는 JP의 허업을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하나는 정치라는 게 매일매일은 역동적이고 뭔가 세상을 바꾸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결과적으로는 허망한 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따지면 인생사 허망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특히 정치가 더욱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허()의 의미를 도가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도가(道家)에서는 허를 숭상한다. 수레바퀴의 가운데가 둥그렇게 비어 있어야만 바큇살을 수십 개 꿸 수 있다는 비유도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표현이 모두 '()'를 말하고 있다. 골프채를 잡을 때에도 '힘 빼라'는 이야기를 코치에게 듣고, 기타를 배울 때도 '힘 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힘이 잘 빠지는 게 아니다. 힘을 빼고 무심한 듯한 상태로 있는 허를 몸으로 체득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가의 허를 들먹이는 것은 '조국 사태' 때문이다. 법무장관을 그만둔다고 발표한 뒤 불과 20분 만에 서울대 법대 교수 복직 신청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렇게 가벼울 수가! 한두 달 좀 있다가 하지! 월급 때문인가? 아니면 복안이 있어서인가? 하여튼 현실적 손해는 절대 안 보겠다는 철저한 계산이 느껴진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손해를 잘 안 본다. 그러나 대권까지 염두에 두었던 인물치고는 너무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간이역에서 좀 쉬었다가 가는 것도 괜찮다. 허업의 미학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까지 교수 생활도 할 만큼 했고 먹고살 만큼 돈도 펀드에 있으니 이제 교수직 던져 버리고 초야에서 좀 은거 생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허허롭게 말이다
.

조국을 보면 실속만 있지 허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국 옆에는 장자방도 없고 도사도 없나. 이럴 때 '어디 산속 암자나 수도원에 가서 몇 달이라도 좀 쉬었다 오자'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오로지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형법적 계산으로만 이 세상이 움직인다고 보는 것인가. 교토삼굴(
三窟)이라는 말도 있다. '꾀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군데 파 놓는다'는 뜻이다. 인생사 여차하면 좀 튈 데가 있어야 한다. 김해에 있는 신어산(神魚山·630m)에 몇 달 가 있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가야국의 장유화상(長遊和尙)이 머물렀던 성산이다. 아차! 검찰 수사가 남아 있나.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9-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