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자업자득' 정권의 2년 반 세월
임기 前半 쌓은 업적 全無한데 後半 어찌 버티나
대통령 바뀌지 않으면 바꾸도록 만드는 게국민 권리
문재인 정권이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났다. 정권
실적을 평가하는 각종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수십 항목에 이르는 평가에서 어느 하나 평균 점수 이상을
받은 분야가 없다. 안보 외교·경제·사회 통합·교육·환경·에너지·일자리 모두가 낙제점(落第點)이다. 엊그제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현 정권이 가장 잘못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얼핏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5년'은 임기 전반에 벌었던
것을 후반에 까먹고 빈털터리로 퇴장하는 한철 장사다. 5년 단임 한국 대통령들의 정치 만년(晩年)이 그랬다. 그런
운명을 벗어나고자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업적 쌓기에 매달렸다. 대통령은 빈손 빈주먹으로
돌아가도 나라는 몇 걸음씩이나마 전진했던 것은 이 덕분이었다. 성품(性稟)이 결코 너그럽다고는 할 수 없던 그들이 전(前) 정권에 대한 청산 작업을 최단기간에 매듭지으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며칠
전 검찰은 세월호 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야당 대표를 잡으려는 정치 계산이 있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정상적 국민에겐 정권의 '정신 결함' 또는 '성격 장애' 탓으로
비친다.
문재인
정권의 성적표를 훑어보고 떠오르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세
개가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지얼(自作之孼)'이다. '자승자박'은 '자기가 가진 오랏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다','자업자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작지얼'은 '제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災殃)'이라는
뜻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삶은 소대가리' 취급을 하고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를
섞어 발사하고 한국 기업 돈으로 지은 금강산 시설을 들어내겠다고 막말을 한다 해서 김정은의 식언(食言)을 나무랄 수 있나. 중국 학자의 최근 평양 방문기에 따르면 그쪽
사람들의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대단하다고 한다.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우리 민족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통 큰 연설을 하고 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아무 소식이 없느냐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UN에서 남북 군사 합의 이후 북한의 합의 위반 행동이 한 건도 없었다 했고, 청와대
안보실장은 북한 미사일 발사가 한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놓고 김정은에게 무슨 말을
하나.
바로 며칠 전 미국 국무부 고위 인사들이 떼로 몰려와 미군 주둔비 부담 5배 인상,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선언 번복, 중국 정보 기업 화웨이 퇴출 정책에 한국 참여를 요구했다. 부동산
업자 출신 대통령이 미국 군대를 임대(賃貸) 사업 대상으로
삼는 천박함이 물씬 풍긴다. 일본과도 미군 주둔 비용 부담 갈등이 있지만 워싱턴에서 주일미군
철수 가능성은 단 한 번 나온 적이 없다. 주한 미군 감축·철수설은 이젠 고정(固定) 메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선언 번복 요구를 보라. 바로 지난 8월 청와대 안보실 책임자가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를 허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꺼내들었던 그 카드가
아닌가. 일본 머리를 친다던 방망이가 한국 머리에 떨어졌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불러올 한·일 정면 충돌을 우려하는 외교부 소리에 귀를 열어 주었다 해서 전(前)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사람들을 줄줄이 재판정에 세웠다. 그러면서 죽창(竹槍) 든
의병을 들고 나왔었다. 지금 사정이 어떻게 됐나. 청와대는
대통령이 방콕 아세안 정상회담 대기실에서 아베 총리와 '11분 동안'
긴(緊)한 말을 나눴다 발표하고 일본은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 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멋대로 휘저으며 북한과 삼각편대(編隊)로 날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부딪히고 일본과 충돌하며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신주(神主)를 붙들고 가라앉는 경제, 하마(河馬)처럼 돈만 삼키고 일자리를 낳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일자리 대책에 내일이 있겠는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아파트
값이 평당(坪當) 1억원을 돌파하는 최고 기록을 낳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자율고 폐지와 대학 입시 정책 허물기는 학부모들의 등을 강남으로 떠민다. 대책없는 원전 폐쇄는 멀쩡했던 전력 회사를 적자 더미 위에 올려놓고 이젠 전기요금 인상 고지서를 인쇄할 일만
남았다.
이 정권 2년 반은 '자승자박' '자업자득' '자작지얼'의
세월이다. 3년 전 촛불이 타던 광화문 네거리 그 자리에선 매일 대통령 하야(下野)를 외치는 갈라진 목소리가 밤늦도록 울린다. 대통령은 바뀔 수 있을까. 바뀌지 않으면 바꾸게 해야 한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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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왜 자꾸 국민을 거리의 투사로 내모나
무능, 국정 파탄보다 국민 속을 더 뒤집어놓는 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입을 꽉 다무는 이런 몰염치함…
"'우기다'가 뭐예요,
'우기다'가 뭐냐고! 내가 증인이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정무수석의 광분(狂奔)은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해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향해 대통령 비서가
이렇게 막가파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여서 운이 좋았다. 둘만 있었으면 고함과
삿대질로만 그치지 않았을 성싶다. 하지만 상대가 장대한 체구의 남성 원내대표였으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국회 모독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강기정의 '광분 사건'으로 첫날 국회 예결위는 파행됐다. 문재인 정부가 막대한 재정(財政)을
퍼붓기 위해 짜놓은 내년 예산안 심의에 그가 야당 불참 명분을 준 것이다. 국회에 헛걸음을 한 그는 "정무수석이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가 아니지 않으냐. 오늘만
해도 매우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에는 페이스북에 '예산안은 법적 기일 내에 통과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예결위원장을 따로 만나 맥주 한잔 했다'고 쓰고, 활짝 웃으며
맥주잔을 든 사진을 올렸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대통령 비서의 권력을 또 한 번 과시했다.
물론 그는 국감장 난동에 대해 "백번 제가 잘못한 것"이라며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에 "회의 진행에 대해 국회가 한번 생각을 해야 한다…"며
훨씬 더 긴 꼬리가 붙어 있다. 사과라는 걸 하면서 사실은 국회가 더 문제 있고 자신은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문재인 청와대 안에서 전염되고 있는 궤변 화법(話法)이다.
그날 국감에서 한 야당 의원이 노영민 비서실장에게도 이를 지적했다. "말 힘들게
하지 말라. 대통령 닮아가나?"라고 하자, 노 비서실장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대통령 닮아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 청와대 참모가 보스인 대통령을 닮아간다면 칭찬이지 격분할 일은 아니다. 노 실장이 왜 부정했는지 모르나, 바깥에서 보기에 청와대 참모들은
보스를 빼닮았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상황에 떠밀려 '송구하다'며
입을 뗄 때도 실제로는 자신이 옳다는 걸 우겨대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례로 대규모 광화문 집회가 열리고 조국씨가 임명 35일 만에 장관에서 사퇴했을 때,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는 큰 진통을 겪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사과
비스름한 말을 했다. 정작 본인이 조국을 장관으로 잘못 임명한 것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 없었다. 국론 분열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조국을 반대한 광화문 집회
인파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지 않았다면 광화문 집회에 대해 마치 앙갚음하듯이 "조국 장관의 뜨거운 의지와 온갖 어려움을 견디는 자세는 다시 한 번 검찰 개혁의 절실함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역대 어느 정권도 정책이나 인사·언행 등에서 실패와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간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사과해야 할 타이밍에는 사과했다. 어떻게 사과를 잘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이 실상을 알고는 있구나. 노력은 하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아예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정권이다. 경제 실정(失政)이 통계청 자료로 입증돼도 "통계 조사에 문제가 있다"며 딴소리를 한다. 전(前) 정권 탓, 외국 탓, 야당
탓을 하지 현 정권의 정책적 오류라고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예외적으로 문 대통령이 곧잘 사과하는 사안이 있다. 제주
4·3, 월남전, 부마 사태, 광주 5·18 등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사과한다. 지난 박근혜 정권의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낚싯배 전복 사고' 등에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과도하게 사과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과 중소기업에서 난리 났지만 대통령은 민노총을 의식해 "당초 약속대로 최저임금을 더 못 올려줘 안타깝다"고
사과한 적도 있다.
임기 절반 내내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솔선수범했으니 청와대 참모들도 안 닮아갈 리 없다. 상식이
통한다면 강기정 수석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준 책임으로 사표 내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한다면 이런 난동 비서에게는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이미 본인이 사과했기에 따로 입장 낼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능·위선·국정 파탄보다 국민 속을 더 뒤집어놓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입을 꽉 다무는 바로 이런 몰염치함이다. 많은 사람에게 '문재인 정권은 구제 불능'이라는 막막한 기분을 들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 자꾸
국민을 거리의 투사(鬪士)로 내모나.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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