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斷食)
황교안의 단식이 YS보다 어려웠다
후광·추종세력도 없고 반대 여론은 비아냥
험한 말 내뱉는 정치인, 먼저 인간이 돼라
1983년 5월 18일 전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전두환 정권의 정치 탄압에 항거하는 단식에 돌입했을 때 나는 조선일보 정치부장이었다. 그가 단식을 시작한 초기 조선일보는 정권의 언론통제로 그의 단식을 보도하지 못했다. 모든 언론이 그랬다. 그때 언론은 김영삼의 단식을 '최근의 정세 흐름'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 '정가(政街) 관심사' '정치 현안' 등 암호문 같은 단어로 암시하는 데 그쳤다.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다. 기자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때의 참담했던 심경의 연장선상에서 '거리의 편집자들'이란
칼럼(84년 11월)을
썼다. 우리가 가판 신문에 숨겨놓은(?) 진짜 중요한 1단짜리 작은 기사에 빨간 줄을 그어 '특보'라고 소리치며 판매하던 가두 판매자들을 보며 "우리는 오늘도
거리의 편집자들에게 졌다. 수치감과 창피스러움이 우리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저 친구들 잘도 뽑아낸다'면서 히죽이 웃을 수밖에 없는 마음속에
쓰디쓴 느낌이 가라앉는다."
새삼 36년 전의 '김영삼 단식'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확연히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는
권력이 '사실'을 막을 수도 없고 막는다고 거기 이끌려갈
언론도 아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 언론통제
시대에는 전체의 상황이 권력 대(對) 언론의 구도였다. 당국의 강요에 불가피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 쪽 매체라도 기자들끼리는 속으로는 '한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언론끼리도 확연히 갈린다. 권력(정부)을 옹호하는 매체는 앞장서서 비판 언론을 공격한다. 매체끼리도 성향에 따라, 지향하는 이념에 따라 서로 대립각을 세운다. 권력으로서는 전체 언론을 통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언론
매체끼리 싸우게 놔두면 된다. 국민의 여론도 그렇게 갈리도록 유도한다. 광화문 집회 대 여의도-서초동 집회의 구도는 그것의 반영이다.
'황교안
단식'에서도 그 대립의 구도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김영삼
단식은 그 '깜깜이 통제'에도 불구하고 널리 회자한 데 반해
황교안 단식은 만천하에 공개된 속에서 일부 '생뚱맞다'거나 '왜 저러지?'의 반응을 유도해냈다.
단식이라는 극단적 투쟁 방식에 '딴지'를
거는 매체와 여론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황교안 단식은 YS 또는 그 이전의 어느 정치인 단식보다 더 어렵고 불리한 여건에서
단행된, 그래서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본다. 김영삼은 이미
각광받는 '민주 투사'였다.
추종자도 많았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적 적수의 응원도 있었다. 재야 민주인사, 종교인(추기경)들도 그의 단식장을 찾았다. 그의 단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단식은 정가뿐
아니라 시중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황교안은 정치 신인이다. YS 같은 후광도 없고 추종 세력도 없다. YS가 감(感)의
정치인이라면 황교안은 성실한 학생 이미지다. YS가 내건 조건이 직선제 개헌을
제외하고는 전두환 '탄압정치'에 관한 것인데 반해 황교안의
조건은 지소미아 종료, 공수처, 선거법 개정 등 헌법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황교안 반대자들은 그가 단식을 정치적으로 불리한 당내 상황을 일거에 극복하려는 '꼼수'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황교안의 요구는 안보 위기와 좌파 장기 집권 음모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황 대표의 단식은 여건 면에서도 YS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졌다. 보도 통제는 YS 단식을 암암리에 퍼져 나가게 하고 그래서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인데 반해 황의 단식은 미주알고주알 보도되면서 심각성이 희화화된 측면이 있다. YS가
단식할 때 50대 중반이었던 반면 황 대표는 60대 중반의
나이였다. 그것도 자택도, 병원도 아니고 11월 추운 날씨에 아스팔트 위 천막 속에서 진행됐다.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누가 누구의 단식보다 더 쉽거나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들먹여 누구의 단식을 깎아내리려는 정치적 반대자들의 꼼수가 역겨워서다.
단식은 정치적 장난이 아니다. 단식하는 사람이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거물이건 아니건, 내 편이건 반대편이건 함부로 평가할 것이 아니다. 비난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 인간의 목숨을 건 행동을 이 세상의 누구도 폄하하고 깎아내리고 조롱하고 히죽거릴 자격은
없다. 제1야당 대표의 절박한 단식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험한 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은 정치인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라'는
경구를 새겨들었으면 한다. 자신도 같은 '값'을 걸 자신이 없으면 견해가 달라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김대중 고문, 조선일보(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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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강제 변경 세력들, 의식 잃은 野 대표 조롱 비아냥
선거법 강제 변경과 공수처법에 반대하며 청와대 앞에서 8일간 단식 농성하던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 치료를 받고 깨어난 황 대표는 "단식장으로 다시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고 공수처는 국가 형사 사법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어느 정당이 숫자가 많다고 일방적으로 바꾸고 만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집권당과 여권 정당들이 야합해 그 폭거를 밀어붙인다는데 소수 야당 입장에서 단식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권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조롱과 비아냥을 서슴지 않았다. 황 대표가 병원으로 이송되자 근처에서 '맞장 농성'하던 여권 성향 유튜버 등은 "황제 단식이 끝났다"며 환호하고 춤을 췄다고 한다. 소셜미디어 등에는 '한국당이 며칠 전 병원을 수소문했고 하루 200만원이 넘는 입원비를 내고 황제 입원했다'는 등의 가짜 뉴스도
유포됐다. 인터넷 등에는 '옆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먹방을
찍고 싶다' '아직도 살아 있나' '응급실행 경축' 등의 댓글도 달렸다.
일부 극렬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거의 여권 전체가 혹한에 야외에 나앉은 황 대표를 조롱했다. 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영양제 맞고 천막에 둘러싸인 황 대표의 황제 단식 쇼"라고 했다.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천막
철거를 요구했다. 민주당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 "건강
이상설이 너무 빨리 나온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교안 오빠'라고 비꼬는 글을 올렸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황제 단식 텐트를 철거하라"고 했다.
범여권이 선거제도 변경과 공수처 신설 필요성을 홍보하고 황 대표 단식 중단과 협상을 촉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 있는 야당 대표를 이렇게 조롱하고 비아냥댈 수는 없다. 군사정권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조선일보(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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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한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단식이 며칠 이어지자 단백뇨가 나왔다. 진단 스틱으로 소변을 찍어보니 단백질이 검출된 것. 원래 제로여야 한다. 단백뇨가 생겼다면 신장 기능부터 뒤져야 한다. 콩팥은 '아까운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고, 피해 나가는 것도 재흡수한다. 신장병이 없는데도 단백뇨가 나오는 경우는 열이 나거나, 운동을 심하게 했거나, 추위에 노출됐거나, 탈수됐을 때 등이다.
▶단식으로 단백뇨는 왜 나왔을까. 복합 탈수 때문이다. 음식 섭취가 없으니 수분 흡수도 적다. 단식해도 물을 많이 마시면 되겠지만 추위에 노출된 상태에서는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한다. 피부가 오그라들고 혈압이 오르면 갈증 센서가 둔해진다. 건조한 겨울에는 빨래가 잘 마르듯, 추위 속에서는 호흡과 피부를 통한 수분 증발이 빠르다. 의외로 '겨울 탈수'가 많다. 결국 추위·단식·탈수가 겹쳐 단백뇨가 나왔다. '실내 금식'이 아닌 겨울철 '야외 단식'이 문제였다.
▶황 대표는 단식 7일째 의식을 몇 시간 잃었다. 이는 케톤증(ketosis) 때문이다. 음식 섭취가 12~16시간 끊기면 몸은 세포 활동 에너지원인 혈당을 먼저 소진한다. 손에 쥔 현금 쓴 격이다. 그다음 간에 저축된 혈당 전구체를 갖다 쓴다. 그래도 금식이 이어지면 지방에서 빚을 내 에너지로 쓴다. 간헐적 단식이 살을 빼는 원리다. 하지만 그 과정에 케톤 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이 의식을 혼미하게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단식에 잘 버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수분 흡수가 부족하면 누구도 일주일을 못 버틴다. 조난당한 이에게 빗물·강물·눈덩이·자기 오줌은 생명수다. 물을 마셔도 음식 섭취를 완전히 끊으면 한 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추위 속에 있으면 훨씬 더 빨리 한계를 맞는다. 설탕물이나 전해질 음료를 마시면 좀 더 견딘다. 굵은 사탕 한 알이면 300칼로리 정도 되는데, 하루 숨 쉬고 심장 뛰게 할 수 있다.
▶단식 후 '재급식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장기간 금식했다가 처음 며칠 동안 너무 많은 음식이나 액체 영양제를 섭취하면, 칼륨, 마그네슘, 인 등의 전해질 농도가 교란되는 현상이다.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뇌도 마찬가지다. 심장마비로 뇌혈류가 끊겼다가, 심폐소생술로 심박동이 살아나면 뇌혈류 재관류가 강하게 일어나 뇌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일종의 후폭풍이다. 몸과 세상 이치가 같다. 단식은 할 때나, 끝났을 때나 모두 보통 일이 아니다.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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